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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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의 책을 읽으니 내 안에 책 읽는 뇌가 모처럼 세로토닌이 발산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읽으면서 문득문득 이윤기처럼 살면 좋겠다 싶다. 인생을 흔히 고해니 고통의 연속이니 하며 세상 못 살 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꼭 그러기만 하겠는가? 인생은 유레카다. 발견에서 기쁨을 누리고 희열을 느끼는. 그런 것 없이 재미없어 어찌 살겠는가.


그는 책에서 자신에겐 행복한 징크스가 있다고 했다. 그는 뭔가에 관심이 생기면 꼭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과 환경이 생긴다고 했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작가와 번역가로서 어떤 책이나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꼭 출판사로부터 그 분야에 대한 번역이나 조사를 의뢰받는다고. 원서를 정독할 절호의 기회가 생기고,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즐거움에 출판사에선 돈까지 준다고 하면서 '책 읽기', '책 옮기기'에 관한 한 자신은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쯤 되면 그는 꽤 행운아처럼 느껴진다.


이왕 행운아란 말이 나왔으니 잠시 생각해 보자. 그거 왠지 내 것이 아니고 남의 것만 같다. 그렇지 않은가? 남은 그렇게 좋은 일이 많이도 생기는데 나만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행운도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 이윤기는 자신이 그럴 수 있기까지는 어느 정도 떠들고 다닌다고 괄호 쳐 놓고 얘기한다. 작가의 괄호 친 말은 보통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참고로 밝혀둘 때 쓰이기도 한다. 우린 바로 이런 괄호 쳐 놓고 하는 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고 행운이라는 것도 그냥 가만히 있는데 굴러들어 오지 않는다. 그것도 알고 보면 준비된 자에게 들어온다. 그러니 행운을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떠들어라. 그래야 행운이 알아듣고 그 사람에게로 갈지 모른다.


그런 것을 보면 난 왠지 작가가 인생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겸손하게 말해 '행복한 징크스'란 것이지 알고 보면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가는데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즉 좋게 말하면 책략가고, 나쁘게 말하면 꾀돌이라고나 할까.


거기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야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관심 있어하는 쪽은 늘 책이었다. 그는 60년 대 초 한 출판사에서 초등생을 겨냥한 각각 100권짜리 소설 전집과 위인 전기을 읽으면서, '일찍이 나에게, 장차 무슨 짓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고 술회한다. 그의 입말이 참 좋다. 무슨 짓을 하면서, 어떻게 사냐니. 


그러고 보면 꽤 일찍 발견한 것 같다. 그것을 발견하고 가슴은 얼마나 뜨거웠겠는가. 그리고 그건 훗날 번역으로, 신화 연구로, 소설가로 아깝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직함으로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지만,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기는 그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와 움베르고 에코의 여러 소설 그중에서도 <장미의 이름>을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희랍인 조르바>의 번역은 그 말고도 몇 명의 번역자들이 더 있다. 그리고 이윤기를 포함해 대부분 영역을 번역한 것으로 아무리 번역이 뛰어날지 몰라도 중역의 오명을 피하지 못한다. 게다가 완역본도 최근에야 나왔다. 물론 난 아직 그 누구의 번역본으로도 읽지 못했지만 그 누구의 번역본을 읽는다면 이윤기 번역본은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그의 번역본이 갖는 아우라가 결코 작지 않으며, 그 역시 그 소설은 자기 문학의 '성서'라고까지 했다. 그러니 이윤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번역본을 읽지 않는다면 그건 그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또 그래서일까? 이윤기에게서 왠지 조르바의 느낌도 나는 듯하다.(나는 책으로는 못 읽었지만 영화로는 봤다. 영화 속 조르바 역을 맡은 앤서니 퀸은 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에서 조르바의 그림자를 느낀다는 건 엉뚱하게도 그가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 번역을 언급할 때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당연 이태리어로 글을 썼겠지만, 그는 이태리어를 번역했던 것이 아니고, 영어로 된 것을 번역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번역은 철학자 강유원 박사로부터 찬사와 오명을 동시에 받는다.


옛날 일제 강점기 아무리 유명한 작품도 영어나 일어를 중역으로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 흉이 안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독자들의 욕구가 높아져 중역은 웬만해선 읽지 않으려고 한다. 게다가 우린 학(學)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가. 물론 학문을 중요시 여기고 그것에 완벽함을 기하는 거야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다가 사대주의에 갇힐 수도 있다.  


