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에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서울, 북촌에서 - 골목길에서 만난 삶, 사람
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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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학생이 되면서 서울에 올라와 10여년째 살고 있다. 항상 시골에서만 살았던 나였던지라 번잡함이 좋았고, 교보, 대학로, 신촌, 종로 등을 다니면서 젊음의 도시들들을 활보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행복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고궁과 옛 문화유적지들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젊음의 치기 내지는 일순간의 감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가 오는 날이면 옷을 다 챙겨입고(평상시에는 잠바도 안 입고 다니고 양말도 안신고  슬리퍼를 신고 다녔지만) 꼭 흥화문 공원을 거쳐서 교보까지 걸어다녔다. 신학대에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기 싫었던 곳이었는지라 방황도 많이 했고, 시골 촌놈이 목격한 사회 부조리가 나를 더 방황하게 만들었다. 당시 피맛골을 지나 대한항공 건물을 거쳐 흥화문 공원,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를 돌아 냉천동으로 내려 오는 길은 나의 단골 산책 고스가 되었다. 어느날은 잔득 취해서 길거에서 한두시간을 자기도 했고, 어느 날에는 머리가 깨질 정도로 고민을 했으며, 어느날에는 울면서 그 길을 걸어왔었다. 오늘이 나를 키우고 내 생각을 정립시켜준 것은 그 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도 가끔 교보를 지나 그 길을 걸어갈 때면 젊은 날의 방황과 고민이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이 따듯해지곤 한다. 

  군에 입대하기전 서대문과 동대문에 거처를 두고 살았으며 종로길과 성북동길, 가회동, 계동, 재동 등등 뒷골목을 만이 다녔고, 왠지 그곳에만 오면 편안함을 느꼈다. 경복궁도 자주 찾아가던 곳이었고 경복궁 중에서도 제일 안쪽에 위치한 명성황후의 시해 장소를 보면서 민족의 아픔과 역사의 비극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던 서울을 군입대와 동시에 떠났고 제대와 동시에 이번에는 잠실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뭐랄까? 영 어색하기만 하다. 나에게 서울은 강북이고, 경복궁이고, 남대문이고, 흥화문이고 남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왜 그렇게도 비가 오면, 마음이 아프면 고궁을 찾아갔고, 유적지를 찾아갔는지 말이다. 그곳에서는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백과 여유와 허허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치고 상한 나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무엇인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데 서울 도심에서 그런 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다.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그런 곳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보았던 건물이 이젠 그곳에 없다. 도처에 무슨무슨 처라는 표지석만 있을 뿐이지 건물이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초고층의 현대식 건물만이 들어 서 있다. 얼마전 서울의 랜드마크를 짓기 위하여 동대문 운동장을 헐어버린 서울시의 만행을 신문으로 보고 분개했었다. 역사적인 가치와 건물이 가지는 의미는 천박한 자본주의 앞에서는 한줌의 가치도 가지지 못하나 보다.  

  곳곳에서 초고층 빌딩을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해서 역사적인 건물을 헐어버리는 나라가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어디에 있을까? 역사적인 거리인 피맛골이 사라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도시계획이라는 미명하에 보존되어야 할 거리와 건물이 사라지고 헐리는 오늘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서울 북촌에서"라는 책을 낸 것이 아닐까?  

  서울을 걷는다는 것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동반한 것이 아니겠는가? 더 많은 것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에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아쉬움과 반가움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다. 

ps.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한 챕터씩 읽고 그곳을 찾아가서 사진도 찍고 둘러보기도 해야 할 것이다. 책으로만 읽어서는 느낌이 분명하지 않은 곳이 몇군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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