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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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과 리뷰를 수없이 많이 보았지만 이번에 처음 읽었다. 편의점이 처음 우리나라에 생겼을 때 24시간 동안 문을 여는 가게라는 것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남들이 다 자는 밤새 누가 가게를 찾아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루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겠다. 교대근무하시는 분들이나 밤낮을 바꿔 생활하는 직업을 가진 이가 생각보다 너무 많다.


사실 나는 편의점을 그다지 자주 가지 않는다.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혹은 대형 쓰레기 부착용 티켓을 살 때만 간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편의점을 이용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학생들의 아지트이기도 하고, 다른 곳보다 1+1, 혹은 2+1 행사가 많아 할인판매를 노리고 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저번에 언젠가 물을 사러 갔다가 행사 상품을 골랐는데 하나만 구입을 했더니 점원 분이 왜 하나만 하느냐고 하셨다. 무거워서 하나만 가져가려는 건데 이상하게 생각을 하시며 그럼 제가 먹어도 될까요, 하고 말씀하셨다. 본의 아니게 선의를 베푼 건가? 어쨌든 편의점에서는 1+1의 기쁨을 간혹 누릴 수 있다.


이 책에는 사회생활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한 여성이 등장한다. 30대 중반이 되도록 계속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 일본도 편의점은 대부분 아르바이트인가 보다. 그동안 여러 점장이 거쳐 갔지만 후루쿠라는 그만둘 생각도, 제대로 된 다른 직업도 구할 생각도 없다. 편의점만의 소리에 너무나 익숙할 정도로 모든 생활이 편의점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는 이유도, 잠자는 이유도, 심지어 손톱을 깎는 이유도 편의점 근무를 위해서이다. 그런 그녀에게 획기적인 일이 일어난다. 직원이나 손님을 스토킹 하는 이유로 쫓겨난 스가와라를 우연히 만나 집에 들인 것이다. 참으로 대책 없는 듯 보이는 일이지만 책 초기에 소개되었던 어린 시절 그녀의 기행으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어쨌든 평범해 보였던 후루쿠라의 독특함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후루쿠라의 집에 기생하다시피 하며 새로운 직장을 구하라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스가와라도, 그를 집에 들이고 식비를 더 벌기 위해 연장 근무를 원하는 후루쿠라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한 건 그녀 자신이 편의점 인간임을 뼛속깊이 알아차리는 장면이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소설에 등장하는 게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상하게 평범했던 앞부분보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싶은 뒷부분이 훨씬 재미있게 다가왔다. 갑자기 우리 각자도 평범하지 않은 어딘가에 인이 박여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을 해야만 편안해지고, 하지 않으면 불안한 무언가. 최선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놓을 수 없는 어떤 것을 우리는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길지 않은 이 소설이 상을 받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책날개에 이 책을 출간할 당시에도 저자는 편의점에서 주 3회 일을 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어쩌면 후루쿠라는 저자의 분신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아직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까? 앞으로 편의점에 갈 때마다 편의점 소리를 귀 기울여 듣게 될 것 같다. 평범함과 묘함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반적인 세상 이야기에 묘한 것을 집어넣고 싶다(책날개)는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8pxJynBez_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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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잉 - 미래가 이끄는 삶, 보장된 성공으로 가는 길
안도 미후유 지음, 송현정 옮김 / 오월구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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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았다. 강릉 여행을 다녀오니 집에 와 있어 반나절 동안 재미있게 읽었다. 책이 얇은 편이고, 손에 딱 들어와 한 손으로 읽기에도 좋았다. 노잉이라는 개념은 흥미롭게 읽었던 왓칭이라는 책과도 닿아있는 느낌이다. 책날개에서 저자는 노잉(Knoing)을 ‘미래에서 오는 직관의 메시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감에 이끌려 움직인 결과,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일이 일어나거나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마음 상태’라고 말한다. 왓칭이 자신이 되고 싶은 목표를 세우고 그림이나 글로 적은 후 계속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내용과 비교하면 노잉은 자신의 의지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미래의 어떤 메시지에 마음을 열어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에 대한 개념이고 마음을 맑게 하여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긴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다.