그도 자칫 그럴 뻔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말하는데 무엇으로 반박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으로 한쪽 구석에 조용히 있으면 그건 우리가 알던 이윤기가 아니다. 그는 에코의 소설을 비롯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독과 오역으로 인한 질타 속에서도 '중세 이후 유럽의 예술가들이 그토록 다양하게 변주하던 신화에 대해, '창'을 '도끼'라고 썼다고 해서 '문화를 오역한 자'로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111p)라며 반박했다. 그는 어쩌면 학적인 완벽함보다 사상의 자유로움이 더 중요함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 그것이 문득 자유인으로 살았던 조르바와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는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일은 하고야 마는 성격이다. 우리나라는 단편이고 장편이고 소설을 쓰는 사람이면 무조건 다 '소설가'라고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오직 장편을 쓰는 작가에게만 그 이름을 허락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라이터(글 쓰는 사람 정도)만을 허락할 뿐이다.  그는 거기서 충격을 받았을까? 나중에 기어이 장편소설을 쓰고 기어코 노블 리스트가 되었다. 그건 좀 우리나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 미국만 해도 그렇게 장편을 쓰는 소설가를 대우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장편을 꺼려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스스로 소설은 죽었다고 말하는 건 바로 이런 분위기가 배면에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쓰기도 전에 패배의식부터 갖게 되는 이 분위기는 언제쯤 걷히게 될지. 이윤기 작가는 그것을 결단코 허용하지 않는다. 소설 가지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생각을 하냐고 오히려 나무라는 듯하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 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이 책 곳곳에 깔려있다. 문득 답답해지거든 문학 선배로서의 그에 대한 생각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호기심이 많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싶다.


책을 읽으면 그가 글을 쓰는지, 말을 하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쉽게 쓴다. 한마디로 착착 감긴다. 그걸 두고 껍진껍진한 입말이라고 한다는데,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 대로 쓰는 구어체 즉 입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앞으로 글의 추세는 이렇게 갈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작가 박경덕은 생각하는 대로 글을 쓰지 않고, 말하고 싶은 대로 쓴다는 '말글'로도 설명하고 있는데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지식욕이 대단했다. 그것이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욕구만으로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아 보인다. 지구의 한 귀퉁이에 틀어박혀 숨만 쉬고 살지 말자. 그런 욕구가 있어야 세상을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살 수 있다.


그런 욕구로 그는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오래 장수하며 살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 지금도 그는 책상에 앉아 번역에 몰두하던가, 지중해 어딘가를 헤매고 다닐 것만 같은데 말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꽤 된듯하다. 아직도 그의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게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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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07-1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새 리뷰를 쓰셨네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노땅 소리 듣겠지만
분명 요즘 작가들은 스텔라님 어린 시절보다 넓이는 모르지만 문학적 깊이에서
작가적 역량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시절 문학이 주는 감동을 퍼스널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고 나서
게임이나 스마트폰 검색 같은 생활 유희가 문학의 자리를 대체했기 때문이죠.

더 이상 이윤기 선생 같은 분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 문학적 토양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이윤기 작가의 부재가 더 아쉽습니다.
스텔라님도 공감하시죠.


stella.K 2019-07-16 15:05   좋아요 0 | URL
그리 말씀해 주시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이곳에 따로 글을 올리지 않아도
아깝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잘못 생각했네요.
그러면 니르바나님과 이렇게 안부 인사도 못하는 건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잘 지내시죠?

맞아요. 이윤기 작가는 정말 아타까운 작가입니다.
언젠가 EBS에 나와 인문학 강의도 했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지금도 선명한지.ㅠ

2019-07-1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6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16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처음 자전거를 탄 딸을 위해 선생이 자전거를 뒤에서 밀어주는 일화가 나와요.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은 그 일화를 언급하면서 자신을 ‘신화를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해 천천히 뒤에서 밀어주는 존재’라고 묘사했던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중학생인 저를 신화의 세계에 갈 수 있도록 천천히 밀어준 분이 이윤기 선생이었어요. 그 분 아니었으면 신화에 대한 매력을 몰랐을 거예요. ^^

stella.K 2019-07-16 19:58   좋아요 0 | URL
맞아. 나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분을 통해 알게 되었지.
그리고 소설도 읽고, 에세이도 읽었는데 후회해 본적이 없어.
아직도 읽은 책 보단 안 읽은 책이 많은데
따님하고 쓴 플루타크 영웅전인가? 그게 여러 권 있더군.
근데 출판된지가 꽤 돼.
언제고 이분의 선집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도 따님이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어.
참 아까운 분이지.

서니데이 2019-07-18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선생은 번역서가 많지만, 이 책은 번역서가 아닌 이윤기 선생의 책이네요.
오늘 날씨 많이 더웠는데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밤 되세요.^^

stella.K 2019-07-19 14:03   좋아요 1 | URL
직접 쓴 글이 생각 보다 많아요.
원기왕성한 분이죠. 전 항상 비실비실인데.ㅠ
여러모로 부러운 분이시죠.

