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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평전 - 사람을 얻어 난세를 평정한 용인술의 대가 ㅣ 중국 역대 제왕 전기 시리즈
장쭤야오 지음, 남종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
조조를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이 있겠는가? 삼국지의 인물 가운데 가장 저평가된 인물을 꼽아보라면 조조를 꼽을 수 있다. "난세의 간웅"이라는 말 때문에 조조를 꺼림직하게 생각하는 것이 삼국지 독자들의 기본 자세이다. 쓸만한 사람이긴 하지만 선뜻 감정이입이 안되는 인물! 그 사람이 조조이다. 그래서인지 삼국지 모든 게임을 즐겨했던 나이지만 조조를 택하여 플레이를 했던 적이 거의 없다. 가끔 하다하다 심심하면 한번씩 해보는 인물이 조조이다.
그런데 한번 곱씹어 본다. 그렇게 간웅이라는 말로 저평가되고, 왠지 음험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조조 및에 그만큼 대단한 인물들이 부하로 그렇게나 많이 몰려 있을 수 있을까? 강대한 원소를 물리치고 중원의 강자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조조의 시각에서 벗어나 조조를 재평가 해보려고 한 책이다. 물론 곳곳에 조조에 대해서 전통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면들이 있기를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조조에 대해서 새롭게 해석해 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점이 이 책이 내게 흥미로운 이유이다.
난세의 간웅이라는 말은 조조의 역할에 대해서 한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조조의 출현은 시대적인 요청이었다는 것이다. 조조가 활동했던 시대는 평화로운 시대가 아니라 난세라고 말할 수 있는 전시이다. 이런 시대를 과거 한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이데올로기로 헤쳐나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유비가 그렇고, 원소가 그렇고, 그 시대를 살다가 사라져 버린 많은 인물들이 그렇다. 그 인물들 가운데 조조와 비교하여 나은 인물이 한둘이던가? 조조가 아무리 문장가라고 해도 당시 조조보다 뛰어난 문장가들이 한 둘이겠으며, 정치력으로 따져도 조조보다 나은 사람이 한 둘이겠는가? 지력은 어떠하며, 역사적인 식견은 어떠한가? 조조보다 나은 사람들이 한 둘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가 중원을 차지하고 한나라 영토의 2/3를 차지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유연한 사고 방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신 성분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의 파격적인 모습, 현실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고집마저도 꺾을 수 있는 유연함이 그의 강점이 아니겠는가? 그는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자기 휘하에 있던 사람들을 100% 활용하여 대업을 이루었다.
물론 이러한 그의 모습도 그가 적벽대전을 겪기까지의 모습이지만 말이다. 적벽대전이 삼국지의 분수령이 되는 이유는 이 일을 통하여 삼국이 정립되었고, 유비가 촉한을 차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난세의 간웅이라는 평가 앞에서도 파안대소할 수 있었던 조조의 유연함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적벽대전 이후 조조는 난세를 버리고 치세로 돌아섰다. 그렇지만 그의 시대는 아직 난세이다. 난세 속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강점을 잃어버렸으니 몰락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사고의 틀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조조평전을 읽으면서 문득 한국의 현 상황을 생각해본다. 오늘날 한국의 모습이 난세와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국민들은 문제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여전히 보수적인 사람들은 문제인에 대해서 빨갱이라는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상황 속에서 문제인 대통령이, 그리고 그의 각료들이 선택해야할 것이 무엇인가? 보수로부터의 인정? 국민 모두로부터의 애정? 그런 것은 일단 추후로 미루어 두자. 아직 난세이다. 이 시대가 문제인을 택했다. 그런데 가끔은 이 정부가 자신들을 치세의 능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렵다. 적벽대전 이후의 조조처럼 정권 창출한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난세의 간웅이지, 치세의 능신은 아니다. 유연한 사고 방식으로 과거의 적폐와 사람을 옭죄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 이 시대가 요청하는 지도자이다. 민주당, 자한당, 국민의 당, 바른 정당, 정의당이라는 다당제 형국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내딛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