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은 스타일이다
전지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여자들만의 수다란 참으로 즐거운 것이다. 보통 두세 명의 여자들이 모여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마지막으로 카페에 앉아 하루 종일 수다를 떨어도 전혀 피곤하지가 않고 너끈하기만 하다. 입술이 부르트도록, 입에서 단내가 나며 입 속이 바싹바싹 타 들어가도 수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다. 그리고 모임에서 유독 시선을 끌며 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들어주는 쪽이 있다. 아마 이 책의 저자는 전자에 해당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발랄하고 즐거운 수다에 동참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조용히 들어주고 있었으니까.

아직 노처녀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니지만 곧 있으면 나 역시 서른 줄을 바라보며 노처녀 딱지에 괴로워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주위로부터의 압박이 가장 거셀 것이고, 원인 불명의 자괴감에 힘들어하며 수 없이 남은 권태로운 일상을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런지 골머리를 앓게 될 터이다. 독신주의를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기를 쓰고 상대를 찾아 기필코 결혼이란 것을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 따윈 버린 지 오래다. 혼자 살면 사는 것이고,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하면 그것도 좋은 것이고. ‘반드시’라는 명제가 사라져서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다. 요즘은 여자들도 바빠서 서른 넘어서 결혼 많이 하더라, 라는 소리를 남 얘기처럼 나 자신에 통용시켜보곤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은근슬쩍 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혼자 살면 왜 안 되는 걸까? 안정적인 가정을 위해서? 2세를 낳아 종족을 번영시켜야 하니까? 아니면 단순히 인간이란 동물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혼자라는 짐이 주는 외로움을 견뎌낼 재간이 없으니까? 이런 교과서적인 이유가 있는가 하면, 단순하게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결혼을 선택하는 여성도 제법 많은 듯하다. 반드시 남들과 똑같이 살 필요는 없는데, 이도저도 말고 평균으로 살아가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어른들 말씀에 귀기울여볼 필요도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도 쭈욱 싱글 여성의 삶에 동참하고 싶다.

화려한 싱글은 화려할 수 없는 싱글들에게는 죄책감만 떠안겨주는 단어라 할지라도 스스로 자신을 싱글이라는 감옥에 가두지 말고, 그저 삶을 사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인식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싱글은 스타일이다」의 저자가 쉴 새 없이 달변을 토하며 혼자 살거나, 혼자 살기를 원하는 여성에게 주지하고 있는 말 역시 이것이다. 자신이 사는 방식을 선택하되, 후회는 금물이며 되도록 혼자라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또 나아가 자신이 사는 방식을 존중하고 사랑하자는 것. 비록 매달 엄청난 카드 고지서를 공포영화보다 더욱 혐오하고, 지인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이 가시방석이 될지라도 말이다.

싱글이라고 해서 반드시 화려할 필요는 없다. 싱글 여성은 능력이 좋고, 미인이고, 자신의 일을 가정을 꾸리는 일보다 더욱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서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쿨하게 살아가는 것.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등이 간지러울 때 시원하게 벅벅 긁어줄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토끼 같은 자식들이 없다는 점만 다를 뿐.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별 게 있겠는가? 오히려 마음껏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최대한 고독을 즐겁게 다스리면서, 그렇게 다른 누군가에게 향해야 할 사랑을 자기애로 100% 승화시키는 일 또한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스타일리쉬한 일러스트와 그녀의 화끈한 입담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으로 안 그래도 자유분방한 더 자유분방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커다란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프리랜서가 불안정한 박봉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쇼핑목록을 보니, 적어도 내 연봉의 두 세배는 될 것이 분명하기에 어쩐지 슬슬 질투심에 배가 아파오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 어디를 가나 여자와 남자는 고유 분모를 포함하고 있기에, 그녀가 느끼는 일상의 알레르기와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아드레날린에 대해서는 심각한 동감 표를 던지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성냥처럼 말라비틀어진 모델 같은 몸매를 선호하는 이 세상에 저주를 날리면서 오늘도 묵묵히 치즈 케이크와 시럽 듬뿍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 있을, 애인 만들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쓸데없이 눈만 높아 웬만해선 성에 차지 않는 남성 편력을 가진, 나와 비슷한, 혹은 나와 똑같은 이 세상 모든 싱글 여성들. 화려하진 않지만 조금은 화려해 지고 싶은 날, 내달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갈 카드 고지서를 무시하고 사고 싶었던 쉬폰 원피스와 높은 하이힐을 쇼핑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나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며 세상을 바라본다면 혼자든 둘이든 그렇게 외롭지는 않지 않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의를 가지고 매달릴 수 있는 취미생활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 그리고 펑펑 울고 싶은 날 불러낼 친구를 반드시 만들어 둘 것. 마지막으로 언제든 챙겨서 어디든 떠날 수 있은 커다란 여행 가방을 마련해 두는 것이 싱글녀들이 지녀야 할 십계명 중 최우선 순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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