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문현미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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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84432356


  이 책을 두 번 읽다 포기한 적이 있었다특별한 사건도줄거리도 없이 이어지는 내용에 도무지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얼마 전 이어령님이 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영성을 느낄 수 있는 책으로 소개되는 것을 보고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다하지만 이 책은 아직도 나에게 어렵다.

 

  일기 같은 형식을 띠고 주인공이 가는 장소에 대한 묘사와 주인공이 생각한 것들이 묘하게 접목되어 있는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릴케가 당시에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죽음과 생명이 늘 스며 있는 파리의 거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작가가 투영된 주인공은 지저분하고도 죽음이 어디에나 있는 파리의 거리를 거닐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누군가 살기 위해 들어온 파리에서 그는 죽어간다그는 살러 온 것인가죽으러 온 것인가?

 

  이 물음은 누구에게나 해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언젠가는 모두 죽게 되지만 사는 동안 우리는 기쁨도 슬픔도 누리며 살아있음을 감격하기도 한다얼마 전 서울 시내 도로를 운전하고 가다가 문득 ‘100년쯤 전에 이곳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다들 죽고 땅에 묻혔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수많은 시간 속에서 한 지점을 왔다가 가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릴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끊임없이 신의 존재에 대해 감격하고사유했던 주인공의 생각을 빌어 자신을 투영한 릴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 읽어 봐야겠다.”



- 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얼굴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누구나가 여러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2쪽)

- 나는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무언가를 했다. 밤새도록 앉아서 글을 썼던 것이다. (23-24쪽)

- 아, 책 읽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게 너무도 좋다. 왜 사람들은 늘 책 읽을 때와 같지 않을까? (46쪽)

- 마음이 텅 비어 있는데, 어딘가로 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한 장의 빈 종이 같은 기분으로 건물들을 죽 따라 다시 대로를 걸어 올라갔다. (82쪽)

- 명성이라는 것은 발전해 나가는 인간에 대한 공식적인 파괴이며, 군중이 그 사람의 공사장에 몰려들어 쌓아올린 돌들을 밀어내 버리는 그런 것입니다.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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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6
마크 트웨인 지음, 강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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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도 많이 들어 읽은 듯한 착각이 드는 책이 있다아마도 고전이 그럴 것이다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이다어린 시절 만화나 영화로 접한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하지만 기억나는 거라고는 페인트칠 하는 톰과 어린 마음에 무시무시했던 인디언 조의 얼굴뿐이다책으로 다시 읽으면서 장난꾸러기이지만 사랑스러운 톰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부모님 없이 이모에게 자라는 톰은 심한 장난꾸러기이지만 일요일에는 옷을 빼입고 교회에 가 설교를 듣는다요즘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과 닮았다물론 톰처럼 자연을 누비며 온갖 말썽을 부리지는 않지만 장난스러움과 의젓함을 동시에 지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학교 선생님이나 이모 입장에서는 톰이 참 못마땅할 것 같기도 하다걸핏하면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를 빼먹고집을 나가 며칠씩 들어오지 않는 그를 보며 얼마나 걱정하겠는가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순정을 바칠 상대가 나타난다마을에 이사 온 판사 딸 베키이다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랐을 법한 그녀가 톰을 따라다니면 장난에 장단을 맞추는 걸 보면서 많이 웃었다그녀도 아이는 아이였던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소년이 경험하기에는 좀 험하다살인사건을 목격하기도 하고살인자에 대해 증언을 하고, 그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한다도둑들 돈을 훔칠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용의주도함도 보인다.게다가 실제로 돈을 발견했을 때 공공기관에 그 돈을 갖다주지 않고동네 사람들까지 그들의 돈으로 인정해 주며 심지어 이자를 붙여 돈을 굴려 주기까지 하는 걸 보면서 웃었다.

