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조광화 희곡집] 悲劇精神의 復活(上)

 

서문에 대신하여 - 悲劇精神의 復活




1/

연극창조는 나의 열정과 표현의지에 의해 행해진다.




2/

의지는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를 돌아 보면 쓸쓸하다. 나의 연극은 인간의 의지와 존재를 깨닫고 체험하고 싶은 수행의 과정이다.




3/

극작가들은, 연출가들은, 그리고 배우들은 시대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4/

어떤 이들은 연극을 통해 부를 얻고자 하고, 이름을 얻고자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연극 자체를 위하여 사는 자는 얼마나 있을까. 아니면 연극함으로써 존재하는 자는 있는가. 그저 그의 호흡이 연극인 자는 있는가? 연극은 연극하는 사람의 삶에 어떠한 기여를 해야 하는가?




5/

연극은 심장에서 머리로 그리고 이제는 눈으로 옮겨 갔다. 나는 머리의 연극도 감각의 연극도 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연극을 가슴으로 되돌리고 싶다. 그 방법론은 신화시대에 숨어 있는 원형에 대한 탐구다.


이 시대의 연극은 브레히트와 사실적 심리주의에 병들어 있다. 그들에 의해 연극을 보면서 이해하고 생각하려 드는 관성이 생겼다.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야 속이 편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감성으로 연극을 감상하는 것이 힘겨워졌다.


혹자는 감각으로 연극을 만드는 것을 감성적 작업과 혼동한다. 감각적 연극은 우리의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열정과 유리되게 만든다. 감각적 연극의 효과는 쓸쓸함의 확인이다.


원형적 연극은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욕망과 열정을 드러 내고 자극하는 연극이다. 너의 열정이 시키는 대로 터뜨리라. 원형적 연극의 감상에는 논리나 감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진다. 뛰는 심장의 박력에 온몸을 맡겨야 한다. 그 태도가 감성적 접근이다.


6/

카리스마 CHARISMA


ㄱ.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傳導上의 기능. 불가사의한 일을 하고 병을 고치며 예언하는 능력 등을 가리키는 말.

ㄴ. 사회의 지배자나 지도자의 선성불가침한 神威的 권위.


동아출판사의 국어사전에 나오는 해석이다.


7/

카리스마는 무엇으로부터 나오는가? 연출의 카리스마와 배우의 카리스마는 어떻게 다른가?


연출은……. 끊임없는 정열, 스테미너, 샘솟는 창조력, 자유분방한 상상력, 강력한 추진력, 치밀한 조직력, 그리고 사람을 끌어당기고 휘어 잡는 지도력…….


배우는……. 범접 못할 분위기, 영적 신비로움, 그 앞에 무너질 것 같은 기운, 보여지는 것 이상의 어떤 존재, 다의미의 표정, 단호하고 범상찮은 움직임들, 한편 지극히 평범하여 친근한 인간미 등등…….


8/

대중성과 예술성, 그 미묘한 화해.


고도의 예술적 경지를 이룩하여 존경받고자 하는 욕망,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하고 쉬운 이야기로 가능한 많은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동시에 존재하여 연극인들을 괴롭힌다.


9/

연극은 시대를 역행하는가?


이 시대는 영상과 정보의 시대다. 그리고 조직이 무너지고 있다.


전세계는 상업주의로 통일된다. 첨단의 이데올로기는 생명론적 세계관이다. 비경제적이고 소비적인 인간관계로 끈적거리는 연극단체들은 깔끔한 문화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다. 보수적이다 못해 후진의 혐의까지 받고 있다. 연극은 새로움과는 멀다. 연극이 보여 주고 말하는 것들은 거의가 구태의연하다.


유일한 희망은 생명론적 우주관이다. 연극은 가장 생명에 충실할 수 있다. 그러나 연출 중심의 연극은 얼마나 생명으로부터 멀어졌었던가. 기호에 가까운 연출미학의 범람은 기계적 배우들을 양산시킨다.


작가는 더 이상 미래지향의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한다. 소설의 작가는? 영화작가는? 이 시대는 무엇이건 절대적인 것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분위기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주장은 불온하고 위험스럽게 보여지는 것이 아닌가? 보통 말하는 권위의 실종이고 권위에의 거부다. 인터넷의 작가들은 표면적으로 절대적이지 않다. 사용자들의 자의적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0억이 사용자라면, 인터넷은 10억을 사로잡는 이데올로기다. 컴퓨터와 영상정보는 가장 자율적임을 위장하는 가장 강력한 절대다.


