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늑대 - 바이킹의 역사
라스 브라운워스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이킹이라...

 

  머릿 속으로 바이킹에 대한 이미지를 떠 올려본다. 커다란 두 개의 뿔이 달린 투구, 동그란 방패, 도끼(이상하게 칼 보다는 도끼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용머리처럼 생긴 배! 대략 이정도? 여기에 조금더 안다면 요즘 한장 인기를 얻고 있는 북유럽 신화? 이상하리만치 바이킹은 그 유명세에 비하여 낯선 종족이다. 이 책은 그러한 바이킹에 대한 역사이다. 물론 바이킹에 대한 역사라고 기록은 하고 있지만 그렇게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유명한 인물 중심으로 서술이 되어 있어서 시간 순서도 뒤죽박죽인 경우가 있다. 침략자, 탐험가, 교역자, 북유럽 본국, 바이킹의 유산이라는 주제로 기록하면서 그 주제에 맞추어 유명한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엮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 순서도 뒤죽박죽이라서 맞추어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괘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바이킹에 대해서 한 단면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흔히 배를 타고 들어와서 노략질 하고 물러가는, 우리나라로 치면 왜구와 같은 이미지로 생각했었는데 바이킹의 활동 범위가 훨신 더 방대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린랜드와 아이슬란드도 바이킹이 이주했던 곳이고, 영국에 바이킹 국가가 세워졌었다는 것도, 그리고 노르망디 공국도 바이킹으로부터 유래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러시아 제국이 시작되게 된 것도, 바이킹에서부터 유래했다는 것은 꽤나 흥미롭고, 놀라운 사실이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난 다음에 드는 생각은 이렇게 찬란했던 바이킹의 문화가 왜 그렇게 흔적도 없이 몰락해 버렸을까라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도 이 부분에 대한 여러가지 가설들과 생각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기독교화 하였다는 것이다. 기독교화 하였다는 것은 단순히 개종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명의 세례를 받았다는 의미이다. 물론 바이킹은 야만, 기독교화된 유럽은 문명으로 구분하는 것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당시 유럽의 변방으로 통했던 바이킹이 유럽의 한복판에 등장하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의 문명화 되었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부족 중심으로 존재하던 게르만이 로마를 통하여 로마의 한복판에 들어왔고, 정착을 하였던 것처럼, 게르만보다 더 변방에 존재했던 바이킹도 같은 과정을 밟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바이킹이 정착해서 국가를 세우고, 그로 인하여 호전성과 탐험가적 기질을 잃어버리고, 일정한 영토를 가진 일정한 형태의 국가로 고착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변방의 민족들이 그러했듯이 유럽과 섞이면서 고유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 보게 된다. 바이킹이 문명화 하는 것, 유럽 역사의 한 복판에 들어오게 되는 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화인가 복인가? 당사자가 아닌 밖에서 바라보는 입장이다 보니까, 그리고 시대가 다르다 보니까 무엇이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내리지는 못하지만 역사의 발전과 문명화라는 것이 특정한 민족에게 어떤 식으로 작동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이와는 별개로 이 책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보고 싶은 책이지만 선뜻 구매하기가(표지가 약간 구리다.) 그래서 교회에 있는 도서관에 신청했다. 한 나이드신 어르신이 빌려가셨다가 반납하실 때 담당하시는 분이 물어 보셨다고 한다.

 

  "책 재미있어요?"

  "이놈들 진짜 나쁜 놈들이예요."

 

  그 분에게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나쁜 놈들"이라는 한마디로 끝이 났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saint236 > 각하의 은총을 입다.

여기서 가카의 이름을 볼 줄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일본에 대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한국에게 있어서 일본만큼 가까운 나라가 어디있겠는가? 지리적으로 가깝다. 날이 맑은 날에는 부상에서 대마도가 보인다고 하니까 일본이 얼마나 가까운지 잘 알것이다. 게다가 일본에서 일어난 일은 한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정도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를 떠올려 보라. 역사적으로는 어떤가? 중국과 더불어서 일본만큼 한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가 어디있는가? 또한 오늘날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모든 일의 뿌리를 찾아가면 일본에 귀결되지 않는가? 한국의 모든 문제가 일제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주장은 일본이 우리나라와 얼마나 가까운 나라인지를 대변하는 말이다.


  그런데 일본만큼 먼 나라도 없다.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모아 놓으면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과 비교하여 1%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거의 근현대사에 집중되어 있다. 일본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그것은 일반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한국 사람의 심리의 가장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일 것이다. 모든 나라에 다 져도 일본에게만은 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 그래서 비인기 종목이라도 한일전만 벌어지면 피가 튄다. 한일 축구경기를 생각해 보라. 우리가 얼마나 목청을 높이면서 응원을 하는가? 노회찬 의언이 했던 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외계인이 침공하면 우리나라가 일본과 손을 잡고 싸우지 않겠느냐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최후에 손을 잡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일본은 가깝지만 정말 먼 나라이다. 그런데 일본이 왜 태평양 전쟁을 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일본은 과거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실제로 일본에서 그 시절을 어떻게 이해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이런 나에게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본이 왜 전쟁을 택했는가? 일본은 정말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쟁을 했는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렇게 많은 나라에 못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왜 이것을 알지 못하는가? 이 책은 나에게 여기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준다.