페크pek0501 2019-07-2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의 출현이십니다. 환영합니다!!!!!

이윤기 선생의 작품을 저도 몇 편 읽었어요. 그의 부고 소식에 안타까웠던 게 생각납니다.

stella.K 2019-07-21 19:54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잠깐 짬을 내어 올렸습니다.
읽기는 오래 전에 읽었는데. 올핸 이상하게 완독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그날 그날 내키는 대로 읽고 있습니다.
그래야 제 방에 쌓아둔 책들 손떼라도 묻혀 보겠더라구요.
물론 이 책은 완독했습니다. 오랜만에 이윤기님의 책을 읽으니
좋더군요. 더구나 이런 글쓰기 책을 좋아하거든요.^^

2019-08-13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3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 수집가-유년시절> 5월의 구독자를 모집합니다.

이달에도 변함없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회, 월 16회 발행합니다.

 

모집기간은 11일까지.

구독료는 9000원입니다.

연재시작은 5월 13일이고,

연재종료는 6월 6일까지입니다.

 

과월호 3월호와 4월호는 각각 5천원입니다. 5월호부터 읽으셔도 상관없지만 연재인만큼 그전에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왔나를 알고 싶으신 분은 과월호도 추천해 드립니다. 물론 5월호를 읽지 않으시고 과월호만 신청하셔도 됩니다.

 

신청은 이메일 주소 stells15@never.com 으로 받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신청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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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2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7 0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7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7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7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9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9 1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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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0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로 4월호를 마쳤습니다. 이메일 연재 두 달째를 보낸 셈이기도 한데 이즈음 참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글을 잘 쓰고 있는 건지, 독자는 내 글에 얼마만큼 만족하고 있는 건지, 무엇을 느꼈을지 매일 생각하고, 매일 반성합니다.

    

언젠가 어느 독자분께서는 제 글이 감질나다고 말씀하셨는데,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어느 정도 목에 힘이 들어가면서 그렇다면 난 성공한 거라며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연재한 글을 한글 파일에 옮겨 담으면서 그렇게 생각한 게 너무 철이 없었던 건 아닐까 민망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구독료 9천원이면 그것에 합당하고 만족하게 글을 썼을까? 한편의 글을 쓰면 완결미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원래 짧게 끊어 읽어 가급적 독자들이 편하게 읽도록 해 보자는 게 의도였는데 너무 그 생각에 치우쳐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다시 읽어보니 얼굴이 좀 화끈거리더군요. 이렇게 완결미가 없고 불친절해서야 아무리 내 글이지만 나라도 읽을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명 같지만, 애초에 이 글의 모토는 짧은 글, 긴 생각이었습니다. 제 글이 하나의 자극제가 돼서 독자분들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거요.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저도 어린 시절에 빠져 기분이 좋아지면서 차분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어린 시절이 항상 좋고 아름다운 기억만 있는 건 아니지만, 지나간 추억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윌리엄 맥스웰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기억이란 마음속에서 반복해 들리는 어떤 이야기이며 말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종종 바뀐다. 가끔은 자기 안의 이야기꾼이 나서서 상황을 재배치하기도 한다. 어쨌든 과거에 관한 한 우리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그러므로 소설이란 본인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장이 아니라 과거를 재창조하여 독자를 매혹하는 것이다.’라고요.

    

정말 말이 좋아 기억 수집가지 저는 여러분에게 글을 보내려고 할 때마다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글을 쓰면서도 그때이랬는지 저랬는지 헷갈릴 때도 많거든요. 하지만 논픽션에도 얼마만큼의 픽션이 존재하고, 픽션에도 논픽션이 존재하는 만큼 이야기는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규명하는 것에 있기 보다는 작가와 독자가 함께 공감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작가와 독자가 만나 이야기의 축제를 벌이는 거죠. 실제로 전 그런 마음으로 쓰고 있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급적 많은)사람들이 저의 이야기를 읽고 나도 자서전을 써 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 좋겠다고. 자서전이라고는 했지만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까지 이메일 연재로 쓰면서 마음이 한 번도 안 흔들렸다면 그건 정말 거짓말입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순간 아찔해지고 기운이 빠져버릴 것만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의 선배격인 이슬아 작가를 많이 생각합니다. 그녀도 처음엔 이러지 않았을까? 저러지 않았을까? 사람 마음 똑같은 건데. 그러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또 그러면서 글 쓰는 근육을 키워 나가는 것이겠죠.

    

앞으로는 조금 더 촘촘하고 알차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최소한 이 연재를 6월까지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응원과 격려가 있다면 연장해 볼 수도 있지만.아무튼 그때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성실하게 쓰겠습니다.

