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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외에는>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죽음 이외에는 머독 미스터리 1
모린 제닝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피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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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회의 땅이었던 아메리카 대륙의 꿈 중에 한곳인 캐나다는 이민자의 꿈과 희망의 땅이었다.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의 삶이 드라마틱 해보여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는데 드라마틱한 삶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기 힘들었다던 친구의 얘기에 잠시 우울했던 동경이 떠오른다.

 

내게 캐나다란 그런 곳이었다. 1캐나다로 이주해온 많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던 곳이었기에 다양한 문화와 인종, 종교로 혼잡했던 시대가 어디 18세기의 얘기일까 싶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세기로의 여행을 위해 살짝 캐나다 역사를 살펴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배경지식을 쌓아두면 작품을 몰입하는데 큰 힘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배경지식을 쌓아야 하거늘 늘 닥쳐서 읽어야 하는 역사들을 살피는 것이 고작이다.

 

1890년대의 토론토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당시의 이민자들이 겪었을 아픔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리고 시린 추운 겨울날 어린 여자소녀의 시체가 옷가지 하나 남아있지 않은 채 얼어 죽어있는 사건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사건을 해결하기위해 경관 윌리엄 머독은 죽은 여자가 테레즈라는 가정부였고, 그 가정부에게 있었던 사건들을 해결해나간다. 윌리엄 머독의 모습은 평범하고 표준의 경감처럼 보인다. 그의 모습은 텔레비전에 익숙하게 보았던 홈즈의 모습까지 겹쳐졌다. 하지만 그에게 있는 아픈 과거는 테레즈의 살인사건보다 더 흥미롭다.

그에게는 많은 상실이 있다. 전염병으로 약혼녀를 잃었고, 지적 장애가 있는 남동생도 잃었으며, 어머니까지 일찍 돌아가셨다. 그에게 혈육이라고 하나 있는 여동생은 수녀원에 들어가 버려 가족이라는 그룹에 있는 가족이 제대로 있지 않는 상실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할 만큼 슬픈 개인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얘기만으로 한편의 시리즈물이 나올 것 같기만 하다. 가족과의 관계도 이렇게 허망할 뿐인데 그는 종교적 갈등으로 직장 상사와 사이도 좋지 않다.

 

화려한 마차,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벨벳 재킷, 우윳빛 진주 귀걸이, 빛나는 브로치, 반짝이는 세련된 수제화의 가죽 구두들이 작품에서 읽혀질 때마다 18세기의 화려한 영화들의 모습이 어우러져 이 작품이 스릴러라는 것을 잊고 있을 때가 있었다. 마차라는 교통수단을 통해주는 어감은 더욱 고전물이라는 느낌을 주니 더욱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머독이 해결해 나가는 사건의 실마리들의 반전들이 사실 많이 약해보이긴 하지만 작가의 서술을 느슨하지만은 않다. 그래서였는지 작품이 고전물이라는 생각이 들뿐 장르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더욱 작품에서 아쉬운 부분은 테레즈의 살인사건의 배후는 알겠고 그 배경 또한 상상이 가지만 테레즈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부족해서 해결을 했지만 그 과정이 많이 삭제된 단편 영화 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보통을 읽다가 밑줄도 많이 치면서 읽는 편인데 술술 읽혀져서 밑줄 한번 없는 산뜻한 시리즈의 만남이었다.

이미 영화는 3부작으로 만들어졌고 2010년 현재 3시즌까지 방영되고 4시즌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 작품은 시리즈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불완전한 개인사를 가지고 표준의 모습을 보이는 머독이라는 흥미로운 인물로 풍부한 소재거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일 듯하다. 그래서였는지 그의 첫 번째 편을 읽고 나니 뒤에 이어질 머독의 활약이 기대된다. 그는 또 어떤 얼굴로 그늘진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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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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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책들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터라 어떤 풍의 문체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봤던 책이라 좀 신선했다. 간혹 이렇게 사전 정보 없이 덥석 안기는 책들 중에는 그동안 왜 몰랐을까 후회가 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으니 더욱 반가웠다.

작가의 이력을 살피니 ‘아쿠타가와’상까지 받고 이 ‘쓰리’라는 작품으로는 오에 겐자부로 상까지 받았다. 범상치 않는 젊은 작가를 만났구나 싶어 더욱 반가웠다.

