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1~9 완간 박스 세트 - 전9권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미생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미생이 완결되었다. 처음에는 웹툰인지 모르고 시작했던 만화인데 9권이 완결되었고, 기념으로 끼워주던 책꽂이는 나에게 이 책을 다 소장해야할 그럴듯한 이유를 제공해 주었다. 이제 9권을 다 쳤으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리뷰도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지만 쓰다가 임시로 저장해 놓고 벌써 3주가 넘었다. 바쁜 일도 있었지만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였다. 아직 생각이 완전히 정리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정리를 되었기에 리뷰 작성에 도전해 본다.

 

  바둑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에게 미생은 상당히 낯선 용어이다. 내게 미생이란 선덕여왕에서 정웅인이 연기했던 캐릭터를 먼저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이다. 미생을 마지막까지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생이라는 단어의 정립이 쉽지가 않아서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그리고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낸 그림과 설명으로 미생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위키피디아의 미생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내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 때문에 글씨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

 

 

  먼저 위의 그림을 보자. 좌측과 우측 모두 흑돌이 백돌에 포위되어 있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좌측은 백과 흑이 모두 집을 만들어서 흑돌이 더이상 뻗어나갈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우측의 형국에서는 아직 나갈 방법이 있다. 다음 그림을 보면 이해가 된다.

 

 

  백돌이 2와 4의 공간에 돌을 채워서 집을 만들려고 하는 사이에 혹은 그곳을 포기하고 좌측에 1,3,5를 두면 백돌 세개를 포위하게 된다. 이것을 완생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완생은 되지 못햇지만 완생이 될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수를 미생이라고 한다. 동안에백이 빈 공간을 채우는 사이에 흑이 우측 상단을 포기하고 좌측에 석점을 두어서 백을 포위한다면 흑이 백 석점을 꼼짝 못하게 가두어 완생이 된다. 이렇게 완생은 되지 못했지만 완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수를 미생이라 한다. 첫번째 그림에서 미생이 완생이 되면 두번째 그림처럼 변하게 된다.

 

  완생이 될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지만 아직 완생이 되지 않은 미생!

 

   작가가 이 만화에 붙인 미생이라는 제목은 기가 막히다. 프로 바둑 기사의 길엣 실패하고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장그래! 신입사원으로 좌충우돌 샐러리맨의 길을 걸어가는 그의 동료들! 그들은 아직 무엇인가를 이루지 못했지만 앞으로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미생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이 완생이 될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들의 인생은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차곡차곡 진행하는 그러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국의 흐름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것처럼 인생이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미지의 생물과 같기 때문이다. 미완성, 완성이라는 말 대신 미생, 완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바둑과 인생의 이런 비슷한 점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각 에피소드의 제목들이 착수, 요석과 같은 바둑 용어로, 그것도 대국의 흐름에 따라서 사용하고, 그 용어에 어울리게 에피소드가 진행됨을 보면서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아울러 인생과 바둑의 유의미한 유사점을 보면서 인생을 배우기 위해서 바둑을 배워야한다는 말의 의미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화를 읽어가면서 결코 행복해지지가 않았다. 만화를 통하여 많은 인생의 지혜를 배우는데, 위안을 얻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는데 만화의 긑이 다가올수록 씁쓸하다. 장그래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계약직, 시한부 목숨 등등 여러가지 수식어가 붙는 일자리가 장그래의 포지션이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리 대단한 실력과 열정을 가지고있어도 그는 한낱 계약직이다. 그냥 쓰고 버린다. 잠시 빌려 쓰는 존재일 뿐이다. 난 여기에서 상상이 아닌 현실로 돌아온다.

 

  나도 어느 분이 작성한 리뷰의 제목처럼 미생(未生)이 완생(完生)이 되고 미생(美生)되기를 희망하지만 "이렇게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라는 장그래의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미생이 이 시대의 또 다른 희망 고문임을 발견하게 된다. 잘만 되면, 노력만 하면, 성실히만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어, 혹은 비정규직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어 등등 온갖 희망이 섞인 달콤한 말을 쏟아내면서 열정을 착취하는 구조가 미생이 담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 미생의 내용 중 가장 현실적인 부분들은 가장 씁쓸하고도 비정한 부분임을 떠올린다면 만화책을 읽어가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 된다.

 

  우리는 미생과 완생의 사이에 서 있다. 미생에 훨씬 가까운 위치에 서 있다. 모두 완생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지만, 이 시대 우리에겐 완생이 될 가능성의 극히 희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멈추어야 할 것인가? 완생을 향한 꿈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완생을 꿈꾸는 것은 희망일까, 고문일까? 너무 사치한 것일까?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장그래도 사라지고, 오과장도 사라지고, 김대리도 사라지고, 장그래의 쓸쓸한 표정과 말 한마디만 남는다.

 

  "미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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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0-31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현실적인, 그러니까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완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긍정의 주문의 외우고 달려들어도 99%의 경우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죠. 더구나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된 한국의 구조에서는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데, 한국의 현실에서 젊은 사람이 수도권을 떠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겠지요. 이곳에서 보면, 서울이나 부산이나, 전주나 강원도나 다 한국인데 말이죠.

saint236 2013-10-31 11:14   좋아요 0 | URL
요즘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한국에서 서울은 다른 도시와는 다른 위치를 가지고 있죠. 모든 자본과 인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은데 서울 시립대의 반값 등록금은 졸업후 서울에서 일할 인력을 키우는 하나의 방법이지요. 그런데도 이 사실을 잊고 서울 시민의 돈으로 지방 학생을 키운다며 반대하시는 분들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13-11-02 01:36   좋아요 0 | URL
솔직한 저의 표현으로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한국이라는 국가에 있어 암 덩어리 같습니다. 너무 커져서 절개해도 죽을 수 있고, 절개하지 않으면 이대로 고통을 받으면서 천천히 죽어가는...지방분권시대라고는 하지만, 핵심산업과 기관은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 있죠. 지방 거점도시를 바탕으로 발전을 시켜야 하는데, 이게 다 기득권과 관련이 있어서 어렵지요...

saint236 2013-11-02 13:23   좋아요 0 | URL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통일이 된 이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