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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평점 :
나는 IMF 직격탄을 맞은 세대이다. 97학번인 내가 대학을 들어가던 해 IMF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내 기억으로 당시 경제정책을 운영했던 사람이 강만수였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에 가던 것이 보편적인 흐름이었는데 IMF로 인해서 이러한 보편적인 흐름이 깨졌다.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직행했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후배들 가운데에는 1학기만 마치고 군에 지원하는 경우도 흔했다. 어차피 갈 군대 빨리 갔다오자는 자위적인 명분 속에는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아픔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IMF와 더불어 대학종합평가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척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 대학의 서열을 매겨서 국비 지원 혜택에 차등화를 두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다리던 학교도 대학종합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갑자기 등록금이 오르고, 공나물 시루와 같던 강의실은 그나마 조금 한산해졌다. 대종평을 위해서 시간 강사를 대거 투입한 결과였다. 그래봐야 콩나물 시루가 만원 버스로 바뀐 정도이긴 하지만 말이다. 수업의 70~80%가 100명이 넘는 대규모였다. 고등학교 한반이 절대로 50명이 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상상도 못할 숫자이다. 일주일 내내 그런 수업을 들어가면서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녔다. 물론 당시 등록금이 지금 대학생들의 등록금에 비할바가 아니지만 말이다. 시간이 가면서 대종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기준이 한 가지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등록금? 학생 대비 교수수? 아니다. 취업율이다. 각 학교마다 자기 학교의 취업율을 뻥튀기하기 시작했다. 어느 학교는 98%라고 한다. 어느 학교는 100%라고도 한다. 물론 내가 졸업한 학교도 아르바이트와 같은 비정규직도, 혹은 2년이 채 안되는 단기적인 일자리도 취업했다고 표시해달라는 말을 대놓고 졸업생들에게 요구했다. 대종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함이란다.
그 뒤로 15년이 흘렀다. 취업 3종 세트, 5종 세트라는 말이 회자된지 오래다. 학교의 서열화는 더 심해졌다. 대기업의 대학 소유는 당시 아주대, 인하대 정도만 떠올릴 수 있었는데 요즘은 중앙대도 있고 성균관대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찾아보면 더 많을 것이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공부하는 새벽 두시 하버드의 도서관 사진이 싸이에 돌면서 우리나라 대학은 너무 놀고 먹는다는 비난이 거셌다. 그렇지만 그렇게 거세게 비난하고 도서관에서 목숨걸고 공부하던 사람이나, 술렁술렁 놀던 사람이나 지금 사는 모습은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진골 성골인 사람들을 제외하고 해골인 사람들의 가능성이라는 것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요즘은 더 한 것 같다.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 4년, 대학원 2년 장장 6년 동안 쏟아부은 등록금이며, 기숙사비며, 용돈이며, 책값이며 모든 것들을 계산해 보았다. 5천만원이 조금 안되었다. 그때만해도 등록금이 싼 축에 속했고, 그중에서도 내가 나온 대학은 인문계열이라 실습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까웠다. 이 많은 돈을 쏟아부어서 얻은 것이 꼴랑 종이 두 장이다. 대학 졸업장, 대학원 졸업장! 물론 두 졸업장은 모두 졸업식장에서 받지 않고 나중에 교무처에 가서 수령해 왔다. 차라리 그 돈으로 장사를 했더라면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래도 나는 낫다. 요즘은 더하다고 한다. 분명 내 자녀가 대학을 다닐 때는 더 할 것이다.
뭔가 잘못되었다. 大學이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학사과정"을 거쳐서 "대기업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의 고시원"이 된지 오래다. 김예슬의 말처럼 88만원 세대로 변해 버린지도 오래다. 모두 문제가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 해결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좀 더 빘나 일자리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것만 요구하고, 바뀌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그 오만하고 꽉 막힌 사고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김예슬은 이러한 해결책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게 과연 최선인가? 그렇게 해결된다고 인간을 자원으로 보는 문제가 바뀌는가? 바뀔 것이 있겠는가? 한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이건희 회장의 사고 방식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여전히 우리는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져서 아귀다툼을 할 뿐이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그녀의 선언에서 한없이 슬픔과 아픔을 느낀다. 대학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거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언을 하고, 행여라도 자신이 약해져서 다시 돌아올까봐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피켓을 들고 얼굴을 팔아야 했던 그녀의 결단은 무엇을 위한 결단일까? "학"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그녀의 당연한 이야기가 왜 존중받지 못하고 철없는 치기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왜 그녀의 용기있는 결단을 좌빨로 몰아붙이고, 정치를 위한 포석으로 곡해하는가? 한장한장 넘겨가면서 속상했고, 아팠고, 서글펐다. 세상이 점점 더 팍팍해지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난다. 대학 졸업자로서, 대학원 졸업자로서, 또 부모로서,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사람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이런 불합리의 시대와 대학 졸업장이라는 폭력의 시대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느새 기득권이 되어버린, 그래서 그녀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없는 내가 두렵다. 그녀가 거부한 대학을 그녀가 다시 포용하도록 바꾸어 가는 것이 선배된 우리의 책임이 아닐까? 그녀의 용기와 결단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져 차마 응원한다는 말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