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우연찮게 3월 1일 쯤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리 민족사의 아픈 날이기에 1940년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 책을 읽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3.1절 특집 다큐멘터리로 위안부 문제나 일본 자국과 우리의 상반된 역사의식을 시청 할 때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지만, 어쩌면 이 소설에서 묘사된 대로 그 때 그 시절 강력하게 주입받게 된 과잉된 조국애를 이용한 영웅심리 탓도 일본 제국주의의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역사문제의 문화 관점과 입장이 너무나 다르다 보니 소설 하나를 읽어도 기타의 상념들이 뭉글뭉글 솟아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불필요한 개인감정은 접어두고 책 속으로 들어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이 책은 기대만큼 만족을 주는 작품이었다.

  <타임 슬립>은 시간 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인생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을 발견해 나간다는 판타지 소설이다. 상반된 시대의 두 사람, 어떠한 운명으로 인해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구성이지만, 내용만큼은 아주 탄탄하고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21세기에 사는 19세의 ‘겐타’는 서핑이 취미로, 서핑을 타다가 시공간을 이동하게 된다. 바다 속에서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시대는 쇼와 19년. 한창 2세 세계대전의 물이 올랐을 무렵이다. 위기일발의 전시 상황에서 사방에 폭격기가 날아다니고, 폭탄이 투하된다. 이러한 위험한 상황 속에서 설상가상으로 해군부대에 끌려가게 되고 생전 처음 보는 전투기를 조종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닥친다. 그리고 같은 시각, 20세기의 해군 부대에서 21세기로 날아온 ‘고이치’가 눈을 뜬 곳은 사방이 새하얀 병원의 침대다. 생전 처음 보는 요상한 물건들과 이상한 차림의 사람들을 보고 온갖 억측과 망상에 시달리기 시작하는데…….

  겐타와 고이치는 똑같은 외모에 똑같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어, 갑자기 변해버린 두 사람을 그저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고만 생각할 뿐이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겐타와 고이치는 점점 자신이 속한 시대에 적응해 나가기위해 노력하면서 괴롭던 심경을 해소가 나가기 시작한다. 60년이 넘은 세월의 변화에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하다가 점차 익숙해져가는 두 남자의 모습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시간이 만들어 낸 그 놀라운 과학의 발전 앞에서 그리고 사치와 향락에만 빠져 생명의 소중함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회한에 잠기는 고이치. 15살 안팎의 소년들이 군대에 끌려와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전투를 치르는 소년들을 바라보며 괴로워하는 겐타. 원래 그들의 세상이 아니었던 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그 시대의 아픔과 혼란은 새삼 현재의 삶이 얼마나 자신들에게 소중했던 것인지, 커다란 의미를 되새겨 준다.

  살인 병기가 되어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겐타는 괴로워한다. 원래 자신이 살던 21세기에서는 뭐든지 불평하고, 인내심도 부족하고, 그저 가볍게 하루를 살 뿐이었는데, 과거 생사를 넘어서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을 보며 진정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진정 죽어야만 하는 걸까. 어차피 일본이 항복하게 될 텐데…. 그리고 미래로 날아간 고이치 역시, 예절도, 자부심도, 검소함도 모두 망각한 채 살아가는 21세기 일본인들을 위해 죽을 결심까지 했던 자신과 전장의 동료들을 생각하며 새삼 환멸을 느낀다. 고작 이런 꼴을 보기 위해서 반세기 전, 모든 이들이 목숨 바쳐 나를 구했던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각자 두 사람이 느끼는 과거와 미래의 모습은 예상과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아니, 과거는 어떨지 몰라도, 미래의 사람들은 과거의 고통들은 모두 잊은 채 배불리 먹고,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살 뿐이다.

