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가 보더라도 자부심을 가질만한 번듯한 직업을 가진 네 명의 남자들은 한 여자를 공유 했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삶은 언제나 그렇듯, 뜻밖의 전환점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 네 남자에겐 바로, 그녀 '몰리'의 죽음이 그러하다. 매력적인 여인 몰리의 현재와 과거를 각각 공유했던 네 남자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장례식장이라는 엄숙한 장소에 모이게 되고, 한 자리에 모인 그들은 가슴 깊숙이 숨겨져 있던 본인들의 상처와 얼룩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상처의 근원은 어디이며 무슨 이유일까? 각자의 결점을 커버하려는 그들의 자기 합리화는 정당성과 대비되며 양심의 치졸한 부재를 더욱 더 야기시킨다.

  클라이브, 버넌, 조지, 라머니, 이 네 사람은 모두 삶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중년의 남성들이다. 몸의 노화는 젊은 날의 추억을 갉아먹고, 능력의 한계를 나타내는 나이듦의 서러움에 숨이 가빠오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본인들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보다 더 높은 고지를 향해서 달려가지만 체력과 나이는 이미 한계점을 보이고, 고갈되는 아이디어의 부재로 서서히 변화의 시점을 간파하지만, 아직도 한계라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한다. 발버둥 칠수록 더욱 옹졸해 질 뿐이지만, 각자가 증오했던 상대들과 닮아가는 본인들의 모습은 차마 눈 감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다.

  우정과 사랑, 믿음의 이면에는 이렇게 파괴되고 몰락해 가는 자아와 대비를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각자 깨달아 가는 그들. 저마다 부와 명예를 쌓아 올리며 성공의 축을 이루었지만, 세월의 변화에 따라 타인에 대한 분노와 경멸, 증오, 그리고 열등감은 깊어져만 간다. 누구보다 친했고 스스럼 없었던 클라이브와 버넌조차 두 사람 사이에는 변화하는 세월과 함께 피해의식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면 알수록 믿음이 분노로 변모해가는 중년의 기진맥진함을 탁월하게 표현한 소설이다. 차분한 듯 하면서도 수다스럽고, 고상한 듯 하면서도 치졸한 인간상의 비리를 파헤친, 매우 감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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