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
김이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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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나의 지나온 삶이 너무 보잘것없고 하찮아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동기들이 나보다 먼저 원하는 그 꼭짓점에 도달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 긴 밤을 보내며 눈물 흘렸던 적도 많았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슬퍼서 술을 마실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었던 어떤 이들은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간혹 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요즘 새삼 느끼게 됐다.

 

 

사지가 멀쩡하게 태어난 것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야지 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며 나의 모습에 감사하라는 그 말은 그들을 위한 말이 아닌 나를 위한 말일테고, 그들과 나를 비교 한다는 것부터 얼마나 이기적인 말인가. 그렇다면 태어날 때 손가락이 붙어 태어나거나 뇌 손상을 받은 그들은 누굴 보며 위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그런 이기적인 그런 말로 나는 절대 누군가를 위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며 나를 이겨내야 한다는 그 말은 결국 나보다 못한 그들을 비하하는 말이라는 생각에 누군가를 위로 한다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겸손하고 조심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의 책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거나 사고를 당해 팔 다리를 잃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서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는 열정적이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나를 투영시키는 것이다. 이들도 이렇게 나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 힘썼는데 지금의 나는 뭐가 부족해서 삶이 고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집이 불이타서 얼굴과 몸 전체에 화상을 입어 수십 번의 수술에도 복구 되지 못한 얼굴을 하고 살아가야하지만 전신 화상도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긍정의 청년으로 살아가는 ‘조엘 소넨버그’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온 몸이 다 아프기 시작했다. 아였다면 이라는 만약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기가 너무나 무섭다. 그들의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할때즘 나는 그들을 일으켜 세운 것은 부모라는 것에 다시 마음이 먹먹해진다. 누구는 아이를 버리지만 누구는 이렇게 힘든 아들을 안고 키워 내는 것이다. 역경을 이겨낸 주변에는 꼭 역경보다 더 위대한 부모가 있었다.

 

 

“릭, 아빠 말 잘 들으렴. 이 세상을 살아단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다. 특히 너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은 더더욱 그렇지. 그렇다고 숨어서 지내거나 피하는 건 좋지 않아. 두려울수록 맞서 싸워야 하는 거야. 처음에 두려웠던 것도 막상 경험하다 보면 별 게 아니게 되거든. 사실 이 아빠도 오늘 물을 처음 접하는 거야. 지금까지 수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 릭, 네 덕분에 이 아빠도 두려운 것 하나라를 이겨냈구나.” P34

 

 

일흔 살의 아버지가 쉰 살의 아들과 함께 아직도 철인 3종경기나 마라톤을 하며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아버지 딕 호이트의 얘기는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얘기다. 그들의 도전이 무모하지만 절대로 무모한 결과를 낳지 않고 열심히 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딕 호이트의 노력이다. 그의 노고를 살피면 나의 하루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의 책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서프라이즈]를 통해 익히 들었던 세계 속의 위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몇 줄만 읽으면 내용이 쉽게 넘어가는 장점이 있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나의 생활을 반성하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중구난방 많이 들었던 얘기의 중복이 이 책의 가장 치명적 단점이다. 무엇보다 책 뒤에 써진 책을 통해 말하는 저자의 얘기는 때로는 얘기의 감동이 반감되는 경우도 있었다. 감동적인 얘기를 해주고 훈계하려 듯 한 얘기로 울먹이던 눈물이 쏙 들어가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일들 그만두기 전에 온 힘을 쏟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아라”라는 멘트는 요즘 나에게 필요한 문장이라서 가슴에 박혔다. 누군가 한번쯤 해줬던 충고였던 이 얘기가 이렇게 또 가슴 울적하게 와 닿았다는 것이 요즘 감성이 충분히 적신 하루가 없었기 때문일까.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의 일을 놓지 않았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는 역시 가슴을 울리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그녀의 어린 아이들에게 해 준 그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이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채워줬다고 생각된다.

너무도 어린 자신의 아이들을 두고 암으로 죽어가는 랜디 포시가 마지막 아이들에게 해준 편지의 문장.

 

 

“종종 찾아 올 거야. 너희들 마음속으로 말이야.”

