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24031590


  책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고,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한 <<롤리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포르노 그라피 정도로 취급했던 이 책을 의외로 고상한 사람들이 필독서로 읽고 있음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인문학 모임에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해 함께 읽어보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소설의 시작에서 존 레이 주니어 박사를 내세워 수기의 형식으로 쓴 험버트의 이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그는 ‘정신병자’이고 ‘비정상’임을 주장하면서 자신이 지금부터 할 이야기에 대해 자신을 욕하지 말아 달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만큼이나 주인공의 행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자신의 딸 벌 되는 나이의 어린 소녀들, 그것도 여성스럽기보다는 중성에 가까운 매력적인 소녀들을 보며 침 흘리는 그의 진술들을 읽으며 누가 ‘잘 했다’고 하겠는가?

 

  유럽에서 온 신사이자 하숙인에게 집 주인은 한없이 친절하다. 나이 많은 남편을 잃고 사춘기의 딸을 가진 그녀에게 소심해 보이는 험버트는 아마도 새로운 남편감으로 여겨졌으리라. 천방지축 딸과 험버트의 묘한 관계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딸을 캠프에 보내 놓고 그들은 조용히 결혼을 한다. 험버트가 그녀와 결혼한 이유는 오직 아름다운 소녀 롤리타와 가까이 있고 싶어서였다. 롤리타와의 관계에서 걸림돌로 여겼던 전 집주인이자 아내 샬롯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하던 차에 그의 속셈을 알게 된 아내는 얼떨결에 뛰쳐나가다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제 남은 건 오직 아빠와 딸이 되어버린 그들뿐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그들의 애정행각은 역겨움 자체였다. 돌로레스(롤리타)에 대한 집착, 그의 집착에 대한 부담감으로 그들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하고, 급기야 험버트는 누군가 따라 다닌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까?

 

  어린 연인을 ‘롤리타’라고 부르며 과도한 사랑을 퍼부은 중년 남성을 정상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예술혼으로 덮으려 한다. 소수의 성적 취향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책을 읽는 동안 계속 그 생각을 했다. 소녀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빼앗고 상처를 준 험버트의 행위는 박수 받을 일은 아님이 확실하다. 아마도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라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어떻게 험버트를 벌줄까 하는 궁리를 했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교훈을 주려고 했다는 책 시작 부분의 존 레이 주니어 박사의 변명과는 다르게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소설을 통해 교훈을 주려는 마음이 없음을 ‘저자의 글’에서 밝히고 있다. 오직 소설은 예술이라는 생각을 가진 그는 러시아 출신임에도 외국어였던 영어를 정말 맛깔나게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두꺼운 책을 완성했다. 각운과 신조어 만드는 기법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교훈을 찾는다. 자신의 성적 취향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비정상적인 행위의 결말이 행복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느냐는 물음에 마술 설명을 위한 또 다른 마술을 들먹이며 자신의 의도를 교묘히 감춘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이 과연 무엇일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섣불리 이들을 흉내내고자 하는 사람이 없기만을 바란다.


- 결혼식만 끝나면 적당한 때를 노려 부리나케 그녀를 데려오리라. 시인이라면 ‘무덤에 바친 오렌지꽃(신부를 상징)이 미처 시들기 전에’라고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인이 아니다. 대단히 성실한 기록자일 뿐이다. (119쪽)

- 유타 주의 포플러 셰이드라는 모텔에서는 그녀가 뜬금없이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답답한 모텔 방을 전전하며 더러운 짓을 해야 하느냐,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는 없느냐고 따지는 바람에 싸웠다. (253쪽)

-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처럼 바람난 계집애들은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만 나처럼 늙은 연인들은 너희의 님펫 시절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한단다. (354쪽)

- 나의 개인적 비극은, 물론 남들의 관심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내가 타고난 모국어, 즉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한없이 다루기 편한 러시아어를 포기하고 내게는 두 번째 언어에 불과한 영어로 갈아타야 했다는 사실이다. - 작가의 말 중 (50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