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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문현미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84432356
이 책을 두 번 읽다 포기한 적이 있었다. 특별한 사건도, 줄거리도 없이 이어지는 내용에 도무지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어령님이 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영성을 느낄 수 있는 책으로 소개되는 것을 보고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직도 나에게 어렵다.
일기 같은 형식을 띠고 주인공이 가는 장소에 대한 묘사와 주인공이 생각한 것들이 묘하게 접목되어 있는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릴케가 당시에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죽음과 생명이 늘 스며 있는 파리의 거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작가가 투영된 주인공은 지저분하고도 죽음이 어디에나 있는 파리의 거리를 거닐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 살기 위해 들어온 파리에서 그는 죽어간다. 그는 살러 온 것인가? 죽으러 온 것인가?
이 물음은 누구에게나 해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모두 죽게 되지만 사는 동안 우리는 기쁨도 슬픔도 누리며 살아있음을 감격하기도 한다. 얼마 전 서울 시내 도로를 운전하고 가다가 문득 ‘100년쯤 전에 이곳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다들 죽고 땅에 묻혔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시간 속에서 한 지점을 왔다가 가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릴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끊임없이 신의 존재에 대해 감격하고, 사유했던 주인공의 생각을 빌어 자신을 투영한 릴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 읽어 봐야겠다.”


- 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얼굴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누구나가 여러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2쪽) - 나는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무언가를 했다. 밤새도록 앉아서 글을 썼던 것이다. (23-24쪽) - 아, 책 읽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게 너무도 좋다. 왜 사람들은 늘 책 읽을 때와 같지 않을까? (46쪽) - 마음이 텅 비어 있는데, 어딘가로 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한 장의 빈 종이 같은 기분으로 건물들을 죽 따라 다시 대로를 걸어 올라갔다. (82쪽) - 명성이라는 것은 발전해 나가는 인간에 대한 공식적인 파괴이며, 군중이 그 사람의 공사장에 몰려들어 쌓아올린 돌들을 밀어내 버리는 그런 것입니다.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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