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 따뜻한 아름다움

[조선일보   2006-12-19 00:18:52] 



윌리 로니스 첫 개인展 조선일보 미술관 ‘겸손한 예술가’ 눈에는 보였다

“1957년 여름 어느 날,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 있는 7월의 탑 위에 올랐다. 파리의 정경을 우두커니 바라보는데 이름 모를 남녀의 뒷모습이 내 시선에 들어왔다. 훔치듯 사진을 찍었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윌리 로니스(Willy Ronis·96)는 이 커플의 뒤로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은 뒤 ‘바스티유의 연인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첫사랑의 추억을 되새기는 이미지로 유명했지만, 사진 속 모델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다.

31년 뒤(1988년). 작가는 낯선 이로부터 사진 속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커플을 만나게 된다. 당시 파리로 막 상경한 시골의 가난한 연인이었는데, 이후 결혼을 해 이젠 파리의 골목 모퉁이에서 카페를 하고 있었다. 1957년 당시 처음으로 7월의 탑에 올랐던 이들은 카페 한쪽 벽에 이 사진의 포스터를 커다랗게 걸어 놓고 있었다.

윌리 로니스는 파리지앵들의 삶을 자연스럽고 시적으로 촬영해 프랑스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휴머니즘 사진작가다. 한국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사진전문 갤러리 뤼미에르의 기획으로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오는 23일부터 열린다. 작년 10월부터 7개월 동안 파리시청에서 했던 그의 전시에는 48만 관객이 들었다.

윌리 로니스는 자신을 ‘일상의 사진가’라고 부른다. “나는 절대 특별한 것이나 특종을 찍는 사진가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들을 찍는 사진가”라고 말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200여 점은 주로 1930년대에서 1950년대에 찍은 작가의 대표작이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소년은 자기 키만큼이나 큰 바게트 빵을 들고 바삐 달려가 파리의 평화로운 뒷골목 분위기를 전달한다(1952년작, 작은 파리지앵). 유람선 의자에 앉아 꼭 껴안은 채 한낮의 휴식을 즐기는 연인들 뒤로는 에펠탑이 지나간다(1949년작, 유람선). 또 엄마가 아이를 안고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 공원 장면이나, 부엌 유리창가에 올라 앉아 창밖의 꽁꽁 언 파리 시내를 바라보는 고양이, 에펠탑을 보고 흥분하는 관광객 등 작가는 길거리에 ‘분수처럼 흩어진’ 삶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전형적인 파리 풍경이지만 이를 통해 보편적인 휴머니즘 사진예술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인위적인 구도와 형식미를 추구하는 현대사진에서는 보기 어려운 맛이다.

작가는 “아름다움은 길 위에 있다”고 말한다. 일상의 영상 속에 인간과 사물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30년대 후반 시사 잡지에서 사진기자로도 일했기에 삶을 빠짐없이 기록한다는 저널리즘의 정신도 그의 작품엔 배어 있다. ▶23일~내년 2월 28일 조선일보 미술관. 일반 8000원. 청소년(중·고생) 6000원. 초등생 5000원. (02)517-2134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적오리 2006-12-19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보고 싶어요. 퍼가요~

stella.K 2006-12-2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밥헬퍼 2006-12-2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들고 뛰어 가는게 바케트아닌가요? 정말 신나는 '일상'입니다. 두번째 사진을 보고 있자니 저것이 어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작가의 눈에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평범한 것에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끔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들만 얼핏 보아도 정말로 그런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특별해야만 대단하다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메르헨 2006-12-21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적인게 가장 감동적인....그런 느낌이에요.^^
사소한게..작은게 더 큰 감동을 주고...

stella.K 2006-12-2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게트빵이 우리나라 거 보다 길지 않아요?^^

프레이야 2007-01-1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은 길 위에 있다,, 인상적입니다.

stella.K 2007-01-19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 있으시면 함 가 보세요. 전 아직 못갔습니다.^^
 

갈수록 책에 별점을 매긴다는 것이 어렵고, 과연 이게 의미가 있는 일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책도 추억과 같아서 읽었을 그 당시 좋은 책이 있는가 하면, 읽을 땐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는 책도 있다.