 

도쿄는 가보지 못했지만 일본 드라마를 많이 보는 나에게 도쿄는 매우 친숙하다. 물론 일본 드라마들도 도쿄가 아닌 로컬이 많기는 하지만 많은 로맨틱 코미디들은 대부분 도쿄에서 이뤄지고 대도시, 한 나라의 중심지가 주는 화려함과 거대함은 훌륭한 배경이 된다.

더욱이 얼마 전에 읽은 도쿄와 관련된 책을 읽었으니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도쿄가 더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할까.

 

처음 ‘쓰리’라고 해서 'three' 인줄 알았는데 일본식 한자식으로 읽어야하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용어인 ‘쓰리’였다는 것에 제목이 주는 간결성. 간결하지만 너무나 직설적이다 싶은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의 지갑을 훔치는 직업으로 나오는 주인공이 이 책을 전반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간결하게 와 닿는다.

 

화려한 도쿄의 빌딩 속,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 혹은 거리에서 명품으로 잘 차려입은 니시무라는 사람들의 지갑을 쉽게 빼내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다. 대단한 사건 없이 자신의 손기술만 가지고 하루하루 의미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가 이시카와와가 속해있는 어떤 단체속 우두머리 때문에 큰 사건을 하나 치러낸다. 그리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하다가 이시카와가 몇 년전 자신과 함께 한 사건으로 살해되었음 알게 되고 다시 자신 앞에 나타난 기자키는 또 한 번 니시무라를 사건에 끼어들게 한다. 이번에는 니시무라가 한편의 운명의 주인공으로 극을 짜와 시행하는 연극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은 너무나 뻔한 결말을 맺는 것처럼 느껴지게 끝이 난다.

 

언젠가 본 이병헌이 주인공이었던 “달콤한 인생”의 한 부분을 옮겨 놓은 느와르 같은 느낌을 받은 부분들이 더러 있어서 많은 소설을 영화화하는 일본에서는 이 작품 또한 언젠가 영화로 볼 수 있겠구나 싶을 만큼 영상미를 가미한 배경이 주루이루는 느낌이 없다고 할 수 없겠다.

 

단순한 구조 같지만 니시무라가 자신의 어린시절로 또 다른 삶을 하나 옮겨 놓은 듯한 아이를 만나게 하면서 자아를 다시 볼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있다. 그것 때문에 운명이라는 굴레에 들어가지 않아도 됐지만 자신처럼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는 니시무라에게 아이는 가족이며 거울의 뒷면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기자키가 말한 것처럼 누군가 이미 완성해 놓은 운명을 답습하고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괴로움을 만나고 슬픔을 감당하는 것또한 이미 완성된 유명한 시나리오 일것이라는 것 또한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얘기라 크게 놀랄 화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맞춰지는 큐빅과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은 틀리지 않으니 그럴 수 있겠지 싶은 생각에 공감한다. 그래서 일까 이 소설에서는 그럴듯한 얘기들, 그럴듯한 구성들 너무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본이들에게 익숙하고 새롭지 않게 느끼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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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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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무슬림人인 것 같은 남자가 칼을 쥐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 등장 인물들일이 확실한 그들의 그림에 깜빡 속아 넘어 갈 뻔했다.

<이슬람 정육점>이라니. 무슬림이 만지는 정육점은 또 어떤 것이며 피가 그려진 넓적한 칼에 그려진 선명한 피 때문이라도 이 소설은 스릴러이거나 제목이 주는 반어적 코미디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또 정육점이 우리에게 주는 인상은 그렇지 않은가. 쇠와 쇠 사이에서 썰어 나오는 소름 돋는 소리와 비릿한 숙성된 피 냄새. 그리고 선홍빛의 가게하며 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만큼 커다랗게 걸려있는 고깃덩어리들. 스릴러마다 호러 영화마다 보여주는 그 장면들도 비슷해서 그렇게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야 할까.

