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 - 홍콩, 영화처럼 여행하기
주성철 지음 / 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안한 일이다. 딱히 누구에게라고는 할 수 없지만. 미안하다면 홍콩에게고, 원망을 하라면 나에게 해야 한다.  

사실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홍콩에 대해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아는 것도 정말 없다는 걸 알았다. 말에 의하면 그 나라는 덥고 습하다던데, 이런 날씨를 좋아하지 않느 나로선 홍콩이 매력적일리는 없다. 아니 더 정확히는 난 더운 것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어느 면으로는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습한 것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여름에 갖는 나의 양가 감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니 홍콩이 좋게 느껴질리가 없었던 것이다. 

나를 원망하기로는 무지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홍콩을 모르기로서니 이 정도일까 싶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자성어처럼 된 이를테면, <아비정전>이나, <타락천사>니, <천장지구>니 하는 영화가 그저 막연히 중국 그것도 대만 영화일 거라는 믿음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런 여타의 모든 영화들이 알고보면 홍콩 영화였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비로소 알았다. 즉 말하자면, (지금은 좀 그런 게 없어졌지만)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이나 하면 일본 사람을 떠올리듯이, 나는 중국과 대만과 홍콩을 싸잡아서 대표로 중국만을 기억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긴, 영화란 게 재미가 우선이지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무에 그리 중요한가? 그런데 이것도 좀 무식한 발상이긴 하다. 영화에 조금만 관심있으면, 감독이 누구냐(어떤 땐 각본을 누가 썼느냐까지), 누가 나왔느냐, 풍은 어떠냐, 앵글이 어떠냐까지 깐깐하게 다 따지면서 메이드 인 어느 나란지를 모른 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또 그런 게 눈에 잘 안 들어 오는 건, 나라 보단 감독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나라의 풍이 있다고 해도, 허리우드 풍이 느껴지는 게 있고, 허리우드 영화에 프랑스 풍이 들어오기도 하고 등등. 이렇게 섞여있는 경우도 많다. 어떤 경우엔 2개국 이상 합작 영화도 많아 무국적인 경우도 많다. 그러니 나라가 눈에 들어올리는 만무해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생각했던 건, 홍콩도 알고보면 영화를 정말 많이 만들었구나.하는 것이었다. 이게 또 새삼스러운 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지가 얼마인가? 그러니 홍콩이란 나라를 특별히 따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중국이 홍콩이고, 홍콩이 중국 아니겠어?' 이 자조 섞인 말을 홍콩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난 홍콩 영화를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다. 그 유명한 <아비정전>도 이 책을 보면서 봤다(아, 그 영화의 지극한 허무주의란...!). 80년 대 한때 홍콩 르와르가 인기를 끌었을 때도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왜 그렇게 관심이 없었을까를 생각해 봤더니, 난 총 쏘고, 피가 난장이 돼 죽어 나가는 것도 싫지만, 마치 사자성어 같은 제목들이 너무 낮설었던 게다. 우리나라 영화나 허리우드 영화, 하다못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영화들의 제목들을 보라. 한 쾌에 뭔지 알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자성어 같은 제목들이 뭘 의미하는지 딱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좀처럼 가까이 할 수 없었던 것도 같다. 하긴 코카콜라란 고유명사도 자기화해서 부르는 중국인데 같은 동복형제나 다름없는 홍콩이 그런 고고함 흩을 리가 없다. 그러니 나 같은 한반도의 관객이 모르는 거야 어찌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더구나 성룡이니, 주윤발이니, 장국영이 유명한 배우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허리우드의 한 이름 값하는 배우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고, 어떤 경우엔 자국의 영화배우 보다 인지도가 떨어진다. 그러니 어쩌랴? 

