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블레의 아이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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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블레의 아이들 - 천재들의 식탁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양경미 옮김 / 빨간머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알라딘 서평을 통하여 음식에 관한 책을 연달아 두개나 읽게 되었다. "차폰 잔폰 짬뽕"과 이 책인데 두 책은 음식이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차폰 잔폰 짬뽕"이 음식을 통해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가 하는 국제 역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면 이 책은 음식 자체에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명 작가들의 저작에 등장하거나 즐겨 먹었던 음식 중에서 몇 종류를 선정하여 그것을 재연하고 시식하여 감상을 적는 다분히 식도락적인 요소에 충실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맛의 달인이라는 만화책과 비슷하다고 할까?
지금까지 대략 100권 이상이 나온 맛의 달인이라는 음식 만화가 있다. 그 음식 만화를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음식에 대한 철학과 미식, 풍부한 배경지식, 그리고 실제로 만들어서 표지에 실어주는 센스. 이 책을 보는 내내 맛의 달인을 떠 올렸다. 어떤 작가를 다룰 것인지 선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그 작가가 다루고 있는 작품 중 어느 음식을 선택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재연할 것인지, 어떻게 사진에 담을 것인지 등등 이 책의 원래 기획의도였던 연재 기사를 쓰는 내내 저자가 겪었을 스트레스와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음식을 향한 탐욕 비슷한 열정에 탄성을 올릴 수밖에 업었다.
책을 보는 내내 침을 꼴깍 거리기를 수십번. 눈 앞에 있는 사진을 통해서 왠지 나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과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무모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마음으로 남겨두지 않고 실제로 해본다면 문제는 달라지겠지만. 여하튼 이것 저것 맛볼 수 있는 저자의 특권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음식은 기억이다."라는 말이 아닐까? 이 책에 선정된 사람들은 예술 분야에 두각을 두러내고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금자탑을 쌓은 천재들이다. 이런 천재들이 식도락을 즐기는 미식가라는 사실은 미식과 예술적 감수성은 통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천재들이 즐겼던 음식들이 우리가 생각하듯이 값비싸고 진귀한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사치스러운 것들도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그렇게 비싼 음식이 아닌 경우도 수두룩하다. 귄터 그라스의 장어요리가 가장 대표적인 예까 아닐까? 물론 천황의 만찬연 음식이야 예외로 쳐야 하지만.
저자가 선정해서 시식한 음식들은 모두 천재들의 작품과 삶과 밀접한 관계들이 있는 것들이다. 음식을 먹음으로 인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이 음식들의 공통점이다. 저자도 밝혔듯이 천재들은 이 음식을 먹으면서 아득한 기억 속 너머로 가물거리는 추억을 끄집어 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추억이 이들로 하여금 위대한 천재가 되도록 만들었고, 예술적인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둔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니겠는가?
Soul Food라는 말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에스닉 푸드와 비슷한 말일 수도 있지만 소울 푸드라는 말이 그 의미가 더 명확하다. 원래 소울 푸드라는 말은 남부 흑인 특유의 음식을 일컫는 말이지만 요즘은 그 의미가 더 넓어져서 사람들의 영혼과도 같은 음식, 한 민족 혹은 한 집안의 정체성을 상기시켜주는 음식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아무리 힘들고 지칠 때라도 왠지 그 음식만 먹으면 힘이 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음식이 있다. 그 음식이 바로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다. 천재들의 비범한 영감 속에는 소울 푸드가 숨어 있는 것이며, 한 민족의 문화 가운데에도 소울 푸드가 숨어 있는 것이다. 한국인을 한국인이게 만드는, 고국을 떠나 유학을 가거나 외국에 나가 살 때 미치도록 먹고 싶다는 된장찌개, 김치, 떡볶이 같은 것들이 한국인들에게 소울 푸드가 아니겠는가?
저자가 어떤 의도로 이 책을 만들었고, 음식은 기억이라고 단언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 이 말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싶다. 한국인은 과연 소울 푸드를 보존하고 있는가? 바쁘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TV음식, 패스트 푸드가 넘쳐나고 과연 먹고 살려고 일을 하는가, 아니면 일을 하기 위해 먹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먹는 것에 대해서 무신경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아침에 일어나 우유에 콘푸라이트, 바쁘면 토스트나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바쁘게 먹는 것들이 나에게 가져다 준 것이 무엇일까? 아무런 감수성도 없고, 음식을 기다리는 설레임도 없고, 그저 한끼 때웠다는 공허한 포만감만이 가득하지 않은가?
가끔 식사를 제대로 하게 되면 가급적이면 예전에 먹었던 음식을 찾는다. 맷돌로 직접 갈아 만든 두부, 석쇠로 굽는 고등어, 솥뚜껑 뒤집어 놓고 부치던 전들, 잔칫날 기름 냄새 고소하게 풍기면서 부친 수수부끄미.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이기에 최대한 비슷한 것들로 찾아 먹으려고 한다. 아내도 가급적이면 귀잖고 자극이 덜하더라고 조미료를 쓰지 않고 음식을 조리한다.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지만 그 음식들의 맛과 향은 내 기억 속에 그대로 살아 있고, 그 음식들에 대한 추억은 단순히 맛의 문제가 아니라 어린 시절 느꼈던 부모님의 사랑과 할머니의 추억, 썰매 타고 놀던 동심, 잔칫날의 부산스러움이 그대로 묻어 있는 것들이다. 그 음식을 통하여 나의 과거가 생생하게 살아난다고 할까? 그리고 이 느낌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다.
과연 내 아이들에게 소울 푸드가 존재할까? 햄버거, 냉동식품 같은 패스트 푸드, 치킨 피자 같은 배달 음식만 먹고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소울 푸드가 존재할까? 소울 푸드가 단순히 음식이 아님을 기억한다면 소울 푸드가 있고 없음의 차이는 분명하다.
식탁을 대하는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음식은 그저 음식이 아니고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식은 기억이고, 그 기억은 인생을 구성하고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는 사실이다. 일주일에 다만 며칠이라도 가족들이 단란히 둘러 앉아 음식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추억을 심어 주는 것, 이것이 이 시대 우리 부모들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ps. 오타가 몇 군데 있다. 204p 밑에서 둘째 줄 "아들의 상렬례"는 "아들의 상견례"가 맞을 것이고, 234p 첫째 줄 "집으로 돌아가지 전에"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가 맞을 것이다. 239p 양파밥 만드는 방법은 3~6번까지 사진이 모두 감자를 잘라 넣는 사진이다. 이부분 때문에 별 하나를 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