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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깨우는 글쓰기
로제마리 마이어 델 올리보 지음, 박여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일상 기록법”이라는 부제에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라는 제목이라. 거기에다 성긴 편집의 하드커버. “이건 확실히 낚시다.”라는 의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책. 확실히 성긴 편집과 채 200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은 단 몇 시간 만에 책을 다 읽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낚였다.”라는 배신감이 결코 들지 않는다. 오히려 “대박”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간만에 글쓰기에 관한 좋은 책을 읽었다는 만족감과 함께 “오호, 이건 써먹을 수 있겠는걸. 이건 한번 해볼까?”라는 혼자만의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게다가 이 책은 중학생이 읽어도 될만큼 쉽다. 그러나 그 쉬운 글이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중학생이상이라면(혹 조숙한 초등학생이라도 가능할 것 같다.) 충분히 읽고 실제 작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감각을 자극하고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글쓰기”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저자는 인간에게 글쓰기가 왜 중요한지 강력하지만 명료하게 밝힌다. 글쓰기는 우리의 삶을 정리하고 의미있게 만들어 주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대입 논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스캔하듯이 요약본을 읽고 그 내용을 적절하게 버무려서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글쓰기만큼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해주며,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아무리 맛있고 훌륭한 음식을 먹고, 호사를 다 누린다고 할지라도 내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단 한권의 책만 하겠는가?  

  저자는 우리에게 당장 지금이라도 글쓰기를 시작하라고 부추긴다. 소설을 쓰고, 문학 작품을 남기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글로 남겨보라고 주문한다. 일기를 써도 좋고 노트에 끄적여도 좋다. 주제가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상관없다. 다만 두려움 없이 시작하라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자신만의 노트에서는 가능하다. 어떤 민감한 사안을 다루었다 해도, 아무리 신랄한 비판을 했다 해도 다른 사람이 당신의 글을 보고 비난할 일은 없을 것이다. 글 쓰는 형식, 문법이나 철자법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잘못을 지적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동물인 인간이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마음을 방해한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겁 없이, 두려움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 일기 쓰기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P.26 ~ 27) 

  그런데 말이다.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는 글쓰기, 인생을 의미있게 만들어 주는 글쓰기의 전제조건으로 저자는 비난받을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글쓰기가 우리에게 가능할까? 방학동안 억지로 일기를 써서(그것도 밀려서) 숙제로 제출하는 대한민국에서, 매일 일기를 쓰고 담임선생님께 제출해서 “참 잘했어요”도장을 받는 것이 대한민국의 오랜 교육 방법인데 과연 이러한 토양에서 자유로운 글쓰기가, 장의적인 글쓰기가 가능할까? 학생 때 그렇게도 일기를 쓰기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사람들에게 글쓰기 자체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행을 고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글쓰기는 그저 숙제를 위해서 일기를 쓰는 정도, 혹은 대입을 위해서 학원에서 교육받아야 하는 정도로 그칠 것이 뻔하다. 글쓰기의 즐거움을 전혀 맛보지 못하는 것만큼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이 글을 읽는 내내 “이제 일기를 다시 서볼까?” 생각해 봤다. 중고등학생 때는 일기를 참 열심히 썼는데, 특히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한창 방황하던 사춘기 시절인 고등학교 때에는 꼭꼭 시간을 내서 일기를 썼는데 대학 3학년 즈음부터 쓰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그저 귀찮아서였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니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2학년 때까지의 기억은 있는데 3학년 이후의 기억은 없다. 정말 기억이 없다는 것이라기보다는 특별히 감사한 것도 특별히 기억이 날만한 것도 없다는 말이다. 무언가 중요한 일이 왜 없었겠냐마는 그 일을 겪는 가운데 고민하고 기뻐하고 아파했던 기억들이 가물가물해져 버렸다. 결혼할 때의 두려움과 두근거림, 아이들이 태어날 때의 감동과 아내에 대한 걱정 등 매우 중요하고, 그래서 잊지 말아야 할 것까지 희미해져 버렸다. 그러니 앞으로 이런 아쉬움을 더 이상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장 오늘부터 일기를 쓰려한다. 문구사에 들어서 작은 노트를 하나 사던지,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책상에 꽂혀있는 노트를 사용한다라든지 괜히 이런저런 핑계대지 않고 시작하자. 그렇게 남겨진 기록이 먼 훗날 나에게 위대한 작품이 되지 않겠는가? 저자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내일의 글쓰기가 익숙해질 즈음에 당신 자신을 돌아보라. 당신이 어떻게 변해 가고 있으며, 당신의 삶이 어떻게 진화해 기는지를 비켜보라. 당신이 쓴 글은 단순히 종이 위에 남은 펜의 흔적이 아니라 당신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열망과 좌절을 그려 낸 위대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P.182) 

  사족이긴 하지만 글쓰기의 여러 기법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 한 가지, 그래서 꼭 시도해 보고 싶은 한 가지는 아내와 함께 일기를 같이 쓰는 것이다. 예전에 싸이월드에 같이 쓰는 다이어리를 개설하고 글을 썼는데 왠지 맛이 나지 않고 깊은 생각을 나누기는 힘들었다. 예쁜 노트 하나 가지고 아내와 나만 아는 자리에 꽂아 두고, 살아가는 이야기들,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들, 서로에게 말로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함께 적어보려고 한다. 먼 훗날 우리가 백발이 되어서 함께 그 글을 다시 읽는다면 인생의 희노애락이 모두 묻어 있는 둘만의 멋진 작품이 되지 않겠는가? 좋은 책을 소개해준 알라딘 인문 서평단 운영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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