어떤 책은 개인적으론 딱히 좋지는 않은데 그 나름대로 값어치를 하는 책이 있기도 한다. 그러니 책에 별점을 매긴다는 것이 애매모호해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더욱 기억에 남고 좋다고 느껴지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이 나에겐 좋은 책이 되는 것 같다. 읽은 책은 몇권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올해 읽었던 책들을 특별한 순위 매김없이 적어 본다.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나온지는 꽤 되는 책이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올해 읽었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이 책만큼은 흥미롭게 읽었다. 재미있다. 나름 지적이고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고백과 삶이 녹아 있어서 애정이 간다.

 스티븐 킹은 작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번에 신데렐라가 되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열심히 쓰고 도전한다. 이 사람도 처음부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다.

 좋은 글, 잘 된 문장은 이렇게 쓴다
강신재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1997년 4월

이 책 역시 글쓰기에 관한 유명 작가들의 충고가 눈길을 끈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이 책 아무데나 펼쳐 읽으면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06년 2월

 고급스럽다. 책 관한 책들이 올해도 몇권 나온 걸로 아는데 이 책 한권쯤 책장에 모셔둬도 좋지 않을까 한다. 읽으면 더 좋고...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아손 그렙스트 지음, 김상열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월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개인적으로 아손 기자가 살아 있다면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졌다. 학교 때 국사 교과서는 좀 지루하지만 이 책은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사진도 흥미롭고. 물론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보는 거랑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를 보는 거랑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그러고 보면 내가 올해 본의 아니게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은근히 많이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하나 빼어나게 열심히 쓴 것도 없으면서 글쓰기에 관한 책은 왜 그리도 많이 사서 읽었담...마치 학교 때 참고서가 마음에 안 들어 이것저것 마구 사 들였던 학교시절이 생각나 부끄럽다.

이 책도 이승우 선생님의 그런 질타가 스며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으면 뭐하랴?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 것을...

  캥거루가 있는 사막
 해이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기대되고 애정이 가는 젊은 작가다. 나름의 논리(?)와 사유와 여유,입담이 잘 어우러져 있다. 난 앞으로 이 작가가 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요즘 드라마 <황진이> 덕분에 기생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드라마 '황진이'는 예인으로서의 기생이 어떠했는가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긴한데, 이 책은 기생문화가 사라진 요즘 그 맥을 잇고 있는 이 시대 마지막 기생들과 그에 관련된 사람들의 기구한 삶의 보고서다. 읽고 있노라면 처연함에 마음 한구석이 절여오고 작가의 빼어난 구성과 문체에 놀라게도 된다.

 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김훈을 더 말해 무엇하랴. 그의 가위눌리듯한 문체와 실존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결정의 지혜
자오광종 지음, 김산화.김태성 옮김 / 흐름출판 / 2005년 12월

  지략에 관한한 중국의 저작물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부흥 예배자 (증정 : 부흥 베스트 찬양 CD)
고형원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6년 4월

  비록 기독교 서적을 그리 많이 즐겨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우연한 기회에 읽게되면 새롭게 도전을 받게 되곤 한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도전이 이 책에서 소박하게 전해 온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우리는 흔히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잘 모를 때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삶의 반경이 그다지 넓지가 못해서 일수도 있고, 때론 내 삶이 너무 힘들어 남을 돌아보지 못할 때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매일 시민의 발이 되어주는 버스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과 애환이 있을 줄 누가 알아겠는가? 작가는 버스 운전기사로 퇴직했지만 그의 글발과 입담은 여느 작가 못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밖에도 몇권 더 있긴 하지만 생략한다. 세상에 책은 많다. 그러나 다 좋은 책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 책들이 더 많겠지. 체질상 책을 그다지 많이 못 읽는다고 핑계를 대곤했는데, 그것 정말 핑계인 것 같다. 내년엔 더 좋은 책을 읽기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주미힌 2006-12-18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권 중복되네용... 버스 운전사 아저씨 책은 저도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에요..

