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교회 이야기
한희철 지음 / 포이에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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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순복음 교회, 소망교회, 사랑의 교회, 온누리 교회, 광림교회, 금란교회, 임마누엘교회, 오륜교회, 명성교회, 영락교회...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교회들을 열거해 봤다. 혹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자기 교회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다. 위의 저 교회 명단에 자기 교회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꽤 유명한 교회들도 있을 것이고, 대부분 그런 교회들은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르겠다. 혹 어떤 사람들은 더 열심히 전도하려고 다짐을 할지도 모르겠다.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위에 열거한 교회를 포함하여 대한민국에서 난다 긴다하는 교회들이 대부분 이시기에 덩치를 불렸다. 세계 기독교 역사상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성장하였고, 그 결과 교회는 대단한 자본과 사람과 권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 권력을 사회를 위하여 사용했으면 좋았을텐데 자기 교회 건물을 짓고 부동산을 구입하고, 덩치를 불리기에 대부분의 힘을 쏟아 부었다. 당연히 90년대를 거치면서 교회 성장은 멈추고 오히려 하락세에 들어섰다. 많은 교회들이 소위 말하는 문을 닫고 폐업 신고를 했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도,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왜냐? 위에 열거한 대형 교회들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Mega Church들 때문이다. 계속 성장하는 그 교회들을 보면서 많은 교회들은 저렇게 되고 싶다는 꿈에 부풀었고, 그 꿈을 향하여 달려갔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이다. 교회 성장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인력과 자본과 시스템, 그리고 권력에 의해 유지되었고 고착되었다. 이미 사회에서도 한물간 2세 경영 3세 경영을 교회에서는 제사장 가문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당연시 하였다. 뭔가 잘못되었다.

 

  난 목사 아들이다. 아버지는 늦게 신학교에 가셔서 늦게 목회를 하셨고, 시골로만 돌아다니셨다. 원래 농사를 지으셨던 분이니 농촌에서 목회하시는 것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분들처럼 양복을 깔끌하게 입고 돌아다니지도 않으셨고, 슬리퍼에 츄리닝 바람으로 동네를 다니셨다. 그러다가 담배를 엮고 있는 집에 들어가서 함께 담뱃잎을 엮으면서 언제 교회 올거냐고 이제 좀 교회에서 얼굴 좀 보자고 전도하셨다. 시내에 나가시는 분들이 계시면 고물 봉고차로 모셔다 드리고, 혹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관공서에 함께 가셔서 일도 봐주시곤 하셨다. 아마 처음에는 목사라고 거리를 두었겠지만 한 두해가 지나고 나면 그냥 동네 사람이었다. 지나가다 인사를 해도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런 동네 아저씨 말이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못마땅하셨겠지만 내겐 목사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서울로 학교를 올라오니 안 그랬다. 왠지 내가 이상한 것 같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그런가 보다 넘어갔다. 솔직히 나도 큰 교회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이 부러웠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한희철 목사님의 책을 접했다. 한희철 목사님이라는 이름 때문에 선택했는데 내용이 공감이 간다. 그분이 적으신 글은 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삶과 그대로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단강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원주에 도착하여 감리사님의 차를 타고 어딘지도 모르는 단강으로 가며, 산과 들을 지나 마을이 나타날 때면 단강이 이쯤이어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때마다 차는 멈춰 서지 않았고, 그러다가 마침내 들어선 곳이 비포장도로, 덜컹거리는 길을 달려가며 아무 곳이라도 좋습니다, 멈춰만 주십시오, 모든 기대를 포기했을 때 그때 나타난 곳이 단강이었습니다.(p 15)

 

  한목사님의 고독, 답답함, 절망감이 고스란히 손에 잡힌다. 모든 기대와 희망을 포기했을 때 나타난 곳이 단강이었다. 어머니가 오셔서 교회와 살 집을 보고 울고 가셨다는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리라. 내 할머니도 동일하셨으니 말이다. 그렇게 외진 곳에서 목회를 하는데 교인이 늘어나겠는가? 그렇다고 예산이 튼튼하겠는가? 가족들이 풍족하지는 않다고 해도 굶지 않고 살만한가? 돌이켜 보면 어릴 때 수제비를 참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철들고 20년 동안 수제비를 먹지 않았으니 말이다. 수제비를 먹은 이유야 뻔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아버지는 평생 그렇게 사셨다. 그게 목사의 길이려니 생각하셨다. 어머니의 바가지를 묵묵부답으로 대응하셨다. 답답하면 교회 가셔서 "아버지 아시지요!" 한 마디 하셨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한목사님도, 그리고 내 아버지도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달으신 것 같다. 그곳에서 비로소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신 것 같다. 그래서 그곳이 당신들에게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교회였으리라. 교회가 추구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음미해 볼만한 부분을 적어본다.

 

-교회가 세워진지 몇년 됐죠?

-3년 됐습니다.

-지금 몇명 모입니까?

-20여명 모입니다.

-첨엔 몇명 모였나요?

-20여명 모였습니다.

피식 웃었다. 자격심사, 둘러 앉은 심사 위원들이 3년동안 그대로인 숫치를 두고 웃었다.나도 웃으며 그랬다.

-작년 한해 동안 세분 이사가고 세분 돌아가셨습니다.

모두들 다시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면서

-됐습니다. 나가세요.

그렇게 자격심사가 끝났다.

 

*감리교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하면(요즘은 대학원을 졸업하면) 서리 전도사 1년, 준회원 전도사 2년(대학원 졸업이 필수가 되기 전에는 4년, 아버지는 이 과정을 하셨다. 한목사님도 이 과정일 것이다.) 총 3년(과거에는 5년)의 과정을 거쳐야 목사 안수를 받는다. 매해 다음 과정으로 올라갈 자격이 되는지를 심사하는 것이 자격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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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2-12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종교와는 별 관련없이 생활하는 사람다만
한희철목사님의 이야기는 무척 감동적입니다.

saint236 2012-02-14 06:25   좋아요 0 | URL
기독교인의 삶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아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꽤 소중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달린 서평들이 대부분 알라딘 서평 도서라는 것이...

차트랑 2012-02-1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독교인의 삶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정말 옳으신 말씀입니다.
적극 공감합니다 세인트님!!

2012-02-15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5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6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7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