  그렇게 돈이 많고키워주기까지 한다는 것도 마다하고 다시 자연을 돌아가는 허크의 모습은 어쩌면 문명사회의 잡다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 누명을 벗고 마을의 영웅이 되기까지 톰이 겪은 모험담을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도 떠올려 보았다크게 사고치고 다니진 않았지만 언제나 즐거운 일들을 찾았던 그 때를 떠올리면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어린 시절의 나를 잊고 순수함마저 잃어버린 채 어느새 사회의 때가 묻은 어른이 되었음을 새삼 깨닫고 몸서리쳤다. 

- 막 잠의 문턱에 이르러 헤매고 있는데 이제 여간해서는 ‘물러날’ 의사가 없는 듯한 침입자가 나타났다. 바로 양심이었다. 둘은 가출한 것은 나쁜 짓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143쪽)

- 흐름이 바뀐 물살 때문인지 밤사이 불어난 강물 때문인지 뗏목이 떠내려가고 없었지만 아이들은 이 사실을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였다. 말하자면 문명 세계와 이어주던 다리가 불타버린 셈이었기 때문이다.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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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톰 소여의 모험 (세계문학전집 056)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6
마크 트웨인 지음, 강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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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51710408

 

  하도 많이 들어 읽은 듯한 착각이 드는 책이 있다. 아마도 고전이 그럴 것이다.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이다. 어린 시절 만화나 영화로 접한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하지만 기억나는 거라고는 페인트칠 하는 톰과 어린 마음에 무시무시했던 인디언 조의 얼굴뿐이다. 책으로 다시 읽으면서 장난꾸러기이지만 사랑스러운 톰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부모님 없이 이모에게 자라는 톰은 심한 장난꾸러기이지만 일요일에는 옷을 빼입고 교회에 가 설교를 듣는다. 요즘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과 닮았다. 물론 톰처럼 자연을 누비며 온갖 말썽을 부리지는 않지만 장난스러움과 의젓함을 동시에 지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학교 선생님이나 이모 입장에서는 톰이 참 못마땅할 것 같기도 하다. 걸핏하면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를 빼먹고, 집을 나가 며칠씩 들어오지 않는 그를 보며 얼마나 걱정하겠는가?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순정을 바칠 상대가 나타난다. 마을에 이사 온 판사 딸 베키이다. 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랐을 법한 그녀가 톰을 따라다니면 장난에 장단을 맞추는 걸 보면서 많이 웃었다. 그녀도 아이는 아이였던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소년이 경험하기에는 좀 험하다. 살인사건을 목격하기도 하고, 살인자에 대해 증언을 하고, 그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도둑들 돈을 훔칠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용의주도함도 보인다. 게다가 실제로 돈을 발견했을 때 공공기관에 그 돈을 갖다주지 않고, 동네 사람들까지 그들의 돈으로 인정해 주며 심지어 이자를 붙여 돈을 굴려 주기까지 하는 걸 보면서 웃었다.

  그렇게 돈이 많고, 키워주기까지 한다는 것도 마다하고 다시 자연을 돌아가는 허크의 모습은 어쩌면 문명사회의 잡다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 누명을 벗고 마을의 영웅이 되기까지 톰이 겪은 모험담을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도 떠올려 보았다. 크게 사고치고 다니진 않았지만 언제나 즐거운 일들을 찾았던 그 때를 떠올리면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어린 시절의 나를 잊고 순수함마저 잃어버린 채 어느새 사회의 때가 묻은 어른이 되었음을 새삼 깨닫고 몸서리쳤다. 

