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라, 버스를 타다 ㅣ 사계절 그림책
존 워드 그림, 윌리엄 밀러 글, 박찬석 옮김 / 사계절 / 2004년 9월
평점 :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기로 했다. 며칠째 이리저리 뒹굴고 있어도 딸아이는 이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한 쪽 한쪽 읽어 나갈 때마다 아이는 내 곁으로 바짝 다가 앉아 귀를 기울였다. 마지막 책장을 다 덮자 아이가 말했다. " 그림 때문에 재미없는 책인 줄 알았어요."
표지 그림부터 탁한 느낌이 많이 난다. 주인공 아이 사라의 표정은 밝지만 피부색과 함께 입고 있는 코트의 색깔이 어두워 눈길이 가지 않는다. 그림을 좀 산뜻하게 그렸으면 좀더 많은 아이들이 읽고 평등과 용기에 대해, 인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1950년대니까 아주 옛날 이야기도 아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많았다. 겉으로는 평등하다고 말하면서 버스에서조차 앞자리에는 앉을 수 없다는 법이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이 사건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인권 운동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라는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하지만 앞자리에는 앉을 수가 없다. 어느 날 사라는 백인들만 앉을 수 있는 앞자리가 얼마나 좋은지 궁금해 앞자리로 가서 앉았다. 하지만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버스 자리와 피부색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사라는 알 수가 없다. 결국 버스 기사는 법을 어겼다며 경찰을 불러온다. 사라의 이 용기 있는 행동은 신문 기사화되고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아 끝내 법이 바뀌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용기 있을 때가 더 많다. 어른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사라의 엄마도 "언제나 이래 왔다.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라는 "뒷자리로 돌아갈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법이 다 옳은 건 아니라는 사실과 그릇된 법은 언젠가는 바뀐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법과 평등에 대해,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더 깊고 넓어질 것 같다. 초등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모두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우리집에서 피부색이 가장 까만 딸아이에게 걱정이 하나 생겼다. 혹시 미국에 가면 자기도 버스 앞자리에 앉을 수 없으면 어쩌나 걱정된단다.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아는 게 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