플레져 2006-12-18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많이 읽으셨네요.
스텔라님의 독서 스타일은 지적(지쩍), 인듯 ^^

이잘코군 2006-12-18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건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밖에 없어요.

해적오리 2006-12-1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딱 1권, 강산무진 구입했네요..언제면 읽을려나...^^;;;

Kitty 2006-12-19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 기생뎐 딱 한권 읽었네요 ^^
전 올해에는 달달한 책만 읽은 듯;;;

니르바나 2006-12-19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참 다양하게 많이도 읽으셨네요.
내년에는 더 부지런하게 읽으시겠다구요.
그럼 스텔라님도 문자중독 중증환자^^

stella.K 2006-12-1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2권은 알겠는데 나머지 한권은 뭘까? 그렇죠? 버스기사 아저씨 책 정말 좋죠?^^

플레져님/제가 저렇게 지적여 보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우? 겉으론 우아하나 속으론 발발이 춤을 췄다우. 흐흐

아프님/단지 님과 일치된 책이 없다는 것뿐이지 좋은 책은 님이 더 많이 읽으시잖아요.^^

해적님/강산무진 좋은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의 경우는 좋다고 생각해요. 함 읽어 보세요.^^

키티님/달달한? ㅎㅎ 에이, 꼭 그렇지만도 않던데요 뭐.^^

니르바나님/문자중독 되보는 게 소원이어여. 그래야 저 쌓여만 가는 책들을 다 소화할텐데...고백하자면 니르바나님이 오래 전에 보내 주신 책 아직도 못 읽고 있어요. 그 책 보면 늘 니르바나님 생각해요. ㅠ.ㅠ

2006-12-19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19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6-12-2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러셔야죠. 좀 있다 달려갑니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패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승자만을 기억할 뿐이다." 뭐 나름대로 멋있는 말 한마디 구사하려다 보니 툭 튀어 나온 게 이 말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이라면 역사는 얼마나 슬픈 것이 될 것인가? 그것은 솔직히 정치사나 리더십의 역사에서나 먹힐만한 얘기고,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지 못한 무지의 소치가 아닐까?

역사는 다양하다. 정치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경제사도 있고, 미시사나 일상사도 있다. 요즘엔 그나마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과시하는 책들이 쏟아져나와, 꼭 역사학도가 아니더라도 일반독자들에게도 흥미를 가질 법해 반갑고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솔직히 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더랬다. 주로 80년대 저 박제된 시절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역사는 암기과목이라고만 생각해 시험 때면 줄창 외우기에만 급급했지, 역사적 사건을 봐도 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TV 역사 드라마를 봐도 신봉승의 '조선왕조 500년'의 아류작들만 쏟아져 나오고 그것은 조선 정치사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뭔가 이데올로기적 틀속에 갖혀있어 여러 많은 극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질 않았다.  