연극은 무엇을 주장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위기를 맞았다. 주장하면 관객은 거부감을 일으킨다. 주장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 흥미를 일으킬 수 없다.




10/

무거움이 모멸당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남은 두 가지 무거운 주제.


1. 대중과 개인의 대립.

2. 남자와 여자의 대립.




11/

연극은, 특히 드라마는 무거움의 대표였다. 전통적으로 드라마의 주류는 비극이다. 드라마를 통해 인생의 심각한 문제들을 생각했었다.


연희적 연극들은 인생의 의미보다 볼 거리 제공이 주목적이었다. 극장주의적 연극은 좀더 발랄해지는 경향으로 간다. 그러나 가벼움의 영역은 연극 고유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경쟁자들은 가벼움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한편, 심각한 연극을 거부하는 이때에, 이 시대의 마지막 무거움들을 가볍게 다뤄 낼 수 없을까? 아니 역으로 철저히 무거워 그 특이성을 무기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이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 될까?


가벼움에 대한 선호요, 나만의 스타일을 가지려는 경향, 그러면서도 보수적인 지금의 관객들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어려운 과제다.




12/ 96. 7. 8

집단이 표출하는 에너지. 개인으로 보자면, 늑대인간처럼, 시대와 동떨어진 어느 개인이 보여 주는 경이와 충격은 집단의 경우에도 가능하다. 스즈끼는 이질적 집단과의 충돌로 인한 연극적 경험을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만 얘기한다면, 늑대인간처럼, 신기함만을 쫓을 우려가 보인다. 문제는 그 집단만의 문화적 파워와 대중의 보편적 의사소통 체계와의 조화다. 그래서 스즈끼는 가부끼 집단의 기호화된 연극언어를 언급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집단은, 어떤 집단성으로, 어떤 연극언어를 만들어 낼 것인가?


13/ 96. 10. 30

신화는 일정한 문화집단을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신화는 그 성운들의 무의식이 구현된 것이라기보다 성원들의 무의식을 의식화시키기 위한 교묘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성원들은 신화를 통해 집단의 바라는 바를 자신이 바라는 바로 믿게 된다.

나는 신화에 매혹당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원형에 매혹당하고 있었다. 신화는 역사 이후의 체제유지에 필요한 일종의 이데올로기라면, 원형은 역사 이전의, 조직 이전의 생명체로서의 개인이 갖는 동물적 욕구와 의지다. 어떤 ‘조작된 신화’는 집단의 유지를 위해 원형의 바라는 바를 왜곡 변형한다. 원형은 신화의 힘에 의해 억압당한다.


나는 그렇게 억압당하여 고통받고 있는 동물적 원형에 주목한다. 그 동물적 원형들은 때로 신화적 세계를 위협하고 파괴시킬 수도 있다. 때문에 어떠한 집단의 신화를 위협하는 동물적 충동을 되살리려 했을 때, 그 집단의 방어적인 공격은 충분히 예상된다. 나는, 이미 그 신화의 방어벽을 호되게 당하고 있다.


내 작품들에서, [꽃뱀…….], [오필리어], [여자의 적들(가마)], [남자충동], 가족의 신성함을 해치는 설정들, 특히 친족을 살인하는 설정들은 가족신화에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교육받은 신화를 한 꺼풀 벗겨보면, 생명력으로 가득 찬 인간의 참모습이 있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나는 신화에서 출발하였지만 사실 ‘조작된 신화’와 정면으로 싸워야 할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자, 이 신화의 벽을 어쩔 것인가?




14/ 96. 11. 1.

문화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형식이 치밀해지고 기교가 세련되어진다. 그러나 그럴수록 형식과 기교를 있게 한 에너지와 정서가 가려진다.


문화가 발전한다는 것은 두 가지 방법으로서다. 하나는 고도로 세련된 방법론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좀더 많은 사람들에 공유되도록 공통의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늘려 간다는 것이다. 전자는 일반 대중이 향수하기에 어려워지고, 후자는 대중 취향에 아첨하게 된다. 어느 것이든 문화를 촉발시켰던 그 무엇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다.


서구의 연극이 그러한 길을 걸어 한계에 부딪쳤다. 잘 만들어지고, 세련된 공연이지만 에너지를 상실해 간다. 연극은 더 이상 개발해 내야 할 새로운 방법이 별로 남아 있질 않아 보인다.