저자는 이를 위해 심리학자이자 신경정신과 의사인 융이 만든 개념인 싱크로니티(Synchronity)를 가져왔다.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라는 뜻으로 살다 보면 우연히 일어난 일인데 그로 인해 인생이 바뀌거나 인류의 역사에 변화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알아차릴 수 있는 안테나를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어떤 기회도 민감한 안테나가 없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잉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기 신뢰다. 감정적으로 편안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으며,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삶을 살고 있으면 기회는 언젠가 찾아온다.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미래를 바라보는 미래지향적인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다.


지나고 보면 신기하게도 어떤 계기가 되는 사건들이 있다. 내가 태권도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우연히 보게 된 국기원의 미국 공연 영상이었다. 그걸 보면서 검은띠를 맨 나를 상상했고 2년이 못 되어 실제로 이루어졌다. 부끄러웠던 공연 끝에 바이올린을 전공할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책 블로그를 오랫동안 운영해 온 시작점이 남편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던 것도 그러하다. 기독교에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한다. 어떤 일이나 고난이 결국 다른 일을 이루기 위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감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책의 뒷부분에는 실제적인 실천 방법이 나와 있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두고 하나씩 해내며 성취감을 느끼기를 권한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 편안한 음악, 꿈 일기, 몸 따뜻하게 하기, 마사지나 명상 등을 통해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면 좋다. 과거에 얽매어 후회만 하는 것이 아닌 미래를 기대하며 설레는 삶을 살기를 이 책은 말한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쁜 중에도 자기 전이나 아침에 하루를 정리하고 계획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 목소리 리뷰

https://youtu.be/AAF5qugtJdU



*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솔직한 마음을 적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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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에이미 하먼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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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흥미로운 소설을 읽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우리나라의 역사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미국의 역사에 대한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서부로 이동하던 시기의 이야기는 오래전 서부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미국의 역사라기보다는 한 가족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미시사를 통해 들여다보는 미 대륙 횡단 시대였다. 


미국이나 호주나 원래 살던 원주민과의 갈등 혹은 박해가 역사의 어두운 면으로 얼룩져 있다. 어느 민족에게나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인디언 역시 밀려들어오는 백인과 평화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그들과 싸우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로 상대가 보기에는 악해 보이지만 어쩌면 자기 부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존과 나오미 두 사람의 관점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미국인 아버지와 인디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존 라우리는 암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를 파는 아버지를 돕는다. 인디언 어머니가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아버지에게 존을 데리고 가 존은 그곳에서 자랐다. 어머니의 마을에서도 백인의 가정에서도 그는 이방인이었다. 말도 당나귀도 아닌 노새처럼 말이다. 하지만 노새는 대이동 시기에 중요한 수단이었고, 존은 양쪽의 장점을 모두 지닌 듬직한 사람이었다. 그를 사랑하게 된 나오미는 어려운 이동을 존이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마음을 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지만 존은 쉽게 마음을 보이지 않았다. 지치고 힘들고 위험한 서부로의 이동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조금이나마 쉬웠을 거라는 짐작을 해 본다. 하지만 이들이 겪은 일들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짧지 않은 이야기의 맨 앞에 급박한 상황이 소개된다. 첫 부분을 읽으며 이야기에 바로 쏙 빠져들게 된 이유였다. 이후 이들의 만남부터 목마름과 계속되는 도강, 끝없이 이어지는 길, 고단한 야영이 낯선 단어들과 함께 진행된다. 이야기를 읽으며 한국전쟁 때 피난민을 떠올리기도 했다. 적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프거나 지친 가족을 이끌고 피난길에 올랐던 우리 조상들처럼 이들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머나먼 대륙 횡단을 결심했다. 처음에 가졌던 희망은 점점 누더기로 변해 가는 옷가지처럼 전염병으로 죽어 가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수많은 고난으로 인해 빛이 바래 간다. 횡단을 끝내고 누군가는 살아남을 것이고, 누군가는 제대로 된 무덤도 갖지 못한 채 노상에서 생을 마감할 것을 알게 된다. 작가는 이들의 여정을 눈앞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글로 담았다. 


