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형 빈센트 반 고흐 아트 픽션 2
쥐디트 페리뇽 지음, 성귀수 옮김 / 아트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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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형 빈센트 반 고흐>는 빈센트의 동생 테오도뤼스가 형이 사망한 직후부터 자신이 사망하기 전까지 6개월 동안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자서전도 아니고, 전기문도 아니고, 빈센트 사후 몇 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다룬 독특한 구성이다. ‘쥐디트 페리뇽’의 상상력에 빗댄 팩션이라고 하기엔 매우 현실감 있고, 긴박한 당시의 상황을 회상해 볼 수 있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1세기 전 마치 그림이라는 광기에 휩싸여 모든 생을 불태워 버린 채 짧은 나이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동생 테오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했던 그의 그림들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보이지 않게, 혹은 금전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테오의 헌신이 눈물겹다. 마치 알고 있는 주소가 하나뿐이라는 듯 빼곡히 써서 동생에게로 보내졌던 그 무수한 편지들을 추억하면, 지금도 우리는 빈센트와 테오라는 끈끈한 두 형제의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예술가의 깊이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지금은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정착한 ‘고흐’라는 존재를 당시엔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고, 그 외면당한 고독의 슬픔을 유일하게 헤아려 주던 상대가 테오였기에 빈센트는 그토록 동생에게 의지를 했던 것이 아닐까. 두 사람은 단지 형제라고 정의 내리기에는 부족한, 뭔가 더욱 깊은 유대감이 깃들어져 있었다. 베일에 싸인 듯 신비롭고, 때로는 맹목적이며, 때로는 따끔한 질책과 충고도 아낌없이 토로할 수 있는 영혼의 반려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참 이상하다. 초록빛으로 테두리를 둘러 한층 응집되어 보이는 눈동자, 잿빛 머리카락, 탁한 장밋빛이 감도는 안색과 청춘이 너무 일찍 도망가버린 이미의 주름들... 이것이 바로 빈센트이고 또한 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대하던 사람들에게서 나는 마치 거울을 볼 때와 같은 감정만을 느낄 뿐이다. 글쎄,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고... 147p

  빈센트와 테오의 죽음은 여러면에서 동일시되는 묘한 메시지가 있다. 지나치게 무거웠던 삶이 주는 중압감과 고통의 무게를 감내 할 수 없었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아름다움의 근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상처받은 자들에게 세상은 언제나 동일한 엔딩만을 선사하나 보다. 형이라는 한쪽 팔을 잃어버린 테오에게 세상은 더 이상 살아갈 가치와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가던 빈센트와 테오.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 주었던 끈끈한 형제의 사랑이 부럽기도 하고, 마냥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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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타 행진곡 - 제8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쓰카 고헤이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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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마타 행진곡>의 긴짱과 야스의 구도는 ‘스타와 엑스트라’라는 신분적 차이에 의해 뚜렷이 대비된다. 그러나 야스에게는 보다 높은 신문의 사람에게 호의를 보이거나 존경을 표시하는 것과는 뚜렷한 차이점이 내포 되고 있다. 스타에게 보내는 일반인들의 선망보다 한층 더 높은, 맹목적인 헌신과 과도한 찬사는 마치 긴짱이라는 존재가 세상 모든 권력의 정점인 듯 신격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권력의 최상에 도달한 긴짱은 제멋대로 아랫사람을 부리며 무조건적인 복종을 바라지만, 이러한 권력계층의 구도는 본인들이 전적으로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 마냥 자연스럽고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글의 배경은 1980년대 시대극 촬영지인 교토이다. 특정한 시간적 배경은 무시할 수 있지만,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를 빗대어 표현한 피해자와 지배자, 혹은 권력자와 그 아래 군림하는 충성스런 하인들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리얼하다. 과거에는 천왕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수많은 국민들을 빗대었을 것이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권력자와 그들의 추종자를 적절히 빗댄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어디를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작가는 재일교포 2세로서, 능력이나 인격에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차별을 받아야만 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 작품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심도 있는 문제의 제기도 불가능 할 만큼 본능적으로 차별의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 지어진 신분이라는 낡은 제도의 세습으로 고통 받는 세월이 겹쳐진다. 이 소설의 주제와,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메시지만큼 무거운 소설은 아니지만, 코믹하게 현상화 된 캐릭터가 주는 평자와 해학은 제법 서글프다.