그럴 때에 해답의 한 방법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연극의지를 촉발시켰던 그 무엇으로. 그것은 생의 의지다. 진정한 연극의 가치는 배우가 발산하는 ‘생체 에너지’를 호흡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문화를 의심하고, 신화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순수했던 몸의 바라는 바를, 영혼의 저 깊은 속에 감금되었던 원형들에 주목할 필요가 절실하다.




15/

내 연극의 주인공들은, 이상주의의 억압 속에 사그라지는 ‘생의 의지’로 고통받은 자들이다.


역사상 존경받는 문화작가들은 거의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들이 페시미즘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조차도. 왜? 작가들은 나름으로 이 세상을 파악하여, 희망을 보면 본 대로, 부족함을 느끼면 그것을 메꿔 줄 이상향을 꿈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작가란 기실 꿈꾸는 자가 아닌가.


또한 그 문화의 수요층인 독자들로서도 고단한 현실을 이겨 나가게 할 가치있는 수단은, 작품 속의 이상향들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이상주의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문학유산은 긍정적이고 온건하고 인간의 비전을 옹호해 온 것이다. 참으로 비관주의적인 작가에서조차 이 비관적인 삶에서 탈출하고자 의자하고 지혜를 짜내는 가련한 노력들을 보아 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강한 의지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할수록 독자들은 열광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참으로 그러나, 이상주의자가 제시한 비전은 항상 우리를 약간씩 앞질러 간다. 아, 맛볼 수 없는 이상향이여! 그들은 변명하기를, 꿈을 꾸고 있는 인간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망각하고 있다. 저 멀리 이상향을 바라보느라 여기 이곳에 있는 누추하고 추악한 실존을 망각하고 외면하고 있다. 이상주의의 극은 페시미즘에 다름 아닌가.


꿈꾸는 일은 소중함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래의 달콤함에 마취되어 실존의 나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추악함 비열함을 정면으로 응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모습이기에. 바로 나이기 때문에.


이상주의의 달콤함에 젖어 버린 이 시대도 때로 실존을 그려 내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이 수용하는 실존이란 고작, 왜소하고 소극적인 인물들이다. 만약, 실존의 가장 강렬한 특징인 ‘생에의 의지’를 위선적 신화로 위장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 낸다면, 이상주의자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게 될 것이다. 순수한 생의 의지는 이상주의자들의 비전을 일시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파괴적 열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그러나, 우리에게 ‘생에의 의지’가 이다지도 약화되어 가는 것을 방관한다면 삶은 얼마나 허탈한 것이 되고 말 것인가. 아무튼 지금 이 시대처럼 실존이 푸대접받던 때는 없었을 것이다.




16/

꿈을 실현시켜 주는 드라마 주인공들은 보통 영웅적 인간형들이다. 온갖 역경을 뚫고 초인적 의지를 관철시킨다. 나는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한 희생들에 주목한다. 영웅 스스로의 희생이 아니라, 영웅 주변의 희생을…….


신화의 주인공들은 영웅들이다. 그들은 한 민족이나 국가를 탄생시키고 인류를 구원하기도 한다. 마땅히 존경받을 인물상들이다. 지금까지도 이야기거리의 주인공들은 거개 영웅의 변형이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을 내세울지라도 무언가 훌륭한 면모를 통해 감동시킨다. 영웅이 이야기의 주인공임은 고대나 현대나 별 변화가 없다.


그러나 영웅은 극소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웅에 의해 희생당하거나, ‘영웅 지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 ‘짐’이라니!


‘햄릿’, 그는 가족의 불화를 가족 내에서 끝내지 못하고, 그 영웅적 성격으로, 플로니어스 일가를 몰살시킨다. 난 레어티즈와 함께 분노한다. 레어티즈가 햄릿보다 비열하고 못난 행동으로 스스로의 죽음을 재촉했다고 아무리 웅변해도, 햄릿의 딱한 비극적 처지보다는 레어티즈의 비열한 분노에 더욱 공감한다.


보라! 영웅, 그 선한 자들의 횡포를! 나는 분노한다. 그가 아무리 긍정적 가치를 지녔더라도, 그의 힘으로 나의 가치가 위협받는다면.




17/

우리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가치들은 정말 타당한가. 혹시, 우리들의 생명을 죽여 가고 있는 것은 아니가. 신화처럼 자리잡은 건전한 시민의식은 우리 대다수를 위한 것인가? 혹시, 소수의 영웅이나, 그 영웅에 빌붙어 사는 무리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18/ 96. 11. 9.