    

이달에도 변함없이 구독료는 9000원이구요, 5월호 신청은 11일까지입니다.

혹시 저의 계좌번호를 잃어버리셨다면 이메일로 알려주십시오.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달에도 변함없이 이메일 연재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기억 수집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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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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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책은 언제 샀나?

 

A. 책이 나오고 얼마 있지 않아 산 것으로 기억한다. 사 놓고 조금씩 읽다가 최근에 다 읽었다. 웬만치 관심을 갖지 않으면 신간은 잘 안 사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상하게 관심이 많이 갔다. 책 자체 보다는 작가에게 관심이 많이 간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이 작가의 활동을 접했다. 자신의 SNS에 구독자 모집을 하고 독자의 이메일로 한 달에 20번. 자신의 글을 월요일부토 금요일까지 전송한다. 그리고 구독료가 1만원이란다. 그게 꽤  흥미로웠다.

 

Q. 어떤 생각이 들었나?

 

솔직히 처음엔 좀 놀라웠다. 과연 한 달에 만원씩 내고 볼만한가? 책이란 서점에서 값을 치르고 사서 보는 게 일반적인데 굳이 만원씩이나 내고 이메일로 본다는 게 어떤 의민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작가가 그렇게 독자들에게 전송한 글들을 모아 책을 냈다. 어차피 이렇게 책으로 나오는데 책으로 사 보지 굳이 돈을 더 줘가며 이메일로 본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생각이 바뀌더라. 책을 사 보는 독자의 입장에선 그런 생각 당연한 것 같은데, 작가의 입장이라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한 번 내봤고, 한 때는 나도 연재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물론 블로그에 몇 번 하다 중단했지만.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다. 나는 그렇게 연재를 하다 중단했지만 이 작가는 그것을 무려 1년을 했다. 그것도 당당히 구독료를 받고. 이 작가는 했는데 왜 나는 못하고 중단했을까 갑자기 회의가 밀려오더라.

 

Q.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생각이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비록 하다 중단 했지만 내가 연재를 했던 때가 아마 10년도 훨씬 전이었던 것 같다. 블로그에 올리고 댓글 호응 받는 것도 감지덕지지 어떻게 독자에게 돈을 받겠는가. 그땐 그런 생각에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정말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때나 이때나 책은 무조건 출판사를 통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어 있다. 조금만 뚝심을 발휘했다면 그렇게 연재했다 책으로 냈을 것이다. 물론 그후 비슷한 방식으로 나도 책을 냈지만 여전히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건 정말 새로운 패러다임 같다. 

 

사실 이 책을 사기 전 작가에 대한 기사를 어느 무가지 잡지에서 보았는데 자꾸 보게 되더라. 어떻게 이런 작가가 있을 수 있을까? 자꾸 궁금해지니 결국 책도 따끈따끈한 신간일 때 사 보게 되는 것이다.

 

Q. 책을 꽤 오랫동안 읽어 왔다. 책에 대한 생각이나 기준 뭐 그런 게 있을 것 같은데...

 

 A. 책을 꽤 오래 전부터 읽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책을 오래 읽기도 한다. 책 한 권을 읽는데 짧아야 일주일이고 열흘을 넘겨 읽는 게 보통이다. 그러다 보니 많이 읽지도 못했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고 많이 오래 읽다보니 나름의 분류가 가능해졌다. 이를테면, 어려운 책, 쉬운 책, 객관적으론 좋으나 개인적으론 별로인 책. 남들은 그저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좋은 책, 남도 좋고 나도 좋은 책. 좋은지 나쁜지 남도 모르겠고 나도 모르겠는 책 등등이 있을 것 같다.  

 

그중 가장 좋은 책은 나를 대변해 주거나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 더 나아가 행동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 같다.  

 

솔직히 <안나 카레니나>나 <닥터 지바고>가 세계적인 고전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걸 읽고 심장이 뛰거나 무슨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책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오히려 남들한텐 별 것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객관적으로 보면 그냥 에세이다. 더구나 난 작가의 나이를 한참 전에 지나왔다. 작가 특유의 진지함과 재기발랄함, 요즘 2,30대가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새롭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주 많이 감동스러운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확실히 나의 가슴을 뛰게 했고 뭔가 행동하게 만들었다. 

 

Q. 그게 뭔지 말해 줄 수 있나?

 

A. 이를테면 나도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독자 직거래로 이메일 연재를 시작했다. 벌써 두 달째다. 다 이 작가 덕분이다. 작가가 아니었다면 난 그렇게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 건 누가  최초로 했는지 모른다. 이슬아 작가도 어떤 작가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자신도 따라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쓰는 건 자서전? 자전 에세이 또는 자전 소설? 요즘엔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따로 두질 않으니 좀 애매하긴 한데 아무튼 그런 계통(?)의 글을 쓰고 있다. 

