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종말
롤프 데겐 지음, 박규호 옮김 / 현문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이 나름 의미심장하다. 악의 종말이라니(소설책 제목을 연상케도 한다). 읽다보니 왜 제목을 그렇게 붙였는지 알 것도 같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자면서 무신론자다. 읽다보면, 인간의 이타성이나, 양심, 도덕성을 꽤나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러느니만큼 인간의 선이나 악도 진화론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긴, 오늘 날은 절대성의 시대가 아니다. 합리적이며, 상대적인 것이 지배하는 시대다. 과거 절대성이 지배하던 세대는 선과 악을 말하며, 인간의 구원과 타락에 관해 또는 현세와 내세에 관해 명확하게 얘기하고자 하는 사조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날에 와서는 절대성이 약화가 되면서 상대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선과 악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으며, 구원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그냥 오로지 현세의 안주와 현상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이 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또 나름 읽는 재미도 있다. 얼마만이던가? 내가 심리학 책을 이렇게 재밌게 읽어 본 게. 나도 한때는 '인간'을 학문적으로 규명한 책들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그래서 세상에 나온 심리학이란 심리학책은 모조리 읽겠다는 당찬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결국 몇 권 못 읽고 다른 쪽으로 옮겨갔지만. 그런데 오랜만에 이쪽 분야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재밌다는 생각을 했으니, 나름 의미없는 독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미있다고 해서 그 책이 다 옳은 말만하고,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하긴, 저자가 상대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주장과 논리를 펴고 있는데, 그것을 절대적으로 맞다고 받아 들이는 건 어패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해도 그것은 그냥 저자의 관점일뿐 인간의 존재를 완벽히 증명해내지는 못한다(그것을 저자 자신도 알고 있을까?). 무신론도 신이 없다고 하기이전에 그것도 하나의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인간인 우리가 우주의 삼라만상을 무엇으로 다 증명해 낼 수 있으며, 신에 관해서 그리고 선과 악에 관해 무엇으로 다 규명해 낼 수 있을 것인가? 단지 선과 악도 인간의 진화의 산물이라고 결론짓는 저자의 태도가 섣불러 보인다. 선과 악이 인간 내부에 있는지 외부에 있는지 그것을 어찌 단정지어서 말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적 입장이라면 선이나 악은 인간 내부에만 존재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것은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논의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또한 인간이 인간을 규정하는 것과 하나님이 인간을 보시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은 성경이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저자는 인간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고 단정 짓는 태도가 석연치 않다. 책의 구성도 자신의 전공인 진화심리론에 관해서는 그토록이나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서도, 악을 종교적 관점에서 다룬 부분은 슬쩍 지나가는 느낌이다. 이는 그가 무신론자라서 그렇다고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공정성을 잃은 주장은 좀 마뜩치 않다.  

본래 선이나 악은 상대적 가치를 가지고 규명되어질 수는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선과 악은 원래 절대성을 담보로 하고 있다. 그럴 때 인간의 이성이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그저 인간의 정신작용 내지는 진화의 산물이라고 축소하는 건, 신을 인정하지 않는 고도의 전략일뿐이다. 하지만 신이 없다고 어떻게 확언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게 믿기로 작정할 뿐, 신이 있고 없고를 규명하는 것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는 태도를 취할 뿐이다. 그러니 자기 모순에 빠질까봐 슬쩍 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특히 책의 말미에 해당하는 '선은 신으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부분을 보라.) 원래 과학을 말하고자 할 때 진화론 못지않게 창조론도 다루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진화론은 가르치지만 창조론은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은 종교의 유무를 떠나서 학문과 교육의 균형을 잃고 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인간이 과연 이타성을 기르고, 양심에 거리끼지 않으며, 도덕적으로 올바르면 유토피아를 건설하게 되는 걸까? 우리가 악을 종식 시킨다고 구원이 이루어지는가? 하지만 우리가 알듯이 악은 소멸되지 않으며, 따라서 유토피아는 이상향일뿐 현세에선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악의 종말을 우논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어찌보면 이번 나의 독서는 무익한 독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아예 안 읽어서 모르는 것 보단 읽고 무익하다, 유익하다 판단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무익을 아는 것도 한편 유익 아니겠는가?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인터넷을 서핑하다 어떤 사람이 무신론자를 위한 10계명이라며 인용을 했다. 그게 좀 가관이란 생각이 든다. 과연 이렇게 해서라도 신을 부정하며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일까?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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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紫霞) 2010-12-05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신론자를 위한 10계명 궁금하네요.

stella.K 2010-12-06 11:53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10계명을 옮겨볼까 하다가
지워버렸어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나에게도 괴로운 걸 남한테 행하지 말라든지,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갖고, 의심하라, 또 뭐라더라...잘못된 것이
있더면 믿었던 거라도 과감히 버려라. 등등.
그래서 그럴까? 읽을 땐 재밌었는데 끝으로 갈수록 저자가 전 좀
신뢰가 가지 않더라구요.

cyrus 2010-12-05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도서관에 들리다가 신간도서 코너에 이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소설이 아니었군요. ^^;; 진화심리학을 바탕을 둔 무신론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독특하네요.

stella.K 2010-12-06 12:10   좋아요 0 | URL
저 글을 쓰고 빼먹은 게 좀 있구나, 후회하고 있는 중이어요.
저자가 대단한 걸 말하는 것 같아도 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별로예요. 신학에서도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거든요.
악을 제거하거나, 종말을 맞는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죠.
신학에선 인간의 죄성을 말하고 있거든요. 그로인한 타락을 말하고 있구요.
인간은 죄성을 없이할 수 없으며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보고 있지요. 그런데 저자는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를 회복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악이 완전히 제거될 수 없다는 걸 저자도 알고 있으면서
왜 그토록 무신론적 관점을 유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이렇다할 결론도 없이 ing라고나 할까요?
진화론이 원래 그렇잖아요. 현재진행형.
그런데 요즘엔 사화심리학을 진화심리학이라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이 책은 악의 종말 어쩌구하기전에 사회심리학 책 같거든요.
제목을 다르게 정했더라면 저에게 욕을 덜 먹었을텐데 싶어요.ㅋ