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일기
하인리히 뵐 지음, 안인길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전후 독일문학을 대표한다는 하인리히 뵐, 그의 이름이 익숙한 탓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두껍지 않은 책이어서 지하철로 오가는 길에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기행문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등장인물이 계속 바뀌고, 같이 여행한 사람이 가족인지, 친척인지, 혼자였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다 읽고 난 후에야 18개의 단편소설을 묶은 것임을 알게 되었고,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약 60년 전 아일랜드 사람들의 생활상을 조금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큰 범죄를 저질렀던 독일의 과거사가 이 책에 잠깐 등장합니다. 일본과 다르게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했던 독일에서는 이후 무겁고 숙연한 전후문학이 주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코믹하면서도 아일랜드의 가난하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그리는 이 단편소설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가진 독일 사람들에 대한 인상, 아이들을 많이 낳지만 결국 주변의 발전한 나라들로 내보내야 하는 아일랜드의 현실, 느긋하면서도 신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그들의 순박한 삶에 대한 예찬이 소설들 속에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경험한 내용을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익숙한 것들을 떠나 잠깐 동안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아일랜드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그들의 삶처럼 느리고, 느긋한 삶을 누려보고 싶기도 합니다. 이민을 떠난 가족들이 버리고 간 가옥들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는 그들의 국민성이 궁금합니다. 빨리빨리를 외쳐 급속도로 발전하긴 했지만, 시간에 늘 쫓기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을 것 같습니다.

 

- 신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건강이론과 자살사상을 수출하는 나라가 있어요. 원자포와 기관총, 그리고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도 있고요." (13쪽)



- 이곳의 더러움은 아무리 초보 미학자라 할지라도 더 이상 그림 같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비참은 성 패트릭 성당 주변의 빈민가에 옹크리고 있다. 1743년에 스위프트가 보았던 그대로 수많은 골목과 집 안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26-27쪽)



- 우리는 행상인처럼 이 집 저 집 다녔다. 머리 위 대들보에 걸렸던 짧은 그림자가 물러가면 사각형의 파란 하늘이 계속 번갈아가며 우리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예전에 잘 살던 사람들이 살았던 집의 하늘이 더 컸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하늘은 더 작았다. 사각형 파란 하늘의 크기가 여기에서 다시금 부와 가난을 구별했다. (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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