 

제목은 <기억 수집가-유년시절>이다. 뭔지 감이 올 것이다. 그렇다. 자서전이든 자전 소설 에세이든 그건 쓰는 사람이 온전히 기억에 의해 쓰는 것이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붙여 보았고 현재는 유년시절에 관해서만 쓰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유년시절에 관한 것만으로도 결코 작지않은 분량이 될 것 같아서다. 그냥 어렸을 때 기억 나는대로 두서없이 자유롭게 쓰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시간순으로 배열되는 느낌이다. 아무튼 유년시절의 기억을 자유롭게 쓰는 중이다.

 

Q. 두 달째 이어 온다면 구독자가 꽤 있다는 말인데 직접 독자를 상대로 글을 전송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A. 구독자가 많은 건 아니다.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있고 없고의 차이인 것 같다. 난 정말 구독자가 한 사람도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구독자를 모집하는 광고를 올렸을 때 많이 떨렸다. 나 역시 안 해 보는 일을 하는 것이고 파워블로거도 아니기 때문에 과연 구독자가 있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있었다. 그것도 9명이나. 광고에 그런 문구를 넣었다. 단 한 사람만 신청해도 그 사람을 위해서 쓰겠다고.

 

사실 이 문구는 이슬아 작가가 처음 시작할 때 썼던 걸 벤치마킹 한 것이기도 한데 지금이야 핫한 작가가 됐지만 처음 광고를 했을 때만해도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는가. 누구나 처음은 있지 않은가. 독자가 많고 적은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내 글을 읽어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적잖이 안도했고 기뻤다.    

 

이슬아 작가는 일주일에 다섯 번을 보내준다는데 그건 너무 버거운 것 같고, 나는 거기서 하루를 뺀 4일 그러니까 목요일까지만 보내는데 처음엔 그것도 좀 버거웠던 것 같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해 볼만하다. 

 

보내면서 순간순간 이 작가를 생각했다. 처음에 이 작가도 그랬을까? 나 보다 어리지만 당차고 배울 게 많은 작가란 생각이 든다.

 

 

Q. 아까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봤다고 했다. 지금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독자에게 연재를 보내고. 그 차이나 장단점은 뭔가?

 

음...작가중엔 연재를 싫어하는 작가가 있다. 대표적인 작가가 하루키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그런 말을 했다. 매일 일정량을 써서 어딘가에 보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싫다고. 그 양반은 정말 그럴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꼭 해야하는 의무가 있지 않으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글을 쓰는 일에 있어서 마감이 있어야 쓸 생각이 난다. 그건 아마도 오래 전, 교회에서 연극 대본을 썼는데 마감에 시달리며 썼다. 그게 몸에 베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연재가 좋은 것 같다. 

 

또한 작가와 고독을 거의 동의어로 보고 작가는 철저하게 고독속에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떤 작가는 적당히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취미 활동도 겸하면서 즐겁게 글을 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도 철저한 고독속에서 글을 못 쓰겠더라. 아마 그래서도 대본 쓰기를 즐겨했던 것 같다. 대본은 어느 정도 배우들과도 소통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보기도 하는데 난 그게 좋다. 이를테면 이 일이 그런 것 같다. 독자와 간간이 소통하며 글을 쓴다. 난 그게 즐겁다.  

 

하지만 이 방법이 꼭 다 좋은 건 아니다. 출판사를 통하면 일단 뭔가 보호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자와 교정을 봐주는 사람이 있어 다소 부족하고 실수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또 일정 원고료를 받기 때문에 손해 볼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비해 독자 직거래만으로 언제 돈을 모으겠는가. 유명한 작가가 되지 않는 이상. 게다가 편집이며 오타, 맞춤법 심지어 광고까지 작가가 다 해야한다. 피곤한 일이다. 오타나 맞춤법의 경우, 분명 세심하게 뜯어보고 전송을 했는데 다음 날 다시 보니 어떻게 내가 이런 글을 보낼 수가 있을까 해서 다시 문장을 다듬어 보낸 적도 있다. 특히 오타는 좀비같고 신출귀몰하기까지 한다. 이걸 독자에게 보냈다고 생각하면 경악할 정도고 정말 이 일은 오래 못할 일이다 싶다.

 

하지만 작가라면(또는 작가를 지망생이라면) 한 번 정도는 수련 삼아 꼭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작가의 마음은 독자를 향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출판사에 가 있고 기타 여러 문학상에 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서 소기의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건 당연한 것 같다. 시스템이 그러니까.