이 책을 보니 지금 홍콩엔 장국영이 없다는 게 새삼 실감있게 다가왔다. 그전까지 내가 <아비정전>을 못 봤다 뿐이지 아주 드물게는 그래도 그가 출연한 영화를 몇 편 보긴 했다. 장국영은 뭐랄까? 고독하면서도 미소년 같은 이미지가 있다. 홍콩을 여행할 때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볼 것이냐에 따라 그 느낌이나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저자가 영화적 관점에서 홍콩을 소개하고 있어서일까? 홍콩은 장국영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래도록 영국에 속해 있어서일까? 뭔가 안개의 베일에 쌓여있는 듯하고, 그 습한 기후조건 때문에 촉촉하기도 하다. 중국에 반환이 됐지만, 중국의 배려가 있어서일까? 완전히 중국화 되지도 않았다. 그냥 조용하게 남이 알아주든, 못 알아주든 홍콩은 홍콩으로 살아가고 있다.  

책은 비교적 성실하게 홍콩에서 이제까지 영화화된 장소들을 친절하게 짚어주고 있었다(글 보단 사진이 많아 보기도 좋다). 미국의 몇몇 영화(이를테면 <다크 시티> 같은)가 홍콩에서 배경을 따왔다는 건 새롭게 안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예가 있었나? 괜히 질투가 난다. 홍콩이 그토록이나 자국의 영화를 많이 알려왔다는 점에서, 홍콩은 어찌보면 영화 도시인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홍콩 영화를 지극히 좋아해서 이런 책을 썼을 것이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를 이렇게 소개한 책이 있을까? 의문스러워졌다. 저자가 아무리 홍콩을 좋아한다고 해도, 난 역시 국수주의자일 수 밖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약간은 우울하고 차분한 영화를 보고 싶다면 홍콩 영화를 보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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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0-12-0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놀. 지은이 이름.. 분명 주성철이라고 적혔는데, 주성치!라고 읽었음. ㅜㅜ
그러고보니 헷갈려요. 저는 주성치 팬이고, 소림축구랑 쿵푸허슬을 적어도 열 번 씩은 봤는데 그게 홍콩 영환지 중국 영환지?.. 그런 생각은 안해봤거든요. 아무튼 제가 기다리는 건 주성치 다음 영화구요^^

stella.K 2010-12-07 17:5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지요? 저도 특별히 홍콩인지 중국인지 생각없이 봤는데
우리가 알만한 중국영화들이 알고 보면 홍콩에서 만들어졌다는군요.
이름은 정말 헷갈릴만해요.^^

cyrus 2010-12-08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저자의 이름을 보는 순간, 주성치인줄 알았다는, , , (-_-)a
혹시나 홍콩에 있는 영화 촬영지에 가게 되면 나름 유용한 정보가 될 거 같습니다.

stella.K 2010-12-08 16:01   좋아요 0 | URL
네. 그럴 것 같아요.
무턱대고 나서는 것보다 나름 테마적으로 정보를 알고 떠나는 것이 좋갰죠?^^
 