저자는 남편 조상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이 책을 썼다. 많은 이들이 남긴 횡단 일기를 통해 이야기의 부분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강인한 여성 나오미는 당시에 있었을 법한 상상 속 인물이지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와샤키 추장이나 나르시샤는 작가가 상상을 더한 실존 인물이다. 끔찍한 장면도 간혹 있지만 대륙 횡단 당시 사람들의 모습과 인디언 세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재미있고도 유익한 책이었다. 작가의 묘사와 서사가 너무 좋아 원어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의 원서가 있었지만 다른 이야기도 궁금해 온라인 헌책방에서 그녀가 쓴 다른 작품을 찾아 바로 주문했다. 

* 목소리 리뷰

https://youtu.be/zctk3BfkNIc



* 위 글은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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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루트 헤르만 헤세 선집 5
헤르만 헤세 지음, 황종민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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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헤세의 글을 오래전부터 좋아했다데미안을 세 번 정도 읽고 그가 쓴 에세이들을 읽으며 작가에 대해 조금 안다고 생각했다얼마 전 싯다르타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다른 저서에서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느꼈다문장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데미안이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건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지금까지 그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데미안보다 싯다르타가그리고 이번에 읽은 게르트루트가 훨씬 좋다.

 

  음악가의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쿤(유명한 어깨받침 회사와 동명)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해 왔다음악 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게 된다바이올린과 피아노 그리고 작곡을 배우며 그는 여자 친구도 사귄다한때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리디는 그에게 썰매를 타자고 제안을 하고 너무나 빠르게 달리던 썰매에서 넘어져 다리를 절게 된다한창 젊은 나이에 불구의 몸이 된 그는 그를 간호해 준 어머니와 잠깐 동안 관계를 회복하기도 한다넉넉한 부모님 덕분에 산에서 잠시 동안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작곡을 시작하는데 학교에서는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음악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그는 점점 유명세를 타게 된다그즈음 사귀었던 성악가 무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타이저 남매그리고 부유한 임토르의 딸 게르트루트는 그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그에게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과연 운명은 쿤의 편일지?

 

  실제로 헤세는 8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고할아버지가 음악가였다고 한다독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으로 유명한 나라다이웃 중에 아마도 음악 하는 사람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작곡을 하고그 곡을 어느 집에서 초연하고연주자와 성악가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여는 부러운 일상이 이 책에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쿤은 처음에 성악곡과 투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는데 나중에는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같은 대작을 만들기도 한다.

 

  여인에 대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나누기 어려울 정도로 함께 버무려져 있다책 속에서 쿤도 말한다. “내가 그 따스한 봄날에 정원을 지나 고풍스러운 집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나를 몰아치고 북돋우는 것이 내 작품인지 내 사랑인지 알 수 없었다. (125)

 

  이 책을 좋아한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한 쿤이 연주하는 우아하고도 격정적인 소나타를 상상하며 글을 읽는 재미가 컸다불구라는 것으로 자신을 작게만 만들던 그의 오페라가 자신을 떠나 대중에게 사랑받는 장면은 나마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그런가 하면 일생일대의 사랑 앞에서 과감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안타까움도 있었다무엇보다 가장 나를 사로잡은 것은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이 숨 쉬는 아름다운 문장들이다모조리 줄 치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구입했다사실 헤르만 헤세 전집을 사고 싶었는데 참았다말로만 듣던 '황야의 이리'와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수레바퀴 아래에서'도 함께 주문했다헤세의 행복한 늪에 빠졌다.