 

하지만 이 일은 온전히 독자만 생각할 수 있다. 마치 창호지 하나를 두고 글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물론 아주 모르지는 않지만) 그들의 실루엣을 앞에 두고 글을 쓰는 것 같다.

 

게다가 작가가 직접 원고지 한 장 팔아 보지 않고 작가의 삶을 논할 수가 없을 것 같다.ㅎ 정말 작가가 모든 것을 다 해 보면 조금 과장해서 출판사 하나 차리겠다 싶다. 실제로 이슬아 작가는 <헤엄>이라는 1인 출판사를 운영중에 있다.

 

그리고 공부도 정말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혹시 글 쓰는데 뭔가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영감을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하며 보게 된다.

 

Q. 정말 생활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A. 하루살이 인생이란 말도 있는데 정말 이 일에 있어서 만큼은 오직 이 달만 생각한다. 그 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한다. 첫 달은 그렇게 9명의 구독자가 있어 비교적 순탄하게 시작을 했다. 그리고 그 한 달이 거의 다 지나고 있을 때 다음엔 또 어떻게 하지? 막막했다. 무엇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번에 구독한 독자가 다음 달에도 여전히 구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재로 전달의 구독자 거의 반이 이번엔 구독하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내가 뭘 잘못했나 약간 의기소침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빨리 떨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 사람을 위해 쓰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여전히 나에겐 독자로 남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새롭게 신청하는 독자들이 있다. 물론 새로운 독자들 거의 대부분은 나의 지인들이다. 내가 어디가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 내 글 한 번 읽어 보라고, 딱 한 달만 읽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안 읽어도 좋다는 장삿꾼 같은 멘트를 하고 있다.ㅎ 그야말로 매문이다. 내 글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의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몇주 전, 거의 10년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마치 목적있어 만난 것처럼 내 글을 권했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나 순순히 그러겠다고 해서 오히려 내가 다 미안할 정도였다. 또 어떤 사람은 놀라워 하며 한껏 관심을 표명했지만 요즘 책도 별로 읽지도 않는데다 SNS 에서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구독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또 어떤 독자는 읽을 때마다 거의 매번 짧은 피드백을 보내 오기도 한다. 그밖에 여러 이야기가 많지만 생략한다.

 

그런 일을 통해 내가 많이 달라졌다. 좀 더 적극적이 됐고, 이렇게 저렇게 독자의 소식을 알게되면 예사로 넘겨지지 않는다. 그를 위해 뭐라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결국 기도라도 하게 된다.  

 

난 요즘 거의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 해 볼 수 있을까에만 골몰해 있다. 더불어 세상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다.

 

Q. 그밖에 무엇을 해 봤나?

 

A. 이슬아 작가가 이달 초부터 연재 시즌2를 시작했다. 작가가 거의 매일 보내주는 연재를 받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독자로 체험해 보고 싶어 구독을 신청했고 지금 받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확실히 작가의 글을 책으로 읽는 것과 이메일로 읽는 건 다른 것 같다. 거의 비슷할 것 같은데, 나의 메일함을 보면 청구서나 스팸 메일 또는 업무에 관한 메일이 전부다.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인터넷에 여러 많은 글들이 넘쳐 난다. 그런데 구독료를 내고 본다는 게 가능한가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구독료를 내고 보니 다른 글이 아무리 좋고 유익하더라도 내가 돈 내고 보는 글부터 챙겨 보게 된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보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공짜를 좋아하는 것 같아도 그 보다는 돈을 낸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만족하면 그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작가의 이메일 연재 시즌2에 적잖이 만족한다. 글을 정말로 진지하게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시즌 2는 지난 시즌과 달리 작가가 여러 가지 시도를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뷰도 하고, 시각 장애자를 위해 음성으로 자신의 글을 읽어주기도 하고,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도 하고, 동료 작가를 위해 자신의 지면을 내어 주기도 한다. 정말 기획이나 운영을 잘 하는 것 같다.

 

Q. 부럽다는 생각 안 드나?      

 

A. 당연히 든다. 사람은 어차피 질투의 존재 아닌가. 특히 작가는 문화계 셀럽들과 인터뷰를 자주 시도할 모양인데 그게 참 부럽다. 발이 넓고 그야말로 발로 뛰는 작가구나 싶다. 작가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 한창훈 작가는 왜 작가가 됐냐는 질문에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작가는 그렇게 생각 보다 쉽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도 그냥 웃자고 한 말일 것이다.

 

어쨌든 부럽다가도 포기가 되는데 딱 한 가지 안 되는 게 있더라. 언젠가 이 작가가 자신의 책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그 앞에서  폼 잡고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거의 만 부 가까이 팔린 것으로 안다. 넘었을지도 모르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느 싯점이 지나면 내 글을 구독해 보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구독 신청하고, 무사히 출판도 하고 그러면 좋겠다.