정의는 없다. 권력은 있다. 정의는 권력자들의 체제 유지적 이데올로기다. 정의를 주장하는 모든 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권력에 봉사한다. 이것이 세계다.


선악은 없다. 미추는 있다. 악은 불쾌함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이다. 관객들은, 미학적 묘사에 성공한다면, 무대의 인물이 아무리 악마일지라도 매료당한다. 이것이 예술이다.


세계나 예술이나 그 얼마나 허위로 가득 찼는가. 온통 허영 덩어리들이다. 신화만큼이나 조작의 냄새가 농후하다. 심지어, 나 또한 세계와 예술에 많은 부분 봉사한다. 구역질이 난다.


어떻게 해야 나의 참 생명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19/

연극에서 문학성과 공연성의 싸움. 무엇이 더 연극의 본질인가 하는 논쟁이라 할 수도 있다. 텔레비전, 영화, 멀티미디어의 공격에서 살아 남고자 하는 연극인들의 악전고투가 연극만의 것을 찾으려는 노력의 배경이다.


지금 이 시점, 그러한 노력들은 연출가 중심의 다양한 퍼포먼스적 성과물들로 해결점을 찾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지나친 공연성 추구는 너무나 많은 자리를 연출가들에게 양보함으로써, 쇼가 되어 간다. 연출가들은 기본적으로 방법론자들이다.


연극의 본령은 인간이다. 특히, 인간의 본질, 깊은 곳의 열정, 생명력이 나의 관심사다. 생명이 껍데기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지쳐 쓰러진 모습도 나의 묘사 대상이다. 연극의 논쟁들은 인간을 보이기 위한 이념이요, 장치요, 기교요, 아이디어이고, 심지어 잔재주일 뿐이다.


결국, 연극의 본질에 가까운 영역은 배우다. 배우를 통해 인간의 열정을 되살려 내는 일, 그것이 연극의 본질이다. 그에 비하면 공연성도 문학성도 하위개념이다. 문학성의 지나친 사변도, 공연성의 지나친 쇼도 모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인간의 본질이 아닌 다른 무엇에 집착하면 할수록, 이미 그것은 연극 아닌 다른 어떤 장르로 향하는 것이다.


연출도 작가도, 배우를 돕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배우는 마땅히 자신의 생명을 찬양할 줄 알 만큼 정열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생명이 방해받을 때 분노하거나 좌절할 줄도 아는 예민함을 지녀야 한다.




20/

生 그 자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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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 위에 섰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


책상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도 봐야 해.

틀리고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시도를 해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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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07-16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 갈게요~~^^*

tnr830 2004-07-1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퍼갈께요

비연 2004-07-16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감동이 전율처럼 느껴지네요...
로빈 윌리암스가 이런 배역도 멋지게 소화해내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구요.
저도 냉큼 퍼감다~~^^
 


잘못된 상식·효용 알게하려는 내용담겨
질병의 관리 방법·치료법도 알 수 있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광고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의약품 광고는 규제가 엄격하다. 광고에 현혹돼 약을 오·남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 대중 상업광고는 철저히 금하고 있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전문의약품도 상업광고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 광고에는 약물의 효용을 한눈에 강조하려는 제약사와 광고 제작자들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기 마련이고, 거기서 질병 관리의 ‘키(Key) 메시지’도 쉽게 얻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의사·약사들이 보는 의료전문지 등에서만 이들 광고를 접할 수 있다.


▲ 1.마른 사람도 콜레스테롤치가 높을 수 있다고 강조한 고지혈증 치료제 광고.
■1 ‘외모에 속고 있다’. 제약사 화이자의 고지혈증 치료제 광고 카피다. 광고는 미모의 날씬한 여성과 비만 남성의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총 콜레스테롤치는 250으로 같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날씬한 여성은 콜레스테롤치가 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광고는 이 같은 잘못된 상식을 뒤집고 있다. 체질에 따라 빼빼 마른 사람도 콜레스테롤치가 높을 수 있으며, 총 콜레스테롤치가 250 이상인 경우는 약물 치료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아울러 자신의 콜레스테롤치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한편 대한순환기학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중 자신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2.9%에 불과하다.


