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은이와 비토리아 ㅣ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12
이현경 글.그림 / 보림 / 2006년 11월
평점 :
우리 딸아이에겐 유난히 보물 상자가 많다. 그 속에 들어 있는 걸 볼라치면 정말 하품이 나온다. 저런 걸 보물이라고 모으나 싶다. 그걸 동생이 건드리기라도 하면 야단이 난다. 아기 때 신발, 유치원 다닐 때 만들었던 목걸이랑 팔찌, 길에서 주운 반짝이는 돌멩이랑 도토리, 반짝이가 뿌려진 스티커랑 구슬, 친구가 접어준 종이학이랑 작은 수첩, 할머니가 한복에서 떼어낸 호박 단추, 엄마 핸드백 지퍼 장식, 고모한테 얻은 싸구려 선글라스, 심지어는 향기 나는 비누 상자랑 예쁜 캐릭터가 그려진 밴드까지...
여자 아이들은 예쁜 것만 보면 모으려고 한다. 그리고 수시로 꺼내 보며 상상 속에 빠져든다. 상자를 열어놓고 종알종알대다 엄마가 보는 것 같으면 얼른 상자를 닫곤 하던 딸아이. 난 하은이에게서 우리 딸아이의 모습을 본다. 아이들은 혼자 있을 때도 보물 상자만 열면 친구 하나쯤 만들어내는 건 식은죽 먹기다. 하은이가 자기와 닮은 친구 비토리아를 만들어냈듯이. 하은이의 밤에 비토리아는 낮시간을 사는 친구이다. 비토리아는 하은이와 머리카락 색깔만 다른 닮은 꼴이다.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아이임에 틀림없다.
잠이 안 오는 밤 하은이는 자신의 보물이 담긴 유리병을 들여다 본다. 유리병에서 꺼내 든 자개 빗은 하은이를 바다로 이끌고 바다 건너에 살고 있을 친구 비토리아를 불러온다. 바다 그림이 너무 화려하고 예뻐서 우리 딸아이가 홀딱 반했다. 화려하고 강렬한 푸른 빛깔들이 모여 향연을 베푸는 것만 같은 바다. 물고기랑 조개, 불가사리를 이렇게 예쁘게 그릴 수도 있구나 싶다.
많은 친구들과 놀다가 바닷속 동굴을 통과해서 만나게 되는 나비 그림도 환상적이다. 고운 빛깔에 우리 딸아이는 나도 이렇게 그리고 싶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떼와 함께 날아 돌아온 자유로운 세상, 그곳은 바로 온갖 보물이 숨겨진 하은이의 방이다. 아침이 오고 함께 손잡고 놀던 비토리아는 어느새 작아져 바다 건너 나라에서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눈만 감으면 상상 속의 나라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아이들의 능력이 부럽다.
예전 우리 자랄 때만 해도 바다 건너 다른 세상에는 어떤 아이들이 살고 있을지 정말 궁금했다. 어쩌다 듣게 되는 외국에 대한 이야기는 동경 그 자체였다. 그러니 쉽사리 만날 수 없는 그 세상에 대한 상상은 자유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외국과 외국 친구들에 대한 동경은 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이나 동화책에서 수없이 보고 듣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꿈속에서나마 만나고 싶은 존재라기보다 그저 조금 멀리 떨어진 이웃일 뿐이다.
그림이 너무 강렬한 탓인지 이야기는 아이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덜하다. 그림을 보고 이야기 작가가 글을 썼더라면 더 좋은 그림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