악의 종말
롤프 데겐 지음, 박규호 옮김 / 현문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이 나름 의미심장하다. 악의 종말이라니(소설책 제목을 연상케도 한다). 읽다보니 왜 제목을 그렇게 붙였는지 알 것도 같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자면서 무신론자다. 읽다보면, 인간의 이타성이나, 양심, 도덕성을 꽤나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러느니만큼 인간의 선이나 악도 진화론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긴, 오늘 날은 절대성의 시대가 아니다. 합리적이며, 상대적인 것이 지배하는 시대다. 과거 절대성이 지배하던 세대는 선과 악을 말하며, 인간의 구원과 타락에 관해 또는 현세와 내세에 관해 명확하게 얘기하고자 하는 사조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날에 와서는 절대성이 약화가 되면서 상대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선과 악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으며, 구원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그냥 오로지 현세의 안주와 현상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이 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또 나름 읽는 재미도 있다. 얼마만이던가? 내가 심리학 책을 이렇게 재밌게 읽어 본 게. 나도 한때는 '인간'을 학문적으로 규명한 책들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그래서 세상에 나온 심리학이란 심리학책은 모조리 읽겠다는 당찬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결국 몇 권 못 읽고 다른 쪽으로 옮겨갔지만. 그런데 오랜만에 이쪽 분야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재밌다는 생각을 했으니, 나름 의미없는 독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미있다고 해서 그 책이 다 옳은 말만하고,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하긴, 저자가 상대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주장과 논리를 펴고 있는데, 그것을 절대적으로 맞다고 받아 들이는 건 어패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해도 그것은 그냥 저자의 관점일뿐 인간의 존재를 완벽히 증명해내지는 못한다(그것을 저자 자신도 알고 있을까?). 무신론도 신이 없다고 하기이전에 그것도 하나의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인간인 우리가 우주의 삼라만상을 무엇으로 다 증명해 낼 수 있으며, 신에 관해서 그리고 선과 악에 관해 무엇으로 다 규명해 낼 수 있을 것인가? 단지 선과 악도 인간의 진화의 산물이라고 결론짓는 저자의 태도가 섣불러 보인다. 선과 악이 인간 내부에 있는지 외부에 있는지 그것을 어찌 단정지어서 말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적 입장이라면 선이나 악은 인간 내부에만 존재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것은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논의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또한 인간이 인간을 규정하는 것과 하나님이 인간을 보시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은 성경이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저자는 인간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고 단정 짓는 태도가 석연치 않다. 책의 구성도 자신의 전공인 진화심리론에 관해서는 그토록이나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서도, 악을 종교적 관점에서 다룬 부분은 슬쩍 지나가는 느낌이다. 이는 그가 무신론자라서 그렇다고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공정성을 잃은 주장은 좀 마뜩치 않다.  

본래 선이나 악은 상대적 가치를 가지고 규명되어질 수는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선과 악은 원래 절대성을 담보로 하고 있다. 그럴 때 인간의 이성이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그저 인간의 정신작용 내지는 진화의 산물이라고 축소하는 건, 신을 인정하지 않는 고도의 전략일뿐이다. 하지만 신이 없다고 어떻게 확언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게 믿기로 작정할 뿐, 신이 있고 없고를 규명하는 것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는 태도를 취할 뿐이다. 그러니 자기 모순에 빠질까봐 슬쩍 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특히 책의 말미에 해당하는 '선은 신으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부분을 보라.) 원래 과학을 말하고자 할 때 진화론 못지않게 창조론도 다루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진화론은 가르치지만 창조론은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은 종교의 유무를 떠나서 학문과 교육의 균형을 잃고 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인간이 과연 이타성을 기르고, 양심에 거리끼지 않으며, 도덕적으로 올바르면 유토피아를 건설하게 되는 걸까? 우리가 악을 종식 시킨다고 구원이 이루어지는가? 하지만 우리가 알듯이 악은 소멸되지 않으며, 따라서 유토피아는 이상향일뿐 현세에선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악의 종말을 우논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어찌보면 이번 나의 독서는 무익한 독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아예 안 읽어서 모르는 것 보단 읽고 무익하다, 유익하다 판단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무익을 아는 것도 한편 유익 아니겠는가?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인터넷을 서핑하다 어떤 사람이 무신론자를 위한 10계명이라며 인용을 했다. 그게 좀 가관이란 생각이 든다. 과연 이렇게 해서라도 신을 부정하며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일까?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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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紫霞) 2010-12-05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신론자를 위한 10계명 궁금하네요.

stella.K 2010-12-06 11:53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10계명을 옮겨볼까 하다가
지워버렸어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나에게도 괴로운 걸 남한테 행하지 말라든지,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갖고, 의심하라, 또 뭐라더라...잘못된 것이
있더면 믿었던 거라도 과감히 버려라. 등등.
그래서 그럴까? 읽을 땐 재밌었는데 끝으로 갈수록 저자가 전 좀
신뢰가 가지 않더라구요.