■2
제약사 노바티스의 고혈압 약 광고에는 이종격투기를 하는 중년 남성이 등장한다. 혈압을 정상으로 떨어뜨리면 과격한 운동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환자들이 적정 혈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두 자릿수’ 이상의 혈압치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만큼 많은 고혈압 환자들이 아직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몸에 붉은 색 혈관을 새겨 넣어 ‘고혈압 치료=심혈관 보호’라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3 밥 돌 미국 전 상원의원과 축구 황제 펠레.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발기부전 질환 대중 캠페인 광고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치료제 비아그라는 환자의 10분의 1만이 의사와 상담하고 치료법을 찾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유명인사를 등장시켜 ‘발기부전’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를 계기로 나이 들면 으레 오는 현상쯤으로 여겨왔던 발기부전에 대해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시켰고, 많은 환자들에게 용기를 줬다. 또한 발기부전 환자는 고혈압·심장병 등을 앓고 있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면서, ‘발기부전=심혈관질환’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4 새로이 개발되는 항암제의 특징은 암세포만 공격하는 이른바 ‘타깃’ 치료제다.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폐암 치료제 이레사 광고는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도미노를 등장시켰다. 줄줄이 쓰러지는 도미노에서 중간에 한 개만 막아주면 나머지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원리를 이용, 이레사가 폐암이 자라는 과정에 꼭 필요한 특정 효소를 억제해, 전체 폐암의 성장을 멈추게 한다는 의미를 설명했다.

■5 비스테로이드성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광고는 매번 보습제를 바르는 아이를 보여주면서 이들이 약물 부작용 우려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보습제에 의존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또 광고는 온 가족이 아토피 환자 아빠를 긁어주는 장면을 통해, 아토피가 성인에게도 흔한 질환임을 표현하고 있다.

■6 과민성 장증후군 치료제 젤막 TV 캠페인 광고에는 ‘변비, 복부 불쾌감/복통, 팽만감, 변비’라는 글자를 배에 써놓은 ‘배꼽 티 여성’이 등장한다. 이는 과민성 장증후군의 3대 증상으로, 특히 젊은 여성에게 이 병이 많다는 것을 표현한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캠페인으로 이 병에 대한 인지도가 32%로 증가, 그 전에 비해 2배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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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이 창의력 키워줄것 같아요?
읽고쓰고 생각하게 해야 공부가 되죠"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 왼쪽부터 주경철 김재준 김종면씨. 이들은"읽고 쓰고 생각하는 언어 훈련이야말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만들어낼 창의력의 바탕이며 연금술"이라고 강조했다. 신광현씨는 외국 출장중이다. / 이명원기자 mwlee@chosun.com
‘공부 잘하는 아들’로 평생 칭찬만 받고 자랐을 것 같은 남자 넷이 ‘우리 청소년들, 언어 공부 안 하면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와 영문과 신광현 교수, 국민대 경제학부 김재준 교수, 조세연구원의 김종면 연구위원 등 네 사람 중 신 교수(서울대 영문과 80학번)를 제외한 세 명은 서울대 경제학과 79학번 동기동창. 주 교수는 서양중세사의 전문가로, 김 교수는 미술컬렉터로 유명하고, 김 연구위원은 토플시험 만점(1984년) 기록을 세웠던 인물이다.

이들은 3년 전 전세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비교 자료를 접한 뒤 위기 의식을 갖고 ‘언어와 창의성’이란 주제에 매달렸고, 그 고민의 해답을 이번에 ‘언어사중주’(박영사 펴냄)란 책에 담아냈다.

“전세계 15세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보면 한국은 27개 국 가운데 과학분야 1위를 차지했고, 수학 분야에서는 일본에 이어 2위에 올랐는데 읽기는 6위였습니다. 그런데 진짜 공부 잘하는 그룹인 상위 5%로 가면 과학은 5등, 수학은 6등으로 처집니다. 읽기 성적은 더 충격적으로, 20위로 바닥권을 헤매더군요.”