- 막 잠의 문턱에 이르러 헤매고 있는데 이제 여간해서는 ‘물러날’ 의사가 없는 듯한 침입자가 나타났다. 바로 양심이었다. 둘은 가출한 것은 나쁜 짓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143쪽)



- 흐름이 바뀐 물살 때문인지 밤사이 불어난 강물 때문인지 뗏목이 떠내려가고 없었지만 아이들은 이 사실을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였다. 말하자면 문명 세계와 이어주던 다리가 불타버린 셈이었기 때문이다.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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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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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47950869


  사람은 본래 선할까, 악할까? 이 책에 앞서 15소년 표류기라는 비슷한 책이 있었다. 그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아이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라고 들었다. 패러디의 성질을 띠는 이 책 전에 <<산호섬>>-R.M. 밸런타인-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랠프와 잭이 그 책의 주인공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이전에 제시된 고립된 속에서 인간이 선하게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원래의 본질은 악하다는 것을 반증하기 위해 씌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오래 전 영화로 만난 적 있었던 노벨상 수상작가의 이 작품을 숙제처럼 ‘읽어야지’하고 있다가 얼마 전 헌책방에서 산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곱씹으며 읽었다. 영화와 조금은 다르지만 거의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었다. 핵폭탄을 피해 소년들을 수송하던 비행기가 격추되면서 무인도에 남겨진 소년들은 처음에 랠프를 중심으로 나름의 질서를 형성해 살아가기 시작한다. 문명에서 온 것이라고는 그들이 입은 옷가지와 안경 정도가 다인 그들은 먹을 것도, 잠잘 곳도 모두 자연에서 해결해야 했다. 고기가 먹고 싶어진 그들은 어느새 사냥팀을 만들게 되고 이들은 사냥을 시작하면서 점점 난폭하게 변해 간다.

 

  사람으로서의 이성을 갖추고 구조될 날만을 기다리며 모닥불을 피우던 랠프는 사냥팀을 이끌던 잭과 맞서기 시작한다. 고기 맛을 본 아이들은 하나둘씩 잭에게 넘어가는데 랠프는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고립된 채 광기를 번득이는 오랑캐로 변해버린 동료들을 보면서 랠프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자신도 변할까 두려워하는 마음과 동시에 자신을 쫓는 무리들에 대한 공포로 마지막의 긴장감은 절정에 달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그 속에 있었다면 누구를 따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구조될 것을 알았다면 잭이 그렇게 변했을까? 그건 마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앞잡이로 살아가던 사람들과 닮아 있다. 그들이 해방될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무자비하게 동족을 못살게 굴진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 끝이 있기 마련이다. 무슨 일을 하든 마지막을 생각하고, 대비해야겠다.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라도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지키는 게 좋을 것 같다.



- 잭은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축축한 땅 위에 거의 코가 닿을 지경으로 단거리선수처럼 앞으로 구부리고 있었다. 나무줄기와 그 나무줄기를 휘감고 있는 덩굴은 30피트 높이에서 초록색 어둠 속으로 파묻혀 있었다. 주위엔 온통 잔 나무덩굴이 무성했다. 오솔길이라고 꼬집어서 얘기할 수는 없는 희미한 길자국이 나 있을 뿐이었다. 즉 쪼개진 잔가지와 말굽의 한쪽이 흐릿하게 찍혀 있을 뿐이었다. 즉 쪼개진 잔가지와 발굽의 한쪽이 흐릿하게 찍혀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턱을 낮추고 마치 발자국에게 얘기라도 강요하듯이 발자국을 골똘히 노려보았다. (67쪽)

- 그들은 다시 산의 비탈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어둠이 조수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없었던 잭이 숨이 막힌 듯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일진의 바람이 불어 닥쳐 셋이 모두 사레가 들렸다. 랠프의 눈은 눈물로 가려졌다. (179쪽)

- 덩굴이 흔들리자 파리떼는 음침한 윙윙 소리를 내며 창자에서 날아오르더니 다시 그 자리로 육중하게 내려앉았다. 사이먼은 일어섰다. 주위에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별난 빛이 떠돌고 있었다. <파리대왕>은 검은 공처럼 작대기에 꽂혀 있었다.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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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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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24031590