 

 

삶이 죽을만큼 괴롭지만, 살아갈 만큼 아름답다는 저자의 말처럼, 요즘 봄이 이렇게 예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아마도 나이 한 살 먹을수록 점점 더 마주하게 될 나의 봄이 없어진다고 생각해서 일까. 모든 계절의 변화가 반갑고 아름답고 소중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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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성공 스토리 - 다양성과 스피드로 세계를 제패한
코바돈가 오셔 지음, 공민희 옮김 / 더난출판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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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갔을때 엄청난 세일을 하는 ZARA 매장을 본적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유독 ZARA가 일본 브랜드라고 생각했었나보다. 그때는 우리나라에 ZARA 매장을 쉽게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ZARA라는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이후에 ZARA가 일본 브랜드가 아니라 스페인의 브랜드라는 것을 알고 사실 살짝 충격이긴 했다. 왠지 유럽 브랜드라고 하면 뭔가 비싸다는 명품의 이미지가 확실히 더 강하기 때문일것이다. 그런데 ZARA 매장에 갔을때 가격이 내가 생각했던 그 정도의 가격이 아니라서 또 살짝 놀랐던 부분도 있다. ZARA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럽 명품보다 아주 많이 싼 가격이고 우리나라 중저가 브랜드보다 훨씬 싼 가격이다. 하지만 품질면에서 볼 때 가격만큼, 브랜드 이미지만큼의 좋은 재질인지 모르겠는 옷들도 많이 보았다. 나에게 ZARA는 그런 이미지였다.

 

 

“당신이 좋아하는 자라 옷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세요. 그렇지 않으면 가질 수 없습니다. 출시라인은 보편적이고 같은 취향을 가진 고객이 많다는 점을 우리는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공하려면 올바른 제품을 내놓아야 합니다.”P205

 

 

위의 이야기가 ZARA의 이미자와 딱 떨어지는 얘기인 것 같다. 보통 시즌별로 옷이 매장에 걸리고 한 달이 지나도 계속 걸려 있던 매장들과 달리 지난주에 보았던 그 옷을 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어 다음주에 ZARA 매장을 찾으면 정말이지 그 옷은 매장에 없어진지 오래다. 사람의 보는 눈이 다들 비슷한지 가지고 싶은 것은 사이즈가 없거나 혹은 첫날 모두 솔드 아웃 되었다. ZARA 또한 빠른 시스템에 깜짝 놀랐던 경험을 했던지라 맘에 들면 그 자리에서 사야 하는 나름의 경험을 담은 철학까지 생기게 되었다고 할까.

 

 

[다양성과 스피드로 세계를 제패한 자라 성공 스토리]는 자라의 성공시킨 인디텍스 그룹의 아만시오 오르테가의 이야기다. 그가 자라를 통해 자신의 경영철학과 기업의 모토와 더블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기를 싫어하는 지극히 하나의 개인으로 남을 것을 원하는 아만시오 오르테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한 개인이 아만시오의 주변 인물들과 인터뷰를 하고 그의 사옥을 드나들며 느낀 점을 담아 낸 책치곤 주인공에 대한 찬사가 좀 많다. 뿐만 아니라 인터뷰 책인지 ZARA라는 한 브랜드를 통해 경영 철학과 성공을 이룬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는 것인지 조금 혼동되는 부분이 많다. 보통 인터뷰를 하고 그것에 따란 나름의 정리로 책이 써진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인터뷰 인용 글이 담긴 책은 처음 읽는 것 같다. 인용 대사들이 한 페이지를 넘어 갈때가 있고 무엇보다 그 인터뷰들은 아만시오의 철학을 대신 얘기해주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누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안타까운 페이지가 많았다. 인터뷰 부분은 따로 빼서 그 부분만 발췌를 하는 것이 훨씬 깔끔한 구성이 아니었을까. 이 책이 아만시오의 자서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디텍스의 관한 분석 저서도 아닌 참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 좀 아쉽다고 할까.