  세대가 달라서 이해할 수 없었던 옛 어른들의 가르침을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선조들이 겪었던 고통과 피부로 느꼈던 혼란들은 지금과는 너무도 다르지만, 지금은 너무나 풍족하게 살아감에도 늘 불평, 불만이 끊이지 않는 우리가 아니었던가. <타임 스립>은 이렇게, 우리가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과거의 고통들을, 순간 이동 한다는 설정으로 독자들에게도 직접 느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후미코와 겐타의 운명적인 만남이 긴 여운을 남겼다. 그녀가 사랑을 가득 담아 바라보고 있던 사진을 찍던 인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이야기는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얽히면서 비밀이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면서 놀라움을 선사하는데, 각자의 시점이 교차되는 이야기지만, 겐타와 고이치 부분만 따로 떼어 읽어본다면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요일 밤의 뜨개질 클럽
케이트 제이콥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대산출판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여자들의 삶은 제 각각 다르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걱정과 고민들을 안고 살아간다. 전 세계를 어디를 가도 공통되는 문제, 우선 가장 먼저 자신들의 자립심의 정도와 결혼과 육아 문제이다.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뉴욕의 여자들이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저마다 짊어진 고통의 문제들로 언제나 씨름하고, 하루를 어떻게 더 유익한 방향으로 살아갈 런지에 대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삶이란 것이 그렇듯이 아주 작은 전환점을 계기로 인생의 혁명을 가져 올 수도 있는 것인데, 워커 모녀 수예점의 안방마님 조지아의 경우는 젊은 시절 덜컥 생겨버린 딸 다코타의 탄생이 그러하다.

  조지아는 사랑했던 제임스를 떠나보낸 후 혼자서 딸을 키워야만 했던 미혼모다. 힘들고 두렵고 어렵기만 했던 첫 출발이지만 스스로의 자립에 성공하여 수예점 사업은 날로 윤택해져 가고 있다. 사업의 번창과 함께 찾아온 뜻밖의 손님들로 그녀 인생의 제 2의 변환기를 맞이하는데……. 우선 임신과 동시에 두 모녀를 헌신짝처럼 버려두고 프랑스로 제 갈길 갔던 제임스와, 고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였지만 절교 선언을 했던 캐시가 나타났다. 이런 뜻밖의 손님들과의 재회는 생각보다 지난 과거의 앙금이 깊었던 탓에 금세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매주 금요일 밤의 뜨개질 친구들과도 새로운 우정을 쌓아가고, 어머니보다 더 아늑한 존재 애니타가 언제나 그녀를 지켜준다. 조지아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은 하나 같이 믿음직스럽고 다정하다. 힘겨웠던 날들에 대한 보상일까? 이제는 이 따뜻한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삶의 위안을 얻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금요일 밤의 뜨개질 클럽>은 각자의 삶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애인과 다투고, 남편과 사별하고, 외로움에 몸부림 치고, 직장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이별과 만남, 재화, 갈등. 모든 이들의 인연들을 통해 오늘 보다 내일은 더 희망적일 거라고 확신을 건네주는 친구들의 이야기다. 다코타가 만든 달콤한 쿠키와 머핀을 먹으며, 따끈한 차를 마시고, 각자의 비밀스런 삶을 토론하면서 얻게 되는 위로의 과정들. 수다스럽기도 하지만, 때로는 침묵으로 포옹하면서 묵묵히 뜨개질을 하는 금요일 밤 만큼은 그녀들의 일상 중,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기만 하다. 걱정 근심으로 꼬박 밤을 새우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게 되는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성들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던 뜨개질은 그녀들의 인생과도 너무도 닮아있다. 처음에는 서툴기만 해서 엉망진창의 덩어리를 이루지만, 계속 계속 습관처럼 이어가다 보면 어느 새 멋진 스웨터 하나가 완성되어 있다. 구식의 취미라는 핀잔을 들을지언정, 손으로 만든 예술품을 몸에 걸치거나 선물 하는 순간의 치유력만큼은 그 누구도 뜨개질을 우습게보지 못할 것이다. 서투른 인생의 첫 출발과 처음 잡는 바늘로 첫 코를 뜨는 순간의 느낌은 아마도 비슷한 수준의 짜릿함을 선사하지 않을까?

