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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곰과 안경
곤노 히토미 글, 다카스 가즈미 그림,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큰 딸 진이가 둘째 현준이가 어린이 집에서 책을 빌려온다. 같이 놀아 주는 시간이 없어서 가능하면 아이들이 빌려오는 책은 내가 읽어 주려고 한다. 같이 놀아 주지 않고 책만 읽어 준다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놀라고 아내는 내게 잔소리를 늘어 놓지만 아이들이 빌려온 책만큼은 읽어주려 애쓴다.
큰 딸 진이가 3살인가 4살 때 빌더 베어에 가서 비싼 돈을 들여서 곰 인형을 사줬다. 혹 아이들을 데리고 곰 인형을 사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빌더 베어를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비싸긴 하지만 곰 인형을 그냥 사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고르게 하고, 그 인형에게 심장도 넣어주고, 탯줄을 끊듯이 봉제를 하고 남은 실을 끊는 시간까지 준다. 아이들에게 여러가지 인형을 사주었지만 진이는 아직까지도 그 곰 인형을 무척이나 아낀다. 매일 냄새를 맡으면서 잠자리에 든다. 곰 인형 이름은 내가 지어줬는데 "웅이"다.
그렇게 웅이를 끼고 사는 진이라서 아기곰이 나오는 책만 보면 좋아한다. 웅이라고 하면서 빌려온 것이다. 그렇게 빌려온 책을 읽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아기곰은 매일 안경을 쓰고 생활한다. 그 안경은 할머니의 안경인데 할머니가 죽고 난 이후에 그 안경을 쓰고 있으면 할머니를 잃은 슬픔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안경은 돋보기인지라 세상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먹고 생활하는 것도 어렵다. 매일 할머니와의 추억에 빠져 슬픔을 잊고 사는데 그런 아기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친구가 있다. 아기 토끼다. 매일 아기곰을 위해서 도토리를 집 앞에 두고 가지만 아기곰은 안경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기곰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쓰러진다. 아기 토끼가 아기곰을 위해서 도토리 스프를 만들어서 먹인다. 아기곰이 기운을 차리고 밖으로 나오다가 미끄러져서 안경이 벗겨진다. 멀리 날아간 안경은 나무에 부딪혀 깨지게 되고 아기곰은 한참을 운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런 아기곰을 바라보는 아기 토끼도 슬퍼서 함께 운다. 울음소리를 들은 아기곰은 자기를 위해 울고 있는 아기 토끼를 발견한다. 그가 지금까지 자기 옆에 있어 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아기곰은 아기 토끼에게 다가가 지금까지 네가 내 옆에 있었구나라면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
아이 동화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눈 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도 한참 울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순간에 멈추어 현실을 포기하려는 아기곰과 그런 아기곰을 안타깝게 여기고 함께 울어주는 아기 토끼의 모습은 내게 사랑과 위로, 공감의 의미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주중에 시사인을 받았다. 그 안에 노란 봉투가 들어 있었다. 지난번 노란 봉투를 보내지 못해서 미안해 하던 내게 노란봉투는 기다리던 것이다. 이번에는 기필고 43,000원을 넣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번 봉투는 다른 내용물을 넣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보내는 위로의 손길을 넣어달라는 것이다. 세월호가 이렇게 묻히지 않도록 서명을 담아서 보내달라는 것이다. 20명의 서명을 담아서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난 최소한 우리 가족의 서명만이라도 넣어서 보내고 싶다. 그것이 아기 토끼가 아기곰에게 건네준 작은 도토리 스프와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들은 4월의 그 날에 시간이 멈추어져 있다. 아이들의 사진을 하염없이 보고 또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내일로 나가는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울까? 팽목항에 가져다 놓은 신발을 보면서, 메이커 옷들을 보면서, 라면이 빠져버린 식탁을 보면서 부모들의 마음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죽을만큼 아프다. 그런데 그들을 향하여 모 의원은 유가족은 그냥 조용히 있으라고 호통을 친다. 어느 벌레들은 시체 장사한다고 한다. 벌레의 도를 넘어서 무뇌충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가지고 성적인 이야기를 지껄이면서 자신들의 현실에 대한 진통제로 삼는다. 공권력은 안경을 벗겨 주기 보다는 아예 안경을 눈에 이식해 버리려고 한다.
그런 그들이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망언을 내뱉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찾을까?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아이들을 죽이더니 이제는 자신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호통치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찾을까? 어디에도 희망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죽었으면 싶을지도 모른다. 비단 그들만 그렇겠는가? 세상에는 아기곰들이 너무 많다. 쌍차도, 재능교욱도, 콜텍도, 용산 참사 희생자들도, 성수대교 희생자들도, 삼풍백화점 희생자들도, 월드컵의 희생자들도, 그리고 우리도...세상에는 아기곰들이 널려 있다. 누가 그들의 눈에서 안경을 벗겨줄 것인가? 누가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함께 아파하고 울어줄 것인가? 누가 아기 토끼의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
짧은 아이들의 동화책이지만 내겐 너무 많은 것들을 한번에 던져준 책이다. 이런 책을 빌려온 진이에게 너무나 고맙고, 진이가 아기 토끼처럼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자라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