그래도 시대가 좋아지긴 했다. 예전 같으면 조선시대만을 다뤘을 역사 드라마가 지금은 고려나 고구려 더 나아가 발해의 역사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 같으면, 소론과 노론, 동인과 서인 패로 나뉘어져서 싸움박질 하는 것만 보여주면 채널을 돌리곤 했는데 이젠 제법 긴박성을 가지고 보게 만든다. 그러니 한마디로 내가 역사에 흥미를 갖게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건 확실히 TV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TV라고 한계성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사 드라마는 주인공만을 부각시켜 보여주지마는 않는다. 그 인물이 살았을 사화적 배경에 촛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데, 영상물이다 보니 당대 현실적 복원보단 미적 감각에 더 많은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주인공이 입은 의상이나 소품 하나, 장소 하나는 화려하고 그럴 듯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저게 원래 저 모양이었을까? 나는 우리 조상들의 일상을 자꾸만 알고 싶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저자는 조선시대 주막은 후기 때 상거래가 발달이 되면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추론하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아무 때나 아무 시대나 주막이 보여지는 것은 좀 무리한 시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얼마 전 방영했던 드라마 <신돈>에서 보여졌던 주막과 술집과 작부들은 상당히 고급한 형태로 설정되어 있는 듯 하다. 또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기방에 차려져 나오는 온갖 산해진미들은 너무 화려하다. 조선시대는 그렇게 못 먹고 못 살아서 죽어 나가는 양민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하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누구라도 기생이 되어서 화려하게 차려입고 배풀리 먹고 거드름이나 피우지 뭐 때문에 저렇게 굶어 죽어 가겠는가? 그렇게도 그 시대는 정조가 그리도 중요하였더란 말이냐? 그리고 기방에 차려 나오는 떡벌어진 술상은 결코 다 먹는 법이 없다. 주연급 배우들이 그 앞에서 주저리 주저리 몇마디 대사을 읊어주고 그 술상을 뒤로하고 나온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먹을 것이 귀했다던 그 시절에? 이런 모든 것들이 당대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 보다 시대의 일상사가 궁금해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고...        

이런 궁금증을 채워주는 게 또한 요즘 역사학자들의 소임이라면 소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당위성엔 과거를 되새기며 보다 나은 미래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조선시대 과거제도를 통해 입신양명을 이루어 보고자 하는거나, 오늘 날 판검사되 보겠다고 고시촌에 사람이 넘쳐나는거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컨닝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그 옛날 조선시대 때 거벽이라고 하는 컨닝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니, 이렇게 역사는 아무리 돌고 도는 거라고는 하나, 과거와 현재의 닮은 꼴을 찾는 거라면 재미없는 것이 될 것이다. 단지 이 책에서 흥미로운 건 그 시대의 풍습이고 생활 모습이다. "어머나, 그 시대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 그러면서 허벅지를 냅다 내려칠 수도 있고, 키득키득 웃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가끔 역사를 생각하면 현대를 사는 모습이 서글프기도 하고 섬짓할 때가 있다. 우리 역사는 5천 년이라고 하는데 현대화는 불과 100년 안팎에 다 이루어졌다. 아니 적어도 100년 전에 서울의 공기는 이렇게 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공해와 온갖 스트레스와 그것을 이겨 보려고 하는 갖가지 행태들로 넘쳐난다. 여유란 도무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역사를 반추해 내면서 오늘의 우리네 삶을 조명하는 것은 의미있어 보인다. 더구나 역사의 큰 소용돌이의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에서 의미찾기란 제법 쏠쏠하지 않은가? 언젠가 우리네 삶도 역사의 한 귀퉁이로 밀려날텐데 우리 후대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조명해 줄까?

덧붙이자면, 역사적 사료의 인용과 제법 많은 도판의 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좀 건조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읽기엔 그다지 녹녹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지난 봄에 읽었던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란 책은 제법 읽는 재미가 쏠쏠 했는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로운 발바닥 2006-12-15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조선의 미시사에 관한 것인가요? 저도 영웅이 아닌 일반 평민들의 그 당시 삶이 궁금한데 이 책도 그런 종류인 것 같네요.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도 그런 기획의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암튼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현대문명의 이기들이 5000년, 아니 100년 역사에 비해서도 극히 최근에야 가능해졌다는 것을 평소에는 너무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stella.K 2006-12-1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고 봐야겠죠? 한번 보셔요.^^
 

  • 문맹률 높았던 멕시코에서 그의 벽화는 국민헌장 같은 것
  • [김병종의 라틴 화첩기행/6]
    멕시코 - 디에고 리베라 기념관
  • 김병종·화가 
    •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의 자화상
    • #1.회색 성채 속의 벽화가

      벽은 단절이다. 너와 나 사이에 가로 놓인 금이다. 미안하지만 이 앞에서 이만 돌아서라는 표지이다. 인생에는 시멘트와 벽돌로 된 벽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더 견고한 벽이 있다. 내가 세운 벽 앞에선 오만해지고 누군가가 세워놓은 벽 앞에선 막막하다. 벽 앞에 서면 우리는 돌아설 준비를 한다.