 

 

자라 브랜드에 대한 궁금증과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이 브랜드의 숨은 의도에 관한 얘기로 포문을 열었는데 사실 다 읽고 아, 그 궁금증은 다 풀리지 않은 것 같은 약간 아쉬운 맛이 살짝 돈다. 빠른 시대에 맞서 빠르게 움직이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는 매장만 일주일 갔다 와도 알 수 있다. 지난번에 걸려 있던 날씬해 보이는 체크 셔츠는 다음 주에는 사라져 있기 때문에 그때 못산 나의 우유부단한 소비에 자책을 하게 되었으니.

그런 부분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아만시오의 빠른 움직임은 역시 뭔가 하는 사람은 좀 다르구나 느끼게 된다.

 

 

“ 인디텍스는 아만시오 오르테가를 빼고 생각 할 수 없다. 좀 더 나아가서 이 사람이 없으면 어떤 일도 설명할 수 없는데, 그가 기업의 중요한 시점을 움직인 사상가, 기술자, 분석가이자 특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비저너리가 이룩한 것은 단순히 자신의 천재성을 활용하고 여기에 엄청난 시간을 들여 기술적인 성공을 이룩한 것을 넘어 더 큰 범위를 포괄한다.” P65

 

 

“성장은 생존 메커니즘”이라고 말한 그의 노력과 철학이 살짝 부럽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개인의 존중함이지 그 밑의 사람들이 그를 정말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는 사실 이 책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칭찬 일색이라서 더욱 아만시오에 대한 존중은 읽는 사람은 생기가 어려웠다는 점이 아쉽다.

 

 

“인디텍스는 훌륭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면서 이미 트렌드를 앞서나가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신제품을 생각하여 이런 변화를 통해 여성들이 똑같은 옷을 입도록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는지 집을 ‘입히는’ 제품으로 인테리어스타일링을 또 다른 패션 트렌드로 만들었다.” P141

 

 

앞서가야만 하는 시대에 더 빠르게 움직이는 ZARA의 모습에 많은 반성이 들기도 한다. 정체된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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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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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라마.]

 

 

 

 

발신자 칸이 비어 있는 편지. 그리고 소인은 10년 전에 미국 애틀랜타에서 온 편지라니. 이 편지를 시작으로 예언의 편지를 보낸 신가야라는 인물로 시작된 미스터리한 사건은 시작되었다.

 

 

 

[궁극의 아이]라는 소설을 두고 궁극의 소설이라는 별명까지 안겨준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안가질 수 없다. 작가는 아주 오래전에 재미있게 읽은 [건축무한육면각제의 비밀]을 쓴 저자라니. 스토리텔링에 놀라운 감각을 지닌 사람을 만나면 살짝 그들의 재주가 너무 부러워 질투가 나는데, 그 사람 중에 하나가 장용민이였다. 그의 글을 쓰는 구성력과 방대한 자료 분석, 수집에 더욱 혀를 내두를 정도다. 궁극의 아이라는 하나의 모티브를 두고 사건을 전천후 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그가 시나리오를 쓰기위해 이 소설을 초본으로 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도 전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또한 영화에서 소설로 쓴 경우가 있어서인지 그런 부분이 농후하게 보여주는 면이 있다. 그렇다고 궁극의 아이가 시나리오스럽다 말 할 수는 없다.

 

 

 

 

작가의 문장력이 좋다. 문학을 많을 읽은 것 같은 작가의 문장구사력을 느끼고, 무엇보다 가끔 이런 문장 참 좋다며 밑줄을 긋게 만드는 구절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작가는 구성도 좋고, 인물도 잘 만들어 놓았고 글을 풀어가는 문장력까지 좋은것이다. 뭐, 이런 사람 여럿 있겠지만 흔치 않은 스릴러를 재미나게 풀어 놓는 작가들은 흔치 않다는 것을 보면 장용민이라는 작가의 이번 작품은 요 근래에 읽은 어떤 책보다 재미있었다.