cyrus 2010-12-05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도서관에 들리다가 신간도서 코너에 이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소설이 아니었군요. ^^;; 진화심리학을 바탕을 둔 무신론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독특하네요.

stella.K 2010-12-06 12:10   좋아요 0 | URL
저 글을 쓰고 빼먹은 게 좀 있구나, 후회하고 있는 중이어요.
저자가 대단한 걸 말하는 것 같아도 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별로예요. 신학에서도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거든요.
악을 제거하거나, 종말을 맞는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죠.
신학에선 인간의 죄성을 말하고 있거든요. 그로인한 타락을 말하고 있구요.
인간은 죄성을 없이할 수 없으며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보고 있지요. 그런데 저자는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를 회복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악이 완전히 제거될 수 없다는 걸 저자도 알고 있으면서
왜 그토록 무신론적 관점을 유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이렇다할 결론도 없이 ing라고나 할까요?
진화론이 원래 그렇잖아요. 현재진행형.
그런데 요즘엔 사화심리학을 진화심리학이라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이 책은 악의 종말 어쩌구하기전에 사회심리학 책 같거든요.
제목을 다르게 정했더라면 저에게 욕을 덜 먹었을텐데 싶어요.ㅋ
 
 전출처 : stella.K > 그는, 손톱을 기르는 버릇이 있다-노희준 작가 강연회에서

지난 11월 25일, 노희준 작가가 강연회에 다녀왔다.  

그는, 최근 <오렌지 리퍼블릭>(자음과 모음)이란 장편소설을 냈고, 출간을 기념하여 강연회를 갖게된 것이다. 하지만, 강연은 그것과는 상관없는, 소설창작에 관한 강연이었다(그는 실제로 한 인터넷 대학을 비롯해 몇 군데에서 소설 창작을 강의 한다고 한다) .  

사실, 소설 창작은 보통 6개월 또는 1년을 강의해도 다 못하는 것인데, 주어진 짧은 시간에(1시간 반 정도) 강의를 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해 보인다. 그저, 모인 사람들이 공통의 관심사(소설가 지망생인만큼 소설 창작에 관하여)를  가진만큼 그도 한때는 소설가 지망생이었을 테니, 그냥 편하게 차나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취지가 더 맞을 것이다(그래서 장소도 어느 카페였던 게지).  

고전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인가? 

확실히 요즘의 젊은 작가들은 예전의 작가들과는 그 외모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예전의 작가들(386세대의 전형을 떠올리겠지만)은 자신이 무슨 옷을 입든 외모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 등장한 작가들(굳이 나눌 생각은 없지만)은 옷을 훨씬 잘 입는 편이다. 노희준 작가도 아주 럭셔리 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결코 빠지지 않는 옷차림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먼저,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첫 화두를 잡았다.   

작가가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말일 것이다. 그 역시도 누구못지 않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계기가 재미있다. 그는 위로 형과 누나가 있는데, 그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더구나 사춘기 시절, 한 번은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부모님 호출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에서 교내 백일장을 해 참가를 하게 됐는데, 그가 써 낸 원고가 소위 말하는 90년대 이전의 빨간책들에서 인용한 책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웃지 못할 해프닝이겠지만, 당시로는 부모님이 담임 선생님으르부터 그런 경고를 받았으니, 속이 상한 아버지가 그에게 책을 읽지 못하도록 했고,  그때까지 집안에 있던 모든 책들을 불태우는 이름하여 '분서갱유 사태'를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후에도 책에 대한 관심과 열망을 놓을 수가 없어,  이불 속에서 조그만 불빛에 의지하여 책을 읽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자신이 '왜 책을 못 읽어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 것으로 봐, 그는 확실히 여느 사람과는 조금은 다른 사춘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보통 우리네 사춘기란 게 오히려 부모님이 책읽기를 권해도 잘 안 읽는 시기 아니던가? 하긴, 누구라도 작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열심히 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사춘기란 청개구리 속성의 시기라, 누가 그렇게 책 읽기를 마다했으면 기를 쓰고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의 그가 있을 수 있는 건, 그의 가족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는, 책은 하나의 우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단언한다.  책 읽는 행위가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데 기성 세대들은 툭하면,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는다고 말한다.  특히 고전은 더더욱 읽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그는 이의를 제기한다.  고전 읽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것부터 읽힐 생각을 하고, 안 읽으면 그같은 타박을 하냐고.

