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큰고니의 하늘
테지마 케이자부로오 글.그림, 엄혜숙 옮김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동물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들 녀석이 표지에 나온 고니 그림을 보고는 좋아라 책을 펼쳤다. 그림이나 보겠지 싶었는데 글을 읽었던 모양이다. 잠시 후 책을 내려놓으며 너무 슬픈 책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다시 한 번 읽어 줄게 했더니 싫댄다.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으니까 읽지 말라고 했다. 일곱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느낀 슬픔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표지 색깔이 요즘 날씨만큼 쌀쌀하고 쓸쓸한 느낌이다. 너무 파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파랑과 검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판화 그림 특유의 굵은 선은 슬픔을 더 강하게 가슴에 남겨놓는다. 아마도 아들 녀석은 그런 느낌들이 싫었던 것 같다. 가족 이야기라면 으레 따뜻함이 배어 있으려니 했는데 그림도 이야기도 모두 쓸쓸하기만 하다. 읽고 난 책을 멀리 밀어놓는 걸 보면 가족 중 하나를 잃는 아픔이 내 아이에게도 전해진 걸까?
홋까이도 호수에서 겨울을 난 큰고니들은 봄이 오자 북쪽 나라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조용한 호수에 남겨진 가족이 있다. 아이가 아파서 차마 떠날 수 없는 가족이다. 아이의 병이 나을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미뤄 보지만 아이의 병은 더 나빠지고 봄은 이에 아랑곳없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더이상 호수에 머물 수 없게 되자 아빠 고니는 병든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기로 한다. 온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꺼이꺼이 운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남겨지는 아이도 떠나는 가족도...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가족들을 따라가고 싶어 날아보려 하지만 병든 아이는 날 수가 없다. 멀어져가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병든 아이는 슬픈 소리로 울기만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 위에 나타난 하얀 그림자. 병든 아이가 눈에 밟혀 멀리 가지 못하고 가족이 돌아온 것이다. 그날 밤 아이는 엄마 아빠와 형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심하고 세상을 떠난다. 병이 나아 함께 떠날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기어이 아이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고 말았다. 고니 가족의 슬픔이 전해져 내 마음마저 숙연해졌다.
표지 색깔이랑 그림들이 온통 슬펐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가족 중 하나를 잃었는데 어떻게 따뜻함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고향인 북쪽 나라 하늘에 따뜻한 봄햇살이 비쳐도 그림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운 파랑으로 채워져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모양이다.
내 곁에 있는 가족들이 건강한 것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