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국사 시간에 실학에 대해서 배웠을 것이다. 이론을 가지고 박터지게 싸우는 성리학에 반발하여 실사구시라는 명목하에 실생활과 밀접한 내용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학파라고 말이다. 이 학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즈음에 태동하여 정조 시대에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세도 정치 때문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가 조선 말에 젊은 개혁가들을 통하여 새롭게 부상하게 되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수면 밑에서 실학은 꾸준하게 연구되었으며, 이 학문의 사조가 조선 개항시에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그러니 굳이 이름도 어렵고 용어도 생소한 외국 경제학자들을 끌어들이지 말고, 그들 때문에 주눅들지도 말 것이며, 한국의 실학자들(저자는 이들을 경제학자라 지칭한다.)을 연구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라. 이게 320페이지의 분량으로 13명의 경제학자들의 삶을 살펴본 저자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내개 글의 서두에서 이렇게 책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고 들어간다는 것은 내가 꽤나 이 책에 대해서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는 표시이다. 물론 한번은 읽어보면 좋은 책이라는데는 동의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후하게도 이 책에 별점을 세개를 주었다. 13인의 실학자들이 이런 학문적인 흐름 속에서 이러한 것들을 연구했구나 정도 아는 데에는 꽤나 도움이 된다. 더군다나 생소했던 여성 실학자에 대한 부분은 꽤나 참신하다. 그렇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그마치 "조선을 구한"이라는 타이틀에는 동의할 수 없다. 바로 이 부분이 내가 이 책을 삐딱하니 바라보는 이유이다.

 

  실학! 이 글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좋은 것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정약용을, 어떤 이는 조선의 근대화를, 어떤 이는 허생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난 실패를 떠올린다.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난 실학을 실패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의 방향이 잘못되어서 실패했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 실사구시는 당시 조선이 나아갈 방향은 맞다. 다만 왕조국가(입헌군주제가 아니라)에서 이념이 아닌 실리를 추구하는 학문이 결실을 맺고 정착되기 위해서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바로 이 부분에서 실학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의 세종이라 불리는 정조의 시대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떤 이들은 영정조를 조선 후기 중흥의 대명사로 지칭하지만 난 이덕일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진정한 중흥기는 영정조시기가 아니라 정조의 시기라고 본다. 영조는 터무니 없이 왕위에 오래 앉아 있으면서 선왕들과 마찬가지로 이념 투쟁으로 그의 치세를 소진하지 않았던가?

 

  맹자가 왕도론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하늘의 때는 땅의 이득만 못하고, 땅의 이득은 인화만 못하다." 그렇다 실학이 실패한 이유는 실학이 요구되는 시대적인 요청이 있었고, 여러가지를 연구할만한 외적인 여건이 구비되어 있지만 단 한가지 이들이 뜻을 자유롭게 펼 수 있도록 지배층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데 있다. 이들 또한 정조 사후에 복잡한 정치 속에서 남인이 숙청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지 않았던가? 오랜 세월이 흘러 조선이 망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된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들을 재조명하게 된 것이 솔직하게 실학의 현주소가 아니던가?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실학이라는 이름은 들었고, 유명한 학자들의 이름은 시험에 나와서 공부했지만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연구했는지, 그들의 연구서는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더군다나 그들의 학문을 깊이 연구해서 현대에 경제학으로 되살린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게다가 설령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멜서스, 아담 스미스, 칼 맑스를 지껄이기도 힘든 오늘날 이러한 학문적인 성과가 얼마나 대중들에게 읽혀질 것인가? 여러가지를 고려한다면 실학은 새로운 시도였지만, 안타깝게 꽃을 피우지 못한 학문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감히 조선을 구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도 조선을 구했다는 말은 과하다. 차라리 부제로 씌여진 18세기 조선 경제학자들의 부국론이 이 책의 제목으로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 역사를 즐겨 공부하는 이들 중에 이상한 사람들을 본다. 대표적인 예로 환빠를 들 수 있는데 세상의 모든 민족과 역사가 한민족을 통해서 시작되었다는, 심지어는 유태교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는 우리나라의 고대 설화 속에 등장하는 여와에서 파생되었다는 식의 억지 주장은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우려는 금치 못하게 된다. 최초의 금속 활자가 구텐베르그보다 훨씬 더 전에 발명되었다는 것을 가르치며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을 강조하지만 그것가지고 뭐했는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지 않는가?

 

  역사는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한다. 어느 한면만 바라보고서 내 입맛을 고집하면 NLL 발췌 발언을 일삼은 모모모 당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저자에게 솔직하게 묻고 싶다. 정말 다각적인 면에서 판단해서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인가? 혹 사람들의 기묘한 애국심을 자극해서 책을 팔기 위해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닌가? 꽤 괜찮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에 열받아서 열대야가 한창인 이밤에 뜨거운 방에서 끄적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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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7-31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왕도론의 천-지-인 등급이 사실 현실보다는 이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천운이 없으면 무엇인가 큰 일을 이루는 것이 매우 어렵지요. 오죽하면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고 하겠습니까. 다만, 천운은 타고 나는 것이기에, 지나 인을 얻으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많은 것을 이룰 수는 있겠지요. 큰 부자도 그렇고, 큰 인물은 하늘이 낸다고 하잖아요.

위에서 말씀하신 내용에 크게 공감합니다. 수정주의적인 역사인식이 사실 참 위험한 것이 있어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역사책을 쓰면 또, 결론을 정해놓고, 자료를 취사선택하여 왜곡하게 되는 경우도 (작가의 본의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발생할 소지가 높다고 봅니다. 그저 하나의 시도로써, 또는 심하게 기울어진 축을 땡겨오는 방편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조금 잠잠해졌지만, 환빠의 시작도 그러했지요.

saint236 2013-07-31 21:53   좋아요 0 | URL
환빠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요...역사는 공부할수록 어렵네요 팩트를 근거로 합리적 해석을 내린다는 것이요. 그래서 과거에 식자층들이 그렇게 역사를 살폈는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