  책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고,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한 <<롤리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포르노 그라피 정도로 취급했던 이 책을 의외로 고상한 사람들이 필독서로 읽고 있음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인문학 모임에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해 함께 읽어보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소설의 시작에서 존 레이 주니어 박사를 내세워 수기의 형식으로 쓴 험버트의 이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그는 ‘정신병자’이고 ‘비정상’임을 주장하면서 자신이 지금부터 할 이야기에 대해 자신을 욕하지 말아 달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만큼이나 주인공의 행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자신의 딸 벌 되는 나이의 어린 소녀들, 그것도 여성스럽기보다는 중성에 가까운 매력적인 소녀들을 보며 침 흘리는 그의 진술들을 읽으며 누가 ‘잘 했다’고 하겠는가?

 

  유럽에서 온 신사이자 하숙인에게 집 주인은 한없이 친절하다. 나이 많은 남편을 잃고 사춘기의 딸을 가진 그녀에게 소심해 보이는 험버트는 아마도 새로운 남편감으로 여겨졌으리라. 천방지축 딸과 험버트의 묘한 관계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딸을 캠프에 보내 놓고 그들은 조용히 결혼을 한다. 험버트가 그녀와 결혼한 이유는 오직 아름다운 소녀 롤리타와 가까이 있고 싶어서였다. 롤리타와의 관계에서 걸림돌로 여겼던 전 집주인이자 아내 샬롯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하던 차에 그의 속셈을 알게 된 아내는 얼떨결에 뛰쳐나가다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제 남은 건 오직 아빠와 딸이 되어버린 그들뿐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그들의 애정행각은 역겨움 자체였다. 돌로레스(롤리타)에 대한 집착, 그의 집착에 대한 부담감으로 그들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하고, 급기야 험버트는 누군가 따라 다닌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까?

 

  어린 연인을 ‘롤리타’라고 부르며 과도한 사랑을 퍼부은 중년 남성을 정상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예술혼으로 덮으려 한다. 소수의 성적 취향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책을 읽는 동안 계속 그 생각을 했다. 소녀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빼앗고 상처를 준 험버트의 행위는 박수 받을 일은 아님이 확실하다. 아마도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라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어떻게 험버트를 벌줄까 하는 궁리를 했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교훈을 주려고 했다는 책 시작 부분의 존 레이 주니어 박사의 변명과는 다르게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소설을 통해 교훈을 주려는 마음이 없음을 ‘저자의 글’에서 밝히고 있다. 오직 소설은 예술이라는 생각을 가진 그는 러시아 출신임에도 외국어였던 영어를 정말 맛깔나게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두꺼운 책을 완성했다. 각운과 신조어 만드는 기법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교훈을 찾는다. 자신의 성적 취향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비정상적인 행위의 결말이 행복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느냐는 물음에 마술 설명을 위한 또 다른 마술을 들먹이며 자신의 의도를 교묘히 감춘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이 과연 무엇일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섣불리 이들을 흉내내고자 하는 사람이 없기만을 바란다.


- 결혼식만 끝나면 적당한 때를 노려 부리나케 그녀를 데려오리라. 시인이라면 ‘무덤에 바친 오렌지꽃(신부를 상징)이 미처 시들기 전에’라고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인이 아니다. 대단히 성실한 기록자일 뿐이다. (119쪽)

- 유타 주의 포플러 셰이드라는 모텔에서는 그녀가 뜬금없이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답답한 모텔 방을 전전하며 더러운 짓을 해야 하느냐,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는 없느냐고 따지는 바람에 싸웠다. (253쪽)

-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처럼 바람난 계집애들은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만 나처럼 늙은 연인들은 너희의 님펫 시절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한단다. (354쪽)

- 나의 개인적 비극은, 물론 남들의 관심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내가 타고난 모국어, 즉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한없이 다루기 편한 러시아어를 포기하고 내게는 두 번째 언어에 불과한 영어로 갈아타야 했다는 사실이다. - 작가의 말 중 (5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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