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스무살에 감신대에 들어간 이래 아마도 이분하고는 많은 악연으로 엮였는지도 모른다. 아마 이 책에서 예수회의 신부들과 그 선봉 가브리엘 말라그리다 신부를 접하는 순간 이 분이 떠오른 것은 스무살부터 맺어온 악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수만명이 모이는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인 이분과 300명 정도가 모이는 작은 교회의 한낱 부목사인 내가 비교의 대상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싫은 걸 어찌하란 말이냐? 

  모르는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왜 그분을싫어하냐고? 그렇게 큰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훌륭한 분이신데 왜 싫어하냐고 의문을 달기도 하지만 단언컨대 이분이 단 한번도 좋았던 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분의 설교를 들어야 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싫은 이유를 어려가지 꼽아보라면 수십가지도 꼽겠지만 내가 가장 싫은 것은 그분의 독선이다. 자신만이 옳고 남은 그르다는 생각, 그 생각이 싫은 것이다. 물론 목사들은 대체로 이런 성향이 있지만 이분은 도가 너무 지나치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치도 없다.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분을 떠올린 가장 큰 이유는 이분이 쓰나미와 캍리나 참사를 본 후 한 설교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분의 독선이 정확하게 나타난다. 

  "쓰나미 참사는 동남아 지역의 불교도와 이슬람교도를 비롯한 불신자들, 그리고 주일을 지키지 않고 놀러가는 그런 불신앙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카트리나 참사는 미국의 동성애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심판이다." 

  위의 내용과 "리스본의 탐욕과 불신, 타락 때문에 하나님이 지진으로 이곳을 심판하셨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놀랍도록 똑같지 않은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놀랍게도 18세기의 사고 방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게 한국 기독교의 현주소이다. 사회는 정신없이 바뀌어 가는데, 종교는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 오히려 인간이 해야할 부분마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방해하고 있다. 당연히 곳곳에서 기독교에 대한 저항감이 넘쳐나지 않겠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들은 계몽주의를 보고, 독재자를 보고, 또 어떤 사람은 박정희와 개발주의, 재건 대책에 관한 것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신앙과 맹신, 그리고 광신이라는 세 단어를 떠올려본다. 신앙이란 이성과 믿음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바람직한 모습이라면, 맹신은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덮어놓고 믿는 것이며, 광신은 이성을 잃고 그냥 믿는 것이다. 리스본 지진을 통해서 사람들은 불신과 신앙, 맹신과 광신의 모든 것들을 보았을 것이다. 카르벨류가 불신의 모습이었다면 교구 신자들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한 신부들은 신앙을, 신부들의 설교에 재건보다는 회개를 외쳤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맹신이며, 예수회 신부들과 종말론을 설교하는 이들은 광신이 아닐까? 

  과연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당연히 이성이라고 말하다. 종교는 타파하고 깨뜨려야할 미신과 같은 것이며, 리스본 지진을 통하여 드디어 계몽주의가 포루투갈에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하고 싶은 운명의 날이라 함은 인간이 역사의 주인으로 나선 운명의 날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나 기독교 신자인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지만 한 가지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맹신과 광신은 인간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보다는 더 위험하며 유해하다는 것이다. 내가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은 이것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은 거꾸로 간다. 기술은 21세기이지만 마인드는 여전히 18세기에 머물고 있다. 자연현상을 도덕적 해이에 대한 심판으로 본다. 그리고 그들을 돕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다윈의 이론을 배우고, 철학을 배우고, 과학 만능을 부르짖는 21세기에 과연 이런 식의 설교, 광신과 맹신은 어떻게 이해되 수 있을까?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각설하고 이 책은 재미있다. 당시 포루투갈과 유럽의 사조와 배경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섦여하면서 카르벨류라는 사람에 대해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평가는 긍정으로 기울어 있지만 말이다. 유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이 중요한 사건이 왜 그렇게 생소한지, 세계사 가운데 왜 빠져 있는지 궁금하다. 주마간산식으로 배우는 역사공부의 폐해가 아닐런지?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가진 사라은 한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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