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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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이 워낙 재미있었던지라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을 구입했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의 후속 작업으로 시작했다는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은 한편의 시를 선택하고, 의미를 분석하고,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구조적인 방법은 동일하나 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저자가 말한대로 별개의 작품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강신주는 이 책을 통하여 세상을 자아와 타자의 관계로 이해한다. 한 개인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깨닫게 될 때 비로소 그는 한 사람의 성인이 되는 것이다. 강신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밀면 밀리고 당기면 당겨지는 문과 같은 존재가 어떻게 자유로운 존재, 스스로 행동을 개시하는 존재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카뮈는 반항할 때 인간 개개인에게는 자신에 대한 의식, 즉 자의식이 깨어난다고 말했던 겁니다.(P.303) 

  자의식이 깨어나는 단계, 그것이 각성이다. 오감을 포함하는 감각, 각성, 자각! 대체 각(覺)이라는 말이 무엇인가? 배운 것(學)을 보는(見) 것이다. 지금까지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몸에 익숙한 프레임을 벗어 던지고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부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는 이상 각(覺)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기에 강신주는 각(覺)하는 것은 괴로움을 수반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몇 주 전 함께 교회에 다니는 한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분에겐 아들이 한 명있는데 직업 군인인지라 가족과 따로 떨어져 살고 있다. 며느리와 손자는 서울에서 따로 살고 있는데 며느리가 전형적인 헬리콥터 맘이다. 남편과 따로 떨어져 외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아들에게 목을 맨다. 학교도 SKY 외에는 안 된다. 공부를 안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는 아들에게 다가가 공부하라고 SKY외에는 안된다고 윽박을 지르니 괴로워한단다. 그러다가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안 며느리가 손자의 휴대폰을 압수했다는 것이다. 고2나 된 녀석에게 그랬으니 사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하는 대로 말을 잘 들었던 손자가 집을 뛰쳐나간 것이다. 집에도 연락이 없고, 할아버지에게도 연락이 없어서 학교에 가서 기다렸다가 만났고 간신히 달래서 본인 집으로 데려오셨다는 것이다. 모자 관계는 여전히 냉전 중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연을 다 듣고 걱정하시지 말라고 당연한 과정이라고,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지금까지 엄마의 통제를 받으며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 왔던 아이가 거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사고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안 엄마는 당연히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아이를 더 구속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 속에서 아이는 자신을 옥죄고 있는 통제 프레임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뛰어 넘든지, 거기에 순응하든지 양단 간에 결정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순응하면 평생 엄마의 통제를 받으며 사는 것이다. 요즘 부부싸움을 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하는 부부들이 꽤 많다고 한다. 스스로 부모의 통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은 여전히 유아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영화 올가미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닐까?) 반대로 통제를 뛰어 넘으면 그 때부터 그는 성인으로서 자신의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자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통제 매커니즘을 인식하고 그 매커니즘 안에서의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배하는 구조를 발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자유로워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시험해본 사람이 한계에 직면했을 때, 그는 자신을 옥죄고 있는 구조를 발견할 수 있는 법입니다. (P.299 ~ 300)  

  왜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각해야 하는가? 각은 타자와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고 내가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각이 전부이자 결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여행의 첫 출발점이 된다는 말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세계 혹은 타자들과 직접 부딪쳐야만 합니다. 설령 체제가 제공한 제스처를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세계와 직접 부딪치면 되는 겁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가 흉내 내고 있는 제스처가 나의 삶에 어떤 행복과 힘을 주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물론 모방하고 있는 제스처를 시험해 본다는 것 자체도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흉내 내고 있는 제스처는 스펙타클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고, 당연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기능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활동하는 주체"가 되는 순간, 우리에게 붙어 있던 제스처들이 떨어져 나가게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P.264) 

  배운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단계를 통하여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익숙하게 몸에 배어 있던 통제들을 벗어버리고 독립된 자아로서, 한 개인으로서 타자와 책임 있는 관계, 바른 관계를 맺어 가는 삶, 그게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픈만큼 성숙한다는 말,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 결국은 각(覺)하는 괴로움을 말하는 것이리라. 

  ps. 우리는 각하느라 괴롭고 가카는 또 다른 이유로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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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자 2011-11-07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보면서,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괴롭게 저또한 각 하는 경험을 아주 어렴풋하게 느낀 것 같아요. (사실 전 굉장히 횡설수설 하며 썼는데) saint236 님 리뷰 보니깐 정말로 책이 말하려고 하는 큰 줄기가 정리되는 것 같아요. 제가 깨닫지 못했던 큰 그림이 이거였구나 싶네요. 정말 잘 보고 갑니다.^^!

saint236 2011-11-07 21:33   좋아요 0 | URL
ㅎㅎ 저야말로 님의 리뷰를 보고 맞아 이런 부분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