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덴도 신’의 원작 소설을 읽기 전에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을 먼저 관람 했다. 원작과 리메이크 작을 볼 때면 매번 비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역시 비교 아닌 비교를 해야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작품 모두 매력과 장단점이 있는 듯 하다. 우선 영화는 권순분 여사의 자제분들이 모두 방탕하고 이기적으로 그려진 반면, 소설에서는 도시 여사의 자제분들이 세상물정 모르는 단순함이 있는 반면, 어머니의 구출을 위해서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참여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아무래도 소설 쪽이 뭔가 더 가슴이 남는 진지함이 있다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가볍게 즐기기엔 영화도 추천할만하다.

「대유괴」의 간단한 소개문 개요를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바로 이 작품의 1979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된 소설임에도 긴박한 상황이나 세상 돌아가는 정서가 지금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핸드폰도, 컴퓨터도 없던 그 시절,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세상의 모든 미디어로 장악하고 있을 무렵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현재 난무하는 초특급 과학수사보다 더욱 정교하고 화려한 수사 방식에 매료되어 흥미롭게 푹 빠져들 수 있었다. 뭔가 허점이 있을 법도 하지만, 수사적인 두뇌가 발달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들의 완전 범죄 중, 의문점이 남았던 경우는 없었다.

소설의 설정부터가 재미있다. 인자하시고 지혜로운 80대 할머니와 어딘가 모르게 초보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풋내기 유괴범들이라니……. 게다가 할머니가 얼뜨기 유괴범들에게 방법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인질극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이 매우 신선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건실함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인 도시 여사를 비롯해서 겐지, 마사요시, 헤이타, 이카리, 미스구……. 순수하다 못해 미련해 보일 만큼 사리사욕을 챙길 줄 모르고 심성이 착하다. 착한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라서 그런지 몰라도 범죄 자체도 그리 밉지가 않다. 당시 100억 엔이라면, 지금의 환율로 따지자면 더욱 더 천문학적인 수치가 될 텐데, 너무 많아서 그런지 오히려 돈에 대해 무감각해진다고나 할까.

간혹 재벌들의 횡령 사건을 접할 때 마다 한 마디 욕을 하지만, 솔직히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큰 욕심이 생기는 법이니까. 100억 엔이라면 평생 먹어도 못 먹을 라면을 사 먹을 수도 있지만, 제트기를 두 대나 살수도 있다. 돈은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분명 소설이기에 우스개로 넘길 수 있는 유괴사건이지만, 「대유괴」는 세상에 존재하는 일부 몰지각한 재벌들에게 가하는 작가의 따끔한 충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더불어 노인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사람의 몸값을 금액으로 측정했을 때, 과연 얼마의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것이라는 윤리적인 문제까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듯 누구나 저마다의 생명은 자신이 느끼는 가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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