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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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720033009

 

  <화려한 휴가>, <26> 두 영화를 통해 접한 게 대부분이다. 그에 대해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무서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였을까? 이 책을 읽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꼭 읽어야 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인 건 확실하니까.

 

  여러 화자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소설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숙연하고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숨죽이며 읽었다.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기에 가벼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작가의 눈으로 다시 태어난 당시의 악몽. 알려진 것보다 더 끔찍했을 실상을 이 책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역사 속에서 드러나지 않을 것은 없다지만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지는 것이 또한 역사이기도 하기에 진실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하다.

 

  실제로 당했던 사람들에게는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을 마음 속 문신으로 남아 얼마나 괴롭혔을지 상상만으로도 아파 온다. 이런 내용을 책으로 쓸 생각을 한 작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부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102-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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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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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715825718

 

  그렇게 책을 읽고도 이 사람을 몰라?” 남편이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확정 뉴스를 보고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보고 한 말이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뉴스를 보자마자 작가의 책 두 권을 바로 주문했다. 다음날 나처럼 책을 구입한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고 좋은 일인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인지 판단하긴 섣부르지만 적어도 나처럼 작가와 문학상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진 건 좋은 일이다. 이후 세계를 향해 발돋움할 우리 작가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책의 내용은 제목만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단순한 채식주의자라기보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의 이야기였으니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주변 인물 세 명의 관점에서 일인칭으로 바라보는 한 채식주의자. 각각 단편이기도 하고, 연결되기도 해 연작소설이라고 하나보다. 너무나 평범했던 영혜는 평범한 결혼생활을 꿈꾸던 남자와 결혼해 평온하게 지냈다. 어느 날 부터인가 꿈을 꾸는 그녀는 일그러진 얼굴, 고깃덩어리, 그리고 폭력의 본성이 드러나는 끔찍한 꿈들 이후 육식을 거부하게 된다. 그녀를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영혜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 삶을 간섭하려 들수록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의 마지막이 어떨지 거침없이 읽어 나가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다.

 

  평범함과 독특함, 예술과 외설, 정상과 비정상을 경계 짓는 것이 무엇인지 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했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작가기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과 억제, 어느 하나에 꽂혀 뇌관을 건드린 폭탄처럼 터져 나오는 열정, 절망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비겁한 억척스러움. 이 소설은 인간의 본질 중에서도 어두운 면을 부각시킨 것 같다.

 

 

-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갔다. 등뒤에 끈질긴 추문을 매단 채 가게를 꾸려나갔다. 시간은 가혹할 만큼 공정한 물결이어서, 인내로만 단단히 뭉쳐진 그녀의 삶도 함께 떠밀고 하류로 나아갔다. 그 가을 다섯 살이던 지우는 이제 여섯 살이 되었고, 환경이 좋고 입원비가 합리적인 이 병원으로 옮길 때쯤 영혜의 상태는 매우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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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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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699237015

 

  이번달 함께 읽는 책으로 정한 이 얇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을 때, 책을 참 잘 정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군더더기 없는 우아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중간을 넘어가면서 등장하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페긴(친구 딸)이 벌이는 낯선 일들의 적나라한 묘사에 잠깐 놀라기도 했다. 한 편의 연극 공연을 보는 듯한 짧은 소설이 강렬하다.

 

  한동안 무대를 주름잡던 연극배우 사이먼은 무력감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아픔을 겪은 한 여성은 그곳에서 나간 후 소원하던 일을 이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궁리를 하던 사이먼은 난데없이 찾아온 친구 딸 페긴을 만나면서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키운다. 동성애자인 페긴을 변화시켜 남들처럼 평범한 노후를 보내고 싶었던 사이먼은 모든 것이 자신의 상상이었음을 깨닫고 나락으로 치닫는다.

 

  무대에서의 연기를 더 이상 하지 못하는 대신 자신의 인생을 연극처럼 마친 사이먼을 보면서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점점 고장나 가는 몸, 의지와 다르게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에 대해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이다. 그가 만약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경우 더 그럴 것이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헤밍웨이가 말년에 뜸한 것을 놓고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거나 엽총사고를 자살로 추정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노년의 시절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몸이 아픈 것도,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한 행복하게 지내려고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과거를 회상하며 무능한 자신을 한탄하며 세월을 보내야 할까? 이 책에서 사이먼이 마지막으로 연기했던 체호프의 연극대본 <<갈매기>>를 읽어보고 싶다.

 

- "우리는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해요. 전부 종잡을 수 없는 일이죠. 종잡을 수 없음이 지닌 무한한 힘. 반전 가능성. 그래요, 예측 불가한 반전과 그것이 지닌 위력이죠."