 

 

 

신가야라는 신비한 눈을 가진 아이, 한쪽은 흑색의 눈동자, 한쪽은 에메랄드 눈빛을 가진 신비한 한국인이라는 인물을 세워 놓고 궁극의 아이가 세상을 보게 되는 것부터 자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지켜 나가는 과정이 치밀하고 매끈하다. 미래는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인 신가야와 과잉기억 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엘리스의 만남도 상당히 조화롭다. 모든 기억을 잊히지 않고 다 기억해서 괴로운 한 여자와 미래를 볼 수 있어서 괴로운 한 남자의 로맨스 또한 극적이고 매력적이다.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 FBI 요원 사이먼 또한 이들과 엮어주는 과정, 그리고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와 그 아내와 연결된 사람들 그리고 신가야가 전해주는 예언들과 맞물리는 추리와 현재가 미국 수사 물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모든 것이 신가야를 매개로 긴밀히 이어져 있었다. 악마 개구리, 엘리스의 과거, 그리고 모니카의 죽음. 도대체 신가야는 어떤 존재이기에 십 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인간들을 체스 판의 말처럼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것인가. 대체 무엇을 위해 이 엄청난 계획을 세웠단 말인가. 모든 답은 사건 속에 있었다. 어쩌면 사랑하는 모니카의 죽음마저도.” P 250

 

 

 

 

신비로운 소년 신가야를 궁금해 했던 사이먼이 신가야의 주변 인물들과 이어지면서 풀어가는 과정의 스릴은 멋지다. 그런데 가끔 작가도 단서와 복선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간혹 실수 아닌 실수를 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사건을 풀러 가기위해 마지막 비밀번호를 맞추는 과정에서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나왔다. 아니, 딸내미 생일번호로 비밀 번호를 만들어 놓는 것은 참 좋은데, 요즘 세상에 무슨 비밀 번호가 카톡 비밀번호 만들듯이 네 자리일까. 더욱이 그 집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이냐고. 그런 집에 비번이 꼴랑 네 자리라는 것에 실소 한번 날려주셨다. 이런 부분 때문에 장용민이라는 작가가 나는 쫌 인간다워 졌다고 할까. 고마웠다. 너무 완벽하면 정말 재미없잖아.

 

 

 

 

가끔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지대하게 드는 피가 들끓는 청춘이 아니라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일 퍼센트는 하고 있다. 나머지 구십구퍼 센트는 그냥 지금보다 조금 더 부지런히 살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없다는 것이 나이를 들면서 세월을 받아들이는 무한 긍정의 자세라고 할까.

 

 

 

“운명은 바꿀 수 있어요. 벨몽이 이런 말을 했을 거예요. 운명이란 뽑을 수 없을 만큼 깊

이 박힌 거대한 뿌리라고. 그 뿌리가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이 바뀌면 뿌리가 바뀌는 거예요. 운명을 바꾸고 싶으면 당신이 바뀌면 돼요.”542

 

 

 

 

사랑하는 가족이 된 그들을 위해 희생했던 신비한 소년의 말에 살짝 울림이 있다. 나의 무지하고 게으른 구십구 퍼센트에게 조금 미안해지려고 한다. 그렇다고 이 말에 벌떡 일어나 나를 바꿔야한다며 발 빠르게 움직일 것 같지는 않지만 일정 부분 마음은 살짝 요동치듯 사라졌다. 나에게도 간혹 그 궁극의 아이가 왔다 갔으면 참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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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날로그 사랑법

 

 

요즘 길고양이들에 관심이 많아진것 같다. 이용한님의 책 3세권을 모두 읽으면서 나 또한 길고양이들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고, 지나가다 그들이 경계심만 없다면 안아주고 싶고 쓰담아주고 싶다. 무엇보다 따뜻한 잠자리도 제공하고 싶지만 길고양이들은 호락호락 동물이 아니다. 경제학자로 유명한 저자가 길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보는 얘기는 얼마나 지극히 아름다울까.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2. 달리는 청춘의 時

 

 

나는 이런 청년들이 싫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자아를 너무 잘 알아 찾아가는 그들의 미래지향적인 인간들. 청춘이 지난 지금도 나는 뭘 하면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직 청춘의 파릇함을 간직한 채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그들이 부럽다. 그래서 이런 청년들이 무지하게 밉다. 스팩보다 고비 사막을 더 원했던 그가 사막 앞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막 마라톤을 시작점에서부터 눈물이 왈칵 치밀었던 그 순간을 나도 느껴보고 싶어졌다.

