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박원순과 문재인(스포츠서울 인터넷 기사에서 인용)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구매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문재인이라는 노무현의 측근이 노무현을 변호하기 위하여 쓴 글이겠다 싶어서이다. 그런데 곳곳에서 문재인의 이름이 계속 언급이 된다. 노빠임과 동시에 공인된 문빠가 되기로 작정한 김총수는 나꼼수를 진행하면서 시시때때로 문재인 띄우기에 열중한다. 서울시장 후보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문재인이 보인다. 며칠 전에는 박원순 후보 유세장에 나타나 지지를 호소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특전사 시절의 사진이 돌아다닌다. 문재인이 대선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3일만에 다 읽었다. 3일만에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뭐 대수겠냐 싶겠지만 지난 금요일부터 원인을 모르겠지만 손가락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쉬는 날에는 통증을 잊기 위해서 하루 종일 잠을 잘 정도였는데 화요일 저녁에 이 책을 잡고부터 밤을 새며 읽었다. 화요일 밤에 책을 읽다가 2시에 잠이 들었는데 도무지 잠이 안 온다. 문재인, 노무현, 안희정, 김두관 등등 참여 정부 시절의 굵직했던 사건들이 꿈에 나타나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결국 수요일에는 밤을 꼬박 샐 수밖에 없었다. 이틀을 뜬 눈으로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하지 않았으며,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하면 흔히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남녀간의 만남을 떠올리기 싶지만 문재인은 자기에게 노무현이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한다. 노무현이 이 시대의 진보와 개혁을 자기 운명으로 받아 들였듯이 문재인은 노무현을 자기의 운명으로 받아 들였다. 부산 변호사 사무실에서 시작된 노무현과의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이 대개 그러하듯이 부엉이 바위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현임 대통령의 탄핵, 전임 대통령의 검찰 소환과 투신이라는 비극적인 두 가지 사건이 모두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그것은 그 한 사람과의 만남을 운명으로 받아 들였던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상처요 아픔이 되었다. 그 상처와 아픔을 삭히던 그가 2년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운명이라는 책을 내놓는다.  

  그런데 이 책, 참 마음이 아프다. 그 아픔 때문에 내가 이 책에 더 열중했는지도 모른다. 책의 하단 페이지 숫자 옆에 있는 작은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면, 좌편에는 노무현이, 우편에는 문재인이 인쇄되어 있다. 마치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따 온 것 같은 “운명”이라는 제목 또한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서로에게 운명같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운명이었다.  

  Fate와 Destiny! 모두 운명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둘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Fate는 자기가 컨트롤할 수 없는 숙명을 의미하는데 반하여, Destiny는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는 운명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Fate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신이 정해준 불가피한 것이라면, Destiny는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삶의 결과물로 맞게 되는 것이다. 문재인이 이 책을 통하여 말하는 운명은 Fate인가 아니면 Destiny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던졌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이 책까지의 그의 행보가 Fate라면 이 책 이후의 그의 행보는 Destiny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그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만났고, 노무현을 통하여 세상을 보았으며, 노무현을 돕는 역할을 했다. 물론 노무현을 회고하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한 이 책도 그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술을 한 잔 마시면 가끔씩 옛날을 추억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와의 만남부터 오랜 동행, 그리고 이별은 내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숙제가 있다면 그 시대적 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p.441)

  노무현을 만나 본인이 원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던 정치의 한 복판에 이끌려 왔고 많은 기쁨과 슬픔을 경험했지만 자기 인생에서 노무현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대답을 할 수 없다. 그저 노무현이라는 운명에 이끌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이별을 경험했고, 자기 앞에 새로운 숙제가 남겨져 있을 따름이다. 여전히 꿈일지라도 한번씩 만나기를 소망하며 그를 그리고 살아간다. 이것이 문재인의 운명(Fate)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재인의 운명(Destiny)은 아니다. 문재인은 위의 글에 이어 바로 이렇게 적고 있다. 

  하물며 나는 더욱 그렇다. 기꺼이 끌어안고 남은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P.441)  

  지금까지는 피할 수 없는 Fate였다면 이제는 숙제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Destiny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노무현을 위한 회고록이라기보다는 노무현이라는 운명에 이끌려 새로운 숙제 앞에 선 문재인의 출사표이다.  

  묘하게도 이 책의 출간 이후에 권력층으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던, 그렇지만 한결같이 고사했던 두 사람이 권력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사시 합격 동기이자 모두 권력에 대해서 담백한, 그리고 지독한 원칙주의자 박원순과 문재인이 한 장의 사진 안에 나란히 선 것 또한 운명일 것이다. 조영래와 박원순의 운명적인 만남, 노무현과 문재인의 운명적인 만남, 노무현과 조영래의 운명적인 만남은 얼키고 설켜서 문재인과 박원순이라는 새로운 운명으로 귀결되었다. 이 운명이 어떤 흐름을 만들어 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 남겨진 운명은 불가피하게 강요된 운명(Fate)가 아니라 역사의 숙제 앞에서 많은 고민과 결단, 그리고 책임있는 응답을 쌓아 도달하게 될, 아니 도달해야 하는 운명(Destiny)이다. 물론 그 운명은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ps. 프레시안에 실린 박원순과 문재인의 운명적인 만난에 대한 한 시민의 기고문 링크를 걸어둔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1092617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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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1-10-2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깊이 읽으시고 정리하시는 것 같습니다. 님께 배워야 겠습니다. 댓글을 남겨주신 덕에 올 수 있었네요.

saint236 2011-10-26 17:23   좋아요 0 | URL
이런. 황송한 이야기를.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이묘 2015-07-1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fate와 destiny에 대한 기본적인 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