 

Q. 독자 직거래 이메일 연재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작가 보단 오히려 독자의 역할이 더 커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승자독식의 사회 아닌가? 작가의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청탁은 받는 사람만 받고, 책은 내 본 사람만 내는 것 같다. 더구나 문학계 카르텔과 성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어느 특정인이 작가를 키운다는 생각은 이제 좀 없어져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의 비중이 더 커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중세 시대 호사가들은 단순히 예술작품을 사 들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그것이 당대 문예부흥을 이끌기도 했다. 독서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귀족이나 양반들만 할 수 있었던 시절 말이다. 그러나 이제 독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또한 후원은 작은 액수로도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난 독자들이 단순히 어느 작가의 책을 사 보는 것에서 작가를 후원하는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 직거래 이메일 연재는 단순히 독자가 작가의 글을 구독료를 내고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 작가를 후원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느 작가가 이런 또는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적어도 한 명의 작가만이라도 후원의 의미에서 구독을 했으면 한다. 이슬아 작가는 스스로를 연재 노동자라고 했는데 이 연재 노동도 해 보니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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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구독자를 모집합니다

 

#싸움

가끔 동네가 싸움판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디서 싸움이 났다하면 삽시간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 동그랗게 둘러싸고 구경하느라 바글댔다. 세상에서 제일 볼만한 것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지 않는가. 정말 볼만해서라기보다 왜 불이 났는지, 왜 싸움이 난 건지 그 원인을 알고 싶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건 우리 집과는 전혀 관련 없을 거란 모종의 믿음 같은 것이 배면에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아뿔싸. 우리 엄마가 싸움의 중심축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느 날 피아노를 갔다 오니 우리 집 앞에 한 떼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웅성웅성 떠들고 있었다. 놀라 냉큼 달려가 보니 엄마가 한쪽 눈 밑이 파여서 빨간 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싸움의 상대는 며칠 전 우리 집에 한 포대의 밤고구마를 팔았던 아줌마였다.

 

그땐 밤고구마를 먹는 건 큰 행운처럼 여겨졌던 때라 그 아줌마 덕에 그걸 먹게 된 건 기쁜 일이긴 하지만 너무 밤이라 잘못하면 목이 미어 먹다가 죽을 판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이러다 내 아이들 잡겠단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반품을 요구했던 모양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안 된다고 했었던 모양인가 보다. 그러다 뭐 때문인지 기습적으로 돌멩이 하나를 들어 엄마한테 던지더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렇게 맞기도 다행이지 잘못하면 실명이 됐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아줌마는 시장판에서 싸움꾼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아니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상대를 말 것이지 우리한테 제대로 된 밤고구마 사 먹이겠다고 하다 이런 엄청난 사단을 벌이다니. 그렇더라도 좀 심한 것도 사실이다. 화가 난다고 사람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돌을 던진단 말인가.

 

그렇게 한바탕 했음에도 성이 안 풀렸는지 엄마와 그 아줌마는 내가 보는 앞에서 2차전 했다. 다행인지 그땐 부천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와 계셔서 싸움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역시 오빠가 빠지지 않았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오빠는 그 아줌마의 뒤에 달라 붙어 머리끄덩이를 잡더니 한 뭉텅이의 머리카락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장난기가 역력했다. 오빠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웃어야할지 말아야 분간이 가질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악에 받혀 이것들아, 이년아.”하면서 쓰러졌는데 순간 신발이 벗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역시 할머니가 좀 웃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웃을 수는 없고 아무튼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 맘도 나도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금만 어렸더라도 잔뜩 겁을 먹고 엉엉 울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렇게 쓰러져서일까? 싸움은 생각 보다 빨리 끝났다. 요즘 같으면 누군가의 빠른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시작도하기전에 끝났을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는 혼이 나간 듯 마루 끝에 걸터앉아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후 언젠가 여름에 수영장을 다녀오다가 차멀미가 나서 시구문 시장에서 택시를 내리자마자 어느 맨홀 뚜껑에 한바탕 토를 했다. 정말 내 일생 그렇게 많은 토를 해 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는 급한 대로 물 한 양동이를 얻으려고 단골 야채 가게를 찾았는데 가는 날이 장난이었을까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예의 그 고구마 파는 아줌마가 여전히 누군가의 머리 끄덩이잡고 싸우는 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 놈의 버릇은 어디 안 가는구나 했단다. 글쎄, 지금 같으면 분노조절 장애라고 이해도 할 텐데 그런 이해가 없던 시절엔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할지 그냥 혀만 끌끌 찼다.

                   

엄마는 세월이 흐르고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하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안 그러겠는가. 나름 점잖은 마나님인데.