 

 

 

 

 

 

 

 

 

 

 

 

 

 

 

 

 

 

3. 눈을 감으면

 

 

황경신의 글은 책보다 페이퍼를 통해 더 많이 읽은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늘 단단한 책보다 얇고 부드러운 페이퍼 이미지가 훨씬 강했다. 그녀의 문장들은 그래서 부드럽다. 그녀의 세 번째 에세이집은 그림 에세이다. 그녀의 이미지만큼 화사한 표지의 책이 눈에 띈다. 모두 네 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는 글속에 그녀의 따뜻하고 위로가 담간 말은 또 얼마나 가득할까.

 

 

 

 

 

 

 

 

 

 

 

 

 

 

 

 

 

4. 나라는 여자.

 

 

임경선의 에세이가 나왔다. 그녀의 소설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칼럼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개인의 성장담이 보편성을 얻기까지 “상처는 지극히 인생에 상냥하다”는 책 소개가 눈에 띈다. 이 책은 사람을 다룬 성장담이라고 한다.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했을때 정말로 어떻게 저런 해박한 지식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감탄을 자아냈을 때도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얘기들이 궁금해진다. 그녀의 마음속에 어떤 아픔이 도사리고 있다가 훌쩍 커서 날아갈까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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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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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판을 가지고 있는 그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이유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다시 듣기 위해서였다. 사실 읽었던 내용이 너무 빨리 기억에서 가물거리며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다시 읽은 조르바는 그때와 좀 다르게 다가온 느낌이 난다. 나는 [어린왕자]를 몇 년에 한 번씩 읽고 있는데 간혹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다시 읽는 책을 만날 때의 여운은 남다른 것 같다.

 

오래전에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는 상스러운 남자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참 몰염치에 아는 척 많이 하고 남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노인네라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다시 읽은 조르바는 안쓰럽고 불쌍하고 측은하기까지 했다. 젊은 내가 이해하지 못한 늙는 다는 것의 기분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나는 조르바의 여성편력까지도 그저 이해가 되어 버렸다.

 

주인공 ‘나’는 크레타 섬으로 가기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조르바를 만나고 너무나 거침없는 조르바는 자신의 살아온 세월의 얘기를 해댄다. 그리고 나와 함께 폐광에서 다시 금맥을 찾아보기로 한다. 나는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 조르바와 함께 지내는 섬 생활이 계속 되면서 섬에서 그가 원했던 사업은 그 어떤 것도 이뤄내지 못하고 모든 돈도 잃고 조르바와 헤어지는 이야기다. 내용은 참 간단한데 초반부의 조르바를 얘기해주는 부분이 사실 좀 지루하리만치 길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P22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자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은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P 99

 

 

일자무식이지만 세상의 이치로 지혜를 배운 조르바는 책만 읽는 주인공을 참 답답하게 생각하지만 그와 나운 대화속의 우정은 후반부에 갈수록 애틋해졌다. 남자들의 우정은 이런 것일까 궁금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이 초반부터 삐걱거렸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의 애증은 애틋하기까지 했다. 마지막 조르바가 나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을 때는 그 마음의 깊음이 더 가중되었다.

 

 

여성편력이 심했던 조르바의 나이가 그때 60대였음에도 지치지 않은 정력을 지닌 그가 여자는 늘 자기 운명을 슬퍼하는 동물이라는 대사에 그가 그동안 겪어온 여자들이 어떤 여자들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그가 만난 여자들은 그의 인생이 투영된 여자들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모든 여자들을 운명을 슬퍼하는 동물이라는 대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열린책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가 다시 개정되어 나오면서 번역도 다시 개정이 된것 같다. 사실 나는 이윤기님의 [그리스인 조르바]밖에 읽어보지 못해서 어떤 번역이 훨씬 좋은지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벗어나면서 다시 다듬어진 책이 반가운 것인가 생각을 해 봤다. 언어는 세월의 흐름을 타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수정해 주는 부분이 나쁜 것일까.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조르바 때문에 더욱더 그리스에 대한 열망이 가해졌다. 그의 묘비명에 적혀있다는 그 문장을 보고 싶어졌다.

 

 

“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죽는 순간까지 자유였던 두 사람의 모습이 어른거릴 것 같다. 10년 후 다시 그리스인 조르바를 또 읽게 된다면 그때는 조르바가 어떤 사람으로 느껴질까. 10년 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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