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맹률 높았던 멕시코에서 그의 벽화는 국민헌장 같은 것
  • [김병종의 라틴 화첩기행/6]
    멕시코 - 디에고 리베라 기념관
  • 김병종·화가 
    •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의 자화상
    • #1.회색 성채 속의 벽화가

      벽은 단절이다. 너와 나 사이에 가로 놓인 금이다. 미안하지만 이 앞에서 이만 돌아서라는 표지이다. 인생에는 시멘트와 벽돌로 된 벽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더 견고한 벽이 있다. 내가 세운 벽 앞에선 오만해지고 누군가가 세워놓은 벽 앞에선 막막하다. 벽 앞에 서면 우리는 돌아설 준비를 한다.

      벽에 대한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집어버린 사람이 있다. 회색의 콘크리트 벽에 색채의 마술을 건 남자. 벽으로 하여금 살아 꿈틀거리며 생을 긍정하게 만든 한 남자가 있다.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시티에서 디에고 리베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란다.

      과연 그럴까. 초록빛 택시에 올라 디에고 리베라를 외치자 기사는 걱정 말라는 듯 활짝 웃으며 속도를 높인다. 초행의 여행자에겐 흡사 미로처럼 보이는 골목길을 돌고 돌더니 거대한 성채처럼 보이는 기념관 앞에 차를 세운다. 프리다 칼로의 기념관과는 지척이라 했는데 가까운 길을 놔두고 뺑뺑이를 돈 건 아닌가, 싶었지만 침묵할 수밖에. 천하태평인 얼굴로 무어라 빠르게 떠들어대는 그에게 한마디라도 했다가는 쏟아지는 땡볕 아래 서서 스페인어의 폭포를 고스란히 맞을 일밖에 뭐가 있겠는가. 바벨탑 이후로 모든 여행자는 언어 앞에서 절망한다.

    • 춤추는 선인장, 노래하는 마리아치, 일상의 고통을 춤과 노래 속에 녹여내는 멕시코인의 낙천성
    • 기념관은 그 외양만으로도 자신을 드러내는 법인가. 프리다의 집이 온통 카리브해의 푸른 물빛을 뒤집어쓰고 있는 데 반해 디에고의 기념관은 짙은 회색 현무암으로 지어져 무뚝뚝하고 억센 그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산사같이 적막한 공간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그 드넓은 마당엔 쨍한 햇빛 속에 귀가 멍멍할 정도의 정적과 고요만이 고여 있다.

      위용을 자랑하는 이 미적 탐식가의 집은 그러나 찾은 이가 나 혼자였다. 하긴 기념비적인 그의 벽화들은 대부분 공공건물에 남아있으니 멕시코시티 전체가 그의 미술관이라 할 수 있겠다.

    • 멕시코 벽화운동의 기수. 마야와 아스텍 신화, 혁명의 이념 등을 수많은 벽화로 남겼다. 코요아칸에 그의 기념관이있다.
    • #2 벽으로 말하게 하라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서자 두터운 살집의 디에고의 커다란 사진이 시야를 압도한다. 누구라도 그 카리스마 넘치는 형형한 눈빛과 부딪치면 그 빛의 그물에 갇혀버리고 말 것 같은 인상이다.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저 남자의 어떤 면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뭇 여인들을 사로잡았을까.

      이젤화를 애들 장난 같은 짓이라고 여겼던 디에고였지만, 실내에는 그의 작업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색채는 사뭇 다르지만 멕시코의 박수근이라고나 할까. 작은 키에 검은 머리와 흑갈색 피부를 한, 대지를 닮은 토착 인디오의 모습들이다. 부당한 일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뼈가 부서지게 일했던 순박한 농민들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던 디에고는 그들을 불러들여 자기 화면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일찍이 유럽 유학을 떠나 다양한 미술사조를 접했던 디에고는 특별히 르네상스시대의 벽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귀국한 그는 벽화운동에 뛰어든다. 작품을 소장한 자만이 감상할 수 있는 그런 미술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화면처럼 세속이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세계가 아니라 마야문명을 아우라로 삼아 인디오의 삶을 멕시코적인 색채로 표현한 그림들이었다. 그의 벽화는 온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와 애정을 받게 된다.

      문맹률이 높은 멕시코에서 그의 그림은 국민헌장 같은 것이었다. 국가적 슬로건을 그림으로 형상화해서 보는 순간 벼락같이 애국과 민족적 자긍심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했으니까.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궁 안의 벽화이다. 그 벽화는 역대 대통령을 여럿 갈아 치우며 그들을 한갓 스쳐가는 손님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궁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디에고의 벽화였다. 실로 얼마나 많은 나라 안팎의 사람들이 찾아와 그 그림 앞에서 모자를 벗었던가.

      전시장의 한 벽을 남녀노소의 인디오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사이 들풀 같은 그들이 스멀스멀 움직이며 일어선다. 바벨탑 이전의 언어로 그들이 토해내는 말들이 내 귓속으로 수런수런 들어온다. …그래도 삶이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힘든 노동 끝에 아내가 구워준 토르티야와 데킬라를 마실 수 있다면 이 생도 견딜 만하지 않은가. 이파리를 가시로 바꾸며 저 선인장들이 뜨거운 태양을 견뎌내듯 산다는 건 어차피 무언가를 견뎌내는 것이 아니던가….

    • 고통스러운 삶을 그리지만 독특한 생명력과 낙천성을 잃지 않는 그의 벽화는 강렬한 생기를 발산한다.
    • #3.벽 위에 남겨진 사람들

      마지막으로 뒤돌아본 어둑신한 실내. 대형 사진 속의 그가 우리에 갇힌 맹수같이 느껴진다. 자기 안의 정열과 태양이 가리키는 대로 거침없이 생을 살다간 남자.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프리다 칼로가 친구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배가 고프면 매우 화를 내고, 예쁜 여자라면 아무에게나 칭찬을 해. 그리고 가끔은, 찾아온 여자들과 함께 사라져버려. 그녀들에게 자신의 벽화를 보여준다는 구실로 말이야.’

      그 주체할 수 없었던 리비도의 사내는 이제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만 남아있다. 그를 따르던 수많은 민초들을 벽 위에 고스란히 남겨놓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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