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아이들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더럽다. 아프다. 끔찍하다. 구토가 이는 절망적인 소설을 만났다. 더 이상 추악할 수조차 없을 만큼 추악한 지금의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파헤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글을 읽는 내내 울컥 했고, 분노 했으며, 나 역시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은 모른 체 하고 싶을 뿐이고, 못 사는 나라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뿐이다. 모욕적인 범죄와 폭력이 자본의 흐름이라는 억울한 누명 아래 합법화 되거나, 눈 감아 버리고 마는 모순의 굴레의 연속이다. 내가 왜 이 책을 읽었을까, 하는 후회가 샘솟을 만큼 <어둠의 아이들>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게 저려왔다.
 
  모든 것이 ‘돈’ 때문이다. 코흘리개 꼬마 아이를 단 돈 몇 십 만원에 팔아버리는 비정한 부모나, 그 아이를 사서 온갖 폭력을 행세하고,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만들어 어린 몸을 욕되게 만들어 결국에는 장기까지 팔아치우는 사람도, 그런 사실을 눈 감아 주는 군부대, 경찰, 정부, 모두 다 결국은 돈 때문에 악행을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돈이 뭐 길래, 돈의 완전한 노예로 전락해 인간이길 포기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일까? 아우슈비츠 이후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가장 악덕한 횡포를 접하고 한 동안 공황상태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가슴이 답답하고, 분노의 눈물을 삼켰다.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 없이 되뇌어 봤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에 더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이야기는 태국의 어느 북부 산악지대에서 여덟 살 난 여자아이를 판매하는 가난에 찌든 부모와 그 아이를 사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의 목숨이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며 아이를 두고 가격 흥정에 옥신각신하는 첫 장부터 간담이 서늘했는데, 역자가 번역하기조차 어려워 건너뛰었다는 2장에서는 더욱 더 가관이다. 아이가 팔려가서 어떤 수모를 당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2장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잔인했다. 노골적인 성 묘사에 치를 떨며 분노를 삼키자 그것이 현실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한참이나 놀라워 할 수밖에 없었다. 잔인한 호텔 업주들에게 학대당하고, 외국 손님들이 아이들에게 행하는 변태적인 모습을 어찌 감당해야 할까.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듯 너무 정교한 문장들을 읽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동남아 일대에서 벌어지는 매춘 관광을 들어본 적은 있는데, 아이들을 상대로 이토록 큰 군락이 형성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유치원에 다녀야 할 작은 영혼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팔려오거나, 인신매매 당해서 지하에 감금되어 하루에도 열 차례도 넘게 성 학대를 당하며 죽어나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런지.

  <어둠의 아이들>은 학대 받는 아이들과 그들을 관리하는 업주들의 횡포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다가, 학대받는 아이들을 구해내려고 노력하는 복지센터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면 최소한의 관심은 필요하다. 자원봉사자들은 작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을 설득시키며 상황을 개선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돈에 굶주린 거대한 권력 앞에 무능하게 쓰러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학대 받는 아이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는 맺는다. 아무런 해답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이지만, 오직 단 하나 ‘희망’에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것이다. 나파폰, 게이코, 소오파…. 보이지 않는 희망을 믿으며, 보이지 않는 비명에 대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쓴 가슴을 달랬다.

  언제쯤이면 세상에 만연한 기아와 난민들, 가난에 지쳐 생살을 파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어질까? 부자들에게 먹일 가축들의 사료를 위해 이 세상의 식량이 절반 이상 할애된다고 한다. 아무리 살아봐도 잘 사는 사람은 잘 살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이 어두운 논리는 정말 해답이 없는 걸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라는 책을 읽으며 느꼈던 세상사의 부조리를 더욱 더 끔찍한 사태로 엇나간 욕심 많은 사람들을 보며 다시금 되새긴다. 부디, 하루 빨리 그 사람들이 가난에서 해방되어 아이와 냉장고를 교환하는 일이 없어져야 할 텐데. ‘소아성애자’라는 비정상적인 성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머나먼 나라까지 원정을 가서 아이들을 학대하는 일이 사라져야 할 텐데……. 슬픈 이 현실은 과연 어디가 끝일까? 너무도 불편해서 외면해 버리고만 싶은 소설 <어둠의 아이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으며 함께 그들의 고통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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