특히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너무 강하다고 한다. 그것은 예전에 고전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책들을 읽고, 나이들어 기득권 세력이 되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보단 고전은 꼭 읽어야 할 사람만 읽고, 책 읽는 일은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 역시 그의 말에 동감이다. 하지만 이즈음 되면 간혹 고전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니까 어떤 책이든 관심을 갖고 즐겁게 읽고 그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면 되는 일이 아닐까? 그러므로, 꼭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매이지는 말자.     

소설을 잘 쓰려면 자신의 스타일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을까? 이것은 작가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에 대해 그는, 먼저 자기 스타일을 찾을 것을 조언한다.  소설의 서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문장과 서사로 이루어진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토리다.  이중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하게되는 건 생각이라는 것인데, 생각은 그 자체를 많이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그 생각을 왜 하는지, 그 생각을 어떻게 객관화시킬 것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그는 인간의 감정에 권력이 들어갔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주시해 보라고 한다. 결국 네가 먹는 것이 너다란 말이 있듯이,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을 증명해 주는 법이다.  

그는 이야기 도중, 자신이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예술가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그에게만 국한된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무용이나 성악 같이, 꼭 선생이 있어야만 하고, 구간 반복을 해야하는 형태의 예술가와는 잘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미술이나, 사진을 찍는 등 선생이 굳이 필요없어도 되는 예술가들과는 얘기가 잘 통한다고 한다. 이것은 꼭 사람을 나누겠다는 의도는 아닌 것 같다. 이를테면 자신의 스타일을 아는 또 하나의 척도로 풀이 된다.  

물론,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은 단시일내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안다고 해서 일필휘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그에게 물어 봤다. 글을 쓸 때마다 막막함이 들 때가 많은데 그것을 어떻게 극복 하냐고. 사실 그 막막함이란 건 매번 드는 것이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려면 글을 쓰지 말아야 할 것이고, 항상 그것과 함께 가는 것이 소설가의 운명 같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가?     

누구든, 작가의 꿈을 이루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겪기 마련인 것 같다. 노희준 작가 역시도 나름의 쉽지 않은 과정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대학을 진학하자 동아리를 들어 가야겠는데, 마침 소설 읽기 모임이 있어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있어 보니, 소설 읽기 보다는 소설 쓰기 모임이더란다. 첫 습작품을 써서 보여줬는데, 다 빨간 글씨고 자신이 원래대로 쓴 문장은 간단하게 세어질 정도로 무참하게 깨졌다고 한다. 그래서 오기가나, 다음 번,  또 그 다음 번에도 새로운 작품을 들고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매번 새롭게 무참하게 깨지곤 했다. 누구는 아예, 소설 쓰기를 그만 두라며, 등단에 성공하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하고 까지 했단다. 하지만 그는 결국 등단한다. 농담 삼아, 그 사람의 손가락을 잘랐냐고 했더니, 지금 그 사람들은 어디론가 뿔뿔히 흩어져 만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작가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다.ㅋ  

아무튼 그 과정에서, 이리도 나의 작품을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는 건가  정말 서러웠다고 한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있다보면 정말 사람들이 야속하다 못해 야비하다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작품에 칭찬을 해 준 한 사람을 만났다고 하는데, 그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했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마도 그는 그 사람 때문에 작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들마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이 다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세계관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뭐냐고 했더니, 그는, "네가 사는 세상이 과연 맞니? 옳다고 생각하니?"를 묻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래서도 이번 소설 <오렌지 리퍼블릭>을 썼던 것 같다. 이를테면 '너희가 보는 강남. 네가 보는 게 과연 맞는 거라고 생각하니?'하는 거겠지. 단지,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성장소설로 보는데, 물론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성장소설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작가로 살아가기   