  일본이 전쟁을 택한 이유는 아주 명쾌하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구 영강에 의해, 중국에 의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가 위협을 받았고, 침해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구 열강에 의해서 식민지가 침탈되던 시절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똑같이 식민지를 획득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획득한 식민지를 당연한 권리로 생각했다. 그것이 한국의 독립을 무시하는 것이 되든, 중국의 통치를 무시하는 것이 되든 상관없다. 이미 지금 그것을 획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내가 가진 것인데 원래대로 돌려주라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이것은 국가의 안보에 위해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방어해야 한단다는 논리, 이상한 정당방위의 논리가 청일전쟁에서부터 태평양 전쟁의 기저에 흐르고 있다. 즉 누가봐도 가해자인데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는 말이다.


  또한 자기 중심적인 판단과 근거없는 희망에 기댄 판단 또한 전쟁을 일으킨 원인이다. 폭주하는 군대를 멈추지 못한 정치인들의 비겁함, 혹은 이에 부화뇌동한 정치인들의 무능력이 전쟁을 일으키고 더 키운 원인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것은 일본의 이야기이지만 단순히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며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말이다. 가해자가 된 모 정치인들이 자신을 피해자라고 말한다. 그들이 한 일은 생각지 못하고, 이것은 정치 보복이라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능과 전횡을 직시하지 못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려던 기무사, 군대여 일어나라고 외치는 극우 정당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해자가 자기 반성 없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상상해 보게 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이 책에서 본 것 같아서 씁쓸하다.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으로 놓고 나는 피해자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갈까? 나중에 우리 사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은 분열을 택했다."라고 평가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승태

 

  대한민국에서 잊혀지지 않을 이름이다. 대법원장의 이름이 이렇게 잊혀지지 않는 경우는 참 드문 경우인데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는 면에서 그는 성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국민학교에서 우리 나라는 삼권분립을 택했다고 배웠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라는 3개의 기관으로 권력이 분립된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배웠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전주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의 사진을 학급과 교과서에서 봤으니 이 사실을 배운 것은 삼권 분립 알기를 우습게 알던 군부 독재 정권 시절이다. 현실이 어땠든 그때고 그렇게 배웠다. 시험 문제에 곡 나오는 것이었으니 달달 외웠고, 당연히 시험 문제에서도 자랍스럽게 "우리 나라를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로 이루어진 삼권 분립을 국가의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적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현실이 어떻든, 입법부와 행정부가 어떻게 야합하든 사법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배운 사람들이, 그래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상식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생각해왔다. 이 사회의 마지막 보루는 사법부라고 생각했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헌법재판소에 판결을 의뢰했던 것도 이러한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법부는 생각보다는 상식적인 재판을 통하여 이 사회를 이끌어 왔다. 물론 군부 독재 시절 재판이 상식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21세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지랄맞던 MB 시절에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검찰들이 온갖 정치쇼를 펼쳐도 사법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전 양승태 대법원장을 통하여 이러한 기대가 무너졌다. 그동안 이해못할 수많은 판결들을 보면서 검찰과 정치권을 욕했는데 사법부에도 여기에 한 다리를 걸치고 있을 줄이야.


  도대체 사법부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사법부는 누구에게 충성하는 존재인가? 매일 청와대 앞을 지나가면서 이석기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개인적인 판단으로 "저건 좀 그러네"라고 하면서 KTX 승무원들의 판결을 다시 곱씹어 본다. 정의의 신인 니케는 눈을 가리고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하여 저울을 들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이미 저울울추가 기울어져 있다니 앞으로 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품고 판사가 되려고 할까?


  요 며칠 "The Post"라는 영화를 보았다. 베트남전을 치르던 미국 정부의 기밀 문서, 승리의 희망도 없으면서 전쟁을 지속하는 국가의 비리를 파헤친 영화이다. 솔직하게 박진감 넘치는 액션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도 아니지만 마지막 판결문만큼은 강하게 다가온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국가의 온갖 공작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판결을 내린 대법원이 부럽다. 그러면서 문득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생각이 났다. 만약 그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만약 이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기무사 문건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폭로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삼성의 비자금 판결과 MB시절의 판결을 보면 충분히 답이 나올 것이다. 