  이 소설을 통해서 마음을 잔잔하게 울리는 감동과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배웠다. 누구라도 읽게 되는 조지아의 클럽의 새내기 회원으로 발일 들이고 싶을 것이다. 더불어 이 작품의 영화 주인공으로 줄리아 로버츠가 캐스팅 되었다니! 그럼 이 책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헐리우드 톱스타 줄리아 로버츠양 역은 누가 맡는단 말인가! 영화화 된다는 소식에 머릿속으로 막연한 캐스팅을 점쳐 보지만, 너무 어렵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영화가 너무도 기대된다는 것. 소설과 마찬가지로 여자들의 심금을 울려줄 진한 감동의 작품이 탄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카페이스
아미티지 트레일 외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들은 말을 쏘았다>와 <스카 페이스>는 동명의 영화가 원작으로 탄생되었으며, 철저히 미국적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초창기 아메리칸 갱스터 무비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소설은 그다지 친숙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새롭게 만나본 두 작품은 영화의 원작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설들이다. 범죄 영화의 전범으로 꼽히는 <대부>시리즈나 <스카 페이스>는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자본주의의 절정을 치닫고 있을 무렵, 세계의 중심 미국의 암흑가라는 무대를 장악해나가는 갱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때나마 궁금했던 것은, 미국은 왜 그토록 범죄자들을 좋아하는가? 라는 아리송한 문제였다. 수입되는 미국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범죄 영화나 드라마는 단지 오락성만 짙음에도 그토록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잔인한 오락, 상업적인 재미만 따지기에 묘하게도 중동석이 강하다. 그 이유는 소수의 권력자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결코 상위 1%에 근접할 수조차 없는 일반인들이 뒷골목의 제왕이라도 되어보고 싶다는 일종의 자기투시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범죄들 중에는 다수의 의리파가 존재하고, 넥타이부대 보다 인간미가 강하게 발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떳떳한 불법이나 비도덕 한 합법이나 어차피 누군가의 눈에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기 마련이니까. 공권력을 행사하는 부패한 정부 관료나 뒷골목 양아치가 어차피 우리에겐 매 한가지로 보일 뿐이다.
 
  <스카 페이스>의 토니는 기존의 1세대 건달과는 확연히 다른 상징성으로 자신의 세력을 넓혀간다. 구세대 갱의 전형이 고리타분하고, 촌스럽고, 투박하고, 오로지 돈에 혈안이 되어서 그 어떤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면, 토니는 그러한 완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갱들을 증오했고, 새로운 갱의 전형을 창조해 나갔다. 말쑥하게 차려 입고 사무적인 일처리로 불가피한 폭력을 최대한 피해가는 방식의 점잖은 사업을 구사했다. 비상한 동물적 감각으로 돈맛을 알아가며 결국은 자신의 야망대로 권력의 최상층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권력이 높을수록 적들은 많아지는 법.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세력을 넓혀가기가 그리 호락호락 하지는 않다. 암흑가 갱들의 세력다툼과 영역싸움, 그리고 주인공 토니가 보스가 되기까지의 일대기를 웅장하게 다루고 있는 소설 <스카 페이스>. 내 기억에 유일하게 남은 토니 ‘알 파치노’의 그 때 그 시절 모습을 새롭게 회상해 볼 수 있었다.

  대공황을 지나는 시키고, 뉴욕의 갱들의 활약을 담은 소설이 <스카 페이스>라면,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새로운 전형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랑스에서는 최초의 미국 실존주의 소설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다고 하는데, 미국의 평론가들이 등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두 주인공 로버트와 글로리아는 번듯한 직업 없이 막연한 미래만을 상상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로, 우연한 기회에 만나 함께 댄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댄스 마라톤은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춤을 춰야 하고 최후의 1팀을 가려내기 전까지는 절대 멈출 수 없는 마라톤이다. 누군가가 탈락해야만 본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죽음의 레이스인 셈이다.