      벽에 대한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집어버린 사람이 있다. 회색의 콘크리트 벽에 색채의 마술을 건 남자. 벽으로 하여금 살아 꿈틀거리며 생을 긍정하게 만든 한 남자가 있다.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시티에서 디에고 리베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란다.

      과연 그럴까. 초록빛 택시에 올라 디에고 리베라를 외치자 기사는 걱정 말라는 듯 활짝 웃으며 속도를 높인다. 초행의 여행자에겐 흡사 미로처럼 보이는 골목길을 돌고 돌더니 거대한 성채처럼 보이는 기념관 앞에 차를 세운다. 프리다 칼로의 기념관과는 지척이라 했는데 가까운 길을 놔두고 뺑뺑이를 돈 건 아닌가, 싶었지만 침묵할 수밖에. 천하태평인 얼굴로 무어라 빠르게 떠들어대는 그에게 한마디라도 했다가는 쏟아지는 땡볕 아래 서서 스페인어의 폭포를 고스란히 맞을 일밖에 뭐가 있겠는가. 바벨탑 이후로 모든 여행자는 언어 앞에서 절망한다.

    • 춤추는 선인장, 노래하는 마리아치, 일상의 고통을 춤과 노래 속에 녹여내는 멕시코인의 낙천성
    • 기념관은 그 외양만으로도 자신을 드러내는 법인가. 프리다의 집이 온통 카리브해의 푸른 물빛을 뒤집어쓰고 있는 데 반해 디에고의 기념관은 짙은 회색 현무암으로 지어져 무뚝뚝하고 억센 그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산사같이 적막한 공간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그 드넓은 마당엔 쨍한 햇빛 속에 귀가 멍멍할 정도의 정적과 고요만이 고여 있다.

      위용을 자랑하는 이 미적 탐식가의 집은 그러나 찾은 이가 나 혼자였다. 하긴 기념비적인 그의 벽화들은 대부분 공공건물에 남아있으니 멕시코시티 전체가 그의 미술관이라 할 수 있겠다.

    • 멕시코 벽화운동의 기수. 마야와 아스텍 신화, 혁명의 이념 등을 수많은 벽화로 남겼다. 코요아칸에 그의 기념관이있다.
    • #2 벽으로 말하게 하라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서자 두터운 살집의 디에고의 커다란 사진이 시야를 압도한다. 누구라도 그 카리스마 넘치는 형형한 눈빛과 부딪치면 그 빛의 그물에 갇혀버리고 말 것 같은 인상이다.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저 남자의 어떤 면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뭇 여인들을 사로잡았을까.

      이젤화를 애들 장난 같은 짓이라고 여겼던 디에고였지만, 실내에는 그의 작업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색채는 사뭇 다르지만 멕시코의 박수근이라고나 할까. 작은 키에 검은 머리와 흑갈색 피부를 한, 대지를 닮은 토착 인디오의 모습들이다. 부당한 일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뼈가 부서지게 일했던 순박한 농민들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던 디에고는 그들을 불러들여 자기 화면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일찍이 유럽 유학을 떠나 다양한 미술사조를 접했던 디에고는 특별히 르네상스시대의 벽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귀국한 그는 벽화운동에 뛰어든다. 작품을 소장한 자만이 감상할 수 있는 그런 미술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화면처럼 세속이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세계가 아니라 마야문명을 아우라로 삼아 인디오의 삶을 멕시코적인 색채로 표현한 그림들이었다. 그의 벽화는 온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와 애정을 받게 된다.

      문맹률이 높은 멕시코에서 그의 그림은 국민헌장 같은 것이었다. 국가적 슬로건을 그림으로 형상화해서 보는 순간 벼락같이 애국과 민족적 자긍심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했으니까.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궁 안의 벽화이다. 그 벽화는 역대 대통령을 여럿 갈아 치우며 그들을 한갓 스쳐가는 손님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궁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디에고의 벽화였다. 실로 얼마나 많은 나라 안팎의 사람들이 찾아와 그 그림 앞에서 모자를 벗었던가.

