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들 생일이다. 2000년 11월 4일, 아들은 출산 예정일을 3주씩이나 땡겨서 태어났다. 첫아이를 수술해서 낳았기 때문에 둘째도 수술하기로 했는데 쭉~ 진료를 받던 의사가 미국으로 연수를 가야 한다며 다른 의사에게 낳던지 아님 땡겨 낳으라고 했다. 예정일이 삼주씩이나 남았는데...  

막달에 독감까지 걸려 한 달 가까이 골골대고 있던 나는 낯선 의사가 싫어서 담당 의사의 권유대로 출산일을 잡았다. 그렇게 의사의 스케줄이 우리 아들의 출생 운명을 바꿔버렸다. 3.1킬로그램, 55센티의 키로 태어난 아들은 유아기 내내 몸이 약했고 행동 발달마저 심하게 늦어서 3주나 땡겨 낳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다. 

거기다가 삼칠일이 지나면서 벌긋벌긋 조짐이 보이던 태열(병원에서는 아토피라고 함)이 심해져 온몸에서 진물이 줄줄 흘렀다. 그 모습이 기가 막히고 안쓰러워 사진조차 찍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울 아들 백일 때까지 찍은 사진이 몇 장 없음. 그런 아들 때문에 젖을 먹이려고 안고 앉아서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진물이 흐르는 아이를 보며 난 그때 아들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 휴~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것을 안고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을 일주일에 한 번씩 들락거렸다. 하지만 너무 어린 것에게 약을 먹이는 것이 내키지 않아 약을 방 한구석에 치워놓고 아토피나 태열에 좋다는 민간 처방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약효가 있다고 소문난 약수터의 물을 길어다 식수는 물론 목욕까지 시키기를 10개월, 아들의 피부는 어느새 새햐얗게 보들보들하게 변해 있었다. 그 약수 덕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우리 가족 중 아들의 피부가 가장 뽀~얗다.  

이렇게 지극 정성을 들인 아들은 자라면서 엄마에게 더 넓고 거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시시때때로 애를 쓴다. ㅜㅜ 고럴 땐 정~말 밉지만 한글도 제대로 못 떼고 학교에 들어간 녀석이 책 보는 걸 가장 좋은 취미로 알고, 시험 공부 같은 거 특별히 안 해도 평균 90점 이상 받아오고, 놀이터에 나가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 줄도 아니 11살짜리에게 무엇을 더 바라랴 싶다.  

근데 오늘도 저녁 먹고 누나가 생일 선물로 준 손난로가 불량품이라며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를 친 아들. 생일인데 참으려다가 교양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는 이놈 저놈 하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부모 교육에 대화법 교육까지 수료한 엄마건만... 화를 삭이고는 화장실에 갔는데 거울에 "엄마, 죄송해요."라고 써 놓았다. 아우,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아들... 

"아들아, 생일 진짜 축하한다. 아까 네가 화를 너무 많이 내서 아들 낳은 거 후회할 것 같다고 한 말 취소할게. 아들아, 사랑해!"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10-11-05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모나 생일 축하해요

소나무집 2010-11-05 21:25   좋아요 0 | URL
네, 고마워요.

프레이야 2010-11-05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숨에 읽었어요.
여자들 아이 낳은 이야기는 어딜 가나 구구절절하지만
소나무집님 아들 이야기는 또 남다르네요.
고생하셨군요. 소나무집님의 정성으로 제일 뽀얀 피부도 갖게 된 아들~
생일 축하해요~~~~

소나무집 2010-11-05 21:28   좋아요 0 | URL
친정엄마께서 너희들 키운 이야기하려면 책으로 몇 권이라는 말을 종종 하셨는데 그때는 그냥 우스개로 알아들었거든요. 근데 제가 엄마가 되어 보니 그 마음 알겠더라구요. 특히나 아들 키우는 건 딸보다 이야기가 몇 배 더 많아요.

마녀고양이 2010-11-05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 생일 축하드려요!

저희 딸 코알라두 2000년 생이라, 같은 용띠 맞네요. ^^
코알라도 2.9kg 밖에 안 되어 작았는뎅.
빨리 커서 좀 아쉽기도 해요..
요즘 껴안으면서 언제까지 이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답니다.

피부가 뽀얀 아들이라니,, 아유 부러워요!

소나무집 2010-11-05 21:30   좋아요 0 | URL
네 , 고마워요. 맞아요. 아이들은 발리 크고 엄마들은 늙어가고...
저도 시간만 나면 아이들을 안아줘요.

꿈꾸는섬 2010-11-05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 제 마음이 다 짠해요. 우리 아이들 낳던때가 생각나네요.ㅎㅎ
생일 축하해요.^^

소나무집 2010-11-05 21:3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잘못되면 모두 엄마 탓인 것만 같더라구요.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구요. 님은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요.

무스탕 2010-11-0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하나 적어보니 더 이쁘시죠? ^^
아드님 새일 축하합니다~

소나무집 2010-11-05 21:32   좋아요 0 | URL
적을 게 더 많았는데 쓰다가 졸려서 많이 생략했어요.^^

순오기 2010-11-05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눈물이 막 날려는 찰나에 거울에 쓴 "엄마, 죄송해요!'를 보고 뿜었어요.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아들~~~ ㅋㅋㅋ
우리 모두 아들 딸, 낳은 거 후회하지 맙시다!!^^

소나무집 2010-11-05 21:37   좋아요 0 | URL
아이들 잠든 뒤에 나와서 이 글 올려놓고 보니까 포스트잇에 쪽지글도 써 놓았더라구요.
죄송하다.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러겠다 뭐 그런 얘기.. 그런 쪽지 받은 거 11년 만에 처음이었어요.
하루도 안 되어 언제 그런 말 했냐는 듯해지겠지만 글씨 한 자 쓰는 것도 싫어하는 아들인지라 감격스러워서 잠이 안 오데요. ㅋㅋ

울보 2010-11-0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인사드립니다,,
그 아드님이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거란 마음이드네요,,
엄마들은 가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랄때가 있는것 같아요 저도 그렇군요,
그래도 저렇게 멋지게 사과 할 줄도 알고 아드님이 참 의젓하게네 우리딸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해줄까요,,ㅎㅎ
지났지만 힘들게 아이 낳느라 고생하셨구,,힘들게 태어난 아드님이 건강하게 언제나 행복하기를,,

소나무집 2010-11-06 14:17   좋아요 0 | URL
울보님, 반가워요.
엄마 마음이야 알고 있지만 아는 만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니 늘 시끌벅적이지요 뭐. 저는 워낙 아들에게 바라는 게 없다 보니 조런 것 하나에도 그냥 마구마구 감동하게 됩니다.

마노아 2010-11-0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합니다. 어쩐지 함께 감사하고픈 마음이 들었어요. 진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소나무집 2010-11-06 14:19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저는 아들이 어찌 되는 줄 알고 백일이 될 때까지는 정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았더랍니다.

엘리자베스 2010-11-0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리 생일이라고 소문 좀 내시지...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고 센스쟁이 아들에게 꼭 전해 주세요~~

소나무집 2010-11-06 14:20   좋아요 0 | URL
네, 꼭 전해 줄게요.
생일을 3일 동안 축하해주었다는거... 2일 날 아빠가 내려와서 아이스크림 케익 사주면서부터...

같은하늘 2010-11-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산에 대한 사연이라면 참............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소나무집 2010-11-06 14:22   좋아요 0 | URL
엄마가 된 사연들 누구나 구구절절할 것 같아요. 엄마가 된다는 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면서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해요.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