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6
푸페이룽 지음, 심의용 옮김 / 돌베개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알라딘에서 놀기 시작한지 거진 4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알라딘을 하기 전에는 오로지 오프라인 서점만 애용했는데 직장에 매이기 시작한 후부터는 인터넷 서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서점을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던지라 어디가 괜찮은지 후배에게 물었고 추천을 받은 곳이 이곳이다. 처음에는 책을 한 두권씩 사다가 어느 순간 서재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기웃거리기를 몇 번. 무료하고 답답한 일상 가운데 취미를 붙인 곳이 이곳이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취미로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끄적거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글이 샇이다 보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평단 활동도 하고, 마이 리뷰에 뽑혀서 적립금도 받고 하다보니 어느새 자유롭게 끄적거리던 글이 다른 이들의 이목을 신경쓰는 글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도 난 비교적 하고 싶은대로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 책을 통해서이다. 

  서평을 작성하기 전에 책에 대한 서평이 혹 있는가 궁금해서 찾아보던 중에 딱 한편의 서평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서평을 꼼꼼이 읽고 그 분의 서재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글을 뒤적거리다 보니 점점 서평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꽤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그 분은 이 책에 대해 혹평을 했기 때문이다. 그 분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장자 쪽에는 상당한 수준의 연구를 한 듯하고 다른 역본들의 오역한 곳을 찾아 내어 원뜻을 기록할 정도로 대단한 분이다. 그런 분이 혹평한 책에 대한 서평을 올리자니 왠지 부담이 되는거다. 그 순간 "아.. 내가 서평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 썼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서평을 쓸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조금은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억지로 용기를 짜내어 본다. 

  언젠가 친한 친구와 농담으로 비틀즈의 "Let it be"를 부르면서 장자를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내비 둬 내비둬 내비 둬 내비둬 지혜의 말씀 내비 둬"라고 멋대로 번역해서 부르면서 아마도 비틀즈가 장자를 읽었을 것이라는 시덥지 않은 농담이다. 그만큼 장자를 읽고 나면 여러가지 얽매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데 소요유는 고사하고 서평이라는 것에 얽매여 있던 내가 우스웠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에겐 정말 고마운 책이다. 

  소요유(逍遙遊)! 

  얼마나 가슴 떨리는 말인지 모르겠다. 한낱 눈 앞의 일에 내 모든 시선을 고정시키고 멀리 보지 못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요원한 경지이다. 성경에서도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당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신앙인으로 살아오면서도 결국은 내 앞에 벌어지는 것들 때문에 울고 웃고 흔들리지 않았던가? 그런 내가 책상 머리 앞에 붙여 두고 항상 쳐다보던 글이 유치환의 바위이다.  

  내 죽으면 한개 바위가 되리라. 아례 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非情의 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줄 바꾸기가 영 서툴러서 연이 사라져 버렸지만)이 시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읽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단언컨대 이 시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 시절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다. 몇 달전인가? 교회에서 만난 분 중에 관계가 틀어져서 고민하고 있던 분에게 "제가 힘들 때 보고 힘을 얻었던 글이예요."하면서 이 시를 적어서 건네 주기도 했었다. 그 만큼 이 시가 나에게 준 깊이와 위로, 그로 인한 즐거움은 내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고, 그 후 버티는 것에서 벗어나 즐겁게 그 어려움들을 기거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눈을 확 잡아 끌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 유치환의 바위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이 드러나는 경지에 이르도록 수행한 사람을 장자는 진인眞人, 지인至人, 신인神人, 천인天人이라고 불렀습니다. 대종사 편에서 몇 단락에 걸쳐 '고대의 진인'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읽어보면 매우 감동적입니다. 그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잠을 자도 꿈꾸지 않고, 깨어 있어도 근심이 없다."(其寢不夢 其覺無憂) 

  이러한 진인은 현대인의 눈에도 굉장히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까?(224p) 

  유치환이 바위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아마도 유치환은 장자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다.  

  장자는 불우한 시기에 태어나서 참 간소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요유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살았는데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참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얽어매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현대인이 느끼는 박탈감과 상실감은 아마도 이런 자유의 박탈감이 아닐까? 물질 문명의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에, 그것도 철저하게 자본주의화 된 세상 속에서 장자가 인기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인생의 즐거움, 자유로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저자는 장자의 내용을 서양의 철학과 접목하여 우리에게 설명한다. 프로이트와 호접몽을, 인간의 죽음과 영혼을 고대 그리스 철학과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장자의 내용을 돕기 위해서는 시도하는 참신한 발상이지만 때론 그 참신한 발상이 장자를 오도하게 만든다. 이 책을 혹평하신 분이 지적한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그래도 장자에 대해서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접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내가 시를 적어 드린 그 분이 여름방학 중고등학생인 자기 아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의 목록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나는 주저없이 돌베개의 교양 강의 시리즈를 추천했다.  

  ps. 돌베개 출판사 관계자님과 우연한 기회에 트윗을 하게 되었는데 다음에 나올 교양 강의 시리즈는 귀곡자라고 한다.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하시는데 언제쯤 나올지 궁금하다. 나오면 돌베개 교양 강의 시리즈라는 이름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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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1-08-07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돌베개 교양강의 시리즈 무척 좋아하는데..
다만 읽고 뭔가 따지는 걸 잘 못하는 것 뿐......이에요~~ㅋㅋ
저도 돌베개 교양강의 시리즈....이 이름만으로 그냥 주저하지 않고 구입할 예정이어요~~
뭐~읽을때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쵸?

saint236 2011-08-07 10:2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자기가 좋으면 되죠. 다음 귀곡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cyrus 2011-08-07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완역으로 된 <장자>를 읽어보려고 했는데,, 언론이나 교수신문에서 번역의 완성도를 칭찬한 책인데도 대체로 후하게 평을 준 책이 없더군요. 아무래도 동양사상 고전들은
역자들마다 서로 다른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 권에 한 번만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자가 쓴 원전이나 <교양장자강의> 같은 좀 더 내용을 심화, 보충할 수 있는
책을 같이 읽어주는게 좋은거 같아요, ^^

saint236 2011-08-07 10:28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전 원전을 아직 안 읽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