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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의 철학
마시모 도나 지음, 김희정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디오니소스의 철학이라는 뭔가 있어보이는 제목, 게다가 술과 철학이라는 더 있어보이는 주제.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열었으나 실망했다. 고대부터 시작하여 현대까지 철학의 사조를 간략하게 훑어가면서 술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늘어 놓는다. 그렇지만 결코 술과 철학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철학자들이 술을 좋아했다더라, 술을 먹으면서 토론을 했다더라,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더라 등등등. 술과 철학자에 관한 신변잡기이지 술을 주제로한 철학은 아니다. 차라리 제목을 술과 철학자라고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저자가 하는 술에 관한 생각은 아주 간단하다. 술은 양면성이 있어서 과하지 않는다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과하면 실수를 유발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술에 관한 철학자들의 생각은 이 양면성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술에 관한 철학의 전부이다.   

  마시되, 무분별함 속으로 난파 당하지 않고 이치에 맞는 말을 하는 선까지 마셔야 한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엄청난 정신적 자제력과 육체적인 저항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과제이다.(P.202) 

  마시되 무분별하지 않고 제 정신을 잃지 않을 정도까지만 마시라는 것이 디오니소스의 철학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가지고 나온 이 책의 결론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용과는 상관이 없지만 왜 한국 사회는 그렇게 술에 목을 메는가 생각을 해본다. 20살이 된 녀석 중에 한 녀석이 매일밤 술을 마시고 예배시간을 늦기에 물었다. "왜 그렇게 술을 마시냐? 다른 애들 안마셨을 때 넌 마셨으니 이제 좀 자제해라." 그 녀석은 14살 어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 녀석이다. 젊어서 술을 마시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하지만 다음날 무리가 될 정도로 밤을 새서 술을 마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녀석 말에 의하면 술 마시지 않으면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너무나 빈곤한 문화적 상상력과 배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술집이 아니면 대인관계를 맺는데 어렵도록 만들었다. 매일 모이면 술집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도 억지로 술을 마신다. 입학 오리엔테이션을 가서 술먹고 죽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가끔 나오기도 했었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기 위해 친구를 만나고 자리를 만드는 것 같다. 월요일에는 원래, 화요일에는 홧김에, 수요일에는 술술들어가서, 목요일에는 목구멍에 찰 때까지, 금요일에는 금방 먹고 또 먹는다고, 토요일에는 토할 때까지, 일요일에는 일삼아서 마시는 것이 한국의 술문화다. 술을 마시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술을 마시는 능력이 대인관계의 척도가 된다. 

  사회 분위기가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마시고 행한 추태들은 용납이 된다. 조금 싸가지 없어도 용서가 되고, 실수해도 용서한다. 술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끄집어 내면 순식간에 쪼잔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아주 웃기는 일도 발생한다. 미성년자 성폭행 범죄자들이, 성추행범들이 법원에서 선처를 호소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하나같이 똑같다. 술마시고 술김에 실수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같이 정상참작이 되어 형량이 줄어든다. 고대에도 자신의 실수와 범죄를 술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있었는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술 취한 상태에서의 범법 행위에 대해 정상참작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그는 여러 근대 법률에서 정한 견해들을 예고하면서 술에 취해서 법한 우발적인 범죄는 가중처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술이 행위의 결과에 있어 비자발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는 무의식 상태의 원인이 되기는 하지만, 그러한 무의식을 일으키는 동기는 자발적으로 술을 마시는 행위이다. 따라서 잘못의 근본은 술에 취하도록 자신을 내팽개친 사람에게 있다. 이런 이유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죄를 진 자는 응당 처벌받아야 하고, 그 형벌은 더욱 무거워야 한다고 여겼다.(P.55) 

  실수를 유발하게 만든 술취한 상황이라는 것은 결국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책임을 져야 하며, 정상참작이 아니라 가중처벌하여 일벌백계해야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다. 몇년전 국회의원이 술김에 성추행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그리고 술김에 그랬다고 말하면서 전혀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술에 대해 관대한 사회, 술을 권하는 사회, 이런 사회 속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술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 내용과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은 것 같은데, 이 책의 내용은 그다지 건질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술자리에서 유식한 척하면서 풀어 놓을만한 이야기들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아폴론 철학에 짝을 이루는 열정과 혼돈으로서의 디오니소스 철학을 기대한다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딱 까놓고 이야기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죽을 때 먹은 술이 시바스리갈이었다." 이 정도가 이 책의 수준이 아니겠는가? 책임감으로 읽은 두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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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out 2010-04-30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별볼일 없는 책이었는데.. 완전 공감합니다. 저는 반만 읽다가 고만둬 버렸는데.. 안 읽은 반에도 전혀 미련이 가질 않네요.

saint236 2010-04-30 18:28   좋아요 0 | URL
정말로 책임감으로 읽었습니다. 마지막 장은 대충대충 스킵으로

sprout 2010-05-0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도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잘 엮이지 않고 겉돌던 이야기들의 상당부분은 또 거친 번역 탓은 아니었을까요. 마치 팔십년대 전공서적을 보는 듯 했어요.

saint236 2010-05-03 23:12   좋아요 0 | URL
여하튼 이번에 인문좌파를 위한 가이드 보내주지 않았으면 서평단에 많이 실망했을뻔 했습니다. 여러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 시간이 아깝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