  욕을 해도 미국을 지금금까지 지탱해 온 것은 용감한 판결을 내린 법관들이 있었기 때문이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도 이렇게 용감하고 신념있는 판사요, 이러한 판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법부의 시스템일 것이다. 앞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어떤 처벌을 받을지 눈을 부릅뜩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난 노빠다. 그런데 노빠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노는 노회찬이요, 뒤에서 말한 노는 노무현이다. 나에게 있어서 노회찬은 노무현보다 더 대단한 정치인이었다. 민노당에서 통진당으로 그리고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겨가면서 그의 정치 행보를 이어갈 때 나 또한 그와 함께 그 행로를 밟았다. 당적을 바꾼다고 그에게 철새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리당략이 아니라 정치적인 견해를 가지고 갈라져 왔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원한다면 그도 메이저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와 동창이었던 사람이, 혹은 그와 함께 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자기의 신념에 반하는 곳에 들어가서 정치행보를 이어갈 때에 그는 그래도 그 자리를 지켰다. 심상정 노회찬이라는 양 날개는 민노당, 통진당,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그 길에서 나로하여금 그래도 희망을 보게 만들었다. 날카롭지만 묵직하게 밀어 붙이는 심상정, 날카롭지만 유머러스한 촌철살인 노회찬. 아직까지도 나에게 전희경 의원의 청와대 전대협 점령 의견에 대해서 "그럼 망명하셔야지요."라는 발언이, 당선되면 KTX를 오원구로 끌고 오겠다는 허준영 후보의 말에 "KTX가 코리아 택시의 약자냐?"라는 발언이, 왜 합당하지 같은 당인 것처럼 행동하느냐라는 발언에 "외계인이 침공하면 우리나라와 일본이 손잡고 싸우지 않느냐?"라는 발언이 새록새록 생각이 나서 혼자 웃어 본다.

 

  그런 그가 이젠 없다. 그렇게 참신한 언어를 쏟아낼 사람이 더 이상 없다. 유시민의 촌철 살인도 노회찬만큼 유쾌하지 않다. 심상정은 전혀 다른 캐릭터다. 그가 보고 싶어서 며칠전 노래를 들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노찾사의 버전이 아닌 MC 스나이퍼의 버전으로 들었다.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말아
  창살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나의 영혼 물어다줄 평화시장 비둘기 위로 떨어지는 투명한 소나기
  다음날엔 햇빛 쏟아지길 바라며 참아왔던 고통이 찢겨져 버린 가지
  될 때까지 묵묵히 지켜만 보던 벙어리 몰아치는 회오리 속에 지친 모습이
  말해주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 여전히 가슴속에 쏟아지는 빛줄기


  아름다운 서울 청계천 어느 공장

  허리하나 제대로 펴기 힘든 먼지로 찬 닭장 같은 곳에서 바쁘게 일하며 사는 아이들

  재봉틀에 손가락 찔려 울고있는 아이는 배우지 못해 배고픔을 참으며

  졸린 눈 비벼 밖이 보이지 않는 숨막히는 공장에 갇혀 이틀 밤을 꼬박 세워 밤새 일하면

  가슴에 쌓인 먼지로 인해 목에선 검은 피가 올라와 여길 봐 먼지의 참 맛을 아는 아이들
  피를 토해 손과 옷이 내 검은 피에 물 들 때 손에 묻은 옷깃에 묻은 현실의 모든 피를

  씻어낼 곳 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 노동자만을 위한 노동법은 사라진지 오래
  먼지를 먹고 폐병에 들어 비참히 쫓겨날 때 여전히 부패한 이들은 술 마시며
  숨통 조이는 닭장에서 버는 한 달 봉급을 여자의 가슴에 꽂아주겠지 

  비에 젖은 70년대 서울의 밤거리 무너지고 찢겨져 버린 민족의 얼룩진 피를
  유산으로 받은 나는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 모든 상황은 나의 눈으로 보고 판단 결단
  살기 위해 허리를 조인 작업장안의 꼬마는 너무나도 훌쩍 커버린 지금 우리 내 아버지
  무엇이 이들의 영혼을 분노하게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저 홀로 속상 할 뿐이지
  인간으로써 요구 할 수 있는 최소의 요구 자식 부모 남편이길 버리고 죽음으로 맞선
  이들에겐 너무도 절실했던 바램 하지만 무자비한 구타와 연행으로 사태를 수습한
  나라에 대한 집단 비판현실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져 몸에 불지른
  전태일의 추락 나는 말하네 늙은 지식인들이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이들은 몸으로 실천했음을 

  이제는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판단할 차례
  7,80년대 빈곤한 내 부모 살아온 시대 그때의 저항과 투쟁 모든 게 나와 비례 할 순 없지만
  길바닥에 자빠져 누운 시대가 되가는 2000년대 마지막 꼬리를 잡고
  억압된 모든 자유와 속박의 고리를 끊고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는
  예술인으로 태어날 수 있는 진짜 한국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말아
  창살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듣다가 왈칵 눈물이 났다. 그가 가는 길에 이 노래 하나 띄워주면서 그를 보내고 싶다.

 

  *그의 죽음을 두고 생각이 맞지 않다고 헬기 추락은 그냥 내버려 두면서 부패한 놈 죽었다고 왜 슬퍼하냐 운운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나라가 어찌 이리 망가졌는지, 6.25 시절로 돌아간 것은 아닌지, 유신 시절로 돌아간 것은 아닌지하는 씁쓸함에 답답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