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무덤은 구름속에>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아우슈비츠 이야기
아네트 비비오르카 지음, 최용찬 옮김 / 난장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가" 이후에 이렇게 쉽게 설명된 책을 보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학살이라는 역사의 비극을 다루지만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적절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만한 학자를 길러낸 프랑스의 교육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저자는 딸의 질문에서 부터 이 책을 풀어 나간다. 친분이 있는 베르트 아줌마의 팔뚝에서 파란 잉크로 새겨진 수인 번호를 발견한 딸은 역사의 진실 앞에 서게 된다. 지금까지 들어 왔던 이야기, 그래서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이지만 아줌마의 손에 멍자욱처럼 남겨진 파란 숫자를 보는 순간 알고 있던 이야기가 삶으로 불쑥 들어오게 된다. 얼마나 고민을 했으며,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결국 딸은 엄마에게 베르트 아줌마의 팔뚝에 새겨진 숫자로부터 시작하여 아우슈비츠의 역사와 남겨진 자로서 자신에게 기억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 흐름의 주도권을 아이가 아이에게 있음을 보면서 엄마의 대단한 인내심에 우선 존경을 표한다. 또한 아이를 세뇌시키거나 강제해야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 아이의 눈 높이에서 설명하면서 이해시켜야 하는 온전한 인격체로 보는 모습이 두 아이의 아빠인 나에게 감동이 되었달까?  

  홀로코스트라기보다는 제노사이드라는 용어가 더 적절한 유대인 학살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유럽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나는 왜 배웠는가? 그리고 왜 이것을 가르쳐야 하는가? 어찌 생각하면 나와 상관이 없는 남의 나라 역사인데, 더군다가 수능에 비중이 없다고 자국의 역사조차 선택과목으로 취급받는 대한민국에서 유태인들의 역사, 유럽인들의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가? 단순히 동정심에서? 아니면 2차대전에서 피해를 입은 피정복민의 입장이라서?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합병했던 일본과 독일이 함께 동맹을 맺은 관계라서? 물론 이것들도 이유가 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살아남은 자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이름마저 잃어버리고,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된 그들을 살아남은 자들이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무덤은 저자의 말 그대로 구름속에 존재하다가 흩어져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꽤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하도 웃겨서 미니홈피에 담아 놓았던 사진이다.  

 

  아마 화려한 휴가를 보고 온 다음에 담았던 사진 같았는데 그 당시에 일해공원이 세간의 관심사였었다. 일해공원이라는 명칭에 동의할 수 없다는 시민단체들이 공원 명칭을 바꾸려고 시도했었고, 이를 막기 위해서 "전사모"라는 단체가 나서서 공원의 입구를 지켰던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었다. 그 당시 전사모에서 붙여 놓았던 현수막 사진인데, 이 사진을 홈피에 올리고 그 밑에 달았던 코멘트가 "이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최고의 개그다...최고의 슬랩스틱 코미디다...ㅋㅋㅋ"였다. 정말 왠만한 코미디보다 더 웃겨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만약 19개월, 7개월인 내 아이들이 자라서 "아빠, 광주 민주 항쟁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어찌 대답해야 하는가? 아네트 비비오르카처럼 자세하게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왜 배워야 해요? 몰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수능에 나오지 않는데."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무엇이라 말해 줄 것인가?  

  좀더 올라가서 일제 식민지가 벌서 100년이 되어 가는데 왜 그것들을 기억하고 배워야 해요? 왜 할머니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나요? 만주국이 뭐예요? 난징 대학살은 무엇이고요? 그런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솔직하게 지금으로서는 무엇이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몰라도 돼.", 혹은 "그냥 외워."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아네트 비비오르카는 살아남겨진 자들의 기억해야 할 의무에 대하여 말한다. "왜 배우는가?"라는 질문에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니까라고 말한다. 현문에 현답이다. 기억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말 가운데에는 매우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 일이 두번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을 포함하는 말이다. 유태인 대학살을 기억한다는 것은 두번다시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딸에게, 손자에게, 후손에게 대대로 전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도 바로 여기에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광주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들의 죽음과 죽음을 통해 얻고자 한 민주주의를 기억한다는 것이며, 그들을 죽음으로 내 몬 원흉이 누구인지 기억한다는 것이고,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한가지 묻는다. 나는 광주를 기억하고 있는가? 나는 정신대를 기억하는가? 나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과 만행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주 잠깐이지만 나도 모르게 동남아 출신의 근로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과의 축구경기 혹은 야구 경기를 보면서 한국의 승리를 외치고 여기에 열광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보면서, 데모하는 이들과 그들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 정체에 짜증내는 지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집단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누구나 다 아는 광주 학살의 주모자를 민족의 영웅이라고 우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기억하기를 게을리 한다면 아마 완전하게 민족의 영웅이 되지 않겠는가?  

  수능보다, 경제보다, 먹고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라는 아주 간단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나에게 가르쳐 준 아주 고마운 책이다. 내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생이 된다면 반드시 읽히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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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from 날아라! 도야지 2009-11-01 22:44 
    그들의 무덤은 구름속에 지은이 아네트 비비오르카 상세보기 ‘지롱드 주의 경찰 총서기로서 보르도로부터 유대인을 강제 이송하는 법령에 서명했던 모리스 파퐁에 대한 재판에서 사람들은 ‘행정 범죄’라는 말을 했단다. 업무상 자신의 상관에게 복종하는 행정 관료의 간단한 서명이 특정 상황 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어.‘-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중에서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면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