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썼던 글인데, *사모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니 문득 떠올라 올립니다.
6월이네요..
정말 6월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풀뿌리 흔적들
소설로 돌아보는 6월항쟁
1987년 6월. 전국 대학생, 노동자, 지식인 등 5백만명 이상이 오직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열기를 뿜어냈던 그 때를 우리는 잊지 못한다. ‘6월 항쟁’으로 창출된 풀뿌리 국민들의 힘은 그 어떤 역사의 흔적보다 아름다웠고 국민들의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재 정권에 맞섰던 국민들의 열망이 높아질수록 정권의 폭력적 공권력 사용은 극에 달했고 그럴수록 국민들의 신음소리는 높아지기만 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6월 항쟁을 기억할 수 있듯이 ‘열망’은 쉽게 꺾이지 않았고 그렇기에 6월 항쟁의 의미는 더 뜻 깊다 할 수 있다.
6월 10일을 맞이하는 지금, 6월 항쟁을 만들고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을 통해 살펴봤다. ‘지식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현기영의 <위기의 사내>, ‘노동자’들이 이야기를 전하는 박태순의 <밤길의 사람들>, ‘대학생’들이 겪는 80년대를 그려낸 심산의 <사흘낮 사흘밤>을 통해 1987년 그때를 살아간 다양한 계층의 모습을 바라봤다.
시대의 요구에 깨어나는 사람들
박태순의 <밤길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이들은 ‘못생긴 인생’을 부둥켜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방값조차 제 때 지불하지 못하는 ‘서춘환’은 변변치 못한 일자리 하나 없는 궁색한 노동자다. 그렇다고 그가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건 아니다. 중동에 가서 돈을 벌었지만 그 시대 노동자들이 그러했듯 그 소중한 돈은 사회에 억류당한 채 살아야 했고 서춘환은 ‘절망’에서 근근히 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런 그에게도 실낱같은 빛은 있다. ‘조애실’이라는, 비록 그녀 역시 서춘환에게는 못생긴 인생으로 분류될 테지만 분명 그에게 그녀는 빛과 같은 존재다. 조애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연애도 당당하다 말하고, 위험천만하게도 나라를 욕 할줄 아는 그녀는 그에게 새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솔직하지 못했다. 조애실은 어떤 남자든지 나타나기만 하면 시집 가야하는 상황이고 서춘환은 그녀를 받아들일 만한 능력이 없어 애써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서춘환은 변한다. 조애실의 행동과 말에 자극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회에 뛰어든다. 그도 조애실이 그러했듯 노동자의 사랑과 삶이 당당하다고 믿기 때문일까? 6월 10일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조애실과 명동성당 앞에서 혹시나 경찰의 습격이 있을까 가슴 조리며 기다리는 서춘환의 모습은 ‘밑바닥 노가다’라는 멍에를, ‘노동자’라는 자부심으로 변화시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그들이 스스로 ‘보통쪽’에서 못 드는 축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그들이 있어 사회는 변화했고 그들 역시 변화의 물결에 합류하게 된다.
“책들이여, 분노하라! 너희는 왜 소리가 없는가!”
반면에 현기영의 <위기의 사내>는 ‘똑똑한’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책도 출판한 경험 있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 ‘한기웅’은 서춘환과 달리 먹물 먹은 지식인이다. 그렇다고 서춘환과 별반 다른 삶을 사는 건 아니다. 당시 인정받지 못하던 노동자는 아니었지만 한기웅은 사회 안정용 ‘시범타’로 정권의 폭력에 날개를 잃은 지식인이다. 술을 먹지 못하면 불평을 내뱉을 수도 없고 ‘우범자 카드’에 올라 거리를 맘 놓고 걸을 수도 없는 사람이 한기웅이다.
<위기의 사내>는 그러한 한기웅이 데모 현장에 나가기까지 겪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현실에 침묵하게 만든 물고문과 유치장의 ‘지옥훈련’을 당해야 했던 그가, 젊은이들과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신에게 격려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6월 항쟁 당시 침묵의 입장에서 참여로서 발 벗고 나선 지식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심산의 장편소설 <사흘낮 사흘밤>은 ‘대학생’들의 삶을 통해 6월 항쟁을 이야기 하지만 <밤길의 사람들>이나 <위기의 사내>와 달리 넓게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작이 지난 1986년의 ‘건대 항쟁’으로 설정됐는데 이는 6월 항쟁이 인고의 세월 끝에 한국사에 등장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선동이 아니라 원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혁명
지금으로 말하면 운동권 중의 운동권 학생인 이한섭과 낭만을 갖고 대학에 들어온 양예원, <사흘낮 사흘밤>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대학생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과정을 건대 항쟁, 이한열 장례식 등과 결부시켜 풀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밤길의 사람들>과 <위기의 사내>보다 시대의 배경 묘사에 충실하고 있다.
백골단과 최루탄, 그리고 전두환으로 압축되는 ‘독재’, 그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일곱명 당 초코파이 한 개로 버티며 대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학생들의 대립은 불과 15여 년 전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처절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한섭과 양예원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양예원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만큼 대학원생들, 책 속에 파묻혀 지내던 학순이 명희와 왕빈대로 소문난 남호, 심지어 야한 눈화장을 하며 구설수만 일으키던 수경이까지 주먹을 내뻗으며 시위에 동참한다. 고문에 죽어간 박종철을 위해서, 독재정권 타도를 위해서 그리고 ‘민주’를 위해서 그들은 책을 덮고 길거리로 나온다.
누군가의 계획도 아니었고 누가 선동해서 가능했던 것도 아니었다. 서춘환과 한기웅, 이한섭과 양예원이 1987년 6월에 서울의 봄을 맞이할 수 있던 것은 오직 그들이 원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일어나 가능했던 것이었다. 6월 항쟁은 그러한 국민들의 열망이었고 그렇기때문에 온갖 탄압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모습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별마저 진압되어버린 캄캄한 이 밤
잠든 도시의 한복판에서 횃불을 들고 내뱉는
쉰 목청 마지막 안간힘의 절규에
사람들이 깨어나 달려오기 전에
새벽이 오기 전에
또 다시
너희가 이 땅을 점령할 수도 있겠지만
똑똑히 보아두어라 외세여, 압제여
마치 갑오년의 기민행렬이 그랬듯이
너희의 땅에서 철거당한 사람들끼치 이렇게 밥을 나누며
마치 갑오년의 동학군들이 그랬듯이
핏발선 두 눈을 흡뜨고 이렇게 돈을 던지며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살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만들 것이다, 이렇게!
-사흘낮 사흘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