대학에서 학생들과 접하며, 또 연구결과들을 보며 이들이 3년간 집중연구해서 찾아낸 이유는 “우리 교육은 창의력을 키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선행학습에 온갖 과외가 만발하는 한국식 공부 방법을 위기의 주범으로 찍었다. “영어 문장 읽으라고 하면 발음은 거의 원어민 수준인데 내용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갑자기 말을 못합니다.”(김종면) “요즘 서울대 들어오는 학생들은 기본기가 너무 약해요. 공부를 많이 하긴 했는데 비효율적으로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주경철) 무엇 때문에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그저 암기하는 기계로 자라서는 ‘2만불 시대’를 만들 창의력은 생각도 할 수 없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식 교육으로 1인당 국민소득 1만불 국가는 속성(速成)으로 달성했지만 진짜 선진국인 2만불 국가로 진입하는 데는 그런 교육 방식이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라고 김 위원은 잘라 말한다. 김 교수 역시 같은 생각. “1학년 때 2학년 내용 미리 배우고 2학년 때 3학년 내용 미리 배우는 지금의 ‘선행학습’ 따위로는 절대 창의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의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네명의 공부박사들이 내놓은 처방은 ‘읽고 쓰고 생각하는 언어 생활’이다. 여기 곁들여, 국제 언어인 영어의 사고체계 자체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다. “언어는 창의력을 키워내는 마음의 연금술”이라는 이들은 ‘상위 5% 학생의 읽기 능력 20위’라는 성적 속에 한국 교육의 모순이 있고, 동시에 해결의 도약대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시민들이 모여 이끌어 간다”며 “창의성 있는 인재도 언어능력에서 출발하고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현명한 유권자도 중·고등학교의 언어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즉각적인 학습효과만 노리는 부모님들은 언어교육을 통한 창의성 제고를 강조한 이 책을 불온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면서도 “그러나 공부의 참된 의미를 곱씹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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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 사는 사람들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싶어요"

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 박종호'풍월당' 대표
정신과 의사에서 클래식 전문 음반 가게 ‘풍월당’(서울 강남구 신사동) 대표로 변신한 박종호(44)씨는 “고단한 삶을 음악으로 위로받고 싶은 이들, 바쁜 일상에서 문화적 갈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친구 대하듯 좋은 음악을 안내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부전공(음악)’에 대해 쓴 첫 책 ‘내가 사랑하는…’은 그의 말마따나 고리타분한 음악 해설서, 명반 가이드가 아닌 ‘30년 음악 편력’을 담아 선율의 세계에 친근하게 다가서도록 돕는 순수 매니아의 음악 ‘이야기’다.

“서로 관련된 음악·연주가·작품·음반·일화·여행기를 엮은 이야기 꼭지 34가지를 사계(四季)라는 큰 주제로 구성해 6개월 걸려 썼습니다.” 박 대표는 중학교 때 부산에서 열린 ‘광복 3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백건우의 피아노 연주를 접하며 느낀 진한 감회로부터 얘기를 건넨다. 라벨·무소르그스키 등 여러 유파(流派)를 두루 섭렵한 ‘건반 위의 순례자’ 백건우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쇼팽 곡 연주 음반’으로 재출발했던 사실을 서술하면서 어느덧 쇼팽의 음악 생애를 오버랩한다. 스무 살 때인 1830년 고국(폴란드)에서 고별 콘서트를 벌이고 반생(半生)을 파리에서 살면서도 고향을 그렸던 쇼팽처럼 백건우가 쇼팽으로 재등정을 시작하며 ‘타향에서 고국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그리곤 자신의 음반 가게에서 사인회를 열 당시 진지하고 다감한 백건우의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이탈리아라는 동일한 공간적 배경으로 차이코프스키·괴테·브람스를 연결하기도 한다. 책에는 손수 촬영했거나 수집한 사진과 그림도 곁들였다.

 

박 대표는 유럽·미국·일본 등 외국에서 본 콘서트·오페라만 500편이 넘는다고 했다. 음악 감상과 잘츠부르크·밀라노·뮌헨·취리히 등 음악 도시 기행에 푹 빠져 부산과 구리에 열었던 정신과 병원을 1년 전 그만두었고, ‘풍월당’과 클래식 전문 감상실 ‘뮤지크바움’을 서울 신사동에 열어 ‘취미’를 생업으로 삼게 됐다. 그는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 해설을 하고 일간지·음악 잡지 등에 칼럼을 쓰고 있다.

“대부분 직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정신과 의사로서 충전은 못하고 방전만 하는 느낌이 들었고, ‘사회적 성공이 전부는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죠. ‘돌았다’고 말하는 지인들도 많고 수입도 적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만족합니다.”

그는 책 말미에 ‘나만의 추천 음악’을 실었다. 판에 박힌 고전 명반이 아니라 좋아진 세상(음악 기술)에서 감상의 묘미를 더할 ‘애청 음반’ 위주로 소개했다고 한다.

“음악에 푹 젖어 산 지금의 경험이 훗날 환자를 다시 대할 때 좋은 약이 될 것 같아요.” 박 대표는 “오페라 얘기는 따로 쓰려고 이번엔 아껴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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