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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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렇게 동화가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니까요? 아이들에게 감춘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좋은 글은 읽고나면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글입니다."(故 권정생) 

  지식 e를 통해 알게 되었던 故 권정생 선생님의 글이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바로 이 말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예쁜 그림, 보기 좋은 그림을 원한다면, 그리고 그림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을 습득하고 싶다면, 혹 여자 친구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다면 절대로 이 책을 펴보지 말라.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불편함을 넘어 혐오감을 줄 수도 있다. 오직 이 책은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를 똑바로 바라보고 싶은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저자는 "왜 한국에는 예쁜 그림, 보기 좋은 그림만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책을 시작한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사실이지만 저자의 물음을 듣고 생각해봤다. 미술쪽에 원체 문외한이라지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봐왔던 그림들이 대체로 두 가지 종류였다. 모나리자와 같은 예쁘고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니면, 몬드리안이나 피카소 같은 추상화였다. 피카소의 그림도 물론 게르니카같은 것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전쟁화는 대체로 민속화였기에 박물관에나 어울리는 그림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했다. 왜 그럴까? 왜 한국에는 전쟁화를 그리는 사람이 없을까? 왜 심미주의 작품에서 바로 초현실주의로 넘어가는가? 저자는 이것을 집단 책임회피 내지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현실주의를 건너 초 현실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시대의 조류를 따라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불편한 진실과 힘든 작업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미술은 원래 아름다운 것이다, 미술은 자기의 생각을 추상적으로 늘어 놓는 것이다라는 말은 비겁한 변명일뿐이고, 자기 위안일 뿐이다.  

  이런 시각을 가진 저자가 근대 독일의 화가들을 중심으로 책을 풀어 가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1차 대전, 2차 대전이라는 인류의 비극적인 사건을 바라보면서 현실로부터 눈을 돌릴 수 없으며 그렇다고 타협할 수도 없었던 화가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는가? 자기의 목숨을 걸고,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의를 고발하지 않았는가?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 무엇인가? 재발견, 재해석이라는 딱지가 붙는다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살아 생전에는 그림 하나 팔 수 없어던 이들이 사후에 그들이 고발했던 시기에 대한 반성과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말이 아닌가?  

  상당히 미련해 보이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이 왜 이런 길을 선택했는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자기 신경을 갉아 먹고, 자기가 교수형 당하는 그림을 그리고, 시골로 스스로 유폐되고, 퇴폐화가라는 딱지가 붙었을지라도 그들에게 그림은 밥벌이가 아니요, 재화를 벌어오는 수단이 아니다. 오직 사회를 바라보는 프리즘일뿐이다. 시대가 녹아 있기 때문에, 차별과 전쟁의 광기와 폭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그들의 그림은 불편할 수밖에 없고, 고약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이들 중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이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 것인가? 용산 철거민을 그렸을 것인가? 아니면 성난 화물연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을 것인가? 아니면 가스통을 들고 위협하는 꼴 보수의 모습을 그렸을 것인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그림 또한 편안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 또한 불편한 진실로 가득할 것이다. 자기들의 말을 완전히 뒤집어 권력에 아부하는 그런 사람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누가 고뇌의 원근법이라는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 볼 것인가? 누가 그 한 사람이 될 것인가? 그 사람이 될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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