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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소 알로이시오 지음, 박우택 옮김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제목만으로 느낌이 확 온다. 왠지 사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우연한 기회에 난장 이벤트에 참석하게 되었고 아무런 망설임없이 신청한 책이다. 중간 중간에 들어가 있는 사진들과 수필 식으로 써 내려간 내용 때문일까? 27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의 분량이 결코 부담이 되지 않았다. 단 몇시간만에 책을 다 읽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서 얻게 된 감동은 몇 십년을 갈 것 같다.
여기 있는 형제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25:40)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날, 가장 성(性)스러워지는 날, 술에 취한 취객이 난동을 부리고 시끌벅적한 날, 산타클로스로 대표되는 상술이 기승을 부리는 날로 그 의미가 퇴색했지만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나눔과 사랑이다. 아기 예수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낮아짐이 아닌가? 하나님과 동일한 성품과 지위를 지녔지만 스스로 이것을 포기하고 낮아져서 말 밥통에 약하디 약한 아이의 모습으로 탄생함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크리스마스이다. 말밥통에 약한 아이의 모습으로 왔다는 것이 무엇인가? 가장 낮아져서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경지 그것이 바로 말 밥통에 뉘인 아기 예수가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천주교냐, 개신교냐, 어느 교리 문답과 신조를 신봉하느냐가 아니라 낮아짐에 있다. 철저하게 낮아질 수 있다면, 사회의 약자 편에 설 수 있다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훌륭하게 지키고 있다는 의이일터.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한국이 지독히도 못살던 날들이 있었다고 한다. 내 나이가 아직 30초반인지라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밥투정할 때마다 할머니로부터 지겹게 들은 이야기는 예전에는 없어서 못 먹었다는 말이었다. 보릿고개가 세상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고개였다는 말도 덤으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지독하게도 못살았던 6.25 직후에 예수의 낮아짐을 기억하고 가난함을 자처하여 한국에 온 소 알로이시오 신부. 그이 삶을 진솔하게 기록해 놓은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 속에는 "너는 어떤가?"하는 질문이 맴돌았다. 과연 너는 가난을 자처하는가? 얼마나 낮아졌는가? 얼마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되뇌어 보면서 신앙인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가장 가난한 아이들! 지독히도 못살던 그 시절 가장 약자였던 길거리의 아이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사회로부터도 폭력과 무관심에 노출되어 방치된 이들, 희망마저 잃어버린 이들이 당시 사회의 가장 밑바닥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예수의 비천해짐과 낮아짐을 닮고자 했던 소 신부가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들을 위해 살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풍요로운 미국의 삶을 버리고, 난방이 너무나 잘되어 온도를 낮추기 위해 에어컨을 틀던 그곳을 버리고 찬바람과 차가운 마룻바닥으로 동상이 든 검붉은 발로 무엇을 위해, 어디를 가고자 한국에 왔을까? 가족마저 버리고 스스로 고생을 자처하는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이었을까? 도대체 왜 소 신부는 그런 미련한 선택을 한 것일까? 가난한고 버림받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예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적인 약자들 속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울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스스로 낮아지신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따라가기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참 미련해 보이는 삶의 방식이지만, 분명하 것은 그런 소 신부의 삶의 방식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요즘 교회가 비판을 많이 받는다. 자기들 밖에 모른다고 한다. 썩었다고 한다. 가장 성스러워야할 교회가 왜 이런 비판을 받는가? 스스로 낮아질 수 있는 미련함을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지금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소 알로이시오 신분의 삶의 방법이 아닐까? 낮아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미련함이 아닐까? 이것만이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가는 방법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던져주는 책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선물하는 책 목록에 이름을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