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 주떼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2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678978546

 

  어린 시절에 겪은 아픈 상처는 언제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까? 이 소설의 주인공 예정은 8살에 모르는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너무나 착했던 소녀, 그저 아저씨를 도와주려는 마음에 따라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당한 그녀는 이후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 부모로부터도 질타를 받고 점점 자아가 쪼그라든다. 사촌오빠에게까지 성추행을 당한 이후 사랑하는 고모에게서까지 너는 뭐 했니?’라는 말을 듣다니, 그녀 주변의 어른들은 모두 미숙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짝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 애가 널 좋아하나보다하고 대답하는 선생님마저도. (이 부분에서 찔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일까?

 

  그 이후 그녀는 자존감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단지 발이 발레하기에 좋겠다는 발레 선생님의 말을 듣고 춤추기로 결심한다. 모든 동작들을 익힐 수 있으나 연결시키지 못해 춤을 출 수 없는 예정은 학창시절 늘 아름다운 춤을 추는 리나를 부러워하고 소유하고자 한다.

 

  발레와 성폭행을 주제로 한 독특한 소설이다. 1인칭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100쪽 남짓 짧은 소설이 굉장히 강렬하다. 어느 모임에서 여자들끼리 꺼낸 과거 성폭행 경험 이야기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있음을 깨닫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아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작가는 그들이 이 책을 통해 위로받기를 바란다. 나 또한 한 사람의 인생을 회복 불능인 상태로 흔들어놓을 수도 있는 성폭행이나 성추행 범죄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 나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발이 사라지고, 발목이 사라지고, 종아리가 사라지고, 무릎이 사라지고, 허벅지가 사라지고, 가랑이가 사라지고, 골반이 사라지고, 배꼽이 사라지고, 허리가 사라지고, 가슴이 사라지고, 어깨가 사라지고, 목이 사라지고, 머리가 다 사라져 갔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무런 느낌도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지금 이 순간만이 나에게 남았다. 물은 정말이지 차갑고 뜨거워, 나에게 떠오르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다 앗아가버렸다. (31쪽)



- 죽음과도 같은 시간. 외부의 시간은 흐르고 있으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정지되어 흐르지 않는, 흐를 수 없는 시간. 내 몸과 의식의 모든 시간과 기능이 다 멈춰버리고 마는 시간.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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