  댄스 마라톤 속에서도 모든 삶이 투영되어 있다. 돈이면 다 해결되는 물질만능주의, 상대팀이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철저하고 지독한 이기심, 관계자들의 비리와 그들의 보이지 않는 폭력, 생존자를 기다리는 처절한 더비 경주 속에서 생과 사를 넘나들던 글로리아는 반복해서 죽고 싶은 말만을 되풀이 한다. 그녀는 처음부터 잘못 태어난 것이며, 살아가는 이유가 없었다는 게 바로 오래 전부터의 그녀의 생각이다. 너무도 비관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글로리아를 로버트는 상당히 지겨워하지만, 결국 로버트는 가련한 글로리아의 소원을 대신해서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죽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죽을 용기는 없었던 그녀에게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로버트는 생각한다. 마치, 모든 뇌 기능을 상실해서 안락사 당하는 한 마리의 말처럼. 비록 타락한 운명에 던져졌더라도 스스로의 운명을 끝장낼 자유는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무엇이 옳았는지는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겠지만, 만일 내가 배심원이었더라면 로버트의 입장을 옹호해줬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법과 질서가 마구잡이로 훼손되고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는 21세기에 대한 경고일까?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로 서문을 시작하는 이유는 책의 내용과도 의미가 깊다. 도리를 모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귀속된 젊은이들의 방탕에 결국 노인들을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자신도 한때는 젊은이였지만, 오랜 추억으로 잠겨버린 패기와 열정은 결국 급속도로 무기력이라는 자신감의 결여와 함께 점잖게 사그라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보안관 ‘벨’이 그토록 약해 보이는 이유는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릴러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힘은, 가혹한 운명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발악 내지는 무시록적인 조언이다. 쫓기는 자와 쫓는 자, 그리고 이들을 추격하는 추격자 삼인방은 각자의 방식으로 스릴러라는 토대를 만들어 가지만, 단순히 재미를 위해 열거되는 서사의 방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극도로 말을 아끼는 사람들 간의 퉁명스러운 대화와 간혹 끼어드는 현 상황의 설명이 전부다. 과도한 수사적 문체를 배제하고 오로지현재진행형만을 위해 달려가는 호흡이 매우 빠른 소설이다. 이런 형식의 문장을 처음 접하기에 상당히 곤욕스러운 것이 사실이었으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작가 고유의 매력적인 문체가 접목된 색다른 시도로 비춰진다. 호흡이 매우 빠른 소설이기에 줄거리를 쉽게 이해하며 따라가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다. 게다가 대사 부분에 모든 구두점을 생략한 채 혼혈일체가 된 하나의 대사와 지문들은 매우 이색적이면서도 투박한 어려움을 선사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인물들의 감정 표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향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극악무도한 살인마 ‘시거’는 동전던지기로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돈 가방을 손에 쥔 모스 역시 처음부터 자신의 운명을 점잖게 의식하며 정의 내렸다. 수십억을 손에 쥐고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발악을 하기 보다는 다소 관조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가혹한 운명을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모든 것이 우연에 의해서 발생하는 소설의 형식이 아니라, 마치 표면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지를 남기며 모든 이들의 운명이 물 흐르듯이 조용히 흘러간다.

  이미 걸었소. 당신은 당신의 인생 전부를 걸었지. 단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 이 동전의 제조 년을 아시오? 1958년. 22년을 떠돈 끝에 여기에 온 거요. 앞면이거나 뒷면이겠지. 그리고 지금 여기 있소. 나도 여기 있고. 내가 지금 손으로 덮고 있소. 앞면이거나 뒷면이겠지. 당신이 말해 보시오. (중략) 무엇이든 도구가 될 수 있소. 아주 작은 거라도. 심지어는 당신이 알아차릴 수 없는 것도 있소. 그것들은 손에서 손으로 떠돌아다니지만 사람들은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 그리고 어느 날 결산이 이루어지는 거요.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똑같지 않지. 아마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지. 겨우 동전 아니냐고. 행위와 사물을 구분하면서 마치 역사의 한 순간을 다른 순간과 손쉽게 바꿔치기 할 수 있다는 듯이. 물론 이건 그저 동전일 뿐이오. 맞소. 하지만 정말 그럴까? 67~69p

  이 장면이 바로 그 유명한 동전 장면이다. 시거에게 모든 이들의 목숨은 한 낱 남루한 동전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최소한 그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정확히 무엇을 얻기 위하여 그 험난한 레이스를 즐기고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목숨의 가치보다 더욱 중요시 되는 게 그에게는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스쳐지나 가버릴 사소한 물건으로 생사를 가늠할 만큼 모든 이들의 목숨을 어쩌면 그렇게 사위어 갈 런지도 모르겠다. 마치 역사가 그러하듯 마이다.