이 질문에 꼭 희망적인 대답을 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느끼는, 한국에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민지 솔직한 답을 듣고 싶었다. 그는 창작을 강의하는 만큼 많은 작가지망생들을 만나는데, 그들에게 가급적 작가는 하지 말라고 솔직하게 말해준 단다. 작가도 천차만별이긴 하겠지만, 연봉 백만 원이 채 될까 말까 하는 작가도 있으니 말이다(그들이 느끼는 열등감이란 건 얼마만한 것일까? ). 그것은 작가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우리나라 예술계의 불균형은 생각 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핏대를 세우고 말하면, 그것만 보지 말고 우리나라 GDP 가지고 말하라고 한단다. 예술이 과연 GDP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분야던가? 

그 역시도 그날 그 자리에 앉아 있기까지 만만찮은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은 가졌어도 내는 작품마다 쓴 잔을 마셨고, 심지어는 모처의 문예지로 등단을 했는데, 그 문예지가 폐간되는(지금은 다행히도 복간되었지만) 일도 있었다고 한다. 모든 일이라는 게 다 그렇듯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는 글이 안 써지면 손톱을 기르는 버릇이 있다. 

사람은, 어떤 한 사람이 조금만 유명해지면 그 사람의 버릇을 알고 싶어지는 묘한 심리가 있다. 그는 손톱을 기르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과연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손톱을 기르면 생활하는 데 불편한데, 특히 열필이나 컴퓨터 자판을 치기는 불편할 것이다.  '너 이러고도 계속 버틸래? 빨리 손톱 깍고 글 써!'라는 자기 외침을 듣기 위해서란다. 재밌지만 나름 현명한 방법인 것도 같다.  

또한, 그는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음악을 한다고 한다. 역시 작가 박범신 선생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분은 어느 책에서, 옛날의 작가들은 글 쓰는 것 하나만 잘했는데, 요즘의 작가들은 글만 잘 쓰지 않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룹 '말도안돼'의 보컬을 맡고 있으며, 홍대 주변의의 클럽에서 공연도 한다고 한다. 이제 그는 돌아오는 30일 날 공연을 하고, 12월 12일엔 공중파 S 본부의 '김정은의 초콜릿'에도 출연한다고 한다.  

그는 확실히 신세대 작가다(물론 이제 곧 40줄을 탈 모양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는 아직 젊다) . 사고하는 바가 유연하고, 자유롭다는 인상을 받았다.  꺾일 줄 모르는 잡초 같은 폐기도 느껴졌다. 이제 작가로서 겪어야할 나름의 어려움도 잘 극복해 냈으니, 앞으로는 승승장구 내는 작품마다 좋은 소식이 들려지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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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1-30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노희준은 모르고요,'말도안돼'라는 그룹은 들어본 것도 같습니다.

저도 stella09님처럼 고전은 읽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강박에 매이지는 말자는 주의입니다.

stella.K 2010-12-01 11:5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근데 그 작가 나름 낸 작품이 꽤 되더라구요.
김정은의 초콜릿에 어떻게 나오나 볼 생각이어요.
그 밴드는 작가로 구성돼 있더라구요. 특이하죠?^^

cyrus 2010-12-05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인가? 라는 단락의 글을 의미 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왠만한 이름 있는 고전은 그것도 원전으로 무조건 읽어봐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전문가가 아닌 이상 원전에 걸맞게 해석했는지 일일이
알아볼 수도 없을뿐더러 굳이 완독하지 않더라도 저자의 핵심 주제만 알아도 무방한
고전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관심 있는 고전만 읽으려고 하는데,
노희준 씨의 말이 참 공감이 갑니다. 과거의 고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보면
고전 읽기에서 경계해야할 강박관념인거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stella.K 2010-12-06 11:48   좋아요 0 | URL
언제나 관심있게 제 글을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정말 책은 재미있고, 자유롭게 읽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고전을 읽어라, 읽어라 해서는 안 읽거든요.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동하는 것 같아요.
고전을 무턱대고 읽는 것 보단, 독서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마이클 더다의 책이라든지,
로쟈님의 책 같은 거요. 그런 분들의 책을 읽고 맵을 그리며 고전을
읽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어요.^^