 

#엘리제를 위하여

그렇다고 내가 피아노를 단 1도 안 좋아했냐면 그렇지는 않다. 1 정도는 좋아했다. 그건 하논, 바이엘 이런 걸 치다가 피아노 명곡집인가 하는 악보집을 칠 때다. 특히 거기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란 곡이 있었는데 난 그것을 빨리 배우고 싶어서 조바심을 냈다. 난 그때까지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당시 선생님께 같이 배웠던 나 보다 나이 많은 언니가 둘 있었는데(그들은 친자매지간이었다) 그들은 피아노를 유창하게 쳤을 뿐 아름답게 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나도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유독 <엘리제를 위하여>는 뭔가 낭만적이며 동시에 고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조바심을 냈던 것도 당연했다. 물론 선생님은 악보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르치셨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아무데나 내키는 대로 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훑었는데 몇 곡은 뛰어넘기도 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는 없었다. 그런 곡은 재미없다고 생각하신 건지 아니면 가르쳐 받자 내가 따라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신 건지.

 

아무튼 그 곡으로 인해 처음으로 피아노에 의욕을 보였으니 선생님도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배운지 얼마 안 돼 선생님은 무슨 사정에 의해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나를 선생님의 친구에게 인계했다. 새로운 선생님도 나쁘진 않았지만 워낙에 내가 피아노를 싫어하니 엄마가 어느 날 결단을 한 것 같았다. 더 이상은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기로. 처음엔 그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정말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되다니. 이제 겨우 의욕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난 좀 아쉽긴 했지만 미련 같은 건 없었다.

결국 내가 처음으로 의욕을 보인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엄마를 위한 내 마지막 헌정 곡이 된 셈이다.

 

                                                           <기억 수집가- 유년시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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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0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를 갔다오니˝ - 피아노 학원에 갔다왔다는 말이죠? 그 시대에 피아노를 배웠다면 유복한 집에서 자란 걸로 생각됩니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저도 칠 줄 압니다. 저는 제 친구들 결혼식에서 웨딩 마치를 쳐 줬어요.(남의 서재에 와서 내 자랑질을 하고 있음.ㅋ)

그런데 피아노를 친 지 너무 오래돼서 지금은 못 칠 거예요. 다행으로 여기는 건 피아노 배울 때 왼쪽 손의 손가락도 같이 치니까 오른쪽의 두뇌가 발달했을 거라는 거죠. 대부분 왼손은 잘 안 쓰잖아요. 타자를 처음 배울 때 피아노를 양손으로 치던 경험이 있어서 쉽게 배웠어요. 뭐든 배워 두면 안 배운 것보다 나은 것 같아요. 요즘 부모들이 애들에게 피아노 가르치는 건 피아니스트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두뇌 발달을 생각해서일 거예요. 양손을 쓰고 발은 페달까지 밟고 눈은 악보까지 보니 두뇌가 얼마나 바쁘겠어요. 그만큼 두뇌는 발달하죠. 머리는 쓸수록 발달하니까요.

저도 애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게 했어요. 오른손을 쓰면 왼쪽 두뇌가 발달하고, 왼손을 쓰면 오른쪽 두뇌가 발달하고. 두뇌 한 쪽은 이성과 논리 영역이고 다른 한쪽은 감성, 상상력 영역으로 알고 있어요. 양손을 쓰면 이성과 감성, 다 발달하겠죠. 저는 지금도 왼손을 많이 쓰려고 걸레질도 왼손으로 할 때 많아요.

어머님 싸움. 재밌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경험이겠습니다. 저는 불 구경은 재밌는지 모르겠고 - 안타까운 마음에 - 싸움 구경은 재밌을 것 같습니다.
기억수집가. 연재 제목이 좋습니다.
(쓰다 보니 댓글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ㅋ)



stella.K 2019-04-05 14:42   좋아요 0 | URL
긴글 고맙습니다. 저도 제목은 마음에 듭니다.^^

2019-04-04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5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4-0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모 인간이 쓴 ‘창녕‘이라는 제목의 요상한 잡설이랑 느낌은 비슷한데 삼만 배 정도 더 좋네요

stella.K 2019-04-05 14:22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마워요. 제가 스요님으로부터 칭찬도 듣고.
그런데 좋긴 좋은데 구독하실 의향은 없으시고~ㅎ
전에 스요님이 글을 팔기 위해 꼭 책이란 물질적 요소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해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독자의 눈은 높은 것 같습니다.
감히 작가가 따라 갈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흐흑~


후애(厚愛) 2019-04-1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시고 감기조심하세요.^^

stella.K 2019-04-15 14:15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후애님도요.^^

2019-04-21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2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