   긴짱, 야스, 고나쓰 세 인물을 중심으로, 각자의 사연과 두렷한 성격, 인상 깊은 심리 연출을 훌륭하게 표현한 것 같다. 주제와 분수를 알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 이기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허영에 물들어 또 다른 억압자로 변하기도 하는 사람들. 누가 강자인지, 누가 약자인지는 이 소설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똑같이 불향한데, 그리고 똑같이 한심한데, 누가 누구를 질타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영화로 만나본다면 짧은 분량의 소설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소설 속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를 그리는 작업이 조금 더 자세히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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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안토리오 솔레르 지음, 김현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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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한 작은 바닷가 마을, 함께 어울리기 좋아하는 네 명의 젊은이가 있다. 청춘이 이유 없는 반항을 즐기기 위한 특권이라면, 각자에게 내려진 반항의 이유가 무시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야심찬 젊은이도, 황폐한 젊은이들도 아니기에 저마다의 불안정한 삶을 향해 조심스럽게 이동하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 했을 때 옆 침대의 남자가 성서 마냥 섬기던 책 단테의 ‘신곡’을 얻게 된 미겔리토는 그의 연인이자 천국이었던 여인 룰리를 만나게 된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던 이 어린 연인들을 중심으로 카메라가 회전하며 그들의 작은 세계를 비추어 준다.

  우선 미겔리토의 친구들이 있다. 키가 작고 동양인처럼 생긴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아마데오 눈니(멧돼지라는 별명이 더 친근한), 아버지의 화려한 사교로 유명한 바람벽 파코, 그리고 평온한 가정에서 자라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친구 아벨리노 모라타야. 이런 죽마고우들과 대비되는 반대 그룹, 혹은 철천지원수들도 있다. 자기 과시욕에 몸부림치는 난쟁이와 사이코 라피 아얄라, 탐욕스러운 루비로사까지. 마치 실제로 스페인의 작은 마을을 탐구하기라도 하듯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며 저마다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마치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시작된 사랑의 인연과 겹겹이 쌓인 우정, 질투와 증오. 다양한 형태로 흐르는 감정들의 놀라운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다.

  막연하게 바라는 미래의 자신을 향해 외쳐보지만 이렇다 할 변화 없이 결국은 같은 곳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엉터리 시인 미겔리토도 그렇고,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 룰리 역시 무용을 하고 싶어 하지만 가정 형편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파코도 살덩이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로 인해 변호사라는 길을 걷게 되고, 부모로부터 두 번씩이나 버림 받은 멧돼지 역시 자신은 간절하게 무엇을 갈망했지만 결국은 이룰 수 없었다. 꿈은 바람에 실려 온 햇살 마냥 그들의 여름을 핑크빛으로 물들이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벗어나고 싶어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족쇄처럼 운명은 매번 그들을 잔인하게 배신한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으레 낭만과 정열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리 낭만적이지도 풍요롭지도 않다. 아름다운 미소가 퍼져나가는 매혹적인 젊은 소설임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약간은 따끔거리고 가슴이 아프다. 멧돼지의 고모 라나 터너양이 현실을 외면하고 허상을 쫓듯, 저마다들 무언가에 미쳐있다. 미칠 수 있는 중독의 아픔이 그 해 여름, 아직 미성숙했던 그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피로 얼룩진 가련한 사랑, 저물어가는 괴로움들 속에서 복잡하기만 한 네 명의 우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의 사소하고 파란만장했던 그 해 여름을 먼 훗날 회상하던 이 글의 화자는 말한다.

  ‘나는 생각했다. 내 삶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별이 죽기 전에 내뿜은 빛은 아직도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찬란함은 잃어버렸을지 모르나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살아 있어 내 길을 계속 비춰줄 것이다. 333~334p’

  시인이 되고자 했던 아마추어 미겔리토처럼 이 소설은 시적인 언어들로 가득하다.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예쁜 문장들 속에 서글픈 운명의 자화상이 감추어져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그리 즐기지 않는 독자에게는 상당히 난해하고 복잡한 소설이 될 수도 있다. 어지러운 플롯과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초반에는 상당히 고전했던 소설이지만, 익숙해 질 무렵엔 조용히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흡입력이 있다. 이 작품은,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한 젊은 한 때의 꿈 이야기다. 각자가 원했던 삶. 바라는 삶. 꿈은 비록 거짓말처럼 나타났다가 거짓말보다 더 슬프고 잔인하게 사라져버렸지만, 어딘가에 있을 아름다운 베아트리체를 향했던 별은 항상 그를 희미하게나마 비춰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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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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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보더라도 자부심을 가질만한 번듯한 직업을 가진 네 명의 남자들은 한 여자를 공유 했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삶은 언제나 그렇듯, 뜻밖의 전환점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 네 남자에겐 바로, 그녀 '몰리'의 죽음이 그러하다. 매력적인 여인 몰리의 현재와 과거를 각각 공유했던 네 남자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장례식장이라는 엄숙한 장소에 모이게 되고, 한 자리에 모인 그들은 가슴 깊숙이 숨겨져 있던 본인들의 상처와 얼룩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상처의 근원은 어디이며 무슨 이유일까? 각자의 결점을 커버하려는 그들의 자기 합리화는 정당성과 대비되며 양심의 치졸한 부재를 더욱 더 야기시킨다.

