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병과 마법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이 이야기는 왕이 다스리는 시대, 정확히는 폭군이 나라를 지배하는 어떤 가상의 시대 속 한 인간의 저항이다. 그 저항은 단순히 역모를 일으킨다거나 정치적 암투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더 큰 악으로 상징되는, 인간들이 평화에 취해 악이 힘을 갖는 것을 잊고 살거나 체념하며 마주치는 거대한 악에 대한 저항이다.
이 이야기는 순응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던, 대체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던 여인의 저항이다. 그것은 증오를 넘어서서 자신이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체념을 거두고, 욕망하는 것. 잃어가는 것에 순응하지 않는 것. 자신을 구하는 것.
이 이야기는 정치와 권력,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잠깐에 평화를 지나면 어느샌가 찾아오는 독재와 폭압의 이야기다. 이것은 실제로 있던 어떤 시대나 인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먼 과거의 그리고 멀지 않은 과거와 닮아있다. 그러니깐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언이기도 했다. 다분히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출간시기와 집필시기로는 그럴수 없지만) 오히려 꾸준하게 있어왔던 이야기 들이다. 그러니 작가의 말대로 창작자는 시대의 미묘한 공기와 흐름을 읽는게 분명하다. 그러니 일종의 예언가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 인간의 역사의 패턴은 반복되니, 어리석은 인간들을 묘사하는 일은 불가피하게 예언의 성격을 띄기도 하겠다.
이 이야기는 판타지다. 작가 스스로 밝혔 듯 기병과 마법사는 외국에서 판타지 하면 떠오르는, 기사와 마법사에서 착안했다. 하지만 억지스럽게 그런 판타지의 근간을 갖다가 쓰며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있었을 기병에 대해 상상하고, 자료를 조사해서, 동양적이면서도 한국적이면서도 또 똑 닮지는 않은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냈다.
전투와 전쟁에 대한 묘사는 무척이나 세세하고 흥미롭고, 좋은 묘사의 글이 주는 이점을 가지고 캐릭터의 생각과 감정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캐릭터와 묘사는 이야기의 재미 뿐 아니라 글에서 주는, 시각적인 매체는 주지 못하는 읽는 맛과, 상상하는 맛을 만끽하게 해준다.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인물의 감정과 글의 맛을 통해 정치와 세상, 그리고 인간을 사고하게 해주고 빠르게 전개되는 상황들은 긴박함과 스케일을 마음껏 상상하며 전투와 마법을 아우르는 판타지의 재미를 맘껏 누리게 된다. 익숙하지만 또 어디서 본것도 아닌 적절하게 차용하고 적절하게 탄생시킨 설정들과 전개, 묘사들은 무척 흡족하다.
판타지의 재미, 흥미롭게 변주된 상상을 넘어서는 설정들.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누는 선악이 아닌 다시 비틀어 질문을 만들어가는 이야기. 억압의 시대에서 체념하던 한 여성, 한 인간의 마법같은 성장과 자기구원. 그것들이 글자로 뭉쳐진 #기병과 마법사.
개인적으로 초반에 한자와 낯선 용어들로 그 재미만큼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어느새 적응하고 나니 이야기적 재미와 더불어 여러 감흥을 느끼고, 다양하게 사색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특히 후반부를 읽는 나의 머릿속에는 어떤 거대한 지브리와 같은 세계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미 영화화된 ‘한국이 싫어서’ 처럼 이 작품도 언젠가 누군가 영상화 할 것이다. 그때에는 수려하게 이것들을 구현해 낸 작품으로 탄생했으면 한다.
이 리뷰는 네영카 및 북하우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가이드없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