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안토리오 솔레르 지음, 김현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스페인의 한 작은 바닷가 마을, 함께 어울리기 좋아하는 네 명의 젊은이가 있다. 청춘이 이유 없는 반항을 즐기기 위한 특권이라면, 각자에게 내려진 반항의 이유가 무시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야심찬 젊은이도, 황폐한 젊은이들도 아니기에 저마다의 불안정한 삶을 향해 조심스럽게 이동하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 했을 때 옆 침대의 남자가 성서 마냥 섬기던 책 단테의 ‘신곡’을 얻게 된 미겔리토는 그의 연인이자 천국이었던 여인 룰리를 만나게 된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던 이 어린 연인들을 중심으로 카메라가 회전하며 그들의 작은 세계를 비추어 준다.

  우선 미겔리토의 친구들이 있다. 키가 작고 동양인처럼 생긴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아마데오 눈니(멧돼지라는 별명이 더 친근한), 아버지의 화려한 사교로 유명한 바람벽 파코, 그리고 평온한 가정에서 자라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친구 아벨리노 모라타야. 이런 죽마고우들과 대비되는 반대 그룹, 혹은 철천지원수들도 있다. 자기 과시욕에 몸부림치는 난쟁이와 사이코 라피 아얄라, 탐욕스러운 루비로사까지. 마치 실제로 스페인의 작은 마을을 탐구하기라도 하듯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며 저마다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마치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시작된 사랑의 인연과 겹겹이 쌓인 우정, 질투와 증오. 다양한 형태로 흐르는 감정들의 놀라운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다.

  막연하게 바라는 미래의 자신을 향해 외쳐보지만 이렇다 할 변화 없이 결국은 같은 곳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엉터리 시인 미겔리토도 그렇고,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 룰리 역시 무용을 하고 싶어 하지만 가정 형편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파코도 살덩이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로 인해 변호사라는 길을 걷게 되고, 부모로부터 두 번씩이나 버림 받은 멧돼지 역시 자신은 간절하게 무엇을 갈망했지만 결국은 이룰 수 없었다. 꿈은 바람에 실려 온 햇살 마냥 그들의 여름을 핑크빛으로 물들이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벗어나고 싶어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족쇄처럼 운명은 매번 그들을 잔인하게 배신한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으레 낭만과 정열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리 낭만적이지도 풍요롭지도 않다. 아름다운 미소가 퍼져나가는 매혹적인 젊은 소설임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약간은 따끔거리고 가슴이 아프다. 멧돼지의 고모 라나 터너양이 현실을 외면하고 허상을 쫓듯, 저마다들 무언가에 미쳐있다. 미칠 수 있는 중독의 아픔이 그 해 여름, 아직 미성숙했던 그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피로 얼룩진 가련한 사랑, 저물어가는 괴로움들 속에서 복잡하기만 한 네 명의 우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의 사소하고 파란만장했던 그 해 여름을 먼 훗날 회상하던 이 글의 화자는 말한다.

  ‘나는 생각했다. 내 삶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별이 죽기 전에 내뿜은 빛은 아직도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찬란함은 잃어버렸을지 모르나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살아 있어 내 길을 계속 비춰줄 것이다. 333~334p’

  시인이 되고자 했던 아마추어 미겔리토처럼 이 소설은 시적인 언어들로 가득하다.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예쁜 문장들 속에 서글픈 운명의 자화상이 감추어져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그리 즐기지 않는 독자에게는 상당히 난해하고 복잡한 소설이 될 수도 있다. 어지러운 플롯과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초반에는 상당히 고전했던 소설이지만, 익숙해 질 무렵엔 조용히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흡입력이 있다. 이 작품은,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한 젊은 한 때의 꿈 이야기다. 각자가 원했던 삶. 바라는 삶. 꿈은 비록 거짓말처럼 나타났다가 거짓말보다 더 슬프고 잔인하게 사라져버렸지만, 어딘가에 있을 아름다운 베아트리체를 향했던 별은 항상 그를 희미하게나마 비춰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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