  클라이브, 버넌, 조지, 라머니, 이 네 사람은 모두 삶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중년의 남성들이다. 몸의 노화는 젊은 날의 추억을 갉아먹고, 능력의 한계를 나타내는 나이듦의 서러움에 숨이 가빠오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본인들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보다 더 높은 고지를 향해서 달려가지만 체력과 나이는 이미 한계점을 보이고, 고갈되는 아이디어의 부재로 서서히 변화의 시점을 간파하지만, 아직도 한계라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한다. 발버둥 칠수록 더욱 옹졸해 질 뿐이지만, 각자가 증오했던 상대들과 닮아가는 본인들의 모습은 차마 눈 감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다.

  우정과 사랑, 믿음의 이면에는 이렇게 파괴되고 몰락해 가는 자아와 대비를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각자 깨달아 가는 그들. 저마다 부와 명예를 쌓아 올리며 성공의 축을 이루었지만, 세월의 변화에 따라 타인에 대한 분노와 경멸, 증오, 그리고 열등감은 깊어져만 간다. 누구보다 친했고 스스럼 없었던 클라이브와 버넌조차 두 사람 사이에는 변화하는 세월과 함께 피해의식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면 알수록 믿음이 분노로 변모해가는 중년의 기진맥진함을 탁월하게 표현한 소설이다. 차분한 듯 하면서도 수다스럽고, 고상한 듯 하면서도 치졸한 인간상의 비리를 파헤친, 매우 감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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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버린 여인들 - 實錄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
손경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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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이기에 헤아릴 수 있는 아픔들이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전 세계 모든 여자들은 남성의 권력 구도 아래 숨 죽이며 때로는 성의 노리개로 희생되어 왔다. 현재까지도 그러한 구조는 쉽게 깨어지지 않고 있다.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 뿐이지, 남성들의 세포 깊숙이 여성이라는 자체를 무시하고 깔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유교 문화에 길들여진 조선은 상황이 더욱 극심했다. 대략적인 모순은 알고 있었지만,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 조선 여인들의 삶은 참으로 기구하고, 문슨 팔자를 타고 났는지, 마치 세상 모든 죄악을 짊어지고 태어난 듯 안타깝기 그지 없다.

  본서는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대체적으로 하층민의 여성들의 생활사를 중심으로, 여자이기에 차별당한 33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에 이토록 시시콜콜한 스캔들이 모두 기재되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왕권 다툼이나, 권력을 둘러싼 조정의 비리와 더불어 하찮은 남,녀간의 다양한 스캔들을 통한 사건, 사고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음이 놀랍다. 살인 사건이나 강간사건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고, 피해자는 모두 가진 것 없이 핍박 받은 우리네 여인들이다.

  신분제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운명이 정해진 사람들. 양반과 권력가들은 항상 이들을 견제하고 희생을 강요하였다. 천한 신분, 몸종으로 태어나면 평생 남의 집 허드렛일을 도밭아 하며 결혼조차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고, 주인 양반의 성 노리개가 되어 평생 고통 속에 몸부림 쳐야 했다. 주인이 여종을 강간한 후 첩으로 삼는 경우가 허다했고, 이 일은 거의 합법적인 형식이다시피 했다니. 허울 뿐인 1부 1처제에 권력가일수록 첩을 몇명씩 거느리며, 심지어 아들의 여자까지 탐하는 그들의 습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는 절방 출입도 제재하면서 집 안에만 가둬두고 정작 바깥 어른은 기방이니, 무녀니 하며 온갖 추잡스러운 짓은 다 하고다니다니…. 실로 엄청난 모순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의 풍경이 이러한데 고려시대는 오히려 여성의 사회 활동이 자유롭고, 남,녀가 거의 균동한 입장이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조선의 법 자체가 양반을 위한, 왕가를 위한 법이니, 그 불평등함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얼마나 심각했을지 알 수 있었다. 가진 것 없이 천민으로 태어난 여자는 무조건 강요당하고, 남자들의 성놀음에 벗어날 명분 자체가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상황만 나아졌다 뿐이지, 지금도 가부장적인 남성들의 권위의식은 여전하다. 남자가 외도를 하면, 남자가 사회 생활 하다보면 한번쯤 실수 할 수 있다는 사회적 시선이 지배적이지만, 만약 유부녀의 경우라면 온갖 질타와 욕설을 서슴치 않고 있지 않은가. 남자, 여자의 구분이기 이전에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남성들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불과 100년 사이에 여성들의 지위가 한껏 상승하면서 많은 혜택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다수 여성들이 집단 페미니즘 광기에 물든 것은 결코 아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거부 할 것은 거부할 수 있는 최소의 권리만 이양 받았을 뿐이다.

  지금도 내 어머니처럼 조선을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있기 전의 사회는 역시 흥미롭다. 언제부터인가 출판사에 불어닥친 조선의 열풍 속에서 부디 밝고 좋은 점만 가려 얻기를 바라지만, 간혹 이런 서글픈 책을 읽을 때면 새삼 안타까움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 같다. 버림 받고 또 버림 받아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우리는 결국 살아남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제 아무리 남성들이 여성들을 착취하고 억압한다 하더라도 남,녀가 존속하지 못한다면 멸망만이 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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