      전시장의 한 벽을 남녀노소의 인디오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사이 들풀 같은 그들이 스멀스멀 움직이며 일어선다. 바벨탑 이전의 언어로 그들이 토해내는 말들이 내 귓속으로 수런수런 들어온다. …그래도 삶이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힘든 노동 끝에 아내가 구워준 토르티야와 데킬라를 마실 수 있다면 이 생도 견딜 만하지 않은가. 이파리를 가시로 바꾸며 저 선인장들이 뜨거운 태양을 견뎌내듯 산다는 건 어차피 무언가를 견뎌내는 것이 아니던가….

    • 고통스러운 삶을 그리지만 독특한 생명력과 낙천성을 잃지 않는 그의 벽화는 강렬한 생기를 발산한다.
    • #3.벽 위에 남겨진 사람들

      마지막으로 뒤돌아본 어둑신한 실내. 대형 사진 속의 그가 우리에 갇힌 맹수같이 느껴진다. 자기 안의 정열과 태양이 가리키는 대로 거침없이 생을 살다간 남자.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프리다 칼로가 친구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배가 고프면 매우 화를 내고, 예쁜 여자라면 아무에게나 칭찬을 해. 그리고 가끔은, 찾아온 여자들과 함께 사라져버려. 그녀들에게 자신의 벽화를 보여준다는 구실로 말이야.’

      그 주체할 수 없었던 리비도의 사내는 이제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만 남아있다. 그를 따르던 수많은 민초들을 벽 위에 고스란히 남겨놓은 채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문맹률 높았던 멕시코에서 그의 벽화는 국민헌장 같은 것
  • [김병종의 라틴 화첩기행/6]
    멕시코 - 디에고 리베라 기념관
  • 김병종·화가 
    •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의 자화상
    • #1.회색 성채 속의 벽화가

      벽은 단절이다. 너와 나 사이에 가로 놓인 금이다. 미안하지만 이 앞에서 이만 돌아서라는 표지이다. 인생에는 시멘트와 벽돌로 된 벽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더 견고한 벽이 있다. 내가 세운 벽 앞에선 오만해지고 누군가가 세워놓은 벽 앞에선 막막하다. 벽 앞에 서면 우리는 돌아설 준비를 한다.

      벽에 대한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집어버린 사람이 있다. 회색의 콘크리트 벽에 색채의 마술을 건 남자. 벽으로 하여금 살아 꿈틀거리며 생을 긍정하게 만든 한 남자가 있다.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시티에서 디에고 리베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란다.

      과연 그럴까. 초록빛 택시에 올라 디에고 리베라를 외치자 기사는 걱정 말라는 듯 활짝 웃으며 속도를 높인다. 초행의 여행자에겐 흡사 미로처럼 보이는 골목길을 돌고 돌더니 거대한 성채처럼 보이는 기념관 앞에 차를 세운다. 프리다 칼로의 기념관과는 지척이라 했는데 가까운 길을 놔두고 뺑뺑이를 돈 건 아닌가, 싶었지만 침묵할 수밖에. 천하태평인 얼굴로 무어라 빠르게 떠들어대는 그에게 한마디라도 했다가는 쏟아지는 땡볕 아래 서서 스페인어의 폭포를 고스란히 맞을 일밖에 뭐가 있겠는가. 바벨탑 이후로 모든 여행자는 언어 앞에서 절망한다.

    • 춤추는 선인장, 노래하는 마리아치, 일상의 고통을 춤과 노래 속에 녹여내는 멕시코인의 낙천성
    • 기념관은 그 외양만으로도 자신을 드러내는 법인가. 프리다의 집이 온통 카리브해의 푸른 물빛을 뒤집어쓰고 있는 데 반해 디에고의 기념관은 짙은 회색 현무암으로 지어져 무뚝뚝하고 억센 그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산사같이 적막한 공간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그 드넓은 마당엔 쨍한 햇빛 속에 귀가 멍멍할 정도의 정적과 고요만이 고여 있다.

