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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루트 ㅣ 헤르만 헤세 선집 5
헤르만 헤세 지음, 황종민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월
평점 :
헤르만 헤세의 글을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데미안을 세 번 정도 읽고 그가 쓴 에세이들을 읽으며 작가에 대해 조금 안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싯다르타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다른 저서에서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느꼈다. 문장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데미안이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건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그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데미안보다 싯다르타가, 그리고 이번에 읽은 게르트루트가 훨씬 좋다.
음악가의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쿤(유명한 어깨받침 회사와 동명)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해 왔다. 음악 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게 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그리고 작곡을 배우며 그는 여자 친구도 사귄다. 한때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리디는 그에게 썰매를 타자고 제안을 하고 너무나 빠르게 달리던 썰매에서 넘어져 다리를 절게 된다. 한창 젊은 나이에 불구의 몸이 된 그는 그를 간호해 준 어머니와 잠깐 동안 관계를 회복하기도 한다. 넉넉한 부모님 덕분에 산에서 잠시 동안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작곡을 시작하는데 학교에서는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음악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그는 점점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즈음 사귀었던 성악가 무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타이저 남매, 그리고 부유한 임토르의 딸 게르트루트는 그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에게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 과연 운명은 쿤의 편일지?
실제로 헤세는 8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할아버지가 음악가였다고 한다. 독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으로 유명한 나라다. 이웃 중에 아마도 음악 하는 사람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곡을 하고, 그 곡을 어느 집에서 초연하고, 연주자와 성악가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여는 부러운 일상이 이 책에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쿤은 처음에 성악곡과 투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는데 나중에는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같은 대작을 만들기도 한다.
여인에 대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나누기 어려울 정도로 함께 버무려져 있다. 책 속에서 쿤도 말한다. “내가 그 따스한 봄날에 정원을 지나 고풍스러운 집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나를 몰아치고 북돋우는 것이 내 작품인지 내 사랑인지 알 수 없었다.” (125쪽)
이 책을 좋아한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한 쿤이 연주하는 우아하고도 격정적인 소나타를 상상하며 글을 읽는 재미가 컸다. 불구라는 것으로 자신을 작게만 만들던 그의 오페라가 자신을 떠나 대중에게 사랑받는 장면은 나마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그런가 하면 일생일대의 사랑 앞에서 과감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나를 사로잡은 것은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이 숨 쉬는 아름다운 문장들이다. 모조리 줄 치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구입했다. 사실 헤르만 헤세 전집을 사고 싶었는데 참았다. 말로만 듣던 '황야의 이리'와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수레바퀴 아래에서'도 함께 주문했다. 헤세의 행복한 늪에 빠졌다.
* 목소리 리뷰
https://youtu.be/ZKUKVYuo3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