2010-12-08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참 좋은 책이다. 들꽃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느껴진다.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드는 생각은 들꽃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긴, 길가의 보도 블럭이나 시멘트 담벼락을 뚫고 나오는 것이 들꽃이다.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어떤 차력사도 자기 사지육신을 보도블럭에 묻고 그것을 박차고 부활했다고 하지 않는다. 그만큼 들꽃은 강하다. 또한 그것은 들에만 피지 않고, 사람들의 발밑에서도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 대단하지 않는가?  

그런데, 세상의 어떤 꽃과 식물도(아니 동물까지도), 인간의 손만 닿았다하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인간의 오랜 짓밟힘 속에서도 끄덕없이 한 해를 살았던 세상의 어떤 꽃도, 식물도, 그 자리에 인간의 개발의 손만 닿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라진 꽃들이 얼마런가? 

처음, 이 책의 목차를 보고 좀 놀랐다. '아니, 이렇게 들꽃들이 많았단 말야!' 새삼 나의 무관심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어찌보면 이건 결코 많은 것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하천에 정화되지 않는 썩은 물을 쏟아 버리고, 산업화로 인한 공해 때문에 사라져간 꽃이 더 많지 않을까? 다행히도 저자는 현존하는 들꽃들에 대해 소개해 놓고 있긴 하지만, 이 꽃들도 앞으로 한 세대만 지나면 과거형으로 설명되어져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을까? 그나마 이 책에 소개된 꽃들은 한 세대전만하더라도 들에, 길가에 지천으로 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허리를 구부리고, 돋보기를 들이대듯 해야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책은 독특하게도, 약간의 진보적인 시각에서 씌여지기도 했다. 말하자면, 저자는 그 꽃들을 소개하면서 오늘 날 개발에만 혈안이 된, 개발 공화국 대한민국을 통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통찰한 저자의 따가운 일침의 소리가 예사롭지가 않다.  그 나라, 또는 그 고장에 어떤 식물이 살아 있는가를 보면, 그곳이 과연 사람이 살만한 곳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다.  아니 이렇게 말하기도 너무 이기적이다. 왜 이 지구상엔 사람만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자연과 더불어 공존해야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던가?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이 온전히 살성 싶은가? 인간이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건 지상과제가 된지 오래다. 그래도 무차별적으로 파괴되는 것이 복구되는 것 보다 많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보면 오만은 아닐까? 도대체 인간이 얼마나 자연을 보호하고 살았기에 그런 말을 서슴치 않고 떠들어 댈 수 있는가 말이다.  

저자는 책에서 몇 번이나 친환경 개발이란 말을 마뜩치 않게 말하고 있다. 요즘은 저 말을 달지 않으면 허가 자체를 내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또 그래야 사람들이 안정감을 가질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개발의 주체자들이 친환경을 정말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다. 당장, 청계천을 보라. 청계천의 야경은 그지없이 아름답지만, 그 속을 파보면 생명이 살아갈만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 분명 거기엔 '복구'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친환경적 복구였을까?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정책을 입안하기 위해 국회로 들어간 사람들이 한 권씩 읽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더 나아가서는 들꽃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아예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할 것만 같다. 세상의 모든 만물도 천적이 있어 그 개체수를 유지하며 산다. 즉 자연의 법칙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최근까지 외래종인 왕개구리가 천적이 없다고 알려졌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천적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천적들이 인간에게 해가 되므로 예산을 써서 박멸에 나섰다고 한다. 웃기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가로수로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만큼 좋은 나무가 없다는데, 정치몰이배들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이벤트 사업을 펼쳐 멀쩡한 나무를 쳐냈다. 효과도 크지만, 실패해도 정치적 손실이 적기 때문이 그 이유란다(26p). 과연 이런 무지한 사람을 국회로 들여보내 우리가 얻는 이득은 뭐가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국회에서 친환경 정책을 입에 개거품 물며 떠들어대겠지? 

