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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거대 기업 - 우리 시대 기업에 따뜻한 심장 달기
이영면 외 지음, 좋은기업센터 기획 / 양철북 / 2013년 3월
평점 :
2008년 4월 프로메테우스 출판사에서 한스 바이스와 클라우스 베르너가 쓴 나쁜 기업이라는 책이 나왔다. 까만 표지에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기업들의 로고를 잔뜩 장식한 책으로 세계의 내노라하는 거대 기업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부를 쌓았으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는지, 그 과정에서 그 기업들이 어떻게 불법을 저질렀으면, 어떻게 인간을 도구화했는지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이 내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의 일등 기업이라고 하는 삼성이 당당하게 그 책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역시 삼성! 외국 사람이 기록한 책에도 그 이름으로 올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고장난 거대 기업은 말하자면 나쁜기업이라는 책의 청소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이 씌여지던 시기나 혹은 그 이후의 일들을 제외하고는 나쁜 기업이라는 책과 이 책에 동일하게 등장한다. 네슬레와 나이키가 대표적인데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무래도 고장난 거대기업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지면의 차이도 나고 타겟 독자층이 청소년이다 보니까 좀더 쉽게 기록하기 위해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디테일들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중요하지 않은 디테일을 생략했다고 해서 주된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집고 넘어간다.) 여러가지 내용들을 고려하여 내린 결론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업들이 어떠한 횡포와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꽤나 객관적으로, 그리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평점으로 별 세개, 즉 보통이라고 준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이 과연 목적에 맞게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읽히게 될까라는 점이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많이 바쁘다. 시험 성적 1점이 자기 인생을 결정한다고 굳게 믿고 열심히 살아가기 때문에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들은 그것들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간단하게 스킵하는 스킵신공이 대단하다. 국사도 스킵하고, 교양도 스킵하고, 인문학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들어 인문학이 대세다, 인문학 붐이 분다는 말을 많이하는데 착각하지 마시라. 입시에 도움이 되니까, 면접에 도움이 되니까 읽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을 쓰면서 목적을 좀더 분명하게 두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의 잘못된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할 것인지, 아니면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살펴 볼 것인지 조금만더 목적을 세밀하게 선정했다면 더 큰 효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삼성과 BP의 태도를 비교한 것이다. 모두 똑같이 대규모의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켰지만 이에 대한 대응방법은 정반대였다. 한쪽은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면서 꼬리자르기와 모르쇠로 일관하고, 다른 쪽은 자신들의 실책을 분명히 인정하면서 최대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지는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그렇지만 정말 안타까우면서도 비극적인 사실은 한국에서 만큼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꼬리 자르기와 모르쇠로 일관하는 삼성 중공업의 실책을 온 국민들이 나서서 수습해 주었지만, 삼성 중공업은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고 있으면, 여전히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아리 눈꼽만큼의 보험금을 받아서 배상하면서 자신들은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삼성이야말로 책의 제목처럼 고장난 거대 기업이 아니겠는가? 그들에게 어떻게 따뜻한 심장을 달아 줄 것인가? 달아 줄 수는 있는 것일까? 책을 덮은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도 횡설수설하면서 끄적거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