 

몇 페이지를 들추며 읽다가 내가 표지에 속았구나 싶었던 당혹스러움. 이렇게 진지한 소설이었다니. 다시 작가의 이력을 살폈다. 그리고 책 소개를 살폈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눌러 살게 된 라마단 때는 금식을 하며 금요일은 무조건 휴일을 갖는 독실한 무슬림 하산,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나, 소설가 김유정이 말 더듬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자신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소설가가 되겠다고 하는 말더듬이 유정, 도무지 알 수 없는 맹랑한 녀석, 세상의 구라는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리스의 하늘이 푸르다는 것만큼은 진실인 야모스 아저씨. 독설가이지만 세상의 인정은 가장 많은 안나 아줌마. 그리고 뭐든 분홍 코끼리가 지나간다고 말하는 열쇠장이가 어느 한 빈민가에서 엉켜 살아가는 이름 없는 다국적 국민들이라고 해야 할까.

 

언젠가 너무 잘 어울리는 지인 커플이 있었는데 몇 년을 사귀더니 헤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둘 다 너무나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고 비슷해서 서로 보듬어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내다 보니 그 비슷한 상처들 때문에 점점 더 힘들어지더라는 것이었다.

가슴의 상처는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외형상 총상을 입은 상처가 있는 나와 한국 전쟁 때 총상을 입었던 하산 아저씨와는 세대가 다르지만 비슷한 총상이라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소설을 시작하는 처음 문장과 끝 문장이 같은 <내 몸에는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는 것은 이들이 시대를 뛰어넘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으로 운명으로 엮어질 수밖에 없었던 관계라는 것만 짐작할 수밖에 없다.

 

하산과 나만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매번 이별 하는 사람처럼 아득하고 쓸쓸한 뒷모습을 지니고 있는 하산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상처들은 결국 자신의 나라 터키로 날아가지 못하고, 야모스나 대머리 아저씨들도 전쟁과 관련된 상처들로 야모스는 그리스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머리 아저씨는 전쟁 당시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살아가야 하는 상처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만 모아 스크랩하여 나의 자의식을 찾아간다. 하지만 유정은 조금 다르다. 그의 어머니가 집을 나가던 날 유정에게서 보았던 그 사막.

 

“유정은 낙타도 없이 물주머니도 없이 홀로 사막을 걸었다. 그의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동행도 없이 사막을 가로질렀을 것이다. 사막을 관통하는 사람들은 가슴속에 사막여우의 귀처럼 확성기를 닮은 귀를 지녔다.” _P187

 

때로는 유정처럼 홀로 사막을 건너며 삶에 비워진 허기를 채워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가슴에 박힌 상처에 외로워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모두 가슴속에 작은 상처 하나를 지니며 유정처럼 사막을 낙타도 물주머니도 없이 건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아저씨는 매일 신을 만나나요? 그런데 왜 저한테는 오지 않는 거죠?”

“ 신은 네 안에서 잔다. 신을 억지로 깨울 필요는 없단다. 눈이 부셔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지.” P207

 

나는 말한다. 그 희망이 언제 오더라도 잠든 동안은 깨어나리라는 희망이 있다고. 그래서 하산 아저씨가 나를 입양했듯 나 또한 이런 세계를 입양하기로. 그래서 어떤 현실이든 미래를 충동시키며 살아가는 것. 하산이 없어도 그의 몸속에 흐를 그의 의붓아버지의 피로 어떤 의미든 만들며 살아가리라는 것을 나도 알겠다.

 

문장마다 작가의 성격이 느껴진다. 그는 참 차분하고 고운 손을 가졌을 것 같은 작가다. 그의 작품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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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 대역본> 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대역 (영문판 + 한글판 + MP3 CD)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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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미 2003년에 우리나라에서 출판되었다가 이번에는 영문판과 함께 양장판으로 다시 출판된 이 책은 작은 고전이라고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 나는 2003년에도 이 책을 만나보지 못했다가 처음으로 면접을 보듯 만나고 나니 신선하고 좋다. 아니 그냥 좋다는 느낌만으로 표현하기가 안타까울 정도로 가슴 뭉클했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이라는 영어 원 제목이 있지만 한글판으로 번역되면서 <내영혼의 따뜻한 날들> 또한 책을 다 읽고 그 후의 생각들과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저자 포리스트 카터는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가 1925년에 태어난 후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을 배경으로 쓴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웃고 울고 마음이 허전해지고 흐느끼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만드는걸 보니 정말로 ‘작은 고전’이 될 수밖에 없겠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책의 주인공인 ‘작은 나무’는 5살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인디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인디언의 생활을 보여준다.