      위용을 자랑하는 이 미적 탐식가의 집은 그러나 찾은 이가 나 혼자였다. 하긴 기념비적인 그의 벽화들은 대부분 공공건물에 남아있으니 멕시코시티 전체가 그의 미술관이라 할 수 있겠다.

    • 멕시코 벽화운동의 기수. 마야와 아스텍 신화, 혁명의 이념 등을 수많은 벽화로 남겼다. 코요아칸에 그의 기념관이있다.
    • #2 벽으로 말하게 하라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서자 두터운 살집의 디에고의 커다란 사진이 시야를 압도한다. 누구라도 그 카리스마 넘치는 형형한 눈빛과 부딪치면 그 빛의 그물에 갇혀버리고 말 것 같은 인상이다.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저 남자의 어떤 면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뭇 여인들을 사로잡았을까.

      이젤화를 애들 장난 같은 짓이라고 여겼던 디에고였지만, 실내에는 그의 작업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색채는 사뭇 다르지만 멕시코의 박수근이라고나 할까. 작은 키에 검은 머리와 흑갈색 피부를 한, 대지를 닮은 토착 인디오의 모습들이다. 부당한 일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뼈가 부서지게 일했던 순박한 농민들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던 디에고는 그들을 불러들여 자기 화면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일찍이 유럽 유학을 떠나 다양한 미술사조를 접했던 디에고는 특별히 르네상스시대의 벽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귀국한 그는 벽화운동에 뛰어든다. 작품을 소장한 자만이 감상할 수 있는 그런 미술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화면처럼 세속이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세계가 아니라 마야문명을 아우라로 삼아 인디오의 삶을 멕시코적인 색채로 표현한 그림들이었다. 그의 벽화는 온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와 애정을 받게 된다.

      문맹률이 높은 멕시코에서 그의 그림은 국민헌장 같은 것이었다. 국가적 슬로건을 그림으로 형상화해서 보는 순간 벼락같이 애국과 민족적 자긍심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했으니까.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궁 안의 벽화이다. 그 벽화는 역대 대통령을 여럿 갈아 치우며 그들을 한갓 스쳐가는 손님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궁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디에고의 벽화였다. 실로 얼마나 많은 나라 안팎의 사람들이 찾아와 그 그림 앞에서 모자를 벗었던가.

      전시장의 한 벽을 남녀노소의 인디오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사이 들풀 같은 그들이 스멀스멀 움직이며 일어선다. 바벨탑 이전의 언어로 그들이 토해내는 말들이 내 귓속으로 수런수런 들어온다. …그래도 삶이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힘든 노동 끝에 아내가 구워준 토르티야와 데킬라를 마실 수 있다면 이 생도 견딜 만하지 않은가. 이파리를 가시로 바꾸며 저 선인장들이 뜨거운 태양을 견뎌내듯 산다는 건 어차피 무언가를 견뎌내는 것이 아니던가….

    • 고통스러운 삶을 그리지만 독특한 생명력과 낙천성을 잃지 않는 그의 벽화는 강렬한 생기를 발산한다.
    • #3.벽 위에 남겨진 사람들

      마지막으로 뒤돌아본 어둑신한 실내. 대형 사진 속의 그가 우리에 갇힌 맹수같이 느껴진다. 자기 안의 정열과 태양이 가리키는 대로 거침없이 생을 살다간 남자.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프리다 칼로가 친구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배가 고프면 매우 화를 내고, 예쁜 여자라면 아무에게나 칭찬을 해. 그리고 가끔은, 찾아온 여자들과 함께 사라져버려. 그녀들에게 자신의 벽화를 보여준다는 구실로 말이야.’

      그 주체할 수 없었던 리비도의 사내는 이제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만 남아있다. 그를 따르던 수많은 민초들을 벽 위에 고스란히 남겨놓은 채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