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사춘기를 지날 때 눈물 지으면서 봤던 책들이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아마도 아스라이 추억의 저편에서 이 제목을 꺼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덜하긴하겠지만 당시에도 성적이라는 것은 학생들, 특히 고3에게 가장 큰 짐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담임선생님이 한 말이 또 걸작이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닐지는 몰라도, 성적을 무시하고 행복을 말할 수는 없다."

  교회에 다니시던 선생님이어서 그런지 목사 아들인 나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져 주셨고, 엄하게 대하기도 하셨지만 그 분이 나에게 애정과 관심이 있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는 말을 허투루 넘기지는 않았다. 그 덕에 나는 꽤 공부 잘하는 축에 들어갔고, 입시에 실패하지 않고 지금껏 성적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오고 있다.(물론 이 말이 내 인생이 평탄하다는 뜻은 아니다. 성적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문제들로 충분히 힘들었다는 의미다.)

  당시 함께 읽었던 책 가운데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책이 있었다. 아마 위의 책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 책도 기억해 낼지도 모른다. 수험생일 때에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책에 더 깊이 공감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책에 공감하게 된다. 아마도 삶의 자리와 형편이 바뀌어서 그런 것 같다.

  대학 입시 이후 서울에 올라와서 쭉 살고 있는데 정신 없이 달려 왔던 것 같다. 무엇에 쫓기듯이 하늘 한번 쳐다볼 여유도 없이 지나왔다. 가끔 고궁으로 돌아다니면서 여유를 만끽한다고 하면서도 마음만은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살아왔다. 가정에 쫓기고, 등록금에 쫓기고, 친구에 쫓기고, 애인에 쫓기고. 졸업해서는 직장에 쫓기고. 내가 이렇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주 작은 에피소드 때문이다.

  어느날 지하철을 타러가고 있는데 시간이 급했던 나는 무빙워크에서 열심히 걸어서 지하철 플랫홈 근처에 이르렀다. 계단만 내려가면 되는데 "지금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안내 멘트를 들었다. 이것을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계단을 날듯이 뛰어 내려 간신히 세이프했다. 그런데 젠장이다. 반대쪽 방향 지하철을 탄 것이다. 급하게 타다 보니 방향도 확인안하고 무작정 지하철을 탔던 것이다. 그 덕에 결국 지각! 잠시만 멈췄더라면, 그 지하철을 놓쳤어도 상관없었는데 무엇이 그리 급했었는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이와 속도가 아니라 밀도와 방향이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고,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제대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을 삶에서 제대로 기억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빨리와 오래가 인생 최고의 목적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말이다. 빨리 갔는데 나처럼 거꾸로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하철이야 다시 돌아오면 되지만 우리 인생이 순환선도 아니고 되돌리기 쉬운 것도 아니지 않는가? 오늘도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저자는 조용하게 속삭인다.

  "그렇게 빨리 어디로 가십니까? 그게 인생의 전부입니까? 잠깐만 멈춰보시지요."

  맞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대로 가는 것이라면 우선 쫓기듯 달려가는 세상 속에서 멈추어 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모두가 달려가는데 나 혼자 멈추어 설 수 있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에서 멈추어 서는 것과 동일하게 보인다. 잠깐 멈추는 순간 뒤 쳐지고, 인생은 끝이 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멈추어서면 지금까지 못보던 것들이 보인다. 주변이 보이고, 가족이 보이고, 친구가 보인고, 인생이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그리고 내 인생의 목표가 보인다.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눈을 감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가? 멈추어 서서 인생의 방향을 한번씩 점검해 보자. 빨리가 아니라 제대로 사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하자.

 

ps. 저자가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모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일까? 내용이 몇 줄의 문장이다. 짧은 문장 덕에 여유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들에 친근감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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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0-1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류의 책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좀처럼 사서 읽는 경우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금년 6월엔가 잠깐 바쁜 일상을 '멈추고' 지인들 셋과 함께 태국으로 며칠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답니다. 그 때 마침 여러권의 책을 주문할 때 이 책도 함께 사서 여행가방 속에 챙겨 갔었는데, 인천공항에서 우리 일행중 한 명이 이 책을 들고 있더라구요. "엇, 그거 내책인데..." 했더니 그 후배가 "제꺼 맞아요. 며칠 전에 산 건데.." 하더군요. 넷 중 둘이 이 책을 들고 여행길에 오른 셈이었지요.

저는 '하늘을 날며' 이 책을 다 읽었는데, 책 제목도 너무 멋있고 해서 풍성한 '볼꺼리'들을 기대했었는데, 정작 보이는 건 '그림' 말고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고, 어금니로 꽉꽉 깨물어야 맛이 날 것 같은 '단단한 알맹이'는 별로 없어서 많이 허전하더군요.

(한달쯤 전엔가 제 딸아이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사달라고 엄마한테 조르더군요. 그래서 제가 얼른 이 책을 넘겨줬는데, 그 때 들었던 생각도 '책 제목' 하나는 정말 잘 만들었다 싶더군요.)

saint236 2012-10-17 20: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 제목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지었더라고요. 법륜스님 책도 읽었는데 그것도 비슷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