바람의 향기, 바람의 소리와 늑대의 울음소리가 화를 내는 것인지 유혹하는 것인지 개소리로 속여 도망가고 있는 것인지. 방울뱀과 싸워 그 독을 치유하는 방법. 계절이 오는 소리, 계절이 멀어져 가는 향기까지 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인디언 생활의 모습은 흥미롭다. 인디언의 영화였던 몇몇의 장면들이 떠오르며 인디언 역시 역사의 한 흐름을 굴곡지게 장식했던 그 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인디언들을 정부군이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발생한 행렬인 ‘눈물의 여로’.

“그것은 절대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행렬을 눈물의 여로라 불렀다” -P137

영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먼 길을 마차를 타지 않고 걸어 고개를 넘었지만 그 행렬중 3분의 1이 죽었지만 절대로 울지 않은 체로키인들은 그래서 눈물의 여로라는 말로 그 슬픔을 대신하고 있었다.

 

작은 나무와 함께한 많은 동물들 중에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는 링거의 죽음은 첫 번째로 찾아오는 독자의 눈물일 것 같다.

“나는 몸을 숙여 링거의 얼굴에 대고 나를 찾으러 와줘서 고맙다, 그리고 마인하다는 말을 했다. 링거가 내 얼굴을 핥았다. 신경 쓰지 마라,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일어나도 또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P241

소중했던 링거가 죽고 그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는 작은 나무는 이렇게 괴로울 것이면 앞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가슴에 품었던 것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뻥 뚫린 고통스러움 때문에 앞으로 다시는 사랑하거나 품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보며 할어버지가 해주신 얘기가 진리일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아노는 것은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 나쁘지 않겠느냐고 작은 나무를 위로해주신다.

 

인디언의 지혜들은 요즈음의 우리에게 다시 교훈을 주는 것이 많다. 우리는 취미로 사냥과 낚시를 하지만 인디언들은 취미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먹기 위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살생하지 않으며 함께 생활해 나가야 자연이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동물이 짝짓기를 할 때는 동물을 잡지 않고 짝짓기 한 동물들이 자라서 활동 할 수 있을 때까지도 살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추우면 무조건 엄살을 부리는 우리에게 인디언의 할아버지는 혹독한 추위도 있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야 무언가 정리하고 보다 튼튼히 자라게 하는 자연의 방식이라고. 마치 자신의 죽음을 앞둔 것을 짐작하면서 작은 나무가 힘들어하지 않고 추운 겨울처럼 힘든 마음을 이겨내길 바라는 것 같다.

 

간혹 작은 나무도 귀여운 아이였구나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에피소드는 요즘 점점 더 깜빡하는 와인씨가 손자를 주기 위해 만든 노란 코트부분이었다. 손자가 큰다는 것을 깜빡하고는 와인씨는 그 작은 노란 코트를 계속 가지고 다니다가 이걸 버리면 죄를 받게 될 것 같아 고민이라는 말에 작은 나무는 그 죄를 덜어 들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입는 것은 어떨지 얘기하는 부분. 그 코트를 자주 입으면 입을수록 와인씨의 죄가 점점 가벼워질 것처럼 느끼는 (P521) 작은 나무의 깜찍하고 순수함에 입가에 웃음 두꺼워지는 페이지 무게처럼 번졌다.

 

작은 나무에게 생활의 모든 부분을 가르치며 살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작은 나무를 학대하며 기른다는 이웃의 신고로 작은 나무가 교회의 고아원으로 갔다가 다시 그들과 조우하는 장면은 작가 자신도 쓰면서 제일 행복하면서 또 가장 서글펐을 것 같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P663

 

할아버지가 떠나고 할머니까지 작은 나무의 곁을 떠나셨다. 작은 나무가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은 아마도 2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이후의 삶을 얘기해주는 부분은 많이 담담하고 쓸쓸했다. 특히 할아버지도 아끼셨던 개, 블루보이와 함께한 마지막 페이지는 거의 십여 분 동안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제 삶의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자신을 아는 마지막 개의 무덤을 파야 했던 작은 나무, 그 모습을 힘없이 보아야 했던 블루보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여름날 오후에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과 같았다. 행복해 보였다.