* 목소리 리뷰

https://youtu.be/ZKUKVYuo3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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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 동인 수수밭길 제6호 수필집
동인 수수밭길 지음 / 한국산문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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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오랜 이웃 단영 솔나무님께서 올해도 동인지를 보내주시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셨다늘 받기만 하던 터라 죄송했지만 올해는 또 어떤 글들로 채워져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보내주시라고 하고나도 이번에는 작은 답례를 했다도착한 책 표지가 너무 예뻤다그전에 받았던 것보다 훨씬 완성도 있어 보였다내지의 두께와 색도 마음에 들었다매년 받을 때마다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내용은 더욱 그러하다책은 총 네 개의 덩어리로 나뉘어 있는데 13시 6분부터 18시까지 독특한 시간 개념인 각 부는 대여섯 분의 글이 두 편씩 사이좋게 실려 있었다.

 

  이번에도 단영님의 글을 가장 먼저 읽었다남편 분을 따라 에어컨 설치를 하시는 이야기가 있었다여름이 끝난 가을에 에어컨을 500 대나 설치하게 된 이야기이다에너지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취약계층에 무상 지원해주는 에어컨을 최소 비용만 받고 설치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하루에 여러 집을 다니면서 겪은 이야기들이 애잔하게 다가왔다없는 중에도 식사를 권하는 집도 있지만 밀린 집안일을 부탁하는 분도 계셨다심지어 에어컨보다 급한 다른 걸 지원받기를 원하는 분도 있었다고 한다사회의 그늘진 곳을 돌아보며 한 집에서 본 작은 화분에 심긴 배추 같은 고단한 삶도 존중받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다음 글도 에어컨 설치를 하다가 있었던 일이다약사라는 동네에 방문했다가 실외기 아래에 있던 비둘기 둥지를 발견한 이야기이다자연을 대신한 아파트촌에 비둘기는 둥지 만들 곳을 찾다 에어컨 실외기에 깃든다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내 집 유리창에 수시로 비둘기들이 드나드는 것을 반가워할 이는 없을 것이다급기야 둥지를 쇼핑백에 담아 옮기고 배설물을 치운 뒤에야 실외기를 놓을 수 있었다원래의 주인을 쫓고 우리는 자연에 텃세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단영님의 말처럼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겠다.

 

  다른 분들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었다작가마다의 색을 띤 이야기들이 짧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한 편 한 편 흥미롭게 다가왔다짧아서 짬짬이 끊어 읽기에도 좋았다과거에 비해 문장도소재도 다양하고 수준 높아진 느낌이었다앞으로는 또 얼마나 더 발전할 것인가이분들의 등단 연도와 나이는 모두 제각각이다연세 있는 분들도 꽤 많았다일찍 등단하신 분들도 있지만 작년에 등단하신 분도 계셨다. 사실 단영님과는 동문이다내가 먼저 다니기 시작한 디지털대 문예 창작과에 함께 다니시게 된 것이다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고내가 다른 일로 바빠 소설 동아리마저 못 가는 바람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수필 동아리 들어가셨다는 말씀을 듣고 열심히 활동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은 컸다결국 등단을 하시고 수필가가 되어 산문 월간지에 기고도 하시고이렇게 동인 수필집을 매년 내시는 것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존경스럽기도 했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코로나 이야기로부터 가족의 죽음 이후학생과의 만남음식에 얽힌 추억글쓰기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일상생활 속 해프닝부터 소설 같은 이야기와 주제에 대한 깊은 고뇌가 깃든 글도 있었다두 편의 글을 쓰기 위한 그들의 고민이 얼마나 오래였을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괴로운 일들도 많이 있다좋은 일은 좋아서 좋고나쁜 일은 글 쓸 거리가 생겨서 좋다는 한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삶을 글로 남기기를 택한 이분들의 선택을 응원한다더불어 나의 건필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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