  커다란 산탄총을 메고 찌는 듯한 황야를 질주하는 두 남자. 무겁고, 텁텁하고, 다소 불쾌한, 입 안에 쓴 맛이 잔뜩 감도는 메케한 연기에 휩싸인 소설이다. 몇 십 년 전 미국과 멕시코의 경제, 마약, 보안관, 산탄총, 거액의 돈 가방이 등장하고 피를 부르는 광시곡의 질주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단지 영혼의 모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 치고는 너무도 무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그렇기에 가능할 런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라리 on the Pink
이명랑 지음 / 세계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어린이와 어른의 중간 단계, 그 어정쩡한 생물학적 위치에 서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고등학생'이란 신분이다. 너무 어리지도, 그렇다고 완전한 어른도 아니면서 때로는 세상을 다 살아본 것처럼 읖조리는 이도 바로 '고등학생'이다. 내가 그랬다고 모두들 그랬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내 나의 17~ 18살 무렵엔 더 이상 세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지금도 썩 철이들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 때, 그 무렵은 한마디로 눈에 뵈는 것이 없어 미쳐 날 뛰던 시절이었으니……. 돌도 씹어 삼킬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체력과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뒤로는 온갖 불법을 서슴치 않는, 한 마디로 철부지의 객기 어린 난동이 절정에 다다랐단 순간들이었다.

  상고에 재학중인 일명 날라리 여학생들의 공통점은 왜, 전세계 어디를 가나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한 것일까? 정의 내리기가 너무나 쉬워서, 오히려 이제는 식상할 지경이다. 날라리의 종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가지로 나뉜다. '자칭이냐, 타칭이냐.' 나의 경우는 물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전자에 속했으니, 이 책의 화자 '이정아'양의 캐릭터와 어느 정도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타인들의 시선이 어떠하던간에 본인은 극도로 민감한 문제를 지니고 있고, 반항을 하며 자신을 정당화 한다. 서글픈 십대가 거니는 질풍노도의 계절이 따분하다기 보다는 서글픔의 극치, 그 불안정의 연속이었으니…….

  여하튼 전국의 여상과, 여고와 <날라리 온 더 핑크>의 귀여운 다섯 악동들의 키워드는 대략 이렇게 정의내릴 수 있겠다. 무관심한 부모, 혹은 지나치게 간섭하며 구속하는 부모, 문제 많은 가정 환경, 외모에 대한 관심의 극대화에 따른 자신감의 결여, 이성간의 불건전한 연애, 친구간의 트러블, 질투, 의리, 반드시 '개'나 '독'이 포함된 별명을 지니신 학주의 횡포, 보충수업 땡땡이, 가출, 술, 담배, 좀 심하면 본드나 마약의 유혹, 참고로 아이돌 가수에 목숨거는 일은 대부분 중학교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기 마련이다.

  판에 박힌 소재들이지만, 이명랑 작가는 이름처럼 명랑하게 다섯 소녀들의 일탈을 조리한다. 저마다 소소한 사연들을 품고 살아감에 따른 질곡들은 다양하지만, 성인보다 더욱 강하고 드세게 자극적인 인생을 탐하는 것은 전국 어느 여고생을 막론하고 동일한 현상이리라. 보기에 안쓰럽고 위험스러운 모험도 등장하지만,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만 하는 모험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준비도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누구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책에 등장한 클럽 <싸우고 싶다>의 모토처럼, 세상과 치고 박고 뒤엉키며 자신을 만들어 갈 때 누구나 더욱 강해지는게 아닌가 싶다. 설사 인생에게 배신 당해 얻어터지기만 할지라도 계속 맞다보면 어느 정도 맞는 요령까지 터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를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랐을 뿐이다. 잘했다거나 잘못 했다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우리도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아무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미처 배울 기회를 갖기도 전에 우리는 금 밖으로 내몰렸다. (중략) 우리는 실수와 상처로 만들어진 계단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벌써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체념 해버린 우리에게는 우리를 표현 할 그 어떤 방법도 없다. 우리의 말은 변명일 뿐이고, 우리의 행동은 반항일 뿐이다. 억눌린 감정을 표현 할 그 어떤 수단도 갖지 못한 우리에게는 상처 낼 몸과 움켜 쥔 주먹만이 유일한 언어다.' -207~208p

  그렇다.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방법이 아직은 서툴렀을 뿐……. 아직은 무엇을 원하는지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기에,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서며 한계를 만들어 갈 때, 비로소 그것이 반항이 아닌 정당한 연습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