 

다음 생은 훨씬 더 좋을 것이라는 그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그 얘기에 나조차도 마음이 아득해진다. 그전에 지금의 생에 더 열심히 살아야 다음 생이 훨씬 더 좋을 테니 열심히 살아나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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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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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접하게 된 책이 <프라하의 소녀시대>이었다. 이유는 소녀시대라는 말보다는 ‘프라하’가 주는 아우라 때문이었다. 유럽 국가 중에 가장 가고 싶었던 장소였고 여러 사진에서 혹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영상들은 매혹적이었고 아름다웠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선택한 <프라하의 소녀시대>였는데 책 목차를 살피고 읽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내가 선택한 이유는 단지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의 프라하였지만 요네하라 마리가 지냈던 그 프라하의 당시 상황은 큰 괴리감을 주었다.

물론 그녀의 선택에 의해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의 공산당 간부였고 그 아버지를 따라 체코(당시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 가게 되고 외교관, 공산당원 간부들의 자녀들이 다녔던 국제학교인 소비에트 학교를 다닌 그녀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록에 의한 친구들을 만나는 내용이라니.

 

반공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던 세대였던 내가 느끼는 공산당원은 지금에 와서도 많은 거리감을 준다. 객관적으로 그녀의 삶을 볼 수 있을까 하는 흐릿한 판단력이 문제가 되고, 제 3국의 입으로 들려오는 ‘공상당’이라는 말은 너무나 이질감을 주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알고 있던 그 공산주의와 소련, 중국을 벗어난 공산주의는 어떤 것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처음에는 분단국가로 살아온 시간만큼 무거운 책장을 펼쳐야만 했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약 5년 동안 프라하에 머물면서 소비에트 학교에 다녔던 요네하라 마리와 그녀의 동유럽 친구들과의 얘기들이 책속에서 펼쳐진다. 누구에게나 있는 유년시절을 그녀는 자신의 모국이 아닌 혼란스러운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있었던 시대를 프라하에서 보낸 그녀의 얘기들이 희망차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담겨져 있다.

 

 

안테나의 오목면 같은 리차

 

“발코니는 꽤 넓었다. 그 왼쪽 반을, 지름이 내 키의 한 배 반이나 될 듯 한 거대한 안테나가 차지하고 있었다. 안테나의 오목 면은 그리스 하늘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리차가 사무치게 그리던, 그리스 하늘 쪽으로.” P79

 

간혹 떠 올려보면 그런 친구들이 한명쯤 있었던 것 같다.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친구들. 더 나이가 먹어서는 연애에 대해서 책을 전집으로 써도 될 만큼 조언을 척척 해주는 친구.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 성교육을 담당하면서 뭐든 척척 알려주는 친구, 즉 리차 같은 친구.

‘쨍하고 깨질 듯이 파란’ 그리스의 하늘을 자랑스러워하고 사진에는 없지만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부모님을 덕에 여자에게 인기 많은 오빠나 그의 외삼촌을 둔 리차는 반에서도 인기가 많은 스포츠 만능에 뛰어난 입담으로 친구들을 사로잡은 소녀였다. 하지만 유난히 수학을 싫어하고 무엇보다 공부가 싫다는 그녀는 되고 싶었던 배우가 아닌 독일에서 의사가 되어 있었다.

 

마리가 그녀를 만났을 때의 그 의외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반가울 수밖에 없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모국의 하늘처럼 높고 깊고 단단해보였다.

왠지 남들과 다르게 살았을 것 같은 그녀라서 그런지 그녀는 독일에서 의사이면서 노동자와 결혼을 했고 한명의 아이는 다운증후군이었지만 그 역시 리차스럽게 경쾌하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공부를 싫어한 리차가 매년 낙제를 할 듯 아슬아슬했지만 반 아이들 모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진급할 수 있었던 (P34) 리차만 천하태평이었듯 그녀를 걱정하지만 그녀만큼은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문득 그녀는 어떻게 그런 긍정을 오랜 시간 가질 수 있었을까 궁금하기 까지 했다.

 

 

그녀를, 그녀의 자신을 위한 새빨간 거짓말.