- 그는 그림을 그리는 자기 모습을 그렸다. 치료사가 그에게 무엇을 그린 거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정신이 망가져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온 남자가 미술치료를 받으러 가서 치료사에게 그림을 그리라는 요구를 받는 그림이오." "그럼 사이먼 씨, 당신의 그림에 제목을 붙인다면 뭐가 좋을까요?" "그거야 쉽소. ‘젠장 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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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기
하인리히 뵐 지음, 안인길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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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 독일문학을 대표한다는 하인리히 뵐, 그의 이름이 익숙한 탓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두껍지 않은 책이어서 지하철로 오가는 길에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기행문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등장인물이 계속 바뀌고, 같이 여행한 사람이 가족인지, 친척인지, 혼자였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다 읽고 난 후에야 18개의 단편소설을 묶은 것임을 알게 되었고,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약 60년 전 아일랜드 사람들의 생활상을 조금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큰 범죄를 저질렀던 독일의 과거사가 이 책에 잠깐 등장합니다. 일본과 다르게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했던 독일에서는 이후 무겁고 숙연한 전후문학이 주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코믹하면서도 아일랜드의 가난하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그리는 이 단편소설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가진 독일 사람들에 대한 인상, 아이들을 많이 낳지만 결국 주변의 발전한 나라들로 내보내야 하는 아일랜드의 현실, 느긋하면서도 신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그들의 순박한 삶에 대한 예찬이 소설들 속에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경험한 내용을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익숙한 것들을 떠나 잠깐 동안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아일랜드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그들의 삶처럼 느리고, 느긋한 삶을 누려보고 싶기도 합니다. 이민을 떠난 가족들이 버리고 간 가옥들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는 그들의 국민성이 궁금합니다. 빨리빨리를 외쳐 급속도로 발전하긴 했지만, 시간에 늘 쫓기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을 것 같습니다.

 

- 신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건강이론과 자살사상을 수출하는 나라가 있어요. 원자포와 기관총, 그리고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도 있고요." (13쪽)



- 이곳의 더러움은 아무리 초보 미학자라 할지라도 더 이상 그림 같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비참은 성 패트릭 성당 주변의 빈민가에 옹크리고 있다. 1743년에 스위프트가 보았던 그대로 수많은 골목과 집 안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26-27쪽)



- 우리는 행상인처럼 이 집 저 집 다녔다. 머리 위 대들보에 걸렸던 짧은 그림자가 물러가면 사각형의 파란 하늘이 계속 번갈아가며 우리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예전에 잘 살던 사람들이 살았던 집의 하늘이 더 컸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하늘은 더 작았다. 사각형 파란 하늘의 크기가 여기에서 다시금 부와 가난을 구별했다. (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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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주떼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2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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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678978546

 

  어린 시절에 겪은 아픈 상처는 언제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까? 이 소설의 주인공 예정은 8살에 모르는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너무나 착했던 소녀, 그저 아저씨를 도와주려는 마음에 따라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당한 그녀는 이후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 부모로부터도 질타를 받고 점점 자아가 쪼그라든다. 사촌오빠에게까지 성추행을 당한 이후 사랑하는 고모에게서까지 너는 뭐 했니?’라는 말을 듣다니, 그녀 주변의 어른들은 모두 미숙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짝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 애가 널 좋아하나보다하고 대답하는 선생님마저도. (이 부분에서 찔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일까?

 

  그 이후 그녀는 자존감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단지 발이 발레하기에 좋겠다는 발레 선생님의 말을 듣고 춤추기로 결심한다. 모든 동작들을 익힐 수 있으나 연결시키지 못해 춤을 출 수 없는 예정은 학창시절 늘 아름다운 춤을 추는 리나를 부러워하고 소유하고자 한다.

 

  발레와 성폭행을 주제로 한 독특한 소설이다. 1인칭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100쪽 남짓 짧은 소설이 굉장히 강렬하다. 어느 모임에서 여자들끼리 꺼낸 과거 성폭행 경험 이야기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있음을 깨닫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아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작가는 그들이 이 책을 통해 위로받기를 바란다. 나 또한 한 사람의 인생을 회복 불능인 상태로 흔들어놓을 수도 있는 성폭행이나 성추행 범죄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 나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발이 사라지고, 발목이 사라지고, 종아리가 사라지고, 무릎이 사라지고, 허벅지가 사라지고, 가랑이가 사라지고, 골반이 사라지고, 배꼽이 사라지고, 허리가 사라지고, 가슴이 사라지고, 어깨가 사라지고, 목이 사라지고, 머리가 다 사라져 갔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무런 느낌도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지금 이 순간만이 나에게 남았다. 물은 정말이지 차갑고 뜨거워, 나에게 떠오르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다 앗아가버렸다. (31쪽)



- 죽음과도 같은 시간. 외부의 시간은 흐르고 있으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정지되어 흐르지 않는, 흐를 수 없는 시간. 내 몸과 의식의 모든 시간과 기능이 다 멈춰버리고 마는 시간.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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