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on the Pink
이명랑 지음 / 세계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어린이와 어른의 중간 단계, 그 어정쩡한 생물학적 위치에 서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고등학생'이란 신분이다. 너무 어리지도, 그렇다고 완전한 어른도 아니면서 때로는 세상을 다 살아본 것처럼 읖조리는 이도 바로 '고등학생'이다. 내가 그랬다고 모두들 그랬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내 나의 17~ 18살 무렵엔 더 이상 세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지금도 썩 철이들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 때, 그 무렵은 한마디로 눈에 뵈는 것이 없어 미쳐 날 뛰던 시절이었으니……. 돌도 씹어 삼킬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체력과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뒤로는 온갖 불법을 서슴치 않는, 한 마디로 철부지의 객기 어린 난동이 절정에 다다랐단 순간들이었다.

  상고에 재학중인 일명 날라리 여학생들의 공통점은 왜, 전세계 어디를 가나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한 것일까? 정의 내리기가 너무나 쉬워서, 오히려 이제는 식상할 지경이다. 날라리의 종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가지로 나뉜다. '자칭이냐, 타칭이냐.' 나의 경우는 물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전자에 속했으니, 이 책의 화자 '이정아'양의 캐릭터와 어느 정도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타인들의 시선이 어떠하던간에 본인은 극도로 민감한 문제를 지니고 있고, 반항을 하며 자신을 정당화 한다. 서글픈 십대가 거니는 질풍노도의 계절이 따분하다기 보다는 서글픔의 극치, 그 불안정의 연속이었으니…….

  여하튼 전국의 여상과, 여고와 <날라리 온 더 핑크>의 귀여운 다섯 악동들의 키워드는 대략 이렇게 정의내릴 수 있겠다. 무관심한 부모, 혹은 지나치게 간섭하며 구속하는 부모, 문제 많은 가정 환경, 외모에 대한 관심의 극대화에 따른 자신감의 결여, 이성간의 불건전한 연애, 친구간의 트러블, 질투, 의리, 반드시 '개'나 '독'이 포함된 별명을 지니신 학주의 횡포, 보충수업 땡땡이, 가출, 술, 담배, 좀 심하면 본드나 마약의 유혹, 참고로 아이돌 가수에 목숨거는 일은 대부분 중학교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기 마련이다.

  판에 박힌 소재들이지만, 이명랑 작가는 이름처럼 명랑하게 다섯 소녀들의 일탈을 조리한다. 저마다 소소한 사연들을 품고 살아감에 따른 질곡들은 다양하지만, 성인보다 더욱 강하고 드세게 자극적인 인생을 탐하는 것은 전국 어느 여고생을 막론하고 동일한 현상이리라. 보기에 안쓰럽고 위험스러운 모험도 등장하지만,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만 하는 모험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준비도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누구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책에 등장한 클럽 <싸우고 싶다>의 모토처럼, 세상과 치고 박고 뒤엉키며 자신을 만들어 갈 때 누구나 더욱 강해지는게 아닌가 싶다. 설사 인생에게 배신 당해 얻어터지기만 할지라도 계속 맞다보면 어느 정도 맞는 요령까지 터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를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랐을 뿐이다. 잘했다거나 잘못 했다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우리도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아무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미처 배울 기회를 갖기도 전에 우리는 금 밖으로 내몰렸다. (중략) 우리는 실수와 상처로 만들어진 계단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벌써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체념 해버린 우리에게는 우리를 표현 할 그 어떤 방법도 없다. 우리의 말은 변명일 뿐이고, 우리의 행동은 반항일 뿐이다. 억눌린 감정을 표현 할 그 어떤 수단도 갖지 못한 우리에게는 상처 낼 몸과 움켜 쥔 주먹만이 유일한 언어다.' -207~208p

  그렇다.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방법이 아직은 서툴렀을 뿐……. 아직은 무엇을 원하는지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기에,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서며 한계를 만들어 갈 때, 비로소 그것이 반항이 아닌 정당한 연습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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