 

아냐의 얘기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왜 요네하라 마리가 아냐를 찾아 갔을까 고민스러웠다. 아니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지나온 삶을 보고는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다 민망했었다. 루마니아인인 아냐는 통통하지만 예쁜 얼굴이긴 해도 행동이 완만해서 언제나 육중한 몸을 놀리는 듯 보이는 아주 평범한 소녀 같았다. 그래서 서로 동떨어진 나라에서 왔지만 부모님들에 의해 같은 시기에 한 나라로 모였고 공산주의 사상에 이념을 불태우고, 자기 생명조차 내 놓고 파란에 찬 나날을 보냈다는 사실이 서로를 특별한 존재로 보이게 할 수 있었기에 (P92)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집으로 초대는 그녀가 내세운 이념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하긴 레닌도 스스로가 생애에 단 한 번도 노동으로 자기 생활을 꾸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며, 지주로서 소작인에게 소작료를 받아 생활 (P29)했다니 아냐가 대 저택에 살고 있다는 것이 뭐 이상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간 내가 알고 있는 공산주의 사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언젠가 김정일의 아들이 홍콩에서 호화 빌라 한 층을 다 빌려 살고 있으며 인터뷰 한 그날 보여줬던 명품 도배 패션은 충격적이지도 않다. 다만 그의 모습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목숨 걸고 넘는 꽃제비들의 몇 년 전의 얘기가 떠올라 울컥했을 뿐이었다.

 

어쩜 그래서 아냐는 거짓말이 더 늘어갔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이 한 거짓말이 진짜라고 생각해서 모두가 간절히 원했던 그 노트를 차마 프랑스에서 오빠가 사다 준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사 왔다는 거짓말을 했고 그것을 정말로 자신이 사 왔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거짓말쟁이 아냐는 그런 거짓말까지 모두 사랑받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아내였어도 요네하라 마리는 정서가 안정이 되고 듬직했던 아냐를 그리워했고 그녀를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일 거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다시 만난 아냐는 원어민 수준이었던 러시아어를 모두 잊어버린 듯 영어는 또 얼마나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지 그녀의 정체성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그녀의 삶이 그녀의 거짓말 습관처럼 그렇게 거짓말처럼 영국인 남편과 영국에서 잘 사는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을 다 듣고 나니 허무하기까지 했다.

 

야스나에게 보내는 엽서 한통.

 

리차, 아냐, 야스나 이 세명의 친구를 만나는 과정 중에 가장 서스펜스가 있는 것은 역시 야스나를 만나는 부분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아련한 유코 슬라비아의 소녀인 야스나를 만나는 얘기는 가장 감동적이고 가슴 아팠다. 특히 그녀를 위해 요네하라 마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 그녀 또한 가장 가슴 아프지 않았을까.

 

그녀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던 교사들. 그녀의 발표 한 마디에 교실을 술렁거리게 만들었던 그 강직하고 바른 성품과 품행들. 그것 때문에 활발하고 친화력 강한 리차 까지도 가까이 하기에 꺼렸던 야스나.

차분한 몸짓과 당당함. 너무 힘주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기까지 한 그러면서 자기가 말할 내용뿐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잘 알아들을지 까지도 계산해가며 발표하는 야스나는 어쩌면 교실에 하나쯤 있는 완벽해서 더 가까이 가기 싫은 친구들 중에 하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림엽서 한 장에 고마워하고 감동할 줄 아는 그녀의 소박한 그 심성은 그간 그녀에게 있었던 그녀가 무슬림이라는 그 편견 또한 날려 버렸다.

 

터키 병사들이 그 ‘하얀 도시’에 반해 싸울 마음을 잃고 물러섰지만 폭격기 조종사들은 하얀 도시에 매료되는 일이 없이 베오그라드시를 덮쳤다는 문장에서 덜컥 겁이 났다. 이제 세상에 없는 요네하라 마리는 대체 이렇게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써 놓고 더 이상 얘기를 들려주지 않는다니 어쩌란 말인지.

 

그녀의 ‘추억 노트’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동유럽의 세 명의 소녀들의 얘기에 몰랐던 세계사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그녀와 함께 숨차게 혹은 느긋하게 친구를 기다리며 또는 정말로 약속의 장소에 나와 줄 것인지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들의 친구들과 조우했다. 그리고 내게도 있었던 몇몇의 친구들을 새하얀 노트에 서른이 넘은 나이에 노트에 적어 보았다.

 

이제라도 나도 그녀처럼 잊고 있던 그녀들을 만나고 싶었다. 리차 같은 엉뚱한 친구, 야스나처럼 가슴 아픈 친구, 그리고 만나서 유쾌하지 않을지 모르는 아냐 같은 친구일지라도 내 기억의 노트를 꺼내고 싶은 마음이다. 마리여사처럼 벅찬 그리운 마음을 맞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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