그들이 게으르고 시간없어 이런 공부조차 하지 않겠다면, 적어도 우린 그런 사람을 다음 선거 때 국회에 들여보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무지해서 자연을, 아니 (그것도 너무 거창하다) 들에 피고, 거리에 밝히는 꽃들 조차 지켜내주지 못하면서, 정치꾼들의 친환경 정책이 진짜 정책인지 쇼인지 어떻게 무엇으로 알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런 사람들이 웃으며 후려치는 뒤통수를 맞고 나중에 탓하고 욕하는 것 밖에 더했는가? 

저자의 이런 통찰도 통찰이지만, 저자의 눈을 한 번 거친 이 땅의 들꽃들은 하나도 나쁜 것들이 없었다. 그것은 거기 필요해서 거기 있는 것이다. 하다못해 더러운 하천을 뒹굴러야 사는 꽃도, 또한 외래종이라고 뽑아 버려야 한다고 핏대를 높이는 것 조차도. 그것은 과연 귀기울여 들을만 하다.   

특별히 내가 이 책에 다시보게 된 것은 잡초에 관한 새로운 통찰이었다. 우리는 이것이 무익하다고 해서 제초제를 써 가면서까지 없앨려고 하는데, 그것도 알고 보면 필요한 것이기에 거기 그렇게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그 무엇으로도 때릴 수도, 뽑아 버릴 수도 없는 게 들꽃이다.  

읽으면서 그 꽃들이 말하는 것 같다. "인간아, 철 좀 들어라. 늬들이 우리를 지킨다고?"하며 콧방귀를 뀌고 있는 것만 같다. 물론, 이런 나의 생각과 상관없이 그 자리에 그 꽃은 피어있는 거겠지만. 새삼 그것의 고고한 생명력에 경이와 애정을 보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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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2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저책은 아니고 그냥 화보로 된 들꽃 사진책이 있는데,우리가 모르는 참 아름다운 들꽃이 많더군요.그리고 새삼 그 들꽃들은 찍던 사진가의 노고와 마구잡이 개발이 많아 아름다운 들꽃들이 조만간 사라질지 모르겠네요ㅜ.ㅜ

stella.K 2010-11-28 13:00   좋아요 0 | URL
읽으면서 좀 안타깝더라구요.
이 개발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스럽기도 하구요.

cyrus 2010-11-29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많은 들꽃들 중에서도 정말 아릅다고 이쁜 꽃들이 많은데,,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언젠가는 사진으로만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0-11-30 11:54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 개발이란 말만 들으면 현깃증이나요.
이 손바닥만한 작은 나라에서 개발할 게 어딨디고,
땅 파고, 삽질들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국회들어 갈 사람들은 필히 자연 공부 좀 하고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감은빛 2010-12-09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꾹! 눌렀습니다!
이번에도 스텔라님 특유의 패턴이 읽힙니다.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0-12-09 10:15   좋아요 0 | URL
푸히히, 제가 좀 까칠하죠?
그래도 추천은 언제나 좋아요!^^
 
노틀담의 곱추 - The Hunchback of Notre Dam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린이 만화란 재미로 포장한 영웅주의. 원작과 달라도 너무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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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29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평의 내용을 보자마자 설마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클릭해봤는데, , ,
디즈니에서 나온 작품이었네요 -_-;;

stella.K 2010-11-30 11:52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어린이를 위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끝이 좀 우습더라구